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가련한 '9일 천하'의 여왕 '제인 그레이'

타라 2011. 3. 4. 18:15
예전에 영국의 '헨리 8세'와 '피의 메리'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메리 1세(피의 메리)를 '영국 최초의 여왕'이라 소개했었는데, 그 때 어떤 분께서 '제인 그레이는 왜 빼먹나~' 하면서 의아해 하신 적이 있었다. '메리 1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제인 그레이'가 잠시 왕 자리에 오르긴 했으나 9일 만에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기에, 당시 그녀를 실질적으로 왕이었다라거나 영국 최초의 여왕이라 말하기 좀 머쓱했다. 대체로 많은 포털이나 백과 사전에서도 영국 최초 여왕은 '메리 1세'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영국 여왕이 되었다가 9일 만에 물러나야 했던 제인 그레이(Jane Grey)는 '헨리 7세의 증손녀'이자 '헨리 8세 누이의 손녀딸(=헨리 8세 조카의 딸)'이었다. 생전의 헨리 8세(Henry VIII)는 왕위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딸'만 낳은 첫 번째 부인을 버리고, 역시 '딸'만 낳은 두 번째 부인을 처형시킨 뒤, 세 번째로 결혼한 여자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청소년 소설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 주인공으로도 나오는 '에드워드 6세'이다.

그 시기 기준으로 원래는 '헨리 8세'가 죽으면 그의 아들인 '에드워드 왕자'가 왕이 되고(에드워드 6세), 그 다음으로 '에드워드 6세의 아들'이 왕이 될 수 있었을텐데, 급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된 에드워드 6세에겐 후사가 없었다. 그럴 경우, 그의 이복 누나인 메리(피의 메리)에게 왕이 될 자격이 주어졌다.

괜히 국교는 갈아치워 가지고 엄한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희생시킨 '헨리 8세(중앙)'와 그의 가족


하지만 에드워드 6세 시절 '권력'을 잡고 있던 더들리 백작 등 <신교도 세력>은 '독실한 구교도 신자인 메리'가 왕이 되면 자신들이 보전하던 자리가 위태로워지기에 에드워드 6세(Edward VI)를 부추겨 '신교도 신자인 제인 그레이'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것에 설득 당한 에드워드 6세는 결국 제인 그레이를 차기 후계자로 지목했다. 굳이 그녀가 왕좌를 원했다기 보다는, 권력을 원했던 제인의 부모와 꼭두각시 왕이 필요했던 신교도 세력의 이해 관계에 의해 그리 된 것이다.

에드워드 6세가 죽은 후 17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제인 그레이(Jane Grey)는 자기가 왕 자리를 원하지 않았음을, 에드워드 6세의 누나인 메리야말로 적법한 왕이라 주장했지만 그녀에겐 별다른 힘이 없었다. 신교도 세력의 강요에 의해 '제인'이 왕이 되긴 했으나, 당시의 영국 국민들은 헨리 8세가 첫 번째 왕비에게서 낳은 '메리'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여론이 그 쪽으로 기울자 위기감을 느낀 더들리 백작은 메리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물론 이건 더들리 백작의 계획일 뿐, 어린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여왕으로 옹립된 '제인 그레이'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신교도 측에서 움직이기 전에 '군사를 일으킨 메리'가 영국 국민들 지지를 얻은 채 런던 성으로 들어왔고, 아무 죄도 없었던 제인 그레이는 '반역죄'로 체포되어 여왕 된 지 9일 만에 런던 탑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여왕이 된 '메리 1세'가 원래는 '제인 그레이'의 목숨만은 살려주고자 했었다.

자기 생모(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가 헨리 8세의 일방적인 '종교 개혁'에 의해 희생되었기에 '신교'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던 메리 1세는 영국을 다시 '구교' 국가로 되돌리려 했는데, 이에 신교도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고 그 중엔 제인 그레이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반란은 금세 진압되었으나, 메리 1세는 측근들의 '(9일동안 왕 자리에 있었던) 제인 그레이가 살아있으면 계속해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란 주장을 참고하여 결국 제인 그레이를 처형하기로 한다. 비록 무지막지한 종교적 숙청으로 나중에 '피의 메리'란 별칭을 얻게 되긴 했지만, 당시의 메리 1세는 나이 어린 제인 그레이에게 연민을 느껴 "구교로 개종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 &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폴 들라로슈의 그림 '제인 그레이의 처형(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


하지만 제인 그레이는 살기 위해 신앙을 저버릴 순 없다며 개종을 거부했고, 결국 18세의 나이로 참수형에 처해져 생을 마감했다.(종교가 뭐길래..;;) '9일 여왕 제인 그레이' 다음으로 영국의 왕이 된 '메리 1세(Mary I)'의 삶도 전반적으로 짠하긴 하지만, 어린 나이에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 '제인 그레이(Jane Grey)'의 삶은 그보다 훨씬 가련하게 느껴진다.

'역사' 관련 소재의 그림을 주로 그린 후대의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는 역사책에서 본 이 '제인 그레이' 관련 이야기에 삘 받아서, 처형되기 직전의 그녀 모습을 묘사한 <제인 그레이의 처형(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이란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나름 유명한 작품이다.

(폴 들라로슈의 그림 속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제인 그레이에겐 '눈 가리개'가 씌워졌고, 옆에 있는 시녀들은 그녀의 처형을 슬퍼하고 있다. 옆의 사형수도 왠지 안되어 보인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의 이 그림은 배경을 알고 봤을 때 '감상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안 죽이면 안되나요~?"의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그림이 아닌가 싶다.

튜더 왕조(House of Tudor)가 집권했던 이 시기 사람들 중엔 '종교' 때문에 엄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참 많다. 신교도와 구교도의 이해 관계로 인해, 본인은 원치 않았지만 9일동안 왕좌에 있었던 '제인 그레이(Jane Grey)'도 그 중 한 명이다. 과거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이런 류의 일화를 접할 때마다,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