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18세기 '소수의 선택 받은 톱스타'였던 '파리넬리'

타라 2012. 4. 25. 15:27
얼마 전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Mozart L'Opera Rock)' DVD 버전을 감상하다가 그 안에 나오는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전에 몰랐던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판본 비교'하는 거 되게 좋아하고 내가 관심 있게 본 '뮤지컬' 작품이 동일한 제목의 '오페라'로 나온 경우도 있어서 언젠가는 한 번 파보고 싶은 장르였는데, 모차르트가 만든 오페라 아리아로 인해 생각보다 일찍 관심 갖게 되었다.

어느덧 4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게 된 '오페라'는 16세기 말 무렵에 탄생했다. 한 때는 예술 작품도 종교를 위해 존재했던 때가 있었으나, 그러한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과학과 이성의 힘을 중시하는 르네상스기가 도래하면서 '오페라(Opera)'라는 새로운 예술 형식 또한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기 오페라의 주된 소재는 주로 '신화'에서 가져왔는데, 당시의 오페라는 귀족들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도 쓰이는 등 좀 띠꺼운 장르에 속했다. ;; 지금도 오페라 관람 비용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보기엔 많이 오만한 편이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그리 건방지지 않은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오페라 실황 DVD도 요즘엔 인터넷 서점이나 시중에서 많이 판매하고 있다..

당시엔 귀족들 뿐 아니라 평민들(이라고는 하지만, 도시 내에서 살아가는 부자 평민들)도 '오페라'를 즐겨 봤는데, 워낙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오페라만 따로 공연할 수 있는 '오페라 극장'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고, 덕분에 그 시기의 사람들은 점점 귀족들의 성에 초대되어 가지 않더라도 관람료를 지불하면 '상업 오페라 극장'에서 손쉽게 오페라 감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헨델(1685~1759)이 활동했던 '바로크 오페라' 시대 때, 거세된 남성 성악가인 '카스트라토'들도 오페라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엔 여성이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게 금지되어 있었기에, 변성기 전인 남자 아이를 거세시킨 뒤 청아한 고음을 유지하게 만들어서 무대에 올린 것이다. 그 시기엔 카스트라토(Castrato)가 주연으로 등장한 오페라 작품들이 꽤 많았으며, 18세기의 유명한 카스트라토였던 '파리넬리(Farinelli)'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실존 인물, 18세기 때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실존 인물 '파리넬리'는 한 때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예술 영화 좋아해서 당시 이 작품을 3번 정도 봤으며, 극 중 파리넬리가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를 부르는 장면은 특히 좋아했던 장면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영화 속에 나온 해당 장면에서의 그 '천상의 소리'는 온전한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기계적인 조작이 들어간 소리였다는 것-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가 그 후 우리 나라 CF나 드라마 배경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었는데, <파리넬리>란 영화로 인해 범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곡이 아닐까 싶다.

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리베라 소년 합창단, 빈 소년 합창단 등 '변성기 전의 소년'들은 천사처럼 맑고 고운 미성의 목소리를 낸다. 내가 초등 학교 다닐 때에도 우리 반에 그런 목소리를 내던 노래 잘하는 남학생이 한 명 있었다. 학생들이 떠들 때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그 아이한테 나와서 노래 부르라고 시켰고, 그러면 떠들던 반 애들이 그의 노래에 취해 조용~해지곤 했었다. 졸업 후, 우리가 고등 학교 올라가기 전에 초등 학교 애들이랑 모임을 한 번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웬만한 여자애들보다 더 맑은 목소리를 내던 우리 반의 그 '꾀꼬리 소년'이 변성기를 거친 뒤 저 때의 목소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굵직한 목소리의 소유자'가 되어 있어서 좀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17~18세기에 '카스트라토(Castrato)'가 유행하게 된 것은 당시의 교황이 '여성은 교회 성가대나 오페라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금지령을 내렸기에 그리 된 것인데, 한 편으론 무척 비인권적인 처사이기도 하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오페라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여성'은 여성들대로 차별 받고, 그들 거세된 카스트라토 남성들은 듣는 사람의 만족을 위해 멀쩡한 신체를 훼손당해야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18세기에 활약했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Farinelli)'의 경우, 사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긴 했다. 비록 거세의 아픔은 있었지만, 그로 인해 당시 '잘 나가는 카스트라토'로서 큰 부와 명예 속에서 살 수 있었던... 하지만 모든 거세 당한 카스트라토가 다 파리넬리처럼 되는 건 아니었다.

요즘에도 일단 '톱 스타'가 되면 명성과 경제력이 따라주기에 본인의 열망 or 부모의 요구에 의해 연예인의 길로 들어서는 이들이 많지만, 그 모두가 다 뜨거나 스타가 되는 건 아니며 기본적인 생계 유지도 안되는 힘든 연예인들도 많은 것처럼 그 시대의 카스트라토들도 그랬다.

'카스트라토로 뜨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말에 당시 이탈리아의 가난한 집에선 자기 아들을 거세시켜 그 길로 내보내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 중 '성공하는 카스트라토'는 1% 미만이었으며 그 안에 들지 못한 거세 당한 성악가들 중엔 힘든 삶을 살아가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행도 달라지고 관객들기호변하게 마련인데, 한 때 웬만한 배우들보다 많은 개런티를 받기도 했던 '카스트라토(Castrato)'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사라지고 여성 성악가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됨에 따라 18세기 후반 이후 카스트라토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한 때 영화의 소재로도 나왔던 실존 인물 '파리넬리(1705~1782)'는 그나마 '운 좋은 카스트라토'에 속했다. 카스트라토가 한창 흥했던 시기에 활약했던 그는 당시 '엄청난 인기와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카스트라토, 상위 0. 몇 프로의 '톱 스타급 카스트라토'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