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폴리스

'판도라의 상자' 메시지, 논리적으로 말 안된다?

타라 2013. 9. 26. 23:17
가끔은 '호기심'이 사람을 괴롭게 만들 때가 있다. ('모르는 게 약'인 특정한 뭔가에 대해) 그냥 신경 끄고 있으면 되는데, 괜히 궁금해서 한 번 알아 봤다가 '뒤늦게 괴로워 하면서 후회'하게 되는 그런 상황.. 얼마 전 그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었고, 문득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여인 '판도라'가 생각났다.


판도라는 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인'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 호기심 대마녀 '판도라'로 인해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질병과 괴로움 등이 세상에 재앙처럼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하다. 제우스 신이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판도라를 빚어내게 하였고, 그 후 여러 신들이 그녀에게 갖가지 선물을 선사했다. 이 '판도라'란 이름 자체가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란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선물'이 딱히 '좋은 선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항간에, 신들이 판도라(Pandora)에게 '외적인 아름다움'을 주었지만 그것과 동시에 '나쁜 성질'도 동시에 주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기에... 애초에, 제우스 신이 이 인간 여자를 만든 것 자체가 '신들 몰래 인간들에게 불을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 일로 크게 분노하여 인간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역시.. 아량이 넓은 것과는 거리가 먼 제우스다~)


Dante Gabriel Rossetti의 그림 '판도라'
심술쟁이 제우스의 마수에 걸려 든 판도라?


판도라(Pandora)에게 '굳게 닫힌 커다란 상자'를 준 제우스는 그녀에게 '절대로 열어보면 안된다~'고 당부했지만,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판도라는 어느 날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인해 그의 경고를 무시한 채 그 '상자'를 열어보게 되었다. 순간.. '상자' 안에선 가난, 전쟁, 질병, 미움, 질투, 슬픔 등 인간 세상을 해롭게 할 온갖 악(惡)이 쏟아져 나왔고, 놀란 판도라는 급히 뚜껑을 닫아 버렸다-(원래는 '항아리'였으나, 이야기가 조금씩 진화하면서 나중에 '상자'로 바뀜)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간 와중에 '상자' 안에 '희망'만은 남아 있어서 '우리 인간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에 여러 불행을 겪게 되지만, 그 인간에겐 항상 희망이 존재한다...'란 내용을 어린 시절에 <판도라의 상자>란 제목을 단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 난 이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이리 생각해 보고, 저리 생각해 봐도, 그 내용 자체가 <논리적으로 어긋나는 내용>이었기에 말이다.. '판도라의 상자' 내용에 따르면 <원래는 세상에 저런 악(惡)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열어 봤기에 그 안에서 저런 성질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희망'이란 미덕이 상자 속에서 채 나오기 전에 판도라가 뚜껑을 닫아 버렸기에 그 '희망'은 결국 세상 빛을 못보고 '다시 상자 속에 갇히게 되었다'는 말인데.. 그런데, 인간에게 뭔 희망이 존재하게 되었단 얘기인지..?


John William Waterhouse의 그림 '판도라'


이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 안에서, 그나마 인간이 '희망'을 갖게 될려면 판도라가 급하게 뚜껑을 닫아버릴 게 아니라 남아 있는 '희망'까지 인간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다~ 흘러 나오게 한 뒤에 상자를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뚜껑을 닫아야지만 비로소 "인간 세상엔 다른 불행과 더불어 희망도 남게 되었더라~"라는 이 이야기의 메세지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소시 적에 어린이용 도서를 통해 <판도라의 상자>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뭐, 이런 말이 안되는 얘기가 다 있나..?' or '이런 앞뒤 안맞는 내용 같으니라고~' 하며,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최초에 이 '판도라' 이야기를 누가 지어냈는진 모르겠으나, 내용 자체가 개연성이 없고 논리적이지 않은 데다가 '인류에게 최초로 불행을 가져다 준 인물'이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같은 여자 입장에서 기분이 살짝 나빴다. ;; 우리 나라엔 '남자 드라마 작가'에 비해 '여자 드라마 작가'들이 훨씬 많다. 여성 작가들 경우 웬만해선 극 안에 나오는 '여주인공' 캐릭터를 그렇게까지 안 망치는 편인데, 작년에 방영된 드라마 <추노>에서 그 극을 집필한 남성 작가분이 여주인공(언년이) 캐릭터를 완전 '민폐' 작렬하는 비호감 캐릭터로 그려놓아 '저건, 작가가 남자라서 그런거야~' 하며 분노한 적이 있다. 


굳이 '민폐' 대목을 떠나서라도, 그 안에서 묘사된 여주인공 언년이(=혜원) 캐릭터를 보면 '작가가 여성 심리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란 생각이 들 정도로 해당 극은 인간에 대한 기본 통찰력이 좀 부족한 드라마이기도 했다. 어쨌든, 요즘에도 심심찮게 쏟아져 나오는 각종 '범죄 뉴스'들을 보면 최종 범인이나 용의자들 중엔 '남자'들이 더 많던데, <성경>이나 <신화> 속에선 번번히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 인물이 '여성(이브 & 판도라)' 캐릭터로 묘사되어서 종종 기분이 언짢아지곤 한다.


Nicolas Regnier의 그림 '판도라'
판도라 언니, 뚜껑만은 제발 좀...;;


그런 걸 보면, 그 '성서' 내용이나 '신화'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은 '남성 기록자'임이 틀림없는 듯하다. 뭐..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 생각하는데,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 대목에 나오는 그 '비논리적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런지..? 여러 출판물로 나온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 내용 안엔 마지막 문구에 "판도라가 상자(항아리) 뚜껑을 여는 바람에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왔지만, 상자 안에 유일하게 희망이 남아 있는 채로 판도라가 다시 뚜껑을 닫았다~"고 나온 뒤 "그러니까.. 세상에 아무리 이런 저런 불행이 있어도, 인간에게 희망만은 남아 있으니 좌절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마무리 한다. 


애초에 그 갖가지 불행과 악들(재앙 콤비네이션)이 <상자 밖으로 흘러 나왔기에 인간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면, <상자 안에 있던 희망> 역시 상자 밖으로 흘러 나와야지만 저 '메시지'가 말이 되는 건데, 판도라가 상자 안에 희망이 담긴 채로 뚜껑을 도로 닫아 버렸기에 저 '메시지'엔 모순이 생겨버린다. 


이후에 나온 얘기 중엔 '판도라가 다시 상자를 열어 보니 희망이 남아 있었다~'는 버전도 있던데, 원 버전엔 '희망만은 상자 안에서 그 이후에도 빠져 나오지 않았다~'였던 걸로 알고 있다.(사실, 이 쪽이 이야기적인 '개연성'은 더 있는 편이다. 상자 안에서 갖가지 재앙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식겁한 판도라가 그 난리를 겪고도 또 다시 상자를 열어보는 것은 어쩐지 말이 안되는 것 같기에...) 어쨌든 '전체 이야기' 맥락과 결말부에 나오는 '(다소 인간들을 약 올리는 듯한) 메시지' 간에 모순이 있는 이 '앞뒤 안맞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불멸의 소생력을 지닌 '프로메테우스의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