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알로하오에' 작곡한 하와이 최후의 여왕 릴리우오칼라니
타라
2013. 5. 2. 20:27
외국 민요 '알로하오에(Aloha'Oe)'는 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린 적 있고, 우리 나라 가수들도 번안해서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수시로 불렀던 유명한 노래이다. 들은 지 좀 되어서 앞부분 가사는 까먹었지만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하는 이 곡 후렴부 가사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일반 작곡가가 아닌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이다.
Lili'uokalani(1838~1917)
릴리우오칼라니의 공주 시절, 오하우 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안타까워 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고 삘 받아서 이 석별의 노래 '알로하오에'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Aloha Oe'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나라 말로 번안된 한국어 버전 '알로하오에'도 꽤 마음에 든다.
하와이 왕조의 릴리우오칼라니가 1878년 경 작사/작곡하게 된 '알로하오에'는 독일 출신의 음악 교사 헨리 바거에 의해 편곡되어 하와이에서 유명해졌고, 곧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와이어로 '사랑하는 당신, 안녕' or '안녕, 내 사랑~' 정도의 의미인 것 같다.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는 당시 하와이의 국왕이었던 칼라카우아의 여동생으로, 왕이 된 오빠가 사망한 뒤 그 자리에 오른 '하와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 유일한 여왕'이었다.
국왕으로 즉위한 그녀는 전왕(前王) 대에 군주제가 약화된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며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고, 이전 왕이 서명했던 '미국에 무역 특혜권을 주고 진주만을 미국에 양도한다는 갱신 상호 호폐 조약'에 일찌감치 반대했었다. 그로 인해,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는 하와이에 거주하던 외국인 기업가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하와이를 미국과 합병하려는 소수 백인들로부터 하와이 원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반대파들이 연합하여 그녀를 폐위시키려 했다. 1893년, 샌퍼드 돌이 이끄는 선교당은 궁전을 봉쇄하고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될 때까지 임시 정부를 수립한다'고 발표한 뒤 여왕에게 퇴위를 요구했다.
일단 '유혈 충돌'을 막기 위해 퇴위를 받아들인 릴리우오칼라니는 미국의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복위(復位)를 호소했고 그가 '여왕의 복위'를 명령했으나, 반대파의 샌퍼드 돌은 미국 대통령의 그 명령을 무시했다. 1895년 여왕을 지지하던 왕당파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돌(Dole)파에 의해 진압되었고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가택 연금을 당하기까지 했다.
반란 진압 후, 옥에 갇힌 자신의 추종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릴리우오칼라니는 공식 퇴위서를 발표하며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로 인해, 100년 동안 유지되었던 하와이 왕국은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릴리우오칼라니가 퇴위된 후, 샌퍼드 돌(Sanford B.Dole)이 하와이 공화국을 선언하면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898년, 하와이가 미국과의 합병에 승인하면서 하와이는 미국 소유가 되었다.
하와이 왕조의 마지막 국왕으로서 1891~1895년까지 왕좌에 있었던 '알로하오에'의 작사/작곡가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는 퇴위한 뒤인 1898년엔 회고록 <하와이 여왕의 하와이 이야기(Hawaii's Story by Hawaii's Queen)>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우리 나이로 80세까지 살았다..
릴리우오칼라니의 공주 시절, 오하우 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안타까워 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고 삘 받아서 이 석별의 노래 '알로하오에'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Aloha Oe'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나라 말로 번안된 한국어 버전 '알로하오에'도 꽤 마음에 든다.
하와이 왕조의 릴리우오칼라니가 1878년 경 작사/작곡하게 된 '알로하오에'는 독일 출신의 음악 교사 헨리 바거에 의해 편곡되어 하와이에서 유명해졌고, 곧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와이어로 '사랑하는 당신, 안녕' or '안녕, 내 사랑~' 정도의 의미인 것 같다.
국왕으로 즉위한 그녀는 전왕(前王) 대에 군주제가 약화된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며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고, 이전 왕이 서명했던 '미국에 무역 특혜권을 주고 진주만을 미국에 양도한다는 갱신 상호 호폐 조약'에 일찌감치 반대했었다. 그로 인해,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는 하와이에 거주하던 외국인 기업가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하와이를 미국과 합병하려는 소수 백인들로부터 하와이 원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반대파들이 연합하여 그녀를 폐위시키려 했다. 1893년, 샌퍼드 돌이 이끄는 선교당은 궁전을 봉쇄하고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될 때까지 임시 정부를 수립한다'고 발표한 뒤 여왕에게 퇴위를 요구했다.
일단 '유혈 충돌'을 막기 위해 퇴위를 받아들인 릴리우오칼라니는 미국의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복위(復位)를 호소했고 그가 '여왕의 복위'를 명령했으나, 반대파의 샌퍼드 돌은 미국 대통령의 그 명령을 무시했다. 1895년 여왕을 지지하던 왕당파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돌(Dole)파에 의해 진압되었고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가택 연금을 당하기까지 했다.
반란 진압 후, 옥에 갇힌 자신의 추종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릴리우오칼라니는 공식 퇴위서를 발표하며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로 인해, 100년 동안 유지되었던 하와이 왕국은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릴리우오칼라니가 퇴위된 후, 샌퍼드 돌(Sanford B.Dole)이 하와이 공화국을 선언하면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898년, 하와이가 미국과의 합병에 승인하면서 하와이는 미국 소유가 되었다.
하와이 왕조의 마지막 국왕으로서 1891~1895년까지 왕좌에 있었던 '알로하오에'의 작사/작곡가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는 퇴위한 뒤인 1898년엔 회고록 <하와이 여왕의 하와이 이야기(Hawaii's Story by Hawaii's Queen)>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우리 나이로 80세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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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노래 배운 기억이 나네요. 이유는 모르고 배웠던 것같은데, 이런 심오한 뜻이~~음악이든 뭐든 알아듣지 못해도 좋을 때도 있지만 알고 들어서 또다른 느낌을 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답글 -
와 신기!! 2010.11.10 23:46
오늘 아침에 피아노책을 뒤적거리다가
답글
알로하오에 작곡가 설명에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이라는 말이 있어서
꽤나 흥미롭게 여겼었는데, 마침 이 글을 보게 되었네요!
덕분에 궁금증이 다 풀렸어요 ㅎㅎ
이런 우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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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기의 하와이는 참.. 우리 나라가 그 뒤에 일제 강점기를 겪던 때라 그런지 남 이야기 같지 않은 시절이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이 한인들이 갔던 시기이기도 하고 미국령 하와이로 독자성을 잃어가던 떄이니.. 복잡한 마음이었을거에요. 그래도 최선을 다한 여왕으로 존경받고 있겠군요. 하와이 이외에도 바나나회사, 사탕수수 회사, 파인애플 회사 등등.. 외국 곳곳에 농업 식민지를 건설하는 다국적 회사의 침략이 뒤를 잇기 때문에.. 저런 운명에 처했던 나라가 하와이 뿐만은 아니었다는게.. 참..
답글
미드 '하와이 파이브-오'는 원래 미국 본토와는 정서가 다른 하와이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더군요. 지금도 미국인들은 모르는 원주민 정서가 있을 거 같습니다. -
이치베이 2010.11.11 17:19
흥미로운 얘기네요..이 노래에 이런 뒷 얘기가 있었군요.. 왠지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것 같아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답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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