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예전에 즐겨 들었던 국내 가요'를 주로 듣고 있는데, 어제 오랜만에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이 뮤지컬 넘버는 아무리 듣고 듣고 또 들어도 전혀 질리지가 않는다. 이 작품 음반을 사서 들은 지 5년이 훨씬 넘었는데,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음악은 세월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들을 때마다 '역시 훌륭해~'란 생각을 갖게 만들곤 한다. 

불어권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 음악을
만든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은 전 세계 '뮤지컬 음악 작곡가'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이다. 오래 전부터 최근까지 무수히 많은 뮤지컬 넘버들을 접해 봤지만, 제라르가 만든 곡들만큼 나의 오감을 자극시킨 노래는 별로 없었다.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의 뮤지컬 음악은 '대중적이고 세련된 멜로디 라인'에, 다른 뮤지컬 작곡가들의 곡에선 별로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품격'까지 갖추고 있어서 참 마음에 든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알바니아 버전 - Verona(베로나)

요즘 나오는 우리 나라 대중 가요는 크게 좋다는 느낌이 안 들던데, 예전엔 한국 가요들 중에 '명곡'이라 칭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멜로디 위주의) 주옥 같은 대중 가요가 참 많았었다. 그것(한국의 옛날 가요)과 비교했을 때, 또 잘 만들어진 '영화 음악'이나 '드라마 o.s.t'와 비교했을 때 전반적인 전 세계의 '뮤지컬 음악'은 많이 지루한 편이다. 한 80% 정도의 작품은 가사(해당 뮤지컬 대사)에다가 '당췌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밋밋한 멜로디'를 억지로 입힌 것 같은 재미없는 뮤지컬 넘버들로 이뤄졌다고나 할까-

물론 취향에 따른 '개인 차'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전반적인 브로드웨이(미국)나 웨스트엔드(영국) 쪽 뮤지컬 음악' 보다는 '프랑스 뮤지컬을 위시한 유럽 뮤지컬 쪽 음악'이(영국도 유럽이지만, 일단 영국은 제하고) 훨씬 품격 있고 유려하면서 듣기 좋다고 생각한다.

작품 안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가 별로라도 <스토리적인 요소>가 되게 재미있으면 '하나의 극'으로 나름 볼 만 할텐데, 대체로 무대 공연 '뮤지컬' 안에 등장하는 스토리는 국내에서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오는 'TV 드라마'에 비해 그 수준이 한참 낮다. 10~20년 전에 안방 극장에서 봤음직한 <단조롭고 진부한 스토리>가 지금 공연 중인 '인지도 높은 뮤지컬'의 주 스토리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임상적 경험으로, 곡 자체나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별로여도 해당 작품의 '연출력'이 되게 뛰어나거나 '각색'을 잘해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면 그 뮤지컬이 되게 재미나게 느껴지는 사례들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상연되는 국내 뮤지컬들 중엔, 그 정도의 각색 능력과 연출력을 보이는 작품이 잘 없는 듯하다.


예를 몇 개 들어보자면.. 국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만 해도, 주연 배우의 역량이 매력 있어서 그렇지 '스토리'나 '캐릭터' 자체는 쌍팔년도스럽기 그지없다. 극 구성 상의 <개연성>도 살짝 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하이드로 변신하기 전의 '지킬 박사(남자 주인공 캐릭터)'나 두 여주인공 <캐릭터의 특징>은 너무 '전형적'이어서 당황스럽기까지 한...

흥행 뮤지컬 <아이다>의 경우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간의 '애틋하고 전설적인 러브 스토리'라는데, 그 목숨 건 사랑 얘기가 (요즘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나 진부해서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는 관객들이 많은 듯하다. '아이다'나 '라다메스' 보다는 오히려 조연 or 주/조연에 해당하는 사랑의 약자 '암네리스' 쪽이 캐릭터적인 매력은 더 있는 편이다. 요즘엔 이게 대세인 것 같기도 하다. 재작년에 크게 사랑 받은 <선덕 여왕> 같은 TV 사극에서도 대중들이 더 많은 매력을 느낀 캐릭터는 메인 주인공 '선덕 여왕'이 아닌 '미실' 쪽이었으니... 작품의 '타이틀 롤'이라 해서 대중에게 각광 받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요즘 다시 공연 중인 라이센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나 대형 창작 뮤지컬 <천국의 눈물> 같은 경우엔, 드라마 <추노>의 '민폐 언년이'처럼 그 안에 나오는 '여주인공 캐릭터' 정말 짜증나고 극적인 재미스토리도 많이 부실한 편이다. 외국 스텦들을 투입하여 한국에서 자본을 댄 <천국의 눈물> 스토리가 조성모의 오래 전 뮤직 비디오 '아시나요'에서 그 모티브를 따 왔다는데, '아시나요' 뮤비 자체가 벌써 강산이 한 두 번 변하기 전인 10여 년 전에 탄생한 것이다.

그 시기 기준으로 해서도 해당 M/V 안에 나오는 '기본 설정'이 많이 진부한데(완전 구닥다리 스토리~), 그걸 2011년인 지금의 '뮤지컬 기본 줄거리'로 써 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전형적이고 심심한가- 세상의 반이 여자이건만, 개인적으로 창작 뮤지컬 <천국의 눈물> 스토리 안에서 주인공인 한국인 병사와 멋진 미국 대령이 하고 많은 여자들 중에 왜 촌스런(?) 월남 여자 한 명에게 목 매다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 여주인공이 무슨 매력이 있는지 당췌 모르겠으니...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소설을 가져 와 작품 내용을 많이 훼손한 라이센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의 경우 '스토리'가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삘의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내용이 '막장 드라마'라는 건 그 극을 본 많은 관객들이 지적한 내용이고, 심지어는 해당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조차도 인터뷰를 통해 농담 비슷하게 인정한 내용이다.

뒤마 선생의 원작에는 '알버트'가 악당 '몬데고'의 아들로 나오지만, 국내에서 상연된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에선 '출생의 비밀' 설정을 동원하여 '알버트'를 주인공 '에드몬드'의 숨겨진 아들로 설정했다. 개인적으로 국내 공연을 올리며 원작 내용을 '각색'했을 때, 그 '기본 설정' 자체에 불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원작 스토리를 비틀어도 그게 충분히 스토리적으로 말이 되고, 관객을 잘 설득시키거나, 극적인 재미가 있다면 그것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하지만 국내 공연 중인 <몬테 크리스토> 안에서의 그것(출생의 비밀 설정)은 극적인 재미 면에서도 별 장점이 없고, 여주인공 캐릭터도 망가지는 데다가, 스토리적인 개연성도 현저하게 떨어지기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어느 극에서든 '막장 드라마'적인 성격이 있다고 해서 다 나쁜 건 아니며, 그 이야기물이 대중들을 쥐락펴락~하면서 '극적인 흥미'를 선사했을 땐 나름 즐길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모든 '꾸며진 극'은 대중들이 '오락용'으로 보는 것이니까...

그치만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의 경우, 막장은 막장이되 '재미없는 막장 드라마'다 이거다- 기본적으로 '막장 스토리'에도 극 집필자나 연출자의 능력에 따른 이 존재한다. 그걸 기준으로 했을 때, 라이센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2막 후반부에 나오는 '쟤가 니 애비다~'류의 출생의 비밀 폭로는 너무나 단선적이고 쌍팔년도스러운 '재미없는 막장'에 속한다. 

21세기형 스토리에선 일단 '캐릭터'가 매력 있어야 되고, 기존의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단조로운 스토리를 한 번 더 꼬아줘서 극을 보는 대중들에게 '극적인 짜릿함'을 선사해야 하는데, 지금 공연 중인 라이센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이야기는 전혀 그러하질 못한 것이다. '스토리'를 포함하고 있는 대본 수준이 웬만한 직업 작가들의 유아기 수준인...


적어도 <21C형 스토리>라면, 해당 극 안에 '출생의 비밀' 설정이 나왔다 쳤을 때 '여주인공 메르세데스가 몬데고(사랑 때문에 연적 에드몬드에게 누명을 씌워 옥에 가둔 뒤 메르세데스를 차지한 남자)와 결혼한 뒤에 낳은 아들이 알고 보니 에드몬드의 친아들이었다~'로 관객들에게 살짝 놀라움을 선사했다가(그런데, 요즘 대중들은 워낙에 본 게 많아서 이런 설정으론 잘 놀라지도 않는다), 실은 그게 아니고 '아이를 낳은 엄마인 메르세데스 조차도 에드몬드의 아들인 줄 알고 지냈던 그 알버트가 에드몬드 소생이 아닌 몬데고의 친아들이 맞았다~'로 <더 임팩트가 큰 '또 다른 반전' 상황>을 넣어줘야 되는 거 아닐까..?

극을 보는 이들에게 깜짝 쇼를 선사하기까지, 그 중간의 세부적인 스토리는 '각색'하기 나름이고 '연출'하기 나름이다. 최근 들어 점점 상승세를 타고 있는 TV 드라마(주말극) <욕망의 불꽃> 같은 경우엔 '극을 집필하는 작가'가 워낙에 내공이 있어서 그런지, 같은 '출생의 비밀' 설정을 가지고도 그런 류의 깜짝 트릭을 잘 쓰던데.. 뮤지컬 스토리에 나오는 '막장 설정 or 출생의 비밀'은 요즘 나오는 드라마 스토리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는 '단조롭고, 너무나 전형적이고, 수준 떨어지는 각색'이 주를 이룬다.

이젠 스토리 상으로 너무나 많이 알려져서 진부하게까지 느껴지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로미오와 줄리엣>.. 제라르 프레스귀르빅 작사/작곡의 뮤지컬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 경우엔 워낙에 그 안에 나오는 음악적 요소가 좋아서인지 '프랑스 뮤지컬' 중에선 '전 세계 로컬 버전'이 가장 많이 만들어졌는데, 전에 어떤 헝가리 연출자가 그 진부한 스토리에다가 '새로운 해석 & 설정'을 가해 극을 더 재미나게 만들어 놓은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이런 사람은 확실히 '능력 있는 연출자'이다.)

그것이 만약 '막장 느낌의 연속극 & TV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이런 류의 '각색'도 가능할 것 같다. 원수 집안이지만, 몬테규가와 카풀렛가 사람들 중에 (과거에) 삐리리한 관계를 맺은 남녀가 있어서 '알고 보면 연적인 로미오와 티볼트가 친 형제지간이었다'거나, 두 가문 사람들의 지난 행적이 얽히고 섥히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원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친남매 사이였다'라거나... 하는 뭐 그런 거? 그랬을 경우, 그 안에 등장하는 세부적인 내용은 조율하기 나름이다.(친남매 설정일 경우, 근친 관계는 좀 그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순수한 사랑을 하고 육체 관계까지는 가지 않도록 설정하는 등...)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 보니, 살아오면서 별의 별 창작물(꾸며진 이야기물)을 다 봐 온 지금 '웬만한 스토리' 가지곤 별 재미를 못 느끼겠던데.. 그나마 많이 진화한 'TV 드라마'도 재미있게 느껴질까 말까 한 현 시점에서, 국내에서 해마다 꾸준히 올려지는 '뮤지컬' 스토리는 그보다 <스토리적인 수준>이 20~30년 떨어지면서 너무 단조롭고 진부한 경우가 많다.

뮤지컬도 하나의 '기/승/전/결' 구조와 특정한 주제를 가진 '완결된 스토리'를 보여주는 극이다. 그럼에도, 요즘 나오는 대작 or 흥행하는 뮤지컬 작품들의 극 구성이나 스토리적인 요소를 꼼꼼히 살펴보면 '눈이 많이 높아진 21세기 대중들'에게 좋은 소리 들을 만한 작품은 별로 없는 듯하다. 

실제로 최근에 공연된 각종 뮤지컬 후기들을 읽어보면 '조명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음악이 나름 좋았는데.. 특정 배우가 훌륭했는데..' 하는 감상은 있어도 '스토리가 훌륭하다..'는 얘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걸 굳이 '상연 시간 제약 & 무대 공간 제약'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극을 감상하는 비용은 훨씬 비싸지만 '거의 공짜로 보는 TV 드라마'의 <스토리적 수준 & 이야기 퀄러티>에 한참 못 미치는 '구석기 시대적인 설정과 스토리를 지닌 뮤지컬'이 향후엔 과연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을 것인지, 계속 관심 갖고 지켜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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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