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뮤지컬'은 2005년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을 필두로 <십계>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후 국내에서 붐을 일으켰다가 지금은 조용히 사그라들었지만, 향후에 다시 국내 무대에 오르게 될 가능성이 크며 벌써부터 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 웨스트엔드 작품을 중심으로 한 '세계 4대 뮤지컬'이 있듯, 그 쪽 뮤지컬과 비교하여 유일하게 자체 경쟁력을 갖는 프랑스에도 '프랑스 3대 뮤지컬'이 존재한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된 적이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 <십계(Les Dix Commandements)> 등이 '프랑스 3대 뮤지컬'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세 작품 모두 '내한 공연'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공연 DVD가 발매된 바 있다.


특정한 역할을 연기하면서 노래를 담당하는 '가창자'와 그들의 감정선을 돕는 '댄서'가 분리되어 있는 프랑스 뮤지컬은 전반적으로 댄서들의 '역동적인 안무'와 '음악'의 힘이 참 큰 편이다. 1979년 프랑스 대중 뮤지컬의 포문을 연 <스타마니아(Starmania)> 이후, 프랑스에서 또 한 번 크게 히트 친 1998년작 <노트르담 드 파리>의 수록곡 'Belle(벨)'이 한 때 프랑스 차트에서 44주 동안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당시 'Belle' 싱글 앨범만 300만장 이상 팔려 나갔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가 한 때 우리 나라에서 <노틀담의 꼽추>라는 다소 이상한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었는데, 이건 명백히 '번역의 잘못된 예'가 아닐까 싶다. 한국어로 <파리의 노트르담>이라고 해야 맞다-(실제로 이렇게 정확한 제목으로 나온 번역서도 있음) 여기서 '노트르담'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뜻한다.

이 극의 제목에도 나오는 프랑스어 'Notre Dame'은 '우리의 부인' 즉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극 안에서 여주인공 에스메랄다가 종교 권력에 의해 좀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는데, 뮤지컬 버전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도 '에스메랄다'는 핍박 당하는 이방인 세력의 대표로 권력자들에게 저항하다가 죽음을 맞는 '희생양'의 의미에 가까운 인물로 나온다.

십자가 형상을 한 '희생양' 에스메랄다

작사가 뤽 플라몽동이 각색한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기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프롤로 부주교와 성당 종지기인 꼽추 콰지모도가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그 마을에 클로팽과 이방인 무리들이 이주해 온다. 이제껏 신만 섬기며 살아온 프롤로 신부는 성당 앞에서 자유롭게 춤추던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에게 욕정을 느끼지만, 겉으론 까칠하게 군다. 그러면서, 에스메랄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인지 사랑인지 모르는 감정) 때문에 홀로 고뇌하는 프롤로.. 

하지만 어린 처녀 에스메랄다는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미남 근위 대장 페뷔스랑 서로 호감 느끼게 되는데, 그는 이미 약혼녀(플뢰르 드 리스)가 있는 몸이다. 에스메랄다의 작은 친절에 급 사랑에 빠진 콰지모도 역시 그녀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이방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삼색의 사랑' 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가 그녀를 향해 '아름답다(Belle)~'는 찬탄의 노래를 부른다.


어느덧 '에스메랄다 스토커'짓을 하고 있는 프롤로 신부는 그녀 & 페뷔스의 밀회 장소에 나타나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구서 질투심에 치를 떨게 되고, 에스메랄다와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페뷔스를 로 찔러 버린다.(그런데, 이 칼은 에스메랄다의 소유물이다. 예전에 프롤로가 콰지모도를 시켜 '에스메랄다 납치극'을 벌였을 때 그녀가 떨어뜨리고 간 것을 프롤로가 줍게 된 것-) 프롤로는 칼의 주인이 에스메랄다라는 점을 들어, 그녀에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 씌운다. 한마디로 '그녀를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무너뜨리겠어~' 식의 뒤틀린 사랑이 아닐까 한다..

불쌍한 에스메랄다는 자기가 페뷔스를 안 찔렀음에도 페뷔스 상해(살인미수)죄로 옥에 갇히고, 사악한 '마녀'로 몰리게 된다. 그녀에 대한 관심을 가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뒤틀린 사랑의 프롤로는 겉으론 에스메랄다에게 차갑게 굴지만, 그의 내면은 심히 혼란스럽다. 이제껏 신을 섬기고 학문에 올인하며 살아온 자신이 이방인 집시 여인 따위를 좋아하게 된 게 너무 자존심 상하고 혼란스러운 프롤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너무 간절히 원하고 있는 자기 욕망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한 편.. 에스메랄다와 바람 피우려 했다가 딱 걸린 약혼자 페뷔스를 향해 플뢰르 드 리스는 심히 분노하면서 "에스메랄다를 처형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독한 제안을 한다. 이에, 찌질이 페뷔스는 '나는 아무 잘못 없어요. 그 집시 여자가 나한테 마법을 걸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일 뿐~' 하면서 에스메랄다 배신 때리고 다시 약혼녀에게로 돌아간다.

프롤로는 에스메랄다에게 자신의 절절한 감정을 고백하며 '나랑 하룻밤 자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그녀에겐 오직 페뷔스 뿐이다.(페뷔스가 자신을 배신한 지도 모른 채 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에스메랄다는 자기 기준에서 '너무 늙은 프롤로'가 싫은 거다.)


그 아름다운 집시 여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비루한 욕정'을 내내 떨쳐버리지 못하던 프롤로는 '방면조건으로 내건 그녀와의 하룻밤'을 간절히 원하며 에스메랄다를 덮치려 하지만, 그 때 콰지모도가 갇혀 있던 클로팽 무리들을 풀어준 뒤 그녀를 구출해 낸다.

콰지모도는 성역인 노트르담 성당 안으로 에스메랄다를 피신시키고, 그녀는 콰지모도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순 없지만 그의 다정한 보살핌에 포근함을 느끼곤 '친구'처럼 편하게 대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꼽추 콰지모도는 '기형적인 몸과 흉측한 얼굴'로 태어난 탓에, 여느 남자들처럼 여인과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슬퍼하고.. 이 스토리의 화자이자 관조자인 음유 시인 그랭구아르는 콰지모도의 아픔을 시로 담아 달(lune=moon)에게 전한다.

성당 꼭대기에서 파리의 아름다운 밤을 보게 된 에스메랄다는 '살고싶은 의지'를 노래하지만, 프롤로 부주교 & 근위 대장 페뷔스의 부대는 성역임에도 노트르담 대성당을 습격하여 이방인 무리들을 처단한다. 그 와중에 집시 대장인 클로팽이 죽게 되고, 페뷔스의 배신을 알아챈 에스메랄다는 이방인 무리들을 대표하여 끝까지 '저항 의지'를 밝히지만, 결국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그랭구와르는 슬퍼하고, 페뷔스와 약혼녀 플뢰르 드 리스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뒤틀린 욕망'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프롤로는 '에스메랄다의 죽음으로 분노하던 콰지모도'에 의해 성당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게 되고, 에스메랄다의 비루한 무덤을 찾은 콰지모도는 그녀의 주검을 끌어안고 슬퍼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오랜만에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DVD를 다시 꺼내어서 봤는데, 이전에 봤을 때랑 느낌이 좀 다르면서 그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폭풍 감동'을 느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원작 소설영화 버전, 뮤지컬 버전의 '세부적인 내용'이 좀 다르다. 뤽 플라몽동(Luc Plamondon) & 리카르도 코치안테(Riccardo Cocciante)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비록 위고의 원작 소설에 비해 내용이 대폭 축소되었지만,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해 보니 이 극의 대본을 쓴 플라몽동씨가 각 캐릭터의 감정선을 굉장히 촘촘하게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주인공들의 갈등 스토리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뮤지컬 버전 <노트르담 드 파리> 속에서 클로팽과 이방인(집시) 무리들이 나오는 떼창 장면에 유난히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공연장에서 보면 혼이 쏙 빠져나갈 정도로 멋지게 느껴지는데, 그냥 DVD 영상으로만 봐도 여전히 느낌이 좋다.
 
클로팽과 무리들, 에스메랄다, 콰지모도, 그랭구아르 - Liberes(해방)

프랑스 뮤지컬이 다 '송 쓰루 형식의 공연(전 장면이 노래로만 이뤄진 공연)'은 아니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의 경우엔 대사 하나 없이 모든 장면이 '노래'로만 이뤄진 송 쓰루 뮤지컬에 속한다. 그런데, 뤽 플라몽동의 이 작품엔 특정한 멜로디가 담긴 그 노랫가사 하나하나에 깨알같이 '들어가야 할 내용들'이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버전을 보면 이 캐릭터는 이 캐릭터대로 감정 이입이 되고, 저 캐릭터는 저 캐릭터대로 행동의 개연성/감정 변화가 다 이해된다. 뮤지컬 대본이 이렇게 되기 쉽지 않은데, 그런 걸 보면 뤽 플라몽동은 역시 천재 작사가가 아닐까 싶다.

'한국어로 공연된 라이센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발번역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이상하게 바뀐 번안 가사도 있어서 '오리지널 불어 공연 <노트르담 드 파리>'의 가사에 비해 2%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언어의 특징이 다른 '프랑스어(불어)' 가사를 음절수에 맞춰서 억지로 '한국어'로 변형하다 보니 오리지널 가사 내용의 미덕을 다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그래두, 국내 '다른 발번안 라이선스 뮤지컬들'에 비해 '<노트르담 드 파리> 국내판 번안 가사'는 꽤 양호한 편임)

같은 작품이라도, 어떻게 각색하느냐에 따라 각 장르마다 극의 성격이 좀 달라진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모순적인 인간의 본성을 심도있게 파헤쳤으며, 영화 버전에선 에스메랄다를 두 번 죽임으로써 당시의 불합리한 재판 제도와 마녀 사냥 & 콰지모도의 애잔함을 부각시켰다.


뤽 플라몽동(Luc Plamondon)이 각색을 한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경우엔, 콰지모도의 순수한 사랑/프롤로의 뒤틀린 사랑/페뷔스의 순간적인 사랑 등 '삼색의 사랑' 뿐 아니라 클로팽과 이방인 무리들을 통해 '인간 사회 갈등' 문제를 보다 집중적으로 끄집어 냈다.

<스타마니아>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뤽 플라몽동 쓴 작품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은 사회물적인 성격을 많이 띄고 있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안에서 클로팽과 집시 무리들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권력을 가진 보수 세력에 맞서는 저항 세력'이다. 나름대로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되지만, 그런 그들(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차없는 '프롤로, 페뷔스, 플뢰르 드 리스' 등은 당대의 기득권층에 속한다.

극 안에서 클로팽과 에스메랄다 등 억압 받던 집시들은 결국 죽음을 맞게 되나, 이 극 1막/2막 앞부분에서 화자 그랭구와르가 부르는 노래들을 살펴보면 '앞으로의 세상은 그들이 머물던 사회와는 다른 양상으로 변화될 것'이란 내용이 나온다.(실제로 그렇게 변화하기도 했고...)

항상 약자들의 편에 서서 한 목소리 더해주던 거리 시인 그랭구와르


그 시대에는 불합리한 억압과 희생이 있었지만, 그랬던 그들 시대는 곧 '종교 위주의 중세 사회'를 벗어나 '인간 중심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노트르담 드 파리>란 극 안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 안 불쌍한 인물이 없고, 에스메랄다와 프롤로 & 콰지모도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지만, 쓸쓸하게 그들의 모습을 관조하던 그랭구아르의 노래를 들어보면 약간의 희망적인 메세지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감정과 사연들이 맞물려 비탄에 빠진 이 극의 주인공들을 보면 무척 마음이 아프다.. 꽤 오랜만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DVD를 또 보게 되었는데 '다 아는 스토리여서 이젠 좀 질릴거야~'란 생각과 달리, 순간순간 울컥한 느낌이 들면서 다시 한 번 거장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작품은 역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미덕이 퇴색되지 않는 모양이다.

'작사가 뤽 플라몽동 &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 콤비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이 보여준 미덕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이 존재했다. 약간의 세월이 흘러서 다시 보니, 그간 겪어온 경험치들과 더해져서 그 감동이 더 깊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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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