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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된 '그레이스 켈리' : 현실 속 신데렐라, 결혼 그 이후?

타라 2010. 9. 29. 21:47

Grace Kelly(1929~1982)

헐리우드 여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는 1929년 미국에서 출생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는 무척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미국의 예술 아카데미에 다니던 중 '뛰어난 미모'로 프로듀서 델머트 만의 눈에 띄게 된 그레이스 켈리는 23세 때(1951년) <14시간>이란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 다음 해(1952년) 출연한 영화 <하이 눈>으로 인해 그레이스 켈리는 톱 스타가 되었고, 27세 되던 1955년엔 <갈채>라는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는 1951~1956년까지 총 11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출연작으로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 <다이얼 M을 올려라> <이창> <나는 결백하다> 외 <하이눈> <헤로인 커넥션> <모감보> <상류 사회> 등이 있다. 당시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지닌 그레이스 켈리를 흠모했던 히치콕 감독은 "그레이스 켈리는 눈 덮인 화산과 같다. 순백의 고결함 속에 다른 배우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고 그녀를 묘사하기도 하였다.


영화 배우로 활동할 당시 여러 남자 배우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던 그레이스 켈리는 1954년 모나코를 방문했다가 그곳 왕자인 레니에의 눈에 띄게 된다.


모나코의 레니에 왕자는 기품 있고 우아하고 청순한 그레이스 켈리의 모습에 사랑을 느꼈고,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결혼이 '모나코의 경제'를 살리려는 목적으로 선박왕 '오나시스'의 시나리오에 의해 짜여진 것이라는 '정략 결혼'설이 있다.)

당시 영화 배우로서 잘 나가던 그레이스 켈리는 '결혼'과 '배우로서의 명성'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왕자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1956년(28세 때) 영화계에서 은퇴하면서 은막에서 사라졌다.

- 그레이스 켈리 수상 내역 -

1954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 조연상
1954 제20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여우 주연상
1955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여우 주연상
1955 제2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 주연상


영화계에서 은퇴한 '그레이스 켈리'는 대중의 관심 속에 '모나코 왕자'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 모나코 :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조그마한 나라 *


하지만.. '그리하여 예쁜 여주인공은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류의 동화 속 내용과는 달리, 현실 속의 신데렐라(동화 속에 나오는 신데렐라의 출신 성분이 원래 '귀족'이었다가 왕자와 결혼함으로써 '왕족'이 된 것이기 때문에, 굳이 재투성이로 살지 않았더라도 왕자와 혼인하여 신분이 조금 상승한 케이스를 두고 우린 '신데렐라'라고 칭한다..) 이야기는 대체로 그 결말이 좋지 않은 듯하다.

무수히 많은 '실존 인물'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그레이스 켈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모나코 왕실에 시집 간 그레이스는 엄격한 왕실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심한 스트레스에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모나코 왕비로서 생활하던 그레이스 켈리는 알베르, 캐롤라인, 스테파니 등 세 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 막내인 스테파니 공주가 (끼 많은 엄마 닮아서) 잦은 물의를 일으키고 다니면서 그녀의 속을 좀 썩인 모양이다.

피할 수 없는 인생 법칙-미인도 늙는다
(젊은 시절의 그레이스 켈리와 말년의 나이 든 그레이스 켈리)

왕실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던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는 '남편과의 성격 차이'로 잦은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고, 말년엔 '술과 남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레이스 켈리는 몬테 카를로에서 교통 사고를 당하여 사망했는데, 당시 막내딸인 스테파니가 엄마인 그레이스의 기분 전환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차를 몰고 파리 시내로 나갔다가 사고가 난 것이었다. 스테파니는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졌지만, 그레이스 왕비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하고야 말았다.

그로써, 헐리우드 여배우 출신의 모나코 공비 '그레이스 켈리'는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레이스 켈리의 죽음에 관해선 '단순 사고설' 외에도 '방탕한 생활을 하며 왕가의 품위를 떨어뜨린 그녀에 대한 왕실 제거설', '그레이스 공비가 당시 모나코의 주 수입원이었던 카지노를 규제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의 마피아 암살설' 등 여러 가지 카더라 설들이 존재한다.(진실은 저 너머에...)

나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해로'한 모나코 왕 '레니에 3세 & 그레이스 켈리' 부부

레니에 3세(Rainier III)는 그레이스 공비가 세상을 떠난 후 따로 재혼을 하지 않고 남은 여생을 독신으로 보냈으며, 그가 죽은 후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랑 나란히 묻혔다. 그레이스 켈리가 '왕실 생활'을 많이 갑갑해 해서 그렇지, 남편인 레니에 공은 그녀를 꽤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레이스 공비'의 세 자녀들, 특히 딸들의 삶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레이스 켈리의 첫째 딸은 부모의 반대를 뚫고 17세 연상의 남자랑 결혼했다가 2년 만에 이혼했고, 두 번째 남편을 사고로 여의었으며, 세 번째 남편은 안 좋은 구설수에 자주 오르곤 했다.

그레이스 켈리의 두번 째 딸 스테파니 역시 경호원과 결혼한 후 1년 만에 헤어졌는데.. '남성 편력이 화려하고 자유분방했던 그레이스 켈리'를 닮은 그 딸들 역시, 잦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곤 했었다.


한 때 잘 나가던 '은막의 청순한 금발 미녀'에서 '모나코의 왕비(공비)'가 되는 등 겉보기엔 그레이스 켈리의 삶이 무척 화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혼 이후 '남편과의 불화설'과 '우울증', '알콜 중독', '화려한 남성 편력', '마피아 암살설' 등 다양한 루머가 따라다녔던 걸 보면, (동화책에 나오는 결말과 달리) '현실 속에서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의 삶'은 대체로 산뜻한 '해피 엔딩'으로만 끝나지는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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