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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남역 스타, '여성 국극'의 창시자 : 임춘앵

타라 2010. 7. 28. 16:45
임춘앵(林春鶯)은 한국의 여류 판소리 국악인으로, 여성 국극의 창단 멤버이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임춘앵의 본명은 임종례이며, 前 여성 국악 동지사 고문이었던 임유앵(임복녀)의 여동생이다.

임춘앵(1923~1975)


'여성 국극'은 그 안에 나오는 남자 캐릭터도 모두 여배우들이 맡아 연기하는 극으로, 여성 단원들로만 이뤄진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비슷하다. 중국의 '경극'에선 남자 배우들이 여성 캐릭터도 연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일본 '다카라즈카'나 한국의 '여성 국극'에선 여성들이 남성 캐릭터도 연기하는 것이다.


어려서 판소리를 배운 뒤 창극단에 들어가 여러 군데에서 지방 순회 공연을 경험한 임춘앵은 광복 후 서울로 올라와 1948년 박녹주, 김소희, 조농옥, 박귀희 등과 함께 '여성 국악 동호회'를 조직하였다.


고전 <춘향전>을 각색한 창극 <옥중화>에서 임춘앵은 남자 주인공인 '이도령(이몽룡)' 역으로 열연하기도 했다. 1949년엔 창극 <햇님 달님>에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활발하게 지방 공연을 갖게 되었고 '여성 국극(女性 國劇)'은 탄생 1년 만에 한국 창극계를 이끌어 가게 된다.

임춘앵은 1961년 언니인 임유앵과 더불어 '여성 국악 동지사'를 결성하였고, 당시 청주에서 공연한 창극 <공주궁의 비밀>이 큰 호평을 받았다. 그녀는 1948년부터 20여 년간 <옥중화(춘향전)> <햇님 달님> <무영탑> <견우와 직녀> <청실홍실> <낙화유정> 등 무수한 대작을 발표하였다. 극 안에서 왕자나 귀공자 역을 주로 맡았던 임춘앵은 당시의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던 '인기 스타'였다.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주요 단원들이 별도의 햇님 국극단을 조직하였고, 이후 여성 국악단, 여성 국극 협회, 여성 국악 동우회, 국극사 등 많은 여성 국극 단체가 조직됨으로써 '여성 국극'의 붐을 일으켰다.


1949년에 공연된 여성 국극 <햇님 달님>


여성 국극단에서 공연된 작품들은 대개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나 야사, 전설 등을 재구성한 것으로 '권선징악/인과응보/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등을 다룬 낭만적인 작품이 많았다. <목동과 공주> <무영탑> <공주궁의 비밀> <낙화유정> <선화 공주> 등은 '여성 국극단'의 인기 작품이었다.

1960년대 접어들어선 영화 산업의 흥행과 텔레비전(TV)의 보급으로 국극이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여성 국극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임춘앵은 1968년 은퇴하였고, 그 후 '임춘앵 무용 연구소'를 설립한 뒤 여러 국극 배우들을 양성하면서 창극의 발전과 국악 대중화에 힘썼다.

2008년에 공연된 여성 국극 <춘향전>

'여성 국극'은 1970년대 후반부터 다시 재기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1980년대 말부터 임춘앵의 조카인 김진진과 조금앵, 김경수 등이 중심이 되어 전통 국극의 부활에 힘써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