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하나 & 남자 둘'이 주인공으로 나온 '여명의 눈동자'나 '다모' 같은 드라마에서, 결과적으로 '여주인공은 과연 누구를 사랑했나?'와 같은 질문은 어쩐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사람의 마음이란 게 본디, 그리 단순 명료한 성질의 것이 아닌데 말이다. 살면서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나름 소중하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윤여옥은 날마다 죽을 결심을 한다. 그러다가 최대치란 남자를 만나 그의 아이를 갖게 되고, 그냥 열심히 살아보기로 마음 먹는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아이 아빠와 헤어지게 되고, 겨우 죽음을 모면하게 된 사이판에서 여옥은 '은인과도 같은 존재 장하림'을 만나 무사히 출산하게 되며, 어찌어찌 하다가 그 남자랑 같이 독립 투사로 활약하게 된다.
드라마 법칙 : 죽은 줄 알았던 옛남자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살아 돌아온다~
그러다 조국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홀로 고향에 내려와 아이를 기르던 여옥은 마을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대치의 고향인 개성으로 그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가 전사했다는 실망스런 소식만을 접하게 된다. 오갈 데 없어진 여옥은 하림을 찾아오고, 그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하림의 진정 어린 청혼에 결국 결혼하기로 마음 먹는다. 윤여옥(채시라)이 이제 겨우 자리 잡고 장하림(박상원)이랑 막 행복해질려는 그 순간, 남쪽 신문을 통해 여옥의 소식을 접한 최대치(최재성)가 찾아온다. 여옥의 입장에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바로 그 사람'이 말이다..
마침 대치가 여옥에게 다시 나타난 그 시점이 그녀가 하림이랑 '불행 끝, 행복 시작~' 할려는 그 지점에서 딱 불청객같은 그런 모드로 나타났던지라, 예전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대치는 그냥 북에서 자리 잡고 살고, 여옥이 앞에 나타나지 말지~' 그런 원망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대치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윤여옥은 날마다 죽을 결심을 한다. 그러다가 최대치란 남자를 만나 그의 아이를 갖게 되고, 그냥 열심히 살아보기로 마음 먹는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아이 아빠와 헤어지게 되고, 겨우 죽음을 모면하게 된 사이판에서 여옥은 '은인과도 같은 존재 장하림'을 만나 무사히 출산하게 되며, 어찌어찌 하다가 그 남자랑 같이 독립 투사로 활약하게 된다.
드라마 법칙 : 죽은 줄 알았던 옛남자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살아 돌아온다~
그러다 조국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홀로 고향에 내려와 아이를 기르던 여옥은 마을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대치의 고향인 개성으로 그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가 전사했다는 실망스런 소식만을 접하게 된다. 오갈 데 없어진 여옥은 하림을 찾아오고, 그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하림의 진정 어린 청혼에 결국 결혼하기로 마음 먹는다. 윤여옥(채시라)이 이제 겨우 자리 잡고 장하림(박상원)이랑 막 행복해질려는 그 순간, 남쪽 신문을 통해 여옥의 소식을 접한 최대치(최재성)가 찾아온다. 여옥의 입장에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바로 그 사람'이 말이다..
마침 대치가 여옥에게 다시 나타난 그 시점이 그녀가 하림이랑 '불행 끝, 행복 시작~' 할려는 그 지점에서 딱 불청객같은 그런 모드로 나타났던지라, 예전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대치는 그냥 북에서 자리 잡고 살고, 여옥이 앞에 나타나지 말지~' 그런 원망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대치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를 보면, 장하림(박상원)이란 인물은 은근히 여복이 많은 편이다. 굳이 윤여옥이 아니더라도 하림에겐 지나간 옛사랑도 있고, 은근슬쩍 그에게 관심 보이는 여자들이 많았던... 하지만 전쟁 중에 이미 가족을 다 잃은 '최대치(최재성)의 인생'에선 그나마 여자도 윤여옥(채시라) 밖에 없고, 여옥과 그의 아들은 대치의 유일한 가족이기도 하다. 그들은 너무나도 건조하고 살벌한 대치의 삶에서 유일하게 그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여주는 존재들이었다. 여옥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대치는 아마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최대치의 유일한 여자, 꿈에서도 그리웠던 그녀..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어느 낯선 땅 철조망 앞에서 '살아서 다시 만나기로 굳게 맹세한 그녀'는, 최대치에게 '윤여옥이란 그 여자'는 목숨 걸고서라도 반드시 만나야 하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 남자의 유일한 위안이요, 희망이며, 마음의 안식처에 해당하는 존재~ 중국에서 힘 없는 학도병이었던 대치는 짐승같은 인간들로부터 자기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 내내 미안했고,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랬던 대치가, 이제는 '자신이 그녀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쩐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다시 여옥을 찾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여옥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대치의 바람과는 달리, 삶은 좀처럼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여옥에 대한 대치의 마음은, 그의 사랑은 항상 '미안함'으로 가득 차게 되는데... 그것이 '위기의 순간 때마다 윤여옥에게 늘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따뜻한 남자 장하림의 은근한 사랑에 한 때 많이 버닝했음에도, 불쌍한 남자 최대치의 사랑 또한 마음 한 구석으론 늘 걸리적거리고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윤여옥 역시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한 때 꿈에 그리던 최대치가 자신의 앞에 다시 나타났음에도, 타이밍이 타이밍인지라 윤여옥은 그런 그를 결코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미 죽은 줄 알았고, 다 정리했고, 딴 남자랑 새로 시작할려는 찰나에 대치가 불청객처럼 휙 나타나 버렸으니... 그것두, 결혼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하림과의 혼례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말이다.
떠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사랑~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여옥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고, 갈등에 휩싸인 대치 또한 방황하는 육신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게 된다. 하지만.. 양심적인 하림은 결국 '유치장에 갇힌 대치'와 여옥을 만나게 해주고,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로 '사이판에서 수도 없이 많이 (얘기) 들었을 그 친구=살고자 발버둥 쳤던 여옥이 아이의 아빠'였기에... 갈등하던 여옥 역시, 경찰서에서 피떡이 된 대치를 보구선 '도저히 그런 그를 버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련한 인생들.. 전반적으로 이들 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많았던 장하림에 비해, 최대치와 윤여옥은 늘 삶의 가장 고통스런 최전방에서 신음하고 있는 '닮은꼴 인생' 같았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가슴 시린 반쪽' 같은 그런 의미를 지닌 존재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인연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좀처럼 끊어지지 못하는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면 꽤나 호화스런 캐스팅을 자랑하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는 세 주인공 외에도, 지금 보면 이름 알려진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드라마를 보면서 '숨은 배우 찾기 놀이'를 해도 꽤 재미있을 듯하다.
<여명의 눈동자>는 방영 1년 여 전에 촬영을 시작한 '사전 제작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 이전에 이미 방영된 <춤 추는 가얏고>의 주인공으로서 '동양적인 단아함과 청순한 이미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오연수가 '<춤 추는 가얏고>보다 먼저 촬영했으나 방영은 훨씬 나중에 된 <여명의 눈동자>'에서 극 초반 여옥의 동무로 잠깐 등장한 적이 있다. 이 드라마 출연자들 중에서,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빨은 가느다란 몸매와 고전적인 마스크를 자랑하는 오연수가 최고인 듯... 그녀는 대치의 학도병 친구(정호근)랑 서로 의지하며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이들은 결국 '둘 다 죽음을 맞게 되는 비운의 커플'이다.
딱히 특별한 사이라기 보다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이지만,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도 그렇고.. 이 드라마 속편 격인 <모래 시계>에서도 그렇고.. 숫적으로 따지면 박상원은 번번히, 다른 남자 주인공에 비해 훨씬 여복이 많은 남자로 나온다.
이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 윤여옥(채시라)을 제하면 여자 하고의 인연이 너무 박한 최대치(최재성)에 비해 장하림(박상원)은 얼마나 스쳐 지나가는 여인네들이 많은지..;; 일본에서도 엮이고, 사이판에서도 엮이고, 제주에서도 엮이고, 경성에서, 또 북에서.. 언제나 '여자들과 잘 엮이게 되는 장하림'이다~
그 씁쓸하고도 복잡한 역사 : 빨갱이 형을 둔 독립 투사를 사랑한 친일파의 딸
그래서.. 그는 대치와 여옥을 이어준 뒤 임무 수행 차 떠난 북에서도 '첫만남 때부터 하림에게 호감을 느끼고, 틈만 나면 적극적으로 대시해 오는 여자 명지(고현정)'를 만나게 된다. 이 드라마 결말부는 '세 주인공들 중 대치와 여옥을 떠나보낸 하림이 홀로 살아남게 되는 설정'인데, 그 이후에 '하림이 명지란 여자와 이어졌을지..' 그건 알 수가 없다. 둘이 잘 됐을 수도, 또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하림과 명지는 어떤 면에선 참 좋은 동료, 좋은 짝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커플인데.. 또 한 편으론, 이 둘의 결합은 어쩐지 모양새가 좀 이상하기도 하다. <빨갱이 친형(경림)을 둔 독립 투사(하림)와 친일파 딸(명지)과의 결합>이라니.. 어쩐지 씁쓸하지 않은가-
물론 명지 같은 인물도 '역사의 피해자'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옥과 같은 독립 운동가의 딸이 지옥 저 끝에서 헤매고 있었을 때, 또 하림과 여옥이 독립 운동하다 붙잡혀 가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있었을 일제 강점기 때, 어쨌거나 친일파 지주의 딸로서 그 친일의 대가로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값비싼 교육의 혜택을 누리며 살았던 명지'와 '독립 운동 경력을 지닌 하림'의 결합은 그 모양새가 별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최근의 우리 나라 역사는 그만큼 요상하고, 복잡하다..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여린 여성을 매춘부로, 스파이로, 간첩으로 내몬 나라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윤여옥은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으면 시집 가서 남편에게 사랑 받으며 그냥 평범하게 잘 살았을 것 같은 여자다. 외모에서도, 또 행동거지에서도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 될 수 있는 그런 스타일.. 또 (뭇 남성들로부터) 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주기를 바래봄직한, 그런 단단함과 알뜰살뜰 살림꾼의 미덕을 두루 갖춘 여성인데, 잔인한 역사의 소용돌이는 그런 그녀를 단순히 '여자'로서만 살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인데..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부지런히 노동을 하며 작은 것에도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그녀였지만, 썩어빠진 이 나라의 역사는 그런 여린 소녀를 강제로 남의 나라 군인들의 매춘부로 내몰았다. 그 후, 자신의 갓난아기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그녀는 또다시 독립 운동이라는 험난한 여정에 몸을 싣게 된다..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견디고, 죽을 고생 하며 살아남아 해방된 조국을 맞이하게 되었건만..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와 자신의 아이와 함께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게 될 줄 알았으나, 같은 민족끼리도 뭐가 그리 복잡한 이 나라는 또다시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되어 이제는 간첩이요, 빨갱이란다. 참으로 환장할 역사요, 골 때리는 나라가 아닌가-
소중한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줄 게 없어서 늘 미안한 사랑
일본군들에게 짓밟히는 자기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게 내내 한이 되어 어떻게든 강한 쪽에 붙어서 살아남은 대치는 '이제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자신의 소박한 바람'과는 다르게 여옥의 삶을 더욱 더 고단하게 만들어 버렸고, 뒤늦게서야 그녀를 찾아온 것을 후회한다.
그 때는 모르고서 찾아온 것이었지만 '만일 자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결혼할 뻔 했다는 그 사이판에서 만난 친구랑 잘됐을 것이고, 어쩌면 그 친구가 자신보다 그녀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늦게라도 여옥을 하림에게 돌려 보내려 했던 대치- 극을 보는 입장에서, 그런 대치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시리다. 사랑 하면서도, 그 사람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게 없어서 늘 미안하기만 하고 마음 아팠을 대치의 사랑을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하림에게 돌아갈 염치가 없어진 여옥'은 결국 대치를 따라 북으로 가지도 않고, 사상이 뭐가 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그저 남편이 시키는 대로 그가 하는 일을 돕다가 졸지에 극악무도한 빨갱이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한 때 국빈관 얼짱으로 여러 남자들 울리던 윤여옥- 그 미모에, 조금만 여우처럼 약게 굴었으면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텐데.. 허나 그러기에 그녀는 너무 양심적이었고, 전혀 약지가 못한 여자였다.
국제적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그냥 '소박한 바람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 역사의 흐름 한가운데를 늘 수동적인 입장에서 이리 저리 떠밀려 가던 윤여옥'에게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하던 이 나라에 전쟁이 터져, 졸지에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그녀를 살려놓게 된다. 허나 이번엔 장하림의 차례다. 미국과 친한 남쪽 사람들은 북쪽과 연관 있는 사람들을 빨갱이라 칭하며 죽이려 들고, 소련과 한 편 먹고 쳐들어 온 북쪽 사람들은 미국놈과 친한 반동 분자들을 색출하기에 바쁘다.
대/동/단/결 하여 일본놈들만 몰아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라를 되찾기가 무섭게 또다시 금 긋고.. 빨갛네, 파랗네 하면서 편 가르기 바쁜 나라~ 도무지가, 뭐가 뭔지 헷갈리는 역사다. 열강들의 탐욕스러움과 무뇌아스런 매국노들의 호작질로 점철된 역사.. 그 속에서 꽤나 피곤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 허나, 이 땅에서의 그 지긋지긋한 편 가르기와 징글징글한 뻘짓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대략 우리를 슬프게 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나오는 친일파 매국노 '스즈키(최두일)'라는 인물은 윤여옥이나 장하림과는 꽤나 질긴 인연을 자랑하는데, 여주인공 윤여옥과는 천적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다. 일제 시대 때는 '독립 운동' 한다고 잡아 넣고, 해방되고 나선 '빨갱이'라고 잡아 넣고 했던....
미안한 사랑, 가슴 시린 사랑.. 고마운 사랑, 쓸쓸한 사랑..
이 극 안에서 '장하림'이란 남자 캐릭터가 유난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데에는 '그가 편견 없는 남자였다'는 것도 한몫 했던 것 같다. 북쪽도, 남쪽도.. 그 어느 쪽도 미워할 수 없었던 하림- 그는 그냥 <인간 장하림>일 뿐이었다.
윤여옥에게 좀 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사랑'은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그녀에게 장하림이란 남자는 '보다 고차원적인 존재, 은인, 선생님, 보호자.. 자신이 어떻게 하기에는 너무 염치 없고 죄송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저 높은 곳에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허나 장하림이 그랬듯, 윤여옥 또한 그럴 기회가 있었다면 하림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았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서로 연적 관계이기도 하지만, 사이판에서 의사 선생님과 임산부의 관계로 '아이 아빠인 대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하림(박상원)'과 그녀로부터 '여옥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독립 투사로서 같이 옥고를 치른 하림의 얘기를 많이 전해 들었을 대치(최재성)'는 이 윤여옥(채시라)이란 여자로 인해 하나로 묶이게 된 미묘한 관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여옥이란 여자에게 '늘 삶의 가장 고통스런 최전방에서 함께 뒹굴게 되는 운명적인 파트너'는 최대치다. 한국 전쟁 중에, 지리산 어느 부락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 그들.. 더 이상 여옥에게 짐이 되기 싫은 대치는 다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가고, 여옥은 약 봉지를 들고서 그런 대치를 찾아 나섰다가 눈보라 치는 산 속에서 오발탄을 맞고 대치의 품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그 후 '부상을 입었던 최대치'도 먼저 떠난 윤여옥의 옆에서 나란히, 그녀의 남자 장하림의 품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데...
해방된 조국, 내 나라 땅에서도 결코 환영받지 못했던 이 나라의 젊은이들~ 그 역사..
그 시점에서 만일 그들이 살아 남았다 해도, 이 땅의 사람들은 그런 여옥과 대치를 품어줄 수 없었을 것이며 갖가지 죄를 씌워 단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라도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그들이 고단한 삶을 마치고 비로소 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한 편으론 마음 시리면서도,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던 그런 야릇한 느낌의 결말'로 기억된다. 이 드라마의 엔딩은...
그들이 태어난 나라는, 또 그들이 운명적으로 맞닥뜨리게 된 역사는 가련한 두 영혼들에게 지옥보다 더한 고통만을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살아남은 하림이 접하게 된 그 세상은 보다 희망적이긴 했을까..?
[ P.S : 독립 투사를 사랑한 친일파? - 친일파 매국노, 스즈끼의 충격적 고백.. ]
이 드라마 전반적으로, 장하림이나 윤여옥과는 꽤나 질긴 인연을 자랑하는 한국인 친일 경찰 최두일(스즈키).. <여명의 눈동자> 마지막회를 보면, 그런 스즈끼가 (그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림을 향해 무척 요상한 대사를 날린다. "알고 있었나..? 난 첨부터 자네가 맘에 들었어~" 라는... 해방되기 이전부터 '친일파 경찰인 스즈끼'가 그렇게도 잡고 싶어했던 '독립 투사 장하림'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니~ 뭐가, 어디가, 어떤 면에서..? 스즈끼가 했던 그 말은 상당히 반전스러운 멘트이다.
아니, 그럼~ 극 중 장하림에 대한 스즈끼의 속마음은 바로 저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럼, 하림을 취조하면서 옆에 있는 여옥을 더 모질게 고문했던 것도 다.. 윤여옥을 연모하는 장하림의 마음을 확인하고서, 자신의 '연적'인 윤여옥에 대한 강렬한 '질투심'으로 그녀를 더 못살게 굴었던 것..?
최대치의 유일한 여자, 꿈에서도 그리웠던 그녀..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어느 낯선 땅 철조망 앞에서 '살아서 다시 만나기로 굳게 맹세한 그녀'는, 최대치에게 '윤여옥이란 그 여자'는 목숨 걸고서라도 반드시 만나야 하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 남자의 유일한 위안이요, 희망이며, 마음의 안식처에 해당하는 존재~ 중국에서 힘 없는 학도병이었던 대치는 짐승같은 인간들로부터 자기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 내내 미안했고,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랬던 대치가, 이제는 '자신이 그녀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쩐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다시 여옥을 찾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여옥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대치의 바람과는 달리, 삶은 좀처럼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여옥에 대한 대치의 마음은, 그의 사랑은 항상 '미안함'으로 가득 차게 되는데... 그것이 '위기의 순간 때마다 윤여옥에게 늘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따뜻한 남자 장하림의 은근한 사랑에 한 때 많이 버닝했음에도, 불쌍한 남자 최대치의 사랑 또한 마음 한 구석으론 늘 걸리적거리고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윤여옥 역시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한 때 꿈에 그리던 최대치가 자신의 앞에 다시 나타났음에도, 타이밍이 타이밍인지라 윤여옥은 그런 그를 결코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미 죽은 줄 알았고, 다 정리했고, 딴 남자랑 새로 시작할려는 찰나에 대치가 불청객처럼 휙 나타나 버렸으니... 그것두, 결혼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하림과의 혼례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말이다.
떠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사랑~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여옥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고, 갈등에 휩싸인 대치 또한 방황하는 육신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게 된다. 하지만.. 양심적인 하림은 결국 '유치장에 갇힌 대치'와 여옥을 만나게 해주고,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로 '사이판에서 수도 없이 많이 (얘기) 들었을 그 친구=살고자 발버둥 쳤던 여옥이 아이의 아빠'였기에... 갈등하던 여옥 역시, 경찰서에서 피떡이 된 대치를 보구선 '도저히 그런 그를 버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련한 인생들.. 전반적으로 이들 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많았던 장하림에 비해, 최대치와 윤여옥은 늘 삶의 가장 고통스런 최전방에서 신음하고 있는 '닮은꼴 인생' 같았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가슴 시린 반쪽' 같은 그런 의미를 지닌 존재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인연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좀처럼 끊어지지 못하는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면 꽤나 호화스런 캐스팅을 자랑하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는 세 주인공 외에도, 지금 보면 이름 알려진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드라마를 보면서 '숨은 배우 찾기 놀이'를 해도 꽤 재미있을 듯하다.
<여명의 눈동자>는 방영 1년 여 전에 촬영을 시작한 '사전 제작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 이전에 이미 방영된 <춤 추는 가얏고>의 주인공으로서 '동양적인 단아함과 청순한 이미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오연수가 '<춤 추는 가얏고>보다 먼저 촬영했으나 방영은 훨씬 나중에 된 <여명의 눈동자>'에서 극 초반 여옥의 동무로 잠깐 등장한 적이 있다. 이 드라마 출연자들 중에서,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빨은 가느다란 몸매와 고전적인 마스크를 자랑하는 오연수가 최고인 듯... 그녀는 대치의 학도병 친구(정호근)랑 서로 의지하며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이들은 결국 '둘 다 죽음을 맞게 되는 비운의 커플'이다.
최대치와 윤여옥의 곁을 맴돌던 장하림, 장하림의 곁을 맴돌던 여인들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누게 되는 대치의 경우와 달리, 결국 사랑하는 여주인공과 이어지지는 못하지만 어딜 가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하림에게는 '첫사랑 여인(김현주)'을 제하고서도 (이 극 속에서) 은근히 그에게 관심 보이는 여인네들이 많다. 그의 스파이 시절, 제주 작전 때 탈출에 도움을 준 순애(전미선) 역시 하림의 친구 보다는 하림에게 더 큰 호감을 느끼고.. 해방 후 함께 잠깐 '위장 근무'했던 박춘금 사무실에서의 동료 여직원 경애(최현미) 또한 하림에게 묘한 관심을 내비친다.
딱히 특별한 사이라기 보다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이지만,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도 그렇고.. 이 드라마 속편 격인 <모래 시계>에서도 그렇고.. 숫적으로 따지면 박상원은 번번히, 다른 남자 주인공에 비해 훨씬 여복이 많은 남자로 나온다.
이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 윤여옥(채시라)을 제하면 여자 하고의 인연이 너무 박한 최대치(최재성)에 비해 장하림(박상원)은 얼마나 스쳐 지나가는 여인네들이 많은지..;; 일본에서도 엮이고, 사이판에서도 엮이고, 제주에서도 엮이고, 경성에서, 또 북에서.. 언제나 '여자들과 잘 엮이게 되는 장하림'이다~
그 씁쓸하고도 복잡한 역사 : 빨갱이 형을 둔 독립 투사를 사랑한 친일파의 딸
그래서.. 그는 대치와 여옥을 이어준 뒤 임무 수행 차 떠난 북에서도 '첫만남 때부터 하림에게 호감을 느끼고, 틈만 나면 적극적으로 대시해 오는 여자 명지(고현정)'를 만나게 된다. 이 드라마 결말부는 '세 주인공들 중 대치와 여옥을 떠나보낸 하림이 홀로 살아남게 되는 설정'인데, 그 이후에 '하림이 명지란 여자와 이어졌을지..' 그건 알 수가 없다. 둘이 잘 됐을 수도, 또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하림과 명지는 어떤 면에선 참 좋은 동료, 좋은 짝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커플인데.. 또 한 편으론, 이 둘의 결합은 어쩐지 모양새가 좀 이상하기도 하다. <빨갱이 친형(경림)을 둔 독립 투사(하림)와 친일파 딸(명지)과의 결합>이라니.. 어쩐지 씁쓸하지 않은가-
물론 명지 같은 인물도 '역사의 피해자'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옥과 같은 독립 운동가의 딸이 지옥 저 끝에서 헤매고 있었을 때, 또 하림과 여옥이 독립 운동하다 붙잡혀 가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있었을 일제 강점기 때, 어쨌거나 친일파 지주의 딸로서 그 친일의 대가로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값비싼 교육의 혜택을 누리며 살았던 명지'와 '독립 운동 경력을 지닌 하림'의 결합은 그 모양새가 별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최근의 우리 나라 역사는 그만큼 요상하고, 복잡하다..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여린 여성을 매춘부로, 스파이로, 간첩으로 내몬 나라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윤여옥은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으면 시집 가서 남편에게 사랑 받으며 그냥 평범하게 잘 살았을 것 같은 여자다. 외모에서도, 또 행동거지에서도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 될 수 있는 그런 스타일.. 또 (뭇 남성들로부터) 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주기를 바래봄직한, 그런 단단함과 알뜰살뜰 살림꾼의 미덕을 두루 갖춘 여성인데, 잔인한 역사의 소용돌이는 그런 그녀를 단순히 '여자'로서만 살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인데..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부지런히 노동을 하며 작은 것에도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그녀였지만, 썩어빠진 이 나라의 역사는 그런 여린 소녀를 강제로 남의 나라 군인들의 매춘부로 내몰았다. 그 후, 자신의 갓난아기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그녀는 또다시 독립 운동이라는 험난한 여정에 몸을 싣게 된다..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견디고, 죽을 고생 하며 살아남아 해방된 조국을 맞이하게 되었건만..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와 자신의 아이와 함께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게 될 줄 알았으나, 같은 민족끼리도 뭐가 그리 복잡한 이 나라는 또다시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되어 이제는 간첩이요, 빨갱이란다. 참으로 환장할 역사요, 골 때리는 나라가 아닌가-
소중한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줄 게 없어서 늘 미안한 사랑
일본군들에게 짓밟히는 자기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게 내내 한이 되어 어떻게든 강한 쪽에 붙어서 살아남은 대치는 '이제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자신의 소박한 바람'과는 다르게 여옥의 삶을 더욱 더 고단하게 만들어 버렸고, 뒤늦게서야 그녀를 찾아온 것을 후회한다.
그 때는 모르고서 찾아온 것이었지만 '만일 자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결혼할 뻔 했다는 그 사이판에서 만난 친구랑 잘됐을 것이고, 어쩌면 그 친구가 자신보다 그녀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늦게라도 여옥을 하림에게 돌려 보내려 했던 대치- 극을 보는 입장에서, 그런 대치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시리다. 사랑 하면서도, 그 사람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게 없어서 늘 미안하기만 하고 마음 아팠을 대치의 사랑을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하림에게 돌아갈 염치가 없어진 여옥'은 결국 대치를 따라 북으로 가지도 않고, 사상이 뭐가 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그저 남편이 시키는 대로 그가 하는 일을 돕다가 졸지에 극악무도한 빨갱이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한 때 국빈관 얼짱으로 여러 남자들 울리던 윤여옥- 그 미모에, 조금만 여우처럼 약게 굴었으면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텐데.. 허나 그러기에 그녀는 너무 양심적이었고, 전혀 약지가 못한 여자였다.
국제적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그냥 '소박한 바람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 역사의 흐름 한가운데를 늘 수동적인 입장에서 이리 저리 떠밀려 가던 윤여옥'에게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하던 이 나라에 전쟁이 터져, 졸지에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그녀를 살려놓게 된다. 허나 이번엔 장하림의 차례다. 미국과 친한 남쪽 사람들은 북쪽과 연관 있는 사람들을 빨갱이라 칭하며 죽이려 들고, 소련과 한 편 먹고 쳐들어 온 북쪽 사람들은 미국놈과 친한 반동 분자들을 색출하기에 바쁘다.
대/동/단/결 하여 일본놈들만 몰아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라를 되찾기가 무섭게 또다시 금 긋고.. 빨갛네, 파랗네 하면서 편 가르기 바쁜 나라~ 도무지가, 뭐가 뭔지 헷갈리는 역사다. 열강들의 탐욕스러움과 무뇌아스런 매국노들의 호작질로 점철된 역사.. 그 속에서 꽤나 피곤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 허나, 이 땅에서의 그 지긋지긋한 편 가르기와 징글징글한 뻘짓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대략 우리를 슬프게 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나오는 친일파 매국노 '스즈키(최두일)'라는 인물은 윤여옥이나 장하림과는 꽤나 질긴 인연을 자랑하는데, 여주인공 윤여옥과는 천적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다. 일제 시대 때는 '독립 운동' 한다고 잡아 넣고, 해방되고 나선 '빨갱이'라고 잡아 넣고 했던....
미안한 사랑, 가슴 시린 사랑.. 고마운 사랑, 쓸쓸한 사랑..
이 극 안에서 '장하림'이란 남자 캐릭터가 유난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데에는 '그가 편견 없는 남자였다'는 것도 한몫 했던 것 같다. 북쪽도, 남쪽도.. 그 어느 쪽도 미워할 수 없었던 하림- 그는 그냥 <인간 장하림>일 뿐이었다.
윤여옥에게 좀 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사랑'은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그녀에게 장하림이란 남자는 '보다 고차원적인 존재, 은인, 선생님, 보호자.. 자신이 어떻게 하기에는 너무 염치 없고 죄송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저 높은 곳에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허나 장하림이 그랬듯, 윤여옥 또한 그럴 기회가 있었다면 하림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았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서로 연적 관계이기도 하지만, 사이판에서 의사 선생님과 임산부의 관계로 '아이 아빠인 대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하림(박상원)'과 그녀로부터 '여옥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독립 투사로서 같이 옥고를 치른 하림의 얘기를 많이 전해 들었을 대치(최재성)'는 이 윤여옥(채시라)이란 여자로 인해 하나로 묶이게 된 미묘한 관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여옥이란 여자에게 '늘 삶의 가장 고통스런 최전방에서 함께 뒹굴게 되는 운명적인 파트너'는 최대치다. 한국 전쟁 중에, 지리산 어느 부락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 그들.. 더 이상 여옥에게 짐이 되기 싫은 대치는 다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가고, 여옥은 약 봉지를 들고서 그런 대치를 찾아 나섰다가 눈보라 치는 산 속에서 오발탄을 맞고 대치의 품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그 후 '부상을 입었던 최대치'도 먼저 떠난 윤여옥의 옆에서 나란히, 그녀의 남자 장하림의 품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데...
해방된 조국, 내 나라 땅에서도 결코 환영받지 못했던 이 나라의 젊은이들~ 그 역사..
그 시점에서 만일 그들이 살아 남았다 해도, 이 땅의 사람들은 그런 여옥과 대치를 품어줄 수 없었을 것이며 갖가지 죄를 씌워 단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라도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그들이 고단한 삶을 마치고 비로소 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한 편으론 마음 시리면서도,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던 그런 야릇한 느낌의 결말'로 기억된다. 이 드라마의 엔딩은...
그들이 태어난 나라는, 또 그들이 운명적으로 맞닥뜨리게 된 역사는 가련한 두 영혼들에게 지옥보다 더한 고통만을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살아남은 하림이 접하게 된 그 세상은 보다 희망적이긴 했을까..?
[ P.S : 독립 투사를 사랑한 친일파? - 친일파 매국노, 스즈끼의 충격적 고백.. ]
이 드라마 전반적으로, 장하림이나 윤여옥과는 꽤나 질긴 인연을 자랑하는 한국인 친일 경찰 최두일(스즈키).. <여명의 눈동자> 마지막회를 보면, 그런 스즈끼가 (그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림을 향해 무척 요상한 대사를 날린다. "알고 있었나..? 난 첨부터 자네가 맘에 들었어~" 라는... 해방되기 이전부터 '친일파 경찰인 스즈끼'가 그렇게도 잡고 싶어했던 '독립 투사 장하림'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니~ 뭐가, 어디가, 어떤 면에서..? 스즈끼가 했던 그 말은 상당히 반전스러운 멘트이다.
아니, 그럼~ 극 중 장하림에 대한 스즈끼의 속마음은 바로 저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럼, 하림을 취조하면서 옆에 있는 여옥을 더 모질게 고문했던 것도 다.. 윤여옥을 연모하는 장하림의 마음을 확인하고서, 자신의 '연적'인 윤여옥에 대한 강렬한 '질투심'으로 그녀를 더 못살게 굴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