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끊임없는 '사회적 학습'의 효과로 인해 '막연한 편견을 갖게 되거나 잘못 알려져 있는 대상'들이 참 많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빵 대신 고기를 먹으라~"는 말을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한 것처럼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원래 악처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모차르트의 아내가 악처인 것처럼 대중들이 오해하고 있는 걸 그런 사례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던 '기생(妓生)'에 대해서도 수많은 이들이 그릇된 상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생' 하면 '화류계, 매춘..'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실제론 몸을 팔지 않는 기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몇 년 전,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큰 인기를 끈 <황진이> 같은 극을 보면 알 수 있듯, 전통 기생들은 매춘업에 종사한 여성들이 아니라 '글'과 '그림', '춤', '음악' 등에 능한 종합 예술인에 가까웠다. 그 드라마 속에서의 황진이(하지원) 이미지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이후에 몸을 파는 기생들도 생겨나게 되었지만, 원조 기생은 '몸'이 아니라 예술적인 '재능'을 팔았던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기생을 배출하는 학교를 거친 고려/조선 시대 기생들은 궁중 연회에 참석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그 행사의 흥을 돋구는 역할을 했다.
기생 or 기녀는 서양이나 동양권의 다른 나라에도 존재했으며, 우리 나라의 경우 신라 시대 '화랑의 원화(源花)'에서 그것이 발생했다는 설 or 고대 부족 사회에서의 '무녀(巫女)'가 그 원류라는 설 등이 존재한다.(그 외 '기생의 유래'에 관해, 전해지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음..)
이러한 기생 제도가 우리 나라에서 제대로 자리 잡은 건 '조선 시대' 때이다. 비록 이들의 신분 자체는 천민이었지만, 이 시대 기생들은 '시(詩)·서(書)·화(畵)'에 대한 교양과 품격을 갖춰 그 나름대로 대접 받는 예술인이었다고 전해진다.(행동거지 천박하고, 돈을 밝히거나,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는 요즘의 일부 윤락녀들 하고는 차원이 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고려나 조선 시대엔 기녀들을 양성하는 학교가 따로 있었으며, 이 때 활약했던 몇몇 기생들은 '문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이곳에 소속된 기생들은 한문이나 시조 등을 배우고 춤과 노래, 악기 등 여러 과목들을 빡세게 공부해야만 했다고 한다.(그러니까 당시의 교방은 '시 잘 쓰고, 무용 잘 하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골고루 배출하는 '예능계 학교'와 비슷한 곳이었던 듯..)
일제 강점기 시절의 기생은 때에 따라 모델이나 가수, 영화 배우로도 활약했다. 이 경우,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경성 스캔들>에서 '클럽에서 노래도 하고, 화보도 찍으며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기생 차송주(한고은)'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작년에 방영된 드라마 <제중원>에선 고종 대에 '관기'들 중 일부가 나라에서 만든 병원인 '제중원 의녀'로 파견되는 모습이 묘사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도 고종의 대한 제국 시절(1908년)에 '관기'가 해체되었으며, 그로 인해 일부 기생들이 전업을 한 걸로 알려져 있다.
기생 조합에 속해 있던 이들이 3.1 운동 때에는 단체로 궐기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그 시기의 기생들은 적정 수준의 교양을 갖췄을 뿐 아니라 이런저런 사회 활동을 벌였을 만큼 오늘날의 사람들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화류계 여성들과는 그 차원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조선 후기에 와선 기생들이 '여러 부류'로 분화되었고, 전통 문화의 계승자로서 '예술 하는 기생'과 '몸 파는 기생' 등이 공존하는 등 동종 업계 내에서도 급이 다양하게 나뉜 모양이다. 일제 강점기 땐 기생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던 '기생 조합'이 '권번(券番)'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특정한 조합의 형식을 갖춘 기생 제도'는 일제 강점기 말기를 거쳐 해방 이후 폐지되었다. 그 이후, 현대(우리 시대) 사회에서 일컬어지는 '단순 술집 여자 이미지를 갖게 된 기생'은 '전문가급의 예술 교육을 받고 전통 문화를 계승했던 그 시기의 오리지널 기생'과는 그 의미가 많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원래는 기생이 '높은 교양을 갖춘 종합 예술인'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윤락녀와 비슷한 개념의 이미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일본 측의 불순(?)한 의도로 인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던 '기생(妓生)'에 대해서도 수많은 이들이 그릇된 상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생' 하면 '화류계, 매춘..'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실제론 몸을 팔지 않는 기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몇 년 전,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큰 인기를 끈 <황진이> 같은 극을 보면 알 수 있듯, 전통 기생들은 매춘업에 종사한 여성들이 아니라 '글'과 '그림', '춤', '음악' 등에 능한 종합 예술인에 가까웠다. 그 드라마 속에서의 황진이(하지원) 이미지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이후에 몸을 파는 기생들도 생겨나게 되었지만, 원조 기생은 '몸'이 아니라 예술적인 '재능'을 팔았던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기생을 배출하는 학교를 거친 고려/조선 시대 기생들은 궁중 연회에 참석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그 행사의 흥을 돋구는 역할을 했다.
기생 or 기녀는 서양이나 동양권의 다른 나라에도 존재했으며, 우리 나라의 경우 신라 시대 '화랑의 원화(源花)'에서 그것이 발생했다는 설 or 고대 부족 사회에서의 '무녀(巫女)'가 그 원류라는 설 등이 존재한다.(그 외 '기생의 유래'에 관해, 전해지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음..)
이러한 기생 제도가 우리 나라에서 제대로 자리 잡은 건 '조선 시대' 때이다. 비록 이들의 신분 자체는 천민이었지만, 이 시대 기생들은 '시(詩)·서(書)·화(畵)'에 대한 교양과 품격을 갖춰 그 나름대로 대접 받는 예술인이었다고 전해진다.(행동거지 천박하고, 돈을 밝히거나,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는 요즘의 일부 윤락녀들 하고는 차원이 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고려나 조선 시대엔 기녀들을 양성하는 학교가 따로 있었으며, 이 때 활약했던 몇몇 기생들은 '문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이곳에 소속된 기생들은 한문이나 시조 등을 배우고 춤과 노래, 악기 등 여러 과목들을 빡세게 공부해야만 했다고 한다.(그러니까 당시의 교방은 '시 잘 쓰고, 무용 잘 하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골고루 배출하는 '예능계 학교'와 비슷한 곳이었던 듯..)
일제 강점기 시절의 기생은 때에 따라 모델이나 가수, 영화 배우로도 활약했다. 이 경우,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경성 스캔들>에서 '클럽에서 노래도 하고, 화보도 찍으며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기생 차송주(한고은)'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작년에 방영된 드라마 <제중원>에선 고종 대에 '관기'들 중 일부가 나라에서 만든 병원인 '제중원 의녀'로 파견되는 모습이 묘사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도 고종의 대한 제국 시절(1908년)에 '관기'가 해체되었으며, 그로 인해 일부 기생들이 전업을 한 걸로 알려져 있다.
기생 조합에 속해 있던 이들이 3.1 운동 때에는 단체로 궐기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그 시기의 기생들은 적정 수준의 교양을 갖췄을 뿐 아니라 이런저런 사회 활동을 벌였을 만큼 오늘날의 사람들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화류계 여성들과는 그 차원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조선 후기에 와선 기생들이 '여러 부류'로 분화되었고, 전통 문화의 계승자로서 '예술 하는 기생'과 '몸 파는 기생' 등이 공존하는 등 동종 업계 내에서도 급이 다양하게 나뉜 모양이다. 일제 강점기 땐 기생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던 '기생 조합'이 '권번(券番)'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특정한 조합의 형식을 갖춘 기생 제도'는 일제 강점기 말기를 거쳐 해방 이후 폐지되었다. 그 이후, 현대(우리 시대) 사회에서 일컬어지는 '단순 술집 여자 이미지를 갖게 된 기생'은 '전문가급의 예술 교육을 받고 전통 문화를 계승했던 그 시기의 오리지널 기생'과는 그 의미가 많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원래는 기생이 '높은 교양을 갖춘 종합 예술인'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윤락녀와 비슷한 개념의 이미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일본 측의 불순(?)한 의도로 인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