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영국) 튜더 왕조 헨리 7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헨리 8세(Henry VIII)는 형이 일찍 죽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 받았다. 르네상스 군주로서 절대 왕정을 강화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사생활 면에선 천하의 바람둥이 왕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Henry VIII(1491~1547)
헨리 8세의 첫번 째 부인 : 아라곤의 캐서린
20년 결혼 생활 동안 왕위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고, 이혼 안하려고 버티다가 '강제 이혼' 당함
아라곤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과 결혼했으나, 그가 죽은 뒤 '시아버지인 헨리 7세와 자기 아버지와의 목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동생인 헨리 8세와 재혼했다. 그 사이에서 6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자주 사산되어 결국 1명의 딸(메리 공주)만이 살아남게 된다.
20년 결혼 생활 동안 왕위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고, 이혼 안하려고 버티다가 '강제 이혼' 당함
아라곤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과 결혼했으나, 그가 죽은 뒤 '시아버지인 헨리 7세와 자기 아버지와의 목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동생인 헨리 8세와 재혼했다. 그 사이에서 6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자주 사산되어 결국 1명의 딸(메리 공주)만이 살아남게 된다.
처음엔 캐서린 왕비를 사랑했던 헨리 8세는 자식들이 유산되거나 사산되자, 큰 고뇌에 빠진다. 그 후,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는 왕비의 시녀이자 자기 정부(情婦)인 메리 불린의 여동생 '앤 불린'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캐더린 왕비가 나이 먹어서 더 이상 왕자를 생산할 가능성이 없어지자, 헨리 8세는 왕비와 이혼한 뒤 (아들을 얻기 위해) 앤 볼린과 결혼할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캐서린 왕비(Cahterine of Aragon)를 존경하는 백성들과 왕비의 친정인 스페인 왕실 & 로마 교황청이 이를 반대하자, 헨리 8세는 카톨릭 교회와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여 종교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이 과정에서 수많은 카톨릭 교도들이 죽음을 당했음~) 헨리 8세가 카톨릭과 교황의 세력에서 분리된 영국만의 국교를 만들어 자신을 그 국교의 수장으로 선포하는 '수장령'을 발표한 것이다.
그리곤, 첫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강제로 쫓아내고) 앤 불린을 왕비로 맞아들였다. 앤 볼린의 친정에서도 자기 딸을 왕비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까지 않았다.(그 후, 억울하게 내쫓긴 캐서린 왕비는 딸마저 빼앗긴 채 비참하게 죽어갔다..)
헨리 8세의 두번 째 부인 : 앤 불린
본처인 첫번 째 부인을 몰아내고 왕비가 되었으나,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간통죄'로 목 잘려 죽음
본처를 몰아내고 헨리 8세의 두번 째 왕비가 된 앤 볼린은 이전 왕비인 캐서린의 딸 메리 공주에게 시녀처럼 온갖 궂은 일을 시키며 핍박했는데, 그러한 자신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는 못했다. 헨리 8세와 결혼한 앤 불린이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아들은 사산되어 결국 그에게 왕위를 이을 후계를 안겨주지 못했다.(앤 불린이 낳은 첫째 딸이 바로, 나중에 영국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이다.)
그리곤, 첫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강제로 쫓아내고) 앤 불린을 왕비로 맞아들였다. 앤 볼린의 친정에서도 자기 딸을 왕비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까지 않았다.(그 후, 억울하게 내쫓긴 캐서린 왕비는 딸마저 빼앗긴 채 비참하게 죽어갔다..)
헨리 8세의 두번 째 부인 : 앤 불린
본처인 첫번 째 부인을 몰아내고 왕비가 되었으나,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간통죄'로 목 잘려 죽음
본처를 몰아내고 헨리 8세의 두번 째 왕비가 된 앤 볼린은 이전 왕비인 캐서린의 딸 메리 공주에게 시녀처럼 온갖 궂은 일을 시키며 핍박했는데, 그러한 자신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는 못했다. 헨리 8세와 결혼한 앤 불린이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아들은 사산되어 결국 그에게 왕위를 이을 후계를 안겨주지 못했다.(앤 불린이 낳은 첫째 딸이 바로, 나중에 영국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이다.)
또한 '순종적이고 정숙한 여인이었던 캐서린 왕비'와 달리 '드센 성격을 지닌 앤 불린'에게 헨리 8세는 싫증을 느끼게 되었으며, '기품 있는 첫번 째 왕비를 몰아낸 마녀' 쯤으로 앤 볼린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도 좋지 않았다. 결국 천일(1000일) 동안 왕에게 '후계를 이을 왕자(아들)'를 안겨주지 못했던 '앤 불린(Anne Boleyn)'은 이혼을 거부하고 버티다가, 왕비가 된 지 3년 만에 자신의 정적들과 헨리 8세에 의해 근친상간 & 간통죄로 몰려 참수 당하고야 만다.
헨리 8세의 세번 째 부인 : 제인 시모어
왕이 원하는 아들을 낳아줘서 가장 인정 받는 왕비로 남았으나, 결국 애 낳고 나서 '병'으로 사망함
제인 시모어(Jane Seymour)는 헨리 8세의 첫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왕비의 시녀 출신으로, 캐서린의 '정숙하고 기품 있는 면모'에 반하여 그녀와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던 중 '두번 째 왕비인 앤 불린'의 드센 성격에 질린 헨리 8세의 눈에 띄게 된다. [ 왕비의 시녀 주제에 본처(첫번 째 왕비 캐서린)를 몰아내고 두번 째 왕비가 된 '앤 불린'이 훗날, 부메랑처럼 또 다른 시녀 출신인 '제인 시모어'에게 자기가 과거에 한 그대로 당하게 된 시추에이션~ ]
헨리 8세의 세번 째 부인 : 제인 시모어
왕이 원하는 아들을 낳아줘서 가장 인정 받는 왕비로 남았으나, 결국 애 낳고 나서 '병'으로 사망함
제인 시모어(Jane Seymour)는 헨리 8세의 첫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왕비의 시녀 출신으로, 캐서린의 '정숙하고 기품 있는 면모'에 반하여 그녀와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던 중 '두번 째 왕비인 앤 불린'의 드센 성격에 질린 헨리 8세의 눈에 띄게 된다. [ 왕비의 시녀 주제에 본처(첫번 째 왕비 캐서린)를 몰아내고 두번 째 왕비가 된 '앤 불린'이 훗날, 부메랑처럼 또 다른 시녀 출신인 '제인 시모어'에게 자기가 과거에 한 그대로 당하게 된 시추에이션~ ]
헨리 8세의 두번 째 왕비인 앤 불린의 반대 세력 & 첫번 째 왕비 캐서린의 친정인 스페인 왕실의 원조를 받아 제인 시무어는 앤을 몰아내고 왕의 세번 째 부인이 된다.(전처 캐서린 왕비의 딸 메리를 학대했던 앤 불린과 달리, 제인 시모어는 메리를 공주로서 정중히 대해 주었다고 한다.)
앤 불린이 죽자마자 헨리 8세가 결혼한 제인 시모어가 '왕자'를 출산하긴 했으나, 그 해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훗날 '제인 시모어가 낳은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국왕이 되었지만, '헨리 8세가 성병 걸린 와중'에 임신되어 허약했던 이 아이는 1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문란한 아비를 만난 죄로~ ;;)
생전의 '헨리 8세의 의지'로, 죽은 헨리왕은 나중에 '세 번째 부인인 제인 시모어'와 나란히 묻혔다. 아들을 낳아 준 세번 째 부인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가 가장 인정한 왕비였다-
생전의 '헨리 8세의 의지'로, 죽은 헨리왕은 나중에 '세 번째 부인인 제인 시모어'와 나란히 묻혔다. 아들을 낳아 준 세번 째 부인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가 가장 인정한 왕비였다-
헨리 8세의 네번 째 부인 : 클레브의 앤
초상화 그림과는 달리, 안생겼다는 이유로 동침 한 번 못해보고 6개월 만에 왕과 '합의 이혼' 함
미인을 좋아했던 헨리 8세는 화가 한스 홀베인(한스 홀바인)이 그려온 독일 클레브의 공주 앤의 '그림'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지만, 정작 초상화와는 너무도 다른 그녀의 '실물'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그 후 그 결혼을 깨려고 노력했으나, 여의치가 않아서 50세가 다 된 나이에 '클레브의 앤(안나 폰 클레페)'과 재혼한 헨리 8세는 그녀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여겨서 얼마 안가 이혼해 버렸다.
헨리 8세는 이 네 번째 부인 클레브의 앤(Anne of Cleves)과 단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근거로 '결혼 무효'를 주장한 것이다. 클레브의 앤(안나 폰 클레페)은 영토 & 두둑한 위자료를 받고 영국에 계속 머무르는 조건으로 헨리 8세의 이혼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이혼 후에도 '왕의 친구' 자격으로 자유롭게 궁정 출입을 하며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둘의 결혼을 진행했던 토머스 크롬웰은 국왕인 헨리 8세로부터 사형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중매 한 번 잘못 섰다가...;;)
헨리 8세의 다섯번 째 부인 : 캐서린 하워드
한참 연상인 왕의 사랑을 받았으나, 다른 남자들이랑 놀아나다가 왕의 분노를 사 '참수' 당함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의 외사촌 여동생이자, 네번 째 왕비 클레브의 앤(안나 폰 클레페)의 시녀로 생활했던 '캐더린 하워드'는 어느 날 우연히 왕의 눈에 띄어 헨리 8세와 결혼하게 된다.(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30세 정도였으니, 헨리 8세는 진정 '도둑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헨리 8세의 부인들 중 가장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저 둘의 결혼을 진행했던 토머스 크롬웰은 국왕인 헨리 8세로부터 사형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중매 한 번 잘못 섰다가...;;)
헨리 8세의 다섯번 째 부인 : 캐서린 하워드
한참 연상인 왕의 사랑을 받았으나, 다른 남자들이랑 놀아나다가 왕의 분노를 사 '참수' 당함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의 외사촌 여동생이자, 네번 째 왕비 클레브의 앤(안나 폰 클레페)의 시녀로 생활했던 '캐더린 하워드'는 어느 날 우연히 왕의 눈에 띄어 헨리 8세와 결혼하게 된다.(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30세 정도였으니, 헨리 8세는 진정 '도둑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헨리 8세의 부인들 중 가장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성이었다.
늙은 헨리 8세는 이 젊은 부인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하지만 (도저히 늙은 남편에게만 올인하며 살 수는 없었던지) 미혼 시절 뿐 아니라 '결혼 이후에도 시종 & 음악 교사(악사) 등 여러 남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에 대한 간통 증거들이 발견되어, 그녀는 결국 열 받은 헨리 8세에 의해 '참수형'을 선고 받고 처형 당하게 된다.
헨리 8세의 여섯번 째 부인 : 캐서린 파
'병든 왕'을 잘 간호해 주고 '전처 애들'을 살뜰하게 챙겼지만, 왕이 사망하자 다른 남자와 재혼함
왕의 5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하워드가 처형 당한 다음 해에 (우리 나이로) 53세가 된 헨리 8세는 두 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미망인 '캐서린 파'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헨리왕의 마지막 결혼이었다. 헨리 8세의 마지막 부인인 캐서린 파(Catherine Parr)는 남편 뿐 아니라 '전처들의 자식'에게도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는 등 따뜻하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헨리 8세의 여섯번 째 부인 : 캐서린 파
'병든 왕'을 잘 간호해 주고 '전처 애들'을 살뜰하게 챙겼지만, 왕이 사망하자 다른 남자와 재혼함
왕의 5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하워드가 처형 당한 다음 해에 (우리 나이로) 53세가 된 헨리 8세는 두 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미망인 '캐서린 파'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헨리왕의 마지막 결혼이었다. 헨리 8세의 마지막 부인인 캐서린 파(Catherine Parr)는 남편 뿐 아니라 '전처들의 자식'에게도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는 등 따뜻하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4년 뒤에 헨리 8세는 사망하고, 그가 죽자 캐서린 파(Catherine Parr)는 헨리 8세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연모하고 있었던 토머스 시모어를 네 번 째 남편으로 맞이했다.(토머스 시모어는 헨리 8세의 세번 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의 남동생이었다.) 하지만 재혼한 지 얼마 안된 캐더린 파는 토머스의 아이를 출산한 뒤, 건강이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
16세기 영국(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국왕 '헨리 8세(Henry VIII)'는 그 난잡한 사생활로 평생 '성병'을 달고 다니며 부인들을 감염시켰으며, 말년엔 매독과 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가 비록 다재다능하고 교양이 풍부하며 정치적으론 나름 뛰어난 왕이었을지 몰라도, 뻑하면 부인의 목을 자르거나 쫓아내거나 했던 걸 보면 (그 사생활 면에서) 자기 부인들에겐 꽤나 잔혹하고 비정한 남편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