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남매 간 사랑' 드라마의 전설, '사랑을 위하여'

타라 2012. 5. 15. 18:12
요즘 우리 나라 TV 드라마를 통해 하도 '꼬이고 꼬인 이상한 가계도'를 많이 접하다 보니, 차라리 '그 예전에 방영되었던 남매 간의 사랑 설정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 정서 상 '남매 간의 사랑' 설정은 언젠가 그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 결국 두 주인공이 연결되지 않고 헤어질 게 뻔하기에 말이다. 적어도, 막 나가는 가계도를 형성하지는 않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되었던 한국 드라마 중 '남매끼리, 서로 친남매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져들게 된 설정'은 M사 월화극 <다모>, K사 주말극 <진주 목걸이> 등에 나온 바 있다. 이 드라마에서(극 중 이름 생략)의 김유미는 '애를 못 낳아 시댁에서 쫓겨난 뒤 큰 충격을 받은 여자 김해숙'이 유괴해서 키운 딸이다.

비록 '유괴해 온 아이'이지만,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그녀(김해숙)는 이 딸(김유미)을 지극정성으로 키워낸다. 허나 딸을 잃어버린 집안(극 중 정동환-박원숙 부부 집)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고, 가장이 크게 다치게 되어 형편도 어려워진다. 당시, 딸이 유괴되는 모습을 보고 뛰어가던 아버지(정동환)가 납치녀(김해숙)의 차에 치여 뇌 손상으로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남자 주인공인 김민종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이 친아빠를 다치게 한 유괴범 양엄마(김해숙)는 이후 그 사실을 은폐하고 도망가 버리지만, 드라마 결말부에 그 '뺑소니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 속에서 원래는 김민종과 김유미가 엄마-아빠 같은 친 남매지간인 셈인데, 다 성장해서 둘이 '남매 사이'인줄 모르고(모르는 게 정상) 일로 얽히다가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드라마 결말부에 '과거에 있었던 뺑소니 사고와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결국 둘이 연인 사이로 이어지지 못한다.

드라마 <다모>에선, 어린 시절 도망가다가 헤어진 몰락한 집안의 자제 김민준(재무-성백)과 하지원(재희-채옥)이 성장 후 '남매 사이인지 모른 채 소낙비 같은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내용'이 등장했다.

한 때 '둘이 진짜 사랑을 했는가, 아님 혈육 간의 이끌림에 불과한가..', '채옥이 진짜 사랑한 남자는 누구였나?' 등의 논란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그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새 세상을 꿈꾸는 화적떼 두령 장성백>과 <사주전 수사를 위해 장성백의 산채에 위장 잠입한 좌포청 다모 채옥>은 상대방이 전혀 '어릴 때 헤어진 친혈육'이란 생각을 못한 채, 그냥 '남자 대 여자'로서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사실.. 그 둘은 성장해 가면서 '어릴 때의 모습'과 외형적인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서로가 예측하지 못한 신분이 되어 있었기에 자기네들끼린 그저 '남'이라고 생각하고 '이성 간의 사랑'을 느낀 것이다. 더더군다나 장성백(김민준)은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어쩐지 마음이 갔던 비루한 신분의 좌포청 다모(茶母)'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었지, 이름도 성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상태..

산채에서 생긴 일 : 원래는 '오빠 미소', but 이 때의 채옥에겐 '그 남자의 미소'..?


결과적으로 '출생의 비밀'을 먼저 알게 된 장성백(김민준)은 진작에 '연인 감정 오빠 마음'으로 돌아와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 들였지만, 죽기 직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채옥(하지원)은 마지막에 '소나기 같은 감정을 느꼈던 남자 & 그토록 그리워 했던 친오라버니'의 감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어쨌든 죽을 위기에 처한 장성백에게 몸을 날려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선 '(살아서) 헤어짐'이 아니라, 두 남녀의 '죽음'으로써 '남매 간의 사랑'을 별다른 막장 무리수 없이 마무리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내 TV 드라마들 중 <(서로 남매 사이인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 남매 간의 사랑 이야기>의 전설적인 작품은 90년대 초반에 방영된 K사 주말극 <사랑을 위하여>라 생각하는데, 이 드라마의 설정은 무려 <실화>에 속한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본 지 워낙에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중간에 못본 내용도 많았지만,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런 내용이다..

여주인공의 엄마(반효정)에겐 두 딸(강문영 & 옥소리)이 있는데, 그녀와 유난히 모녀 사이가 좋았던 옥소리는 이 집 친딸이 아니다. 허나.. 그녀(반효정)는 젊은 시절 남편이 밖에서 데리고 온 그 딸(갓난아기)의 해맑은 모습을 보고 마음을 열게 되었으며, 자기 친딸처럼 키우게 된 것이다.

극 초반에 이미 이 '반효정-옥소리' 모녀에 얽힌 <출생의 비밀>이 터지고, 여주인공 옥소리는 자기가 사랑하는 엄마의 친딸이 아니란 사실에 심히 괴로워 한다. 거기다, 이 피 한 방울 안 섞인 여동생(옥소리)을 평소에 싫어했던 언니(강문영)는 동생이 사귀던 남자(송영창)를 채어가고..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 하던 의과 대학생 옥소리는 돈을 벌기 위해 부잣집(강석우-그 부잣집 아들) (우희진)의 '과외 선생'으로 일하게 된다.


예전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의 핵심 스토리는 이 때 만나게 된 '강석우'와 '옥소리'의 사랑 이야기였는데, 서브 스토리로 의대생인 옥소리의 학교 선생(교수) 한진희의 가족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석우는 자기 집에 '과외 선생'으로 들락거리는 얌전한 처자 옥소리에게 반해서 들이대지만, 그녀는 맨 처음에 능글거리는 이 남자를 거부하다가 결국 정들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엔 '큰 부잣집 아들과 평범한(or 가난한) 집 딸'이라는 갭이 있어서, 남자 쪽 집안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2차 출생의 비밀>이 터진다.(그 대목이 이 드라마의 피크~) 알고 봤더니, 이 극에서의 강석우와 옥소리는 '아버지가 같은 이복 남매 사이'였던 것이다.

여주인공 집안에서 오해했던 것과 달리, 애초에 옥소리는 반효정네 남편이 바람 피워서 낳아온 애가 아니라 '그가 알고 지냈던 화류계 출신의 여자(김영애)가 낳은 사생아'로, 당시 키울 사람이 없어서 측은지심을 느낀 그가 데리고 와서 키운 아이였다. 그런데.. 그 젊은 시절의 반효정 남편이 '아는 여자(김영애)'와 한 때 깊은 관계를 맺었던 부자 남자, 즉 옥소리의 생부가 강석우의 아버지였던...

원래 '집안 반대에 부딪힌 이 드라마 속 주인공 커플(강석우 & 옥소리)'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둘이 도망가서 살 생각도 했었지만, 이 <어마어마한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둘이 헤어지는 모습을 담은 그 장면, 꽤 애절하고 슬펐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는데 '아버지'가 같기 때문에 '싫지만 이별할 수밖에 없는 그 둘의 아픔'이 잘 와닿았기에...


이 드라마는 그걸로 끝이 아니라, 뒤에 약간의 내용이 더 이어진다. 너무나 사랑했던 그 여자가 '이복 여동생'이란 사실을 알고 헤어진 뒤 심히 괴로워 하던 남자 주인공 강석우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집안 반대로 헤어졌던 옛날 연인 송채환'을 다시 찾게 된다. 그렇게, 남자 주인공(강석우)은 재회한 옛 연인(송채환)에게서 위안을 얻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괴로운 마음에 스승(한진희)이 머물고 있는 섬마을로 건너 간 여주인공(옥소리)은 그곳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한다. 부인을 지극히 사랑했던 한진희는 결국 병으로 부인을 잃게 된 뒤 상심에 빠져 섬마을로 건너 가 '폐인'처럼 지내는데, 그런 그에겐 아버지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두 자녀가 있다. 실연의 상처로 그 교수의 섬마을 병원에서 일하던 옥소리는 불쌍한 두 아이(한진희가 전처 사이에서 낳은 남매)를 따뜻하게 돌봐 주다가 정이 들어, 결국 나이 많은 그 홀아비 교수 한진희랑 결혼하여 가족이 된다.

애초에 그 집 친딸이 아님에도 '키워준 엄마(반효정)'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라난 여주인공(옥소리) 역시, 결국엔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를 자기 친자식처럼 키우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 마지막 장면은 '한 때 가슴 절절하게 사랑했지만, 이복 남매임이 밝혀져 결국 헤어지게 된 강석우와 옥소리'가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눈빛을 주고받는 씬'이었는데, 이제는 각자 '다른 가족 & 다른 연인'과 함께이게 된 그들이 우연히 마주쳐 회한에 잠긴 듯 과거의 일을 아련하게 떠올려 보는 그 '엔딩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 주제가
'사랑하지 않을거야' 부른 나현희

주말극 <사랑을 위하여> 방영 당시 주제곡이었던 나현희의 '사랑하지 않을거야'도 꽤 히트쳤는데, 여러 면에서 '이뤄질 수 없는 남매 간의 사랑'을 애절하게 잘 표현한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TV극 <사랑을 위하여>가 끝난 뒤, 어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 극의 내용이 '실화'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분이 절에 갔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슬픈 사연>을 듣고서 깊은 인상을 받아 '남매 간의 사랑'을 다룬 이 드라마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예전에 접한 실화(신문에 난 내용) 중엔, 이것보다 수위가 더 높은 '남매 간의 사랑 관련한 실화'도 있었다. 한국 전쟁(6.25 전쟁) 때 헤어지게 된 두 어린 남매가 성장한 뒤 '둘이 남매 사이인 줄 전혀 모른 채 만나 결혼까지 해서 살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내용 말이다. 우리 나라 정서 상, 친남매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는 저런 내용까지 'TV 드라마'로 다루긴 곤란할 것 같다.

결국엔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사랑하게 된 두 남녀가) 이뤄지지 않거나, 남매 사이인 줄 알게 된 뒤 헤어지는 <진주 목걸이> <다모> <사랑을 위하여> 정도의 설정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에 하도 '겹사돈에, 이중 사돈, 가족의 가족끼리 눈 맞거나 사랑하게 되는 설정'이 TV극에 많이 나오다 보니, 극단으로까진 치우치지 않는 아련한 정서의 그 옛날 '남매 간 사랑 설정의 드라마'가 종종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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