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폴리스

비하어? 일본인이 '쪽발이'로 불리게 된 사연

타라 2011. 1. 25. 12:45
한 시대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며, 때에 따라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기도 하고 사용되던 언어가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ex : '어엿브다'는 원래 '불쌍하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었으나, 현대 국어에선 '예쁘다'나 '어여쁘다'로 변형되어 '보기에 아름답다. 미적인 차원에서 보기 좋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소시 적엔 '일제 강점기' 소재의 시대극들을 보며, 극 중 일본인이 내뱉던 대사 '조센징'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굉장히 나쁜 단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그냥 조선인을 칭하는 일본단어'일 뿐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좀 허무해졌던 기억이 있다. [ 일본어에선 '조선인'을 조센징, '일본인'을 니혼징으로 발음한다. 비슷한 원리로 한자어 '한국인'은 칸코쿠징, 중국인은 츄고쿠징이라 발음된다. ]

이러하듯 '단어' 자체는 사전에 나오는 평범한 일본식 표현법일 뿐이지만, 당시의 일본인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을 많이 핍박하고 깔보면서 그런 단어를 내뱉었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 거기에 약간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였기에, 대중들로 하여금 '조센징=한국을 비하하는 말'로 확대 해석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해당 한자어를 일본식으로 표기한 '조센징' 단어 자체에 특별히 비하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만약 지금은 '한국'인 우리 나라를 일본에서 요즘에도 '칸코쿠징' 아닌 '조센징'으로 부른다면, 거기엔 약간의 비하의 의미도 들어가 있다고 파악할 수 있겠다. 이미 독립된 주권 국가인 대한 민국(아직까지도) 자기네 식민 지배 받던 나라로 여긴 채 그리 부르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같은 단어'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나 정서에 따라 묘하게 그 뉘앙스가 달라지는 것 같다.

우리 나라에도 가까운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을 얕잡아 표현하는 '짱깨 or 짱꼴라', '쪽발이(쪽바리)' 같은 단어가 존재한다.(그 외 '왜놈', '땟놈' 같은 속어도 존재한다..) '짱개'는 중화 요리집의 단골 메뉴인 짜장면(자장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것에 반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 인해 일본에게 유감 많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쪽발이놈들..'류의 말은 일본이란 나라와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는 단어는 아니다. 도대체 이 '일본인=쪽발이'란 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주로 신던 '신발'에서 유래한 말이다. 일본에는 그들의 전통 버선인 '타비' 모양으로 만든 노동자용 작업화 '지카타비(地下足袋=치카타비)'라는 게 있는데, 이 신의 모양이 '엄지 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가 갈라져 있는 형태'이다. 그러니까 '발가락 사이를 쪼갠 신발'인 것이다.

한 때 가난한 노동자들이 신던 '천으로 만든 이 신발=지카타비'는 양말로도 만들어지고, 요즘 들어선 '타비 부츠'라 하여 일본 & 그 외의 나라들에서 패션 아이템으로도 쓰이는데, 과거의 일본인들이 특이한 모양의 이런 신을 신고 다니다 보니 한국에선 그것을 '갈라진 발=쪽발'이라 부르게 되었고, 결국엔 그것이 일본을 비하하는 '쪽발이(쪽바리)'란 단어로 굳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단순 일본식 표현일 뿐인 조센징'과 마찬가지로, '쪽발이'도 따지고 보면 '두 쪽으로 나눠진 발'을 '쪽발이'로 표현한 것이니 단어 자체에 특별히 욕이 담긴 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우리 나라에서 '마늘 한 쪽, 떡 한 쪽..' 이런 표현을 사용하듯, ''이란 말 자체가 나쁜 의미의 단어는 아니니 말이다..(모양이 꽤 비슷하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쪽발'은 돼지 족발에 나오는 그 한자어 '족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발가락이 양 쪽으로 '쪽이 졌다=쪼개졌다'고 해서 순수 우리말로 '쪽발'이 된 것이다. '쪽진 머리'와 비슷한 개념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실제로 '짜장면'을 즐겨 먹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제하고서) 우리가 중화 요리의 대표 음식처럼 여기는 '짜장면(자장면)'에서 유래한 '짱깨', 조선인이란 한자어의 일본식 표현인 '조센징', 발가락을 나눈 일본인 특유의 신발이란 데서 유래한 '쪽발이'가 <단어 그 자체>로 나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은 아님에도, 어쩌다 보니 삼국 사이에서 '비하어'로 둔갑되어 사용되는 것 같다..(짱깨는 그외 '그 옛날, 짜장면집 카운터에서 돈 계산하던 사람=장궤'에서 유래한 말이기도 하다.)

짜장면을 짜짱면이라 칭했을 뿐이고, 조선인을 조선인이라 불렀을 뿐이며, 쪽발 신발을 쪽발이라 명명했을 따름인데, 어찌하여 그 평범한 단어들은 오늘날에 와서 '한국/중국/일본이 서로서로를 비하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을까..? 아마.. 지난 역사 속에서 워낙 우여곡절이 많았던 관계로, 그냥 평범한 단어도 센 느낌으로 변형되어 쓰일 만큼 '이해 관계의 대립 & 유감의 정서'가 많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