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Haydn)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며, 궁정 악장 살리에리와도 친분이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온화한 인품에 유머 감각까지 갖춰서 주변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알려져 있는 하이든은 평생에 걸쳐 여러 음악적 업적을 남겼으나, 그 사생활(결혼 생활) 면에선 그닥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서로 맞지 않는 두 남녀가 만난 탓이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은 젊은 시절, 자신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던 가발 제조업자의 딸 '테레제 켈러(Therese Keller)'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이든의 순정을 받아주지 않았으며, 결국 수녀가 되기 위해 수녀원에 들어가 버렸다. 그랬던 하이든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테레제 언니인 마리아 안나가 있으니 둘이 결혼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당시 하이든에게 무슨 귀신이 씌였는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1760년 마리아 안나 켈러(Maria Anna Keller)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당시 '마리아 안나' 쪽이 '하이든' 보다 3살 연상녀였다.)
그로부터 두 남녀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모드가 아니라, 하이든이 '그녀와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한탄할 만큼 힘든 결혼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작곡가 '하이든의 부인(마리아 안나 켈러)'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의 '악처'에 단골 인물로 들어갈 만큼 평판이 좋지 않은 편이다.
물론 그것두 우리가 직접 보지 않은 이상 100%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지만, 당대 음악가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 안나 켈러(Maria Anna Keller)'는 재능 있는 음악가 '하이든'의 부인으로서 그를 내조하기엔 음악적 소양이 너무나 부족한 여자였다고 한다. 그녀가 하이든(Haydn)이 힘들게 완성한 '악보'를 냄비 받침으로 쓰거나 머리 세팅할 때 사용했다거나 하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 뿐 아니라, 하이든의 아내 '마리아 안나'는 호전적인 성격에, 집안 살림도 잘 못하고 낭비벽이 있었다고... 한 때 하이든이 주변인들에게 "나의 아내는 내가 음악가인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작곡가든, 구두 수선공이든 그저 돈만 잘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며 푸념했다는데, 음악가인 그로선 '음악에 대한 애정도 이해도 없는 와이프'와 같이 살기 괴로웠을지 모른다.
어쩐 일인지, 하이든과 안나 마리아는 40여 년을 부부로서 같이 살았음에도 자식을 갖지 못했다. 부인과는 수준이 안 맞는 데다가 둘 사이에 자식도 없었기에 남편인 하이든은 딴맘 품기 쉬웠을테고, 실제로 그는 다른 여성과 이런저런 스캔들이 있었으며 항간에 '루이지아'란 여성(하이든과 오랜 우정을 나눴던, 그보다 18세 연하의 성악가 여성)이 하이든의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어차피 세상 모든 일은 상대적인 것이라) 하이든 입장에선 '살림도 못하고 질투와 낭비가 심한 데다가 무식하기까지 한 부인'이 못마땅 했겠지만, 하이든 부인인 마리아 안나는 또 그녀대로 '직업적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음악을 하는 데다가 외도까지 한 남편'으로 인해 무척 외로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자식까지 없었으니 더더욱 외로웠을 것 같은데, 하이든 부인은 나이 들어서 류머티즘이 심해진 탓에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작곡가로서의 '하이든'이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그의 동료나 다른 음악가들의 기록에 의해 '하이든의 부인 안나 마리아'가 악처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배우자'와 억지 결혼 생활을 해야 했던 하이든도, 하이든 부인도 모두 불쌍하게 느껴진다.
하이든은 부인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서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된 이후로 '천지창조'를 비롯한 여러 대작들을 작곡하며 더더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니, 이래저래 '잘못된 만남'인 듯한 이 커플의 이야기를 접한 이후 '서로 취향이 비슷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진리가 떠올랐다..
Franz Joseph Haydn(1732~1809)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은 젊은 시절, 자신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던 가발 제조업자의 딸 '테레제 켈러(Therese Keller)'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이든의 순정을 받아주지 않았으며, 결국 수녀가 되기 위해 수녀원에 들어가 버렸다. 그랬던 하이든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테레제 언니인 마리아 안나가 있으니 둘이 결혼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당시 하이든에게 무슨 귀신이 씌였는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1760년 마리아 안나 켈러(Maria Anna Keller)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당시 '마리아 안나' 쪽이 '하이든' 보다 3살 연상녀였다.)
그로부터 두 남녀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모드가 아니라, 하이든이 '그녀와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한탄할 만큼 힘든 결혼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작곡가 '하이든의 부인(마리아 안나 켈러)'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의 '악처'에 단골 인물로 들어갈 만큼 평판이 좋지 않은 편이다.
물론 그것두 우리가 직접 보지 않은 이상 100%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지만, 당대 음악가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 안나 켈러(Maria Anna Keller)'는 재능 있는 음악가 '하이든'의 부인으로서 그를 내조하기엔 음악적 소양이 너무나 부족한 여자였다고 한다. 그녀가 하이든(Haydn)이 힘들게 완성한 '악보'를 냄비 받침으로 쓰거나 머리 세팅할 때 사용했다거나 하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 뿐 아니라, 하이든의 아내 '마리아 안나'는 호전적인 성격에, 집안 살림도 잘 못하고 낭비벽이 있었다고... 한 때 하이든이 주변인들에게 "나의 아내는 내가 음악가인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작곡가든, 구두 수선공이든 그저 돈만 잘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며 푸념했다는데, 음악가인 그로선 '음악에 대한 애정도 이해도 없는 와이프'와 같이 살기 괴로웠을지 모른다.
어쩐 일인지, 하이든과 안나 마리아는 40여 년을 부부로서 같이 살았음에도 자식을 갖지 못했다. 부인과는 수준이 안 맞는 데다가 둘 사이에 자식도 없었기에 남편인 하이든은 딴맘 품기 쉬웠을테고, 실제로 그는 다른 여성과 이런저런 스캔들이 있었으며 항간에 '루이지아'란 여성(하이든과 오랜 우정을 나눴던, 그보다 18세 연하의 성악가 여성)이 하이든의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작곡가 하이든의 부인 '마리아 안나'
(어차피 세상 모든 일은 상대적인 것이라) 하이든 입장에선 '살림도 못하고 질투와 낭비가 심한 데다가 무식하기까지 한 부인'이 못마땅 했겠지만, 하이든 부인인 마리아 안나는 또 그녀대로 '직업적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음악을 하는 데다가 외도까지 한 남편'으로 인해 무척 외로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자식까지 없었으니 더더욱 외로웠을 것 같은데, 하이든 부인은 나이 들어서 류머티즘이 심해진 탓에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작곡가로서의 '하이든'이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그의 동료나 다른 음악가들의 기록에 의해 '하이든의 부인 안나 마리아'가 악처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배우자'와 억지 결혼 생활을 해야 했던 하이든도, 하이든 부인도 모두 불쌍하게 느껴진다.
하이든은 부인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서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된 이후로 '천지창조'를 비롯한 여러 대작들을 작곡하며 더더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니, 이래저래 '잘못된 만남'인 듯한 이 커플의 이야기를 접한 이후 '서로 취향이 비슷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진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