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비장의 미학, 드라마 '다모'-혁명가 장성백의 최후

타라 2009. 7. 10. 12:05

본격적인 여름이다. <다모>의 계절이다~ 2003년 여름, 전국적으로 무수한 폐인들을 양산하며 안 그래도 더운 여름을 더욱 더 뜨겁게 달군 드라마가 바로 MBC 월화 드라마 <다모>였다.

 

이 드라마는 총 14부 분량의 극이 방송되는 동안 시청 소감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물이 100만건을 훨씬 넘어 현재까지도 300만건 넘게 꾸준히 달려가고 있으며 각종 카페, 게시판 등을 들썩들썩하게 만들었던.. '앞으로도 과연, 이런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전설적인 매니아 드라마(& 폐인 드라마)였다.

 

 

맨 처음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을 때엔 그렇게 비극적인 내용인지 모른 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게 되었는데, 결말부로 치닫을수록 그 처절하고도 가슴 아픈 비극적 스토리에 가슴 졸이며 시청하게 되었고 주인공이 셋 다 죽는 마지막회를 보고 난 뒤에는 내내 그 여운이 떠나질 않아 한동안 멍한 채 정신 못차렸던 기억이 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 벼랑 끝에 홀로 선 그 남자

 

그 때 당시, 그 비극적이고 가슴 싸~한 결말에 굉장히 많은 눈물을 쏟아내었으며, 이 극이 안겨다 주었던 '극강의 슬픔'을 통해 특유의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다 좋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방영 당시) <다모>의 프롤로그 씬이라 할 수 있는 첫 장면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채옥(하지원)과 대나무 숲에서의 대결 후 광활한 벌판 위에서 말 달리던 성백(김민준)과 그 뒤를 쫓는 관군들의 모습이 '드라마'라기 보다는 마치 '영화'와도 같은 장면이어서 꽤 놀랐었는데, 그 때 흘러나왔던 배경 음악이나 나레이션(성백의 '길' 대사)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은 미완의 혁명가 장성백(김민준)이 앞으로 새로운 길을 낼 자기 사람들을 남겨 놓은 채 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혁명 세력의 대표로 관군들을 유인하면서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장면이었는데, 그 때 그 장면에서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안겨다 주었던 특유의 비장감, 광활함, 처연하고 가슴 싸해지는 그런 느낌이 내 마음을 강렬하게 잡아끌었던 것 같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되었던 한국 드라마 중에서 '비장의 미학'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다모(茶母)>가 아닐까 한다.

사랑과 신념 : 세기의 로맨티스트와 불멸의 혁명가

드라마 <다모>에는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원래 신분의 한계(서자 출신) 때문에 방황하던 황보윤(이서진)은 한 꼬마 아이를 만나면서부터는 그녀에게 모든 걸 다 내걸고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도 거는 순정적인 로맨티스트로 나오고, 수많은 무리들의 리더로서 막중한 책임과 삶의 과제를 부여받은 장성백(김민준)은 그 위치 때문에 사랑에 좌절하고, 결국 대의에 목숨 거는 남자로 나온다.

 

조정에서 바른 소리 몇 마디 했다고 아버지는 역적죄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죽음을 맞게 되고, 나머지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된 장남매.. 다행이 관군으로부터 무사히 탈출한 장재무는 산 속에서 장성백(김민준)이란 이름의 혁명가로 성장하고, 탈출 도중 오빠를 놓친 뒤 관군에게 붙잡힌 여동생 장재희가 관비로 끌려 간 관아는 황보윤(이서진) 아버지가 관리하던 곳으로, 어린 시절의 채옥(하지원)과 윤(이서진)은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오랜 수련 끝에 무관이 된 황보윤(이서진)은 장채옥(하지원)이란 이름을 새로 부여받은 장재희를 자신이 있는 곳의 다모로 데려가, 내내 채옥에 대한 해바라기 사랑을 한다.

 

성장 과정 속에서 그렇게 이름을 바꿔버리는 바람에 장남매의 비극은 생겨났는데.. 이름만 달라졌을 뿐 아니라 서로에 대해 생각했던 환경 자체가 너무 달라졌고 세월 또한 많이 흘러서,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 많이 성장해 버린 장성백(김민준)과 장채옥(하지원)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채옥이 어릴 적에 기억하고 있던 소년 시절의 오빠 장재무는 책방 도령 같은 이미지였는데 그 사이 산에서 자란 재무는 키도 훨씬 더 많이 크고 야성미 폴폴 넘치는 장성백(김민준)으로 변해 있었고.. 성백이 기억하던 어린 시절의 여동생 재희는 그저 귀엽고 순수한 꼬맹이였는데 장채옥(하지원)은 쌍칼 휙휙 날리는 검의 고수가 되어 있었으니,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서로간에 못 알아봤던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운명의 소용돌이 : 이별, 죄의식, 그리움, 만남, 사랑, 배신, 오해, 희생, 숙명..

관에 소속된 다모인 채옥은 사주전 수사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역모 세력의 수장 성백을 잡아들여야 하는 위치에서, 그가 자신의 혈육인지도 모른 채 서로 '칼끝을 겨누는 사이'가 되었으나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 소낙비 같은 사랑에 모든 걸 걸어보기로 한 채옥은 자신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황보 종사관을 마음 아프게 하면서까지 성백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그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오해 뿐이다.

 


황보윤은 장성백이 채옥의 친오라비인지 모른 채 그를 질투하다가 나중에 놀라운 진실을 접하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성백은 결국 정대감의 야욕에 자신들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남아있는 무리들을 살려 훗일을 도모하고자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많이 꼬여버린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뒤 죽기 직전의 황보윤이 전해 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허망하게 종사관(이서진)을 보내고, 자신이 믿었던 사랑에도 배신 당했다고 느낀 채옥(하지원)은 길길이 날뛰며 자신이 장성백(김민준)을 직접 잡아 죽이겠다고 나서면서 또 다시 '칼끝을 겨누는 사이'가 되는데.. 드라마 <다모>의 1부 첫장면이자, 마지막회 끝장면이기도 했던 그 프롤로그씬이 전해 준 특유의 비장한 분위기는 처음 봤을 때부터 굉장히 강렬한 느낌을 전해 주었다.

먹먹한, 너무나도 가슴 먹먹한.. : 가슴 절절한 '비장미'의 극치

대치하고 있던 상대방이 혈육인 줄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신을 베겠다고 하는 여동생 채옥에게 자상한 어투로 "이번엔 실수하지 마라~"며 희미한 미소를 짓던 성백.. 이에 채옥이 본격적으로 칼을 빼어들자 장성백이 순간 비장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며 대치하던 그 장면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었는데(이 드라마 오프닝에도 나왔었던 장면..) 그 장면이 전해준 그 팽팽한 긴장감, 넘쳐 흐르던 비장미, 뭔가 아릿하면서 시리도록 가슴 아프고 처절한 그 느낌에 한동안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이 이끌던 무리들에게 '계속해서 자신들이 꿈꿔왔던 원대한 뜻을 이어가라'는 바람을 전한 뒤 홀로 외롭게 죽을 길을 찾아나선 미완의 혁명가 장성백은 마지막 가는 길에 동생 이름이나 한 번 불러보자 생각해서 진실을 밝혔으나, 설마 채옥이 자신을 따라 죽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가 채옥의 검으로 자신을 찌른 성백은 마지막으로 관군들을 향해 지속적인 혁명의 의지를 어필하며, 홀로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성백의 마지막 말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 뒤 넋 놓고 있던 채옥은 결국, 죽어가는 성백에게 달려들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한다. 한 때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사랑이라 믿었던 그 남자가 꿈에도 그리던 오라비인 걸 알게 된 채옥은 성백의 온몸에 무지막지한 화살과 총탄이 날아드는 걸 보구서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였을 것이다.

그 여름의 추억 : 오래도록 긴 여운을 남겨 준 전설적인 폐인 드라마~

날아오는 총탄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장성백에게 뛰어든 채옥의 행동은 이제서야 만나게 된 자기 혈육 & 한 때 마음을 줬던 복잡미묘한 감정의 그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는 걸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본능같은 움직임 아니었을까..? 처음엔 그렇게 슬픈 드라마인 줄 몰랐었다가, <다모> 마지막회를 보구서 세 주인공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비극적 결말과 뭔가 처절해 보이는 장씨 남매의 비장한 최후에 실컷 눈물 쏟으며,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에도 한참을 가슴 먹먹해 했던 기억이 난다.

기본적으로 '해피 엔딩'인 결말이 좋지만, 극을 보고 난 뒤의 여운은 이런 비극적 결말의 드라마가 더 강하게 남는 것 같다. 2003년 드라마 <다모> 이후론, 극을 다 보고 난 뒤 그렇게까지 펑펑 울어본 드라마가 없다. 또, 그렇게 열렬하게 버닝해 본 드라마도 더 이상 없다. 앞으로 더 괜찮은 드라마가 나온다 해도 <다모>가 방영되던 2003년 그 때처럼 또다시 그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극 안에서의 극강의 비극적임과 처절한 분위기를 통해 '비장의 미학'을 경험하거나 궁극의 슬픔까지 맛본 뒤에 오는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되었던 우리 나라 TV 드라마 중에서 극을 통한 그 '비장미'의 정서 하면, 가장 먼저 <다모>라는 드라마가 떠오른다. 어느덧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감흥이 많이 옅어지기는 했지만, 그 여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다모>와 '다모 폐인'에 대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