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꾸준한 지속성을 갖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다. 굳이 적군과 아군 or 니 편 내 편을 가른다 쳤을 때,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에 전쟁이 난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은(온 인류) 대동단결 한 편이 되어 외계인에 맞서 싸울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지구 내에서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면 두 나라 사람들은 적이 되고, 같은 미국 내에서도 백인과 흑인이 편 갈라 싸우게 되면 '같은 미국 사람들'끼리 또 적이 되고.. 하는 식이다.
한국 내에서도 '월드컵 축구 경기' 같은 걸 할 때 다른 나라와 붙으면 우린 당연히 "대/한/민/국!" 하면서 한국을 응원할 테지만, 그럴 때 한 마음으로 응원했던 '같은 한국인' 내에서 E 대학교와 K 대학교 사이에 축구 시합이 붙으면 또 '같은 민족'끼리 (그 때 만큼은) 편이 갈린다. 때론 철없는 애들끼리의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져서 이웃 간에 '집안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하듯, 특정인과 특정인 사이에 '니 편 내 편'이 갈리는 것은 '상황'에 따라 무척 다양하게 세분화될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때때로 인간들은 '세속적인 탐욕'에 의해 피를 나눈 '같은 집안 사람'끼리 살벌한 투쟁을 벌일 때도 있다. 특히, 많이 가진 사람들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짙다. 이런 내용은 요즘 드라마 같은 데에도 많이 나오는데, 재산 많은 집 & 큰 회사를 가진 집안에선 형제들끼리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많이 먹을려고 음모를 펼쳐가며 '형제의 난'을 벌이기도 한다.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 '리처드 3세(Richard Ⅲ)'
이런 류의 '형제의 난'은 사극에도 많이 등장한다. 보통의 가정에선 '피를 나눈 형제'끼리 서로 애틋해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지만, 그 옛날 왕가의 사람들은 서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끼리 물고 뜯으며 대립하고, 이런 류의 내용은 소시 적에 유럽 동화 같은 데서도 많이 본 것 같다. 진짜 가까운 사이인 형제끼리도 '왕의 자리'나 '권력 쟁취'를 위해 다툴 정도면, 친인척끼리는 더하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나라 조선 시대의 세조(수양대군)처럼 '숙부'가 나이 어린 '조카'의 왕좌를 빼앗는 경우도 있다.
중세 유럽, 잉글랜드(영국) 왕조에도 그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5세기 영국 왕가에선 두 친척 가문끼리 치열하게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요크 가문 출신의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올랐다. 1483년 그가 죽고난 뒤,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었던 '리처드'는 형의 뜻에 의해 왕좌에 오른 조카 '에드워드 5세(에드워드 4세의 아들)'의 후견인 노릇을 하며 섭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욕망의 리처드(Richard)'는 13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5세(Edward V)의 측근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하나하나 제거한 뒤, 그 어린 조카를 런던 탑에 가둬 버렸다. 그리곤,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그가 '리처드 3세~') 에드워드 5세에겐 남동생이 있었는데, 둘 모두 '왕좌를 탐낸 숙부'에 의해 런던 탑에 감금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림 '런던 탑에 갇힌 왕자들(The Princes in the Tower)'
위의 그림에 나오는 형제가 당시의 '에드워드 5세 & 그의 동생'을 형상화한 것인데, 개인적으로 '형제'나 '자매' 소재의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스(John Everett Milllais)'의 저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든다. 실제 기록에 의하면, 2개월 여만에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던 소년왕 '에드워드 5세(Edward V)'가 런던 탑에 갖힌 뒤로 날마다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왕의 자리를 빼앗은 삼촌 '리차드 3세(Richard Ⅲ)'가 언제 자기네들을 죽일지 모르니 말이다..
그 해 여름.. 런던 탑에 갇혀 있던 '에드워드 5세 형제'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고, 사람들 사이에선 "그들이 살아있으면 왕위를 위협 받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던 숙부 리처드 3세가 소리 소문없이 에드워드 5세 형제를 죽여 버렸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런 소문 때문인지 리처드 3세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고, 그에게 반감 갖고 있던 사람들은 리처드 3세의 정적이었던 헨리 튜더(리치먼드 백작)를 지지했다.
결국 1485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헨리 튜더'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와서 리처드 3세의 영국 왕좌를 빼앗았고, 리처드는 그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리처드 3세의 뒤를 이어 영국 왕이 된 이 '헨리 튜더'가 바로, 영국의 바람둥이 왕 '헨리 8세'의 아버지인 '헨리 7세'이다.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오랜 권력 다툼 끝에 헨리 7세가 왕좌를 차지함으로써 본격적인 '튜더 왕조'의 시대가 열렸다.
'리처드 3세'가 어린 두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왕좌를 차지했지만, 허무하게시리 이렇다 할 집권을 해 보지도 못한 채 '헨리 7세'와 왕위 쟁탈전을 벌이다가 2년 만에 죽어 버렸다. 권력을 위해 패륜 행위를 저지른 자의 말로는 역시 좋지 않은 듯...(왕이 안 되어도, 인간답게 사는 게 더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17세기 무렵 런던 탑에서 두 쌍의 뼈가 발견되었는데, 후대 사람들은 그것이 '에드워드 5세 형제'의 것일 거라 생각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형제의 죽음 배후'에 관해선 다양한 설들이 존재하는데, 여러 정황 상 '리처드 3세' 시절에 암살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숙부'면 남겨진 아이들의 부모 자리나 마찬가지이건만,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어린 조카들을 차가운 감옥에 가두고 죽음에 이르게 하다니~ 예나 지금이나, 너무 높은 위치에 있거나 많이 가진 사람들의 뇌 구조는 참 아스트랄한 것 같다..
한국 내에서도 '월드컵 축구 경기' 같은 걸 할 때 다른 나라와 붙으면 우린 당연히 "대/한/민/국!" 하면서 한국을 응원할 테지만, 그럴 때 한 마음으로 응원했던 '같은 한국인' 내에서 E 대학교와 K 대학교 사이에 축구 시합이 붙으면 또 '같은 민족'끼리 (그 때 만큼은) 편이 갈린다. 때론 철없는 애들끼리의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져서 이웃 간에 '집안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하듯, 특정인과 특정인 사이에 '니 편 내 편'이 갈리는 것은 '상황'에 따라 무척 다양하게 세분화될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때때로 인간들은 '세속적인 탐욕'에 의해 피를 나눈 '같은 집안 사람'끼리 살벌한 투쟁을 벌일 때도 있다. 특히, 많이 가진 사람들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짙다. 이런 내용은 요즘 드라마 같은 데에도 많이 나오는데, 재산 많은 집 & 큰 회사를 가진 집안에선 형제들끼리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많이 먹을려고 음모를 펼쳐가며 '형제의 난'을 벌이기도 한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어린 조카들을 죽인 비정한 삼촌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 '리처드 3세(Richard Ⅲ)'
이런 류의 '형제의 난'은 사극에도 많이 등장한다. 보통의 가정에선 '피를 나눈 형제'끼리 서로 애틋해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지만, 그 옛날 왕가의 사람들은 서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끼리 물고 뜯으며 대립하고, 이런 류의 내용은 소시 적에 유럽 동화 같은 데서도 많이 본 것 같다. 진짜 가까운 사이인 형제끼리도 '왕의 자리'나 '권력 쟁취'를 위해 다툴 정도면, 친인척끼리는 더하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나라 조선 시대의 세조(수양대군)처럼 '숙부'가 나이 어린 '조카'의 왕좌를 빼앗는 경우도 있다.
중세 유럽, 잉글랜드(영국) 왕조에도 그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5세기 영국 왕가에선 두 친척 가문끼리 치열하게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요크 가문 출신의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올랐다. 1483년 그가 죽고난 뒤,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었던 '리처드'는 형의 뜻에 의해 왕좌에 오른 조카 '에드워드 5세(에드워드 4세의 아들)'의 후견인 노릇을 하며 섭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욕망의 리처드(Richard)'는 13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5세(Edward V)의 측근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하나하나 제거한 뒤, 그 어린 조카를 런던 탑에 가둬 버렸다. 그리곤,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그가 '리처드 3세~') 에드워드 5세에겐 남동생이 있었는데, 둘 모두 '왕좌를 탐낸 숙부'에 의해 런던 탑에 감금되는 신세가 되었다.
19세기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스(John Everett Milllais)의
그림 '런던 탑에 갇힌 왕자들(The Princes in the Tower)'
위의 그림에 나오는 형제가 당시의 '에드워드 5세 & 그의 동생'을 형상화한 것인데, 개인적으로 '형제'나 '자매' 소재의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스(John Everett Milllais)'의 저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든다. 실제 기록에 의하면, 2개월 여만에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던 소년왕 '에드워드 5세(Edward V)'가 런던 탑에 갖힌 뒤로 날마다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왕의 자리를 빼앗은 삼촌 '리차드 3세(Richard Ⅲ)'가 언제 자기네들을 죽일지 모르니 말이다..
그 해 여름.. 런던 탑에 갇혀 있던 '에드워드 5세 형제'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고, 사람들 사이에선 "그들이 살아있으면 왕위를 위협 받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던 숙부 리처드 3세가 소리 소문없이 에드워드 5세 형제를 죽여 버렸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런 소문 때문인지 리처드 3세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고, 그에게 반감 갖고 있던 사람들은 리처드 3세의 정적이었던 헨리 튜더(리치먼드 백작)를 지지했다.
결국 1485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헨리 튜더'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와서 리처드 3세의 영국 왕좌를 빼앗았고, 리처드는 그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리처드 3세의 뒤를 이어 영국 왕이 된 이 '헨리 튜더'가 바로, 영국의 바람둥이 왕 '헨리 8세'의 아버지인 '헨리 7세'이다.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오랜 권력 다툼 끝에 헨리 7세가 왕좌를 차지함으로써 본격적인 '튜더 왕조'의 시대가 열렸다.
영국판 단종, 소년왕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가 어린 두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왕좌를 차지했지만, 허무하게시리 이렇다 할 집권을 해 보지도 못한 채 '헨리 7세'와 왕위 쟁탈전을 벌이다가 2년 만에 죽어 버렸다. 권력을 위해 패륜 행위를 저지른 자의 말로는 역시 좋지 않은 듯...(왕이 안 되어도, 인간답게 사는 게 더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17세기 무렵 런던 탑에서 두 쌍의 뼈가 발견되었는데, 후대 사람들은 그것이 '에드워드 5세 형제'의 것일 거라 생각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형제의 죽음 배후'에 관해선 다양한 설들이 존재하는데, 여러 정황 상 '리처드 3세' 시절에 암살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숙부'면 남겨진 아이들의 부모 자리나 마찬가지이건만,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어린 조카들을 차가운 감옥에 가두고 죽음에 이르게 하다니~ 예나 지금이나, 너무 높은 위치에 있거나 많이 가진 사람들의 뇌 구조는 참 아스트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