사.람.들.. 78

부러운 인생, 미친 속도의 천재 화가 '피카소'

예전엔 '예술가' 하면 막연하게 '별로 실리적이지 않거나 돈 안되는 직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우리들의 시대(21세기) 이전엔 특히 그랬다. 요즘엔 예술(중의 일부)도 돈 많아야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미대, 음대 가려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장난 아니게 돈을 투자해야 하고, 대학 진학 이후에도 이런저런 경제적 부담이 많아지니 말이다.. 어쨌든, 그 옛날 예술가들 중에는 배고픈 시절을 견뎌가며 피고름(?)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 이들이 참 많았었다. 서양 화가들 중에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처럼 평생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힘든 삶을 이어간 미술가들이 꽤 있었는데, 반면 자신의 창작 세계를 마음껏 펼치는 ..

사.람.들.. 2014.10.02 (46)

가정부와 사랑에 빠진 화가 '렘브란트'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로 '종교화'나 '초상화'를 많이 그린 렘브란트(Rembrandt)는 그 이름만으로 무척 유명한 예술가이다.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긴 그는 한 때 풍족한 생활을 누리기도 했으나, 그 말년의 삶은 심히 비참했다고 전해진다. 20대 후반에 아내 '사스키아'를 얻은 렘브란트는 그 시기에 무척 잘 나갔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도 얻었지만, 얼마 못 가 사스키아는 죽게 된다. 부인 사스키아를 무릎에 앉힌 렘브란트의 자화상 그 후 렘브란트가 아들 '티투스'를 양육하기 위해 과부인 '헤르트헤 다르크'를 보모로 고용했고 나중엔 그녀와 사실혼 관계에 들어갔으나, 렘브란트 쪽에서 '결혼' 생각은 없었다. '아들의 유모'와의 동거로 사회적 명성에서 흠집이 나고 헤르트헤와 이런 저런 갈등을 겪던 렘브란..

사.람.들.. 2013.10.26 (25)

남녀 성 역할의 편견 깬 인류학의 대모 : 마거릿 미드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로 알려진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1901년 필라델피아에서 경제학자인 아버지와 교사 & 사회 운동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대학에서 영문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던 그녀는 한 강의에 매료되어 인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인류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Margaret Mead(1901~1978) 마거릿 미드는 '10년이 훨씬 넘게 남태평양의 사모아 섬, 뉴기니, 마누스 섬, 발리 섬 등 원시 부족이 사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실질적인 연구 결과를 남긴 인물'이다. 젊은 여성 입장에선 현대 문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오지의 밀림'에서 원주민들과 같이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마거릿은 그곳에서 생활하던 중 많은 고생을 ..

사.람.들.. 2013.09.09 (12)

애국자 '논개'와 한 '왜장 광팬의 양국 향한 민폐' 행각

우리 나라 과거의 역사 속에서, 1592년에 왜나라(일본) 사람들이 조선으로 쳐들어 오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1593년 진주성이 함락된 후 왜적들이 '자축연'을 벌일 때 논개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 六助)를 절벽으로 유인했다. 당시의 논개는 왜군을 무찌를 수 있는 장수가 아니라 연약한 여자의 몸이었지만, 적을 한 사람이라도 제거하기 위해 목숨 바쳐가며 왜나라 장수를 유인하여 남강에 같이 뛰어든 '애국자'이다.(논개는 '기생'이 아니며, 의병장 남편이 진주성 싸움에서 패해 죽자 '남편과 나라의 원수=왜나라 장수'를 처단하기 위해 기생으로 가장해 숨어든 것이라는 주장이 있음) 헌데,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그 애국자 '논개'가 한국인들이 모르는 사이 일본인들에 의해 말도 안되..

사.람.들.. 2013.08.15 (14)

'시민 불복종' 저자, '소로우'의 이상적인 삶

예전에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집필한 '월든'이란 책이 서점가 베스트셀러였던 때가 있었다. 하버드 대학 출신인 소로가 20대 후반 무렵에 호숫가에 통나무 집을 지어 홀로 살았단 일화는 나름 유명한데, 은 그 몇 년 간의 기록을 담은 서적이다. 개인적으로, 소로의 '삶의 방식'이 참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한 때 학교를 설립하여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에 측량사 or 목수로 일하거나 강연을 하는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며 '독서'에 몰두하고 가끔은 잡지사 같은 데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더 큰 부..

사.람.들.. 2013.08.07 (20)

남장을 즐긴 사랑과 정열의 여류 작가 : 조르주 상드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여류 소설가인 조르주 상드(George Sand)의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루실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이며, 4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로 할머니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녀의 할머니는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는데, 그 덕분에 조르주 상드도 오르간, 하프, 클라비코드 등의 악기를 배우고 라틴어, 희랍어, 수학, 그림, 역사, 문학 등 다양한 학문을 익히며 자라났다. George Sand(1804~1876) 18세 때 할머니를 여읜 상드는 아버지의 친구인 뒤프레시스 댁에 머물면서 음악회나 연극 모임 등에 자주 참석하다가 지방의 귀족인 뒤드방(Dudevand) 남작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데다가, 자신과는 달리 '문학'과 '..

사.람.들.. 2013.07.12 (16)

셜록 홈즈 작가 '코난 도일'은 비정한 아버지?

본격적인 공포물이나 추리 소설 등이 땡기는 여름이다. '추리 소설' 창시자 하면 천재적인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떠오르지만, 소시 적에 그보다 먼저 알게 된 추리 소설의 대가는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었다. 명탐정 시리즈로 아주 유명한 작가이다. 코난 도일의 는 당시에도 열혈 매니아층이 존재했던 인기 작품이었다. 1859년 영국에서 태어난 '아서 코난 도일'은 30대 초반까지 의사로 일하다가, 그 후 '홈즈'가 등장하는 단편 소설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의학적 지식도 갖추고 있는 데다가, 문학 작품 중 추리 소설 뿐 아니라 역사 소설, 시, 과학 소설 영역에서 두루 활동했을 정도로 그는 요즘 기준으로 하면 '엄친아'가 아니었나 싶다. ..

사.람.들.. 2013.06.26 (14)

히틀러를 물 먹인 전설의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

'독일 출신의 헐리우드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는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라인하르트 연극 학교를 나왔으며, 19세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배우가 되기 전 캬바레 가수로도 활동하고, 여러 연극과 영화에 단역 연기자로 출연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Marlene Dietrich(1901~1992) 1930년 독일 영화 주연으로 호평을 받은 마들레네 디트리히는 그 뒤 미국 헐리우드로 건너 가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고, 도시적인 이미지와 탁월한 각선미 & 허스키한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곧 '유혹적이고 섹시한 여배우'로 주목 받게 된다. 조셉 폰 스턴버그(Josef von sternderg)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 했..

사.람.들.. 2013.06.04 (28)

영국의 바람둥이 왕 '헨리 8세'와 여섯 왕비 이야기

잉글랜드(영국) 튜더 왕조 헨리 7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헨리 8세(Henry VIII)는 형이 일찍 죽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 받았다. 르네상스 군주로서 절대 왕정을 강화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사생활 면에선 천하의 바람둥이 왕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Henry VIII(1491~1547) 헨리 8세의 첫번 째 부인 : 아라곤의 캐서린 20년 결혼 생활 동안 왕위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고, 이혼 안하려고 버티다가 '강제 이혼' 당함 아라곤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과 결혼했으나, 그가 죽은 뒤 '시아버지인 헨리 7세와 자기 아버지와의 목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동생인 헨리 8세와 재혼했다. 그 사이에서 6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자주 사산되어 결국 ..

사.람.들.. 2013.05.27 (22)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잘못된 만남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Haydn)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며, 궁정 악장 살리에리와도 친분이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온화한 인품에 유머 감각까지 갖춰서 주변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알려져 있는 하이든은 평생에 걸쳐 여러 음악적 업적을 남겼으나, 그 사생활(결혼 생활) 면에선 그닥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서로 맞지 않는 두 남녀가 만난 탓이다. Franz Joseph Haydn(1732~1809)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은 젊은 시절, 자신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던 가발 제조업자의 딸 '테레제 켈러(Therese Keller)'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이든의 순정을 받아주지 않았으며, 결국 수녀가 되기..

사.람.들.. 2013.05.21 (16)

왕이 사랑한 '결혼 행진곡' 작곡자, 오만한 '바그너'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는 독일 출신 작곡가이며, 음악사와 더불어 문학사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긴 유럽의 천재 예술인이다. 소시 적부터 괴팍한 성향을 보였던 바그너는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을 탐독하거나 베토벤의 곡을 들으며 음악에 빠져들었고, 20세 무렵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오페라 작곡가인 바그너는 등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지만, 그의 사생활적인 측면에선 갖가지 안 좋은 소문들도 많이 떠돌았다. Richard Wagner(1813~1883) 여성 편력이 대단했던 바그너는 결혼 이후에도 상습적(?)으로 멀쩡한 남의 부인(유부녀)들과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녔다. 작곡가 바그너(Wagner)는 '일반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신에게 존경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을 떠벌리고..

사.람.들.. 2013.05.08 (18)

'알로하오에' 작곡한 하와이 최후의 여왕 릴리우오칼라니

외국 민요 '알로하오에(Aloha'Oe)'는 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린 적 있고, 우리 나라 가수들도 번안해서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수시로 불렀던 유명한 노래이다. 들은 지 좀 되어서 앞부분 가사는 까먹었지만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하는 이 곡 후렴부 가사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일반 작곡가가 아닌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이다. Lili'uokalani(1838~1917) 릴리우오칼라니의 공주 시절, 오하우 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안타까워 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고 삘 받아서 이 석별의 노래 '알로하오에'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Aloha Oe'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나라 말..

사.람.들.. 2013.05.02 (23)

'오스카 와일드'의 매혹적인 '살로메'

예전에 독일의 여류 작가 '루 살로메(Lou Salome)'에 관해 포스팅한 적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살로메'와 그 '살로메'는 각각 다른 사람이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문학 작품으로 인해 무척 유명해진 팜므 파탈의 전형 살로메(Salome)는 성서에 나오는 실존 인물로, 헤롯왕의 의붓딸이라 알려져 있는 여성이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작품 등 많은 화가들의 그림으로 형상화되었거나, 오페라 주인공으로도 등장한다. 세례 요한이 활약하던 시기의 '헤롯왕'은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탐하여 그녀와 결혼을 했다.(빌립이 헤롯왕 친동생은 아니고, 이복 동생임) 이것은 유대교의 율법에 의해 금지된 일이었다. 하여 '요한'이 헤롯왕에게 옳지 ..

사.람.들.. 2013.04.26 (10)

로렌스 올리비에를 향한 뜨거운 사랑 : 비비안 리

161센치의 키와 19인치의 잘록한 개미 허리, 작은 얼굴에 오똑한 콧날.. 영화 의 도도하고 앙칼진 '스칼렛' 역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비비안 리(Vivien Leigh)는 1913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Vivien Leigh(1913~1967) 본명은 비비안 메리 하틀리(Vivian Mary Hartley)- 그녀의 어머니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이며, 런던 증권가의 부호였던 아버지는 프랑스계 영국인이다. 5세 때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거기에서 학업을 마치고, 파리와 로마 등지를 오가며 연기를 배웠다. 학창 시절 인기가 좋았던 비비안의 꿈은 무대 배우가 되는 것이었는데, 연극을 즐겨 보던 그녀의 아버지는 비비안 리가 런던 왕립 연극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 주었다. 1932년 허버트 리..

사.람.들.. 2013.03.25 (20)

모든 학문에 통달한 조선의 천재,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은 개인적으로 '세종 대왕'과 더불어 소시 적부터 존경해 왔던 인물이다. 당시엔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 밖에 습득하지 못했으나, 그것만으로도 막 호감이 갔던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더 자세하게 알게 된 정약용 선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능한 정치가이면서, 를 포함하여 평생동안 500권에 달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남기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던 작가이자 대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거중기'를 고안하여 세계적 문화 유산인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이 수원 화성의 '설계도'를 작성한 이도 정약용이라고 함) 뛰어난 학문적 재능으로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은 정약용은 '청렴 결백하면서, 민본(民本..

사.람.들.. 2013.03.04 (40)

'동성애자'로 알려진 역사 속 인물과 유명인들

"너 자신을 알라~"란 말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제자였던 미남 청년 알키비아데스와 연인 사이였으며, 널리 알려진 동성애자였다. 소크라테스의 그것은 주로 남성들과의 진한 우정이나 '플라토닉 러브'에 가까웠다. 여러 가지 동성애에 대한 탐미적인 논리를 제공한 그는 오늘날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철학적 지주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여자와 동침하면 육신을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낳는다"는 등 동성애 예찬론을 펼친 바 있다. 그들이 살았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식자들은 동성애를 고차원적인 사랑의 형태로 느끼는 등 그것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듯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 &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기를 대..

사.람.들.. 2013.02.28 (26)

선박왕 오나시스를 사랑한 프리 마돈나, 마리아 칼라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1923년 미국으로 이주해 간 그리스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마리아 칼라스는 꽤 '우량아'였었는데, 일찍 사망한 아들을 대신할 애가 태어나길 원했던 그녀의 부모는 우람한 딸의 탄생에 실망했고 별로 큰 애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Maria Callas(1923~1977) '근시여서 두껍한 안경을 쓰고, 비만이기까지 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자기보다 '날씬하고 예쁜 언니'에게 밀려 '미운 오리 새끼'스러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12세 때 한 라디오 방송국의 에 출전하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서 마리아 칼라스는 그리스로 돌아왔고, 원래 배우가 꿈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

사.람.들.. 2013.01.30 (22)

대왕의 부러움을 산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

예전에 측근과 함께 '어떤 직업이 과연 좋은가?'에 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세속적인 기준에선 법대, 의대 나와서 고시 패스하고 의사 되면 좋은 거지만, 측근 왈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을텐데, 자기도 완전무결한 인간 아니면서 맨날맨날 다른 사람 죄 있다고 주장하는 검사란 직업이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파렴치한 죄를 저지르고 다른 멀쩡한 사회 구성원에게 피해 준 범죄자'를 탁월한 말빨로 포장하여 죄 없게 만들어 주는 변호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의사는?' 하고 물었더니, 그는 '맨날 아픈 사람 상대하고 피 보는 직업이 뭐 좋냐?'고 했다.(사람들이 그냥 농담처럼 하는 말로 '의사가 좋은 게 아니라, 돈 잘버는 의사 부인이나 의사 가족이 좋은 거다-'란 얘기가 있다.)..

사.람.들.. 2013.01.24 (20)

현대 극의 '친자 확인'에 크게 기여한 인물 '멘델'

언젠가부터 우리 나라 드라마엔 '출생의 비밀' 설정이 너무나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극 안의 한 캐릭터가 '이 사람 자식(친핏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의 자식이었다~'는 식의 내용 말이다. 옛날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선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현대극에서의 '출생의 비밀' 설정엔 에피소드가 한 세트로 따라 붙는다. 조사해 보면 다 나오므로, 의심 가는 그 자식이 내 핏줄인가 아닌가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함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식을 낳는 것도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을 남김으로써,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자기 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타 '늙어서 외로울까봐.. 나중에 자식한테 덕 볼려(?)고.. 아기를 좋아하니까..' 이런 건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들이고, 교..

사.람.들.. 2013.01.07 (18)

'자야'와의 애틋한 사랑, 미남 시인 '백석'

예전엔 국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 '시대극'을 꽤 볼 수 있었으나, 최근 들어선 그런 류의 극을 좀처럼 보기 힘든 것 같다. 시인이나 소설가 등 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극도... 요즘엔 너무 '가벼운 느낌의 애정물'이 주를 이뤄서 그런지, 진지하면서 아련한 느낌으로 윤동주나 이상, 백석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 등이 나오면 좋겠단 생각을 종종 해보곤 한다.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윤동주 못지않은 '얼짱 시인'으로 유명한데, 우리 나라 '시 문학사'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삶 속에 기생 '자야'와의 로맨스도 있고 해서 드라마 주인공으로 아주 적합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연속극' 아닌 '2부작 특집극'이나 '단막극' 소재로도 괜..

사.람.들.. 2012.09.11 (40)

러시아 마지막 황태자, 비운의 미소년 '알렉세이'

비교적 최근에 '세계의 미녀 왕족 Top 10'에 관한 설문 조사가 시행되면서 '세계의 미남 왕족'도 뽑았는데, 요즘 '남자 왕족들'의 미모 수준은 상당히 별로여서 실망한 기억이 있다. 동화 삽화 속에 나오는 왕자들은 너무나도 멋진 것에 반해서 말이다. '사진기'가 없었던 중세 시대 왕족들 경우엔 궁정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로써 그들의 모습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으나, 개중엔 화가들이 미화하여 그린 것들이 많아서 그림만으로 실제 모습을 가늠하기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에 살았던 왕족들 관련해선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가 남아 있으며, 그것은 보다 실제 모습에 근접하다 할 수 있다. 왕실의 왕자라 해서 굳이 '동화 속 인물'처럼 잘생길 필요는 없지만, 소시 적에 봤던 이야기물들 중엔..

사.람.들.. 2012.08.29 (22)

작지만 큰 물랭 루즈의 난장이 화가 '로트렉'

오래 전.. 기존의 '쇼적인 성격이 강한 뮤지컬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에 뮤지컬 영화 '물랑 루즈'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쪽 음악을 선호하지 않음에도 의외로 너무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으로 나온 그 2001년 버전 영화 외에도 '물랑 루즈(물랭 루즈)'를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러 차례 제작된 바 있다. 프랑스어 물랭 루즈(Moulin Rouge)는 '붉은 풍차'를 뜻하는 말로, 몽마르트에 위치한 그 캬바레 지붕에 빨간 풍차가 장식되어 있어서 '물랭 루즈'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라 한다. 후기 인상파 화가로 분류되는 로트렉(Lautrec)도 화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자주 들렀던 곳인데, 1952년에 나온 영화-존 휴스턴의 는 이 '로트렉'을 중심 인물로 하여 만들어진..

사.람.들.. 2012.07.02 (4)

치아로 고생한 루이 14세와 악취로 물든 베르사유 궁전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남기며, 자기가 무슨 '태양'이라도 되는 양 행세했던 프랑스 절대 왕정의 대표적인 전제 군주 루이 14세.. 그에 대해 여러 뮤지컬이나 영화 등이 만들어졌고, 작위적으로 꾸며진 이야기물들에선 '발레를 사랑한 왕'을 강조하거나 여러 여인들과 루이 14세의 '사랑 이야기'로 곱게 포장하여 내어 놓았지만, (실제로) 당시 프랑스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그리 좋은 왕은 아니었던 것 같다. Louis XIV(1638~1715) 루이 14세가 나름 국력을 강화한답시고 잦은 전쟁을 일으키거나, 국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거나,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짓는다며 국고를 탕진하고 별다른 보상 없이 백성들을 위험한 공사에 동원하면서 부려 먹었으니...(세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화려한 베르사유 궁..

사.람.들.. 2012.06.28 (28)

나쁜 남자 피카소의 희생양 '마리 테레즈'

오래 전.. 40대 중반의 나이였던 화가 '피카소'는 길 가다 우연히 10대의 건강한 소녀 '마리 테레즈'를 발견하고선 '모델'로서 자신과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들이댔다. 그녀는 몇 달간 계속 거절했지만, 18세 되던 해에 피카소의 집요함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평소에 여자 관계가 복잡했던 피카소는 살아 생전에 여러 번 '동거할 여자'를 갈아 치웠는데, 자기가 싫증 나면 상대 여성을 차 버리곤 했었다. 좋게 말해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서이고, 나쁘게 말하면 피카소(Picasso)가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다 준 '예술(그림) 활동'에 엄한 여인네들을 '이용'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들은 피카소의 원초적인 욕망 해소의 도구이기도 했다. 피카소에겐 새로운 모델을 만나 그림 작업을 하기..

사.람.들.. 2012.06.10 (24)

순정파 왕, 세기의 완전한 사랑 : 공민왕과 노국공주

고려 31대 왕이었던 공민왕(1330~1374)은 14C 후반 '원/명 교체기' 때 원에게 잃은 영토를 되찾고, 권문세족을 숙청하고, '반원 자주 정책'을 펼쳤던 개혁 군주이다. 원(元)의 간섭을 받던 시기에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원나라에 볼모로 가 오랫동안 그곳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당시의 고려 왕실 모계 쪽은 (속국인 고려에 대한 간섭을 목적으로) 원나라 여성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공민왕의 경우엔 생모가 고려인이어서 왕위 계승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기에 원나라의 노국 공주와 정략 결혼했고(1349년) 그 후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허나 그 시작은 '정략 결혼'이었지만,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한평생 서로를 깊이 사랑한 '금슬 좋은 부부'였다. 노국공주(魯國公主)는 준수한 외모에, 성품도 곱고 현명하..

사.람.들.. 2012.05.26 (22)

남역 '햄릿'을 연기한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1844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의 본명은 마리 앙리에트 베르나르(Marie Henriette Bernardt)이며, 파리의 한 고급 매춘부의 딸로 태어났다. 유모에 의해 길러진 그녀는 결국 수녀원으로 보내지게 되었고 한 때는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기도 했지만, 생모의 정부였던 모르니 공작의 후원을 받아 국립 연극 학교인 콩세르바투아르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Sarah Bernhardt(1844~1923)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는 콩세르바투아르를 졸업한 뒤 1863년 '코메디 프랑세즈'를 통해 배우로서 데뷔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나온 그녀는 민간 극장을 돌아다니며 활동했고, 1866년 무렵부터 조금씩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 2012.05.01

18세기 '소수의 선택 받은 톱스타'였던 '파리넬리'

얼마 전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Mozart L'Opera Rock)' DVD 버전을 감상하다가 그 안에 나오는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전에 몰랐던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판본 비교'하는 거 되게 좋아하고 내가 관심 있게 본 '뮤지컬' 작품이 동일한 제목의 '오페라'로 나온 경우도 있어서 언젠가는 한 번 파보고 싶은 장르였는데, 모차르트가 만든 오페라 아리아로 인해 생각보다 일찍 관심 갖게 되었다. 어느덧 4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게 된 '오페라'는 16세기 말 무렵에 탄생했다. 한 때는 예술 작품도 종교를 위해 존재했던 때가 있었으나, 그러한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과학과 이성의 힘을 중시하는 르네상스기가 도래하면서 '오페라(Opera)'라는 새로운 예술 형식 또한 생겨나..

사.람.들.. 2012.04.25 (22)

순수 소설 '소나기' 작가 황순원, 배우 뺨치는 미모?

언젠가부턴, 여기 저기서 접하는 '과도한 러브씬의 애정물'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끌어당김엔 '감질나게 닿을 듯 말 듯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데, 요즘엔 영화를 봐도 그렇고 TV 드라마, 심지어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할 법한 '사극'에서조차 남녀 주인공들이 수시로 진하게 부비적~거려대니 이젠 그런 걸 봐도 아무런 감흥이 생기질 않는다.(희소 가치가 없는데다가, 진한 러브씬을 지나치게 남발해서..) 몇 년 전에 한 드라마를 통해 언론에서 이병헌과 김태희의 '사탕 키스'를 막 띄워준 적이 있는데, 그러한 언론 보도 내용과는 달리 정작 '여초 사이트'에서의 여성 회원들 반응은 다 이병헌을 욕하는 분위기였고 '징그럽다, 더럽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거부감 든다~' 이런 반응들이 대세..

사.람.들.. 2012.04.19 (6)

'로베스피에르', 단두대로 흥하여 단두대에서 사라지다

프랑스 혁명 당시 '죄인들을 비교적 큰 고통 없이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단두대(하지만 끔찍한..)' 아래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갔다. 그 단두대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밀어넣은 이가 바로 '공포 정치'로 유명한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였는데, 그 역시 결국엔 단두대에서 처형 당하는 신세가 된다. 1758년생인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는 32세 때 '삼부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에 입문하였으며,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자코뱅당'의 지도자가 된 인물이다. Maximilien de Robespierre 다소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소시 적부터 영특하였던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는 ..

사.람.들.. 2012.03.26 (4)

영국 화가 '월터 시커트'가 '잭 더 리퍼'?

영국의 잔혹한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의 정체가 결국 밝혀지지 않은 채, 1888년 화이트채플 매춘부 살해 사건은 지금까지도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다. 당시 폴리 니콜스, 리즈 스트라이드, 케이트 에도우즈, 메리 자네트 켈리, 애니 채프먼 등 5명의 매춘부들은 살해 당한 뒤 '내장'까지 훼손 당하였는데, 그것이 외과적 기술을 지닌 사람이 한 것처럼 정교해서 한 때 '외과 의사의 소행이다..'라는 설이 제기되었고, 현재 공연 중인 역시 그 '가설'을 채택하여 '그럴듯한 하나의 꾸며진 이야기'를 만들어낸 뮤지컬에 속한다. Walter Richard Sickert(1860~1942)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살인마 잭 더 리퍼' 관련해선 '연관된 학문'까지 생겨나..

사.람.들.. 2011.07.3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