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탄생 80주년이었단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혁명 아이콘이자, 행동하는 지식인- 우리 나라 드라마에 나왔던 인물 중 '체 게바라' 하면 가장 근접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드라마 <다모>에 나왔던 장성백이다. 2003년 여름, 드라마 첫 장면에서부터 '길'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던 노신이나 김구의 글을 떠올리게 하는 '길' 대사를 비장하게 읊었던...
한국 드라마사에서 매니아 드라마의 효시는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이었지만, 수많은 드라마 폐인을 양산 시켰던 (매니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폐인 드라마의 시초는 정형수 작가의 <다모>였다. 그 때 당시, 1회 첫방을 놓쳤던 나는 지인과의 통화 중에 그의 측근이 <다모> 첫 회를 보구서 1회 매화밭 씬에 나왔던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 대사에 꽂혔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정말 괜찮은 장면인지 확인 차 주말에 재방송을 봤다가 본격적으로 시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드라마 <다모>의 첫 회를 직접 보게 된 난 매화밭 장면까지 갈 필요 없이, 그 이전에 1회 첫 장면 <다모>의 프롤로그 씬이라 할 수 있는 성백의 '길' 대사.. 바로 이 장면에서 격침 당하고야 말았다. 그 뭐랄까..? 예전에 국어 시간에 배웠던, 문학 작품에서 보여지는 '비장미'.. 뭐, 그런 게 무지막지하게 느껴지면서... 짧은 프롤로그 장면이지만, <다모>는 첫 장면 안에 그 드라마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5년 전 드라마 <다모>는 가문의 몰락과 더불어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던 장 남매가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나름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며 한 명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한 명은 관에 소속된 다모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서자 출신이라는 한계로 온전히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종사관이 그런 다모의 곁을 맴돌며 그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그녀를 위해 희생하는 그런 내용이다.
장채옥, 황보윤, 장성백.. 셋 다 무예가 출중하고, 머리 좋은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그 시대는 반상의 구분이 확실한, 철저하게 신분제 사회였다. 그래서 주인공인 다모(요즘으로 치면 여형사) 장채옥(하지원)은 아무리 발바닥에 피 나도록 쫓아다니고 웬만한 나으리들보다 더 나은 탁월한 수사 능력을 선보여도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그저 천대 받는 관비일 뿐이며.. 황보윤(이서진) 역시, 양반이기는 하되 반 쪽 짜리 양반이어서 능력 발휘에 제약을 겪고 한 동안 방황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용케 탈출하여 관비는 안 되었지만, (본인은 아무 죄 없이) 몰락한 가문의 도망자로서 숨어 지내야 하는 장성백(김민준)은 탁월한 리더십과 지덕체를 겸비한 뛰어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내에서는 결코 그런 재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들이 살던 그 시대는 붕당 정치가 발달된 시기로, 노론-소론 나뉘어 정치인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던 때인데, 성백(본명-재무)과 채옥(본명-재희)의 아버지는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던 시기에 조정에 바른 소리 몇 마디 했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하고, 그 가족들마저 양반 신분이 박탈되어 노비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연좌제의 폐해)
하루 아침에 주류 사회의 일원에서 비주류 사회로 밀려난 성백은 천대 받고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떠난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고,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민초들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이냐..?(동굴 속에서, 채옥에게 했던 성백의 대사)"..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알 수가 없다. 왜, 저렇게 열심히 일하며 고생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헐벗고 굶주려야 하는지.. 별로 하는 일 없이 한가해 보이는 양반들은 남의 노동력을 착취해 언제나 배불리 먹고 살며, 그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인지...
성백이 꿈 꾸었던 세상은 아마도.. 공평한 세상, 평등한 세상이었던 것 같다. 능력 있는 사람이 별다른 사회적 제약 없이 골고루 등용되고, 그 누구나 자신이 일한 만큼 가져가고.. 그런 세상- 주인도 없고, 종도 없고.. 양반도 없고, 노비도 없는 그런 세상... 성백은 충분히 좋은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는데..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결국엔 더 큰 권력과 힘을 가진 정대감의 야망에 어이없이 이용 당하고, 돈에 눈이 멀어 일본 무사와 결탁한 개념 없는 최도방으로부터 뒷통수 맞고 거사에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백이 해 왔던 일이나 그의 개혁 의지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마지막 가는 길에 이제 겨우 동생인 줄 알게 된 재희(채옥)가 걸리긴 했으나, 성백은 끝까지 사사로운 감정 보다는 자신을 따라줬던 그들의 지도자로서 생을 마감한다. 혁명 세력의 중심이었던 성백은 자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대표로서 관군에게 포위되어 죽게 되지만 덕수와 수명 등.. 그를 따랐던 또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의 의지를 이어나갈 것이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백은 관군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도 결연한 의지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내 오늘 이곳에 뼈를 묻겠지만, 내가 죽은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기 위해 걸을 것이오. 나는 지금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오-" 라고..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체포되어 처형 당한 체 게바라가 죽기 직전까지 '혁명의 불멸성'을 이야기했듯, 한국판 게바라 장성백 역시 '혁명의 불멸성'을 이야기 하고 죽는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기 위해 꾸준히 걸을 것임을.. 언젠가는 그들의 피와 혼이.. 계곡을 메꾸고, 강을 메꾸고.. 반드시 새로운 길을, 반드시 새 세상을 열 것임을 확신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지도자이기도 하면서 중간 중간 의술, 인술을 펼치기도 했던 모습에서 <다모> 방영 당시 장두령-성백의 모습에서 체 게바라나 예수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었는데.. 비록 그들은 체포 되고 미완의 혁명가로 남게 되었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항상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개혁 의지와 저항 정신.. 희망이 담긴 새로운 길에 대한 열망과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계곡을 메꾸고, 강을 메꾸어 더 나은 새로운 길이 열릴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렇게.. 역사는 끊임없이 흘러왔고 말이다. 성백이 살던 저 시절에, 그들이 피해를 보았던 제도(연좌제, 신분 제도-반상의 구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는 사라졌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다모>에 나왔던 장성백이 '미완의 혁명가'이기는 하지만, '실패한 혁명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완의 혁명가~ 그들은 가기 전에 자기 사람들을 남겼고, 남은 사람들은 그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도 내일도.. 더 나은 새로운 길을 향해 꾸준히 걸어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사에서 매니아 드라마의 효시는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이었지만, 수많은 드라마 폐인을 양산 시켰던 (매니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폐인 드라마의 시초는 정형수 작가의 <다모>였다. 그 때 당시, 1회 첫방을 놓쳤던 나는 지인과의 통화 중에 그의 측근이 <다모> 첫 회를 보구서 1회 매화밭 씬에 나왔던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 대사에 꽂혔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정말 괜찮은 장면인지 확인 차 주말에 재방송을 봤다가 본격적으로 시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드라마 <다모>의 첫 회를 직접 보게 된 난 매화밭 장면까지 갈 필요 없이, 그 이전에 1회 첫 장면 <다모>의 프롤로그 씬이라 할 수 있는 성백의 '길' 대사.. 바로 이 장면에서 격침 당하고야 말았다. 그 뭐랄까..? 예전에 국어 시간에 배웠던, 문학 작품에서 보여지는 '비장미'.. 뭐, 그런 게 무지막지하게 느껴지면서... 짧은 프롤로그 장면이지만, <다모>는 첫 장면 안에 그 드라마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5년 전 드라마 <다모>는 가문의 몰락과 더불어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던 장 남매가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나름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며 한 명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한 명은 관에 소속된 다모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서자 출신이라는 한계로 온전히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종사관이 그런 다모의 곁을 맴돌며 그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그녀를 위해 희생하는 그런 내용이다.
장채옥, 황보윤, 장성백.. 셋 다 무예가 출중하고, 머리 좋은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그 시대는 반상의 구분이 확실한, 철저하게 신분제 사회였다. 그래서 주인공인 다모(요즘으로 치면 여형사) 장채옥(하지원)은 아무리 발바닥에 피 나도록 쫓아다니고 웬만한 나으리들보다 더 나은 탁월한 수사 능력을 선보여도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그저 천대 받는 관비일 뿐이며.. 황보윤(이서진) 역시, 양반이기는 하되 반 쪽 짜리 양반이어서 능력 발휘에 제약을 겪고 한 동안 방황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용케 탈출하여 관비는 안 되었지만, (본인은 아무 죄 없이) 몰락한 가문의 도망자로서 숨어 지내야 하는 장성백(김민준)은 탁월한 리더십과 지덕체를 겸비한 뛰어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내에서는 결코 그런 재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들이 살던 그 시대는 붕당 정치가 발달된 시기로, 노론-소론 나뉘어 정치인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던 때인데, 성백(본명-재무)과 채옥(본명-재희)의 아버지는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던 시기에 조정에 바른 소리 몇 마디 했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하고, 그 가족들마저 양반 신분이 박탈되어 노비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연좌제의 폐해)
하루 아침에 주류 사회의 일원에서 비주류 사회로 밀려난 성백은 천대 받고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떠난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고,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민초들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이냐..?(동굴 속에서, 채옥에게 했던 성백의 대사)"..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알 수가 없다. 왜, 저렇게 열심히 일하며 고생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헐벗고 굶주려야 하는지.. 별로 하는 일 없이 한가해 보이는 양반들은 남의 노동력을 착취해 언제나 배불리 먹고 살며, 그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인지...
성백이 꿈 꾸었던 세상은 아마도.. 공평한 세상, 평등한 세상이었던 것 같다. 능력 있는 사람이 별다른 사회적 제약 없이 골고루 등용되고, 그 누구나 자신이 일한 만큼 가져가고.. 그런 세상- 주인도 없고, 종도 없고.. 양반도 없고, 노비도 없는 그런 세상... 성백은 충분히 좋은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는데..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결국엔 더 큰 권력과 힘을 가진 정대감의 야망에 어이없이 이용 당하고, 돈에 눈이 멀어 일본 무사와 결탁한 개념 없는 최도방으로부터 뒷통수 맞고 거사에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백이 해 왔던 일이나 그의 개혁 의지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마지막 가는 길에 이제 겨우 동생인 줄 알게 된 재희(채옥)가 걸리긴 했으나, 성백은 끝까지 사사로운 감정 보다는 자신을 따라줬던 그들의 지도자로서 생을 마감한다. 혁명 세력의 중심이었던 성백은 자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대표로서 관군에게 포위되어 죽게 되지만 덕수와 수명 등.. 그를 따랐던 또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의 의지를 이어나갈 것이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백은 관군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도 결연한 의지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내 오늘 이곳에 뼈를 묻겠지만, 내가 죽은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기 위해 걸을 것이오. 나는 지금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오-" 라고..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체포되어 처형 당한 체 게바라가 죽기 직전까지 '혁명의 불멸성'을 이야기했듯, 한국판 게바라 장성백 역시 '혁명의 불멸성'을 이야기 하고 죽는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기 위해 꾸준히 걸을 것임을.. 언젠가는 그들의 피와 혼이.. 계곡을 메꾸고, 강을 메꾸고.. 반드시 새로운 길을, 반드시 새 세상을 열 것임을 확신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지도자이기도 하면서 중간 중간 의술, 인술을 펼치기도 했던 모습에서 <다모> 방영 당시 장두령-성백의 모습에서 체 게바라나 예수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었는데.. 비록 그들은 체포 되고 미완의 혁명가로 남게 되었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항상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개혁 의지와 저항 정신.. 희망이 담긴 새로운 길에 대한 열망과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계곡을 메꾸고, 강을 메꾸어 더 나은 새로운 길이 열릴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렇게.. 역사는 끊임없이 흘러왔고 말이다. 성백이 살던 저 시절에, 그들이 피해를 보았던 제도(연좌제, 신분 제도-반상의 구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는 사라졌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다모>에 나왔던 장성백이 '미완의 혁명가'이기는 하지만, '실패한 혁명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완의 혁명가~ 그들은 가기 전에 자기 사람들을 남겼고, 남은 사람들은 그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도 내일도.. 더 나은 새로운 길을 향해 꾸준히 걸어갈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