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신화 속 최강 순정남 '오르페우스'

타라 2011. 3. 9. 21:12
예전에 음악 교과서 같은 데에도 나와서 그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오르페우스(Orphe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시인 & 음악가로, 전 세계 '오페라 소재로 가장 많이 사용된 스토리 Top 3' 안에 드는 인물이다. <음악아버지>라 불릴 만큼,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이 '오르페우스'의 위상은 꽤 높은 편이다.('오르페우스'는 그 탁월한 음악적 재능으로 치명적인 바다 마녀 '세이렌'과의 배틀에서 이긴 인물이기도 함) 특정한 형태의 극 안에선, 오르페우스의 커리어적인 측면 보다는 그의 부인 <에우리디체(Eurydice)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부각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페데리코 세르벨리(Federico Cervelli)의 그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많은 작곡가들이 그 내용을 담은 오페라를 만들었고, 서양 화가들 또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이야기를 자주 화폭에 담곤 했었다. 님프 출신으로 오르페우스와 결혼하게 된 '에우리디체'는 어느 산책길에 자신에게 추근덕 거리던 아리스타이오스를 피해 달아나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되었다. 이에, 부인을 너무나 사랑한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되살려 내고자 명계(冥界)의 신 '하데스(=죽은 자들의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자)'를 음악으로 감동시킨 뒤 그로부터 부인을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게 되는데...

명계의 제왕인 하데스가 아무 조건 없이 그 부탁을 들어줄 정도로 너무 쉬운 남자는 아니었기에, 부인을 데리고 가려는 오르페우스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게 된다. "오르페우스가 지상으로 다 올라가기 전까진, 절대 뒤따르는 에우리디체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조건이었다.(일종의 '시험'인 셈..)

장-밥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Baptiste Camille Corot)의
그림 
'에우리디체를 이끌고 명계를 벗어나려 하는 오르페우스'

대체로, 이런 류의 '신화 or 구전된 설화 이야기'에서 연약한 주인공은 꼭 시험에 빠져들곤 한다. '오르페우스'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저 멀리 지상의 빛이 보이자 너무 기쁜 나머지 그만 부인 '에우리디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를 돌아보고야 만다.(이 '뒤돌아 보지 말라~'와 관련한 이야기는 그 외의 많은 전설과 창작물의 소재로 쓰이곤 했었다..)

그냥 처음부터 인내하면서 원칙을 잘 지켰다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의 상황을 맞게 될텐데, 꼭 시험에 빠져들거나 결정적순간에 일을 망치는 자들이 있는 듯하다. 오르페우스(Orpheus)가 '죽은 자를 다시 이승으로 되돌려 보내줄 만큼 크게 선심을 쓴 하데스와의 약속'을 어긴 대가로, 이승으로 향하던 에우리디체(Eurydice)는 다시 명계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오르페우스'는 두 번 다시 지하 세계로 내려갈 수 없었으며, 사랑하는 부인과 영영 이별해야만 했다.

알렉상드르 세옹(Alexandre Seon)의 그림 '오르페우스의 탄식'


자신의 실수로 사랑하는 에우리디체를 또 다시 잃게 된 오르페우스는 지상으로 올라온 뒤 스스로의 부주의함을 자책하며 내내 폐인처럼 지냈다. 그 사이 오르페우스가 작곡한 슬프고 아름다운 선율에 반한 많은 여인들이 그에게 구애의 손길을 뻗쳐 왔으나, 오르페우스는 죄다 거절하고 전 부인만 그리워 했다.

기왕 그렇게 된 거,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전 부인 에우리디체(Eurydice)는 그만 잊고 다른 여인이랑 새출발 했으면 좋았을 것을.. 죽은 부인을 못 잊어 결국 정신줄을 놓아버린 우리 나라 고려 시대 '공민왕'의 경우도 그렇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의 경우도 그렇고, 사람이 너무 한 가지에만 집착하거나 극강 순정파인 것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잘 사는 것' 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중요한 법인데, 많은 여인들의 구혼을 거절한 이 '오르페우스(Orpheus)의 최후'는 무척 처참하기만 했다.

'오르페우스에게 대시했다가 거절 당한 데 대해, 자신들을 무시했다며 앙심을 품고 있던 짝사랑녀'들이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행사에서 단체로 그에게 달려들어 오르페우스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였다고 하니...(여자들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무서운 여인네들~ ;; 그런 류의 행동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셔버리겠어~'의 심리에서 나온 것일까..?)

장 델비유(Jean Deville)의 그림 '오르페우스의 머리'


'앙심 품은 집착녀'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 오르페우스의 육신은 강을 따라 떠내려 갔고, 뮤즈들은 그 조각들을 한곳에 모아 정성스레 장례를 치러 주었다. 비록 그 삶 자체는 비참한 면이 있었으나, 결국 죽은 뒤에 저승에서 다시 에우리디체를 만나게 된 오르페우스는 죽음으로써 사랑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사랑 이야기'는 오래 전 <흑인 오르페(Orfeu Negro)>라는 영화로 각색되어지기도 했었다. 이 영화에 나온 주제곡 '카니발의 아침(Manha de Carnaval)'은 라디오 영화 음악 프로그램에서 자주 소개되거나 우리 나라 TV 드라마 삽입곡으로 종종 쓰이기도 했었다.(1990년대에 히트쳤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 속에, 차인표가 색소폰으로 이 '카니발의 아침'을 멋드러지게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었다. 비록 대역이었지만...)

'카니발의 아침(Manha de Carnaval)' EWI 연주

원래는 그러면 안되지만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는 수시로 배우자 외의 다른 이성에게 눈길을 돌리는 '바람둥이'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그러한 관계로, 평생 한 여자만 바라보며 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펼쳐 보였던 '순정남 오르페우스(Orpheus)'의 그것이 무척 숭고하게 빛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르페우스의 삶'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인지, 그가 조금만 더 끼 많은 남자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이성 간의 사랑'이 전부가 아닌데, 이미 어쩔 수 없는 '사랑' 하나에 집착하면서 그리 불행하게 살다 가기엔 그의 외모와 음악적 재능이 너무 아까워 보였으니 말이다.(만약 신화 속에 나오는 '제우스' 같았으면,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전 부인이랑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며 '다른 예쁜 여자 골라 재혼'한 뒤 계속해서 잘 먹고 잘 살았을 듯~)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캐릭터와 오르페우스 캐릭터를 반반 섞었으면 딱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