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뮤지컬 '돈주앙' 매력 3인방, 플라멩코 안무가 내한 후기

타라 2010. 9. 25. 23:42
얼마 전, 로하스 & 로드리게즈의 <상그레 플라멩카(Sangre Flamenca)> 내한 공연을 보러 갔었다. 원래 플라멩코 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몇 년 전 (프랑스어권 작품인) 캐나다 뮤지컬 <돈 주앙(Don Juan)> 공연을 보면서 약간 관심 가지게 되었고, 마침 그 공연의 안무를 담당했던 '앙헬 로하스'와 '카를로스 로드리게즈'가 이번에 내한한다고 해서 궁금해서 보러 갔다.

뮤지컬 <돈 주앙> 프로그램북 속의 안무가 앙헬 로하스 & 카를로스 로드리게즈


캐나다 뮤지컬 <돈 주앙(Don Juan)>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의 연출을 맡았던 질 마으(Gilles Maheu)씨 외 몇 명의 NDP 스텦이 참여하였기에 국내에서도 나름 알려진 작품이며, 한 때 한국 배우들로 구성된 라이센스 공연으로 무대에 올리기도 했었다. '한국판 돈 주앙'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힌 강태을, 김다현 & 뒤늦게 얼굴 마담(or 마케팅) 차원에서 합류한 모델 출신 탤런트 주지훈이 연기했다.

간혹 이 뮤지컬을 '프랑스 뮤지컬'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돈 주앙>은 캐나다 배우 & 스텝이 캐나다에서 초연한 '캐나다 뮤지컬'이다. 뮤지컬 <돈 주앙>에 대한 캐나다에서의 성공과는 달리, 프랑스에선 흥행에 별로 성공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이 뮤지컬 DVD를 프랑스 공연 때 촬영한 것인데, DVD 영상만 봐도 좌석이 미어 터지는 '프랑스의 다른 흥행 뮤지컬'들과는 다르게 <돈 주앙>은 DVD 플레이어로 보면 '앞좌석'에도 '빈 좌석'이 드문드문 보인다..)

개인적으로 <돈주앙> 내한 공연 때 본 오리지널 팀(캐나다 배우들)을 절대적으로 편애하는데, 비록 (한국 기획사 관련한) '공연 외적인 문제'로 이런 저런 잡음이 있었으나 <돈주앙> 내한 팀의 '가창력' 수준은 그야말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기본 창법이라든가, 타고난 성량 자체가 남달랐던...

뮤지컬 <돈 주앙> 2006' 오리지널 팀 내한 공연 때의 프로그램 북

이제껏 '불어 뮤지컬' 관련하여 몇 차례의 '내한 공연'이 이뤄졌었는데(<노트르담 드 파리> <돈 주앙> <십계> <로미오 앤 줄리엣> 등..), 그 중에서 팀원들의 '전반적인 노래 실력'이 가장 탁월했던 게 캐나다에서 온 <돈 주앙> 오리지널 팀이 아니었나 싶다. 이 뮤지컬 DVD에도 나오는 <돈 주앙> 주인공 장 프랑수아 브로(Jean Francois Breau)와 마리에브 장비에(Marie-Eve Janvier) 외 <돈 주앙> 오리지널 팀의 역량은 전반적으로 무척 출중해 보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난, 뮤지컬 <돈 주앙>을 공연장에서 직접 관람한 것보다 DVD로 접한 걸 더 재미있게 보았다. 펠릭스 그레이(Felix Gray)가 작곡한 이 뮤지컬의 넘버들도 부분부분 좋은 곡이 꽤 많지만, 댄서들의 플라멩코 춤도 뮤지컬 <돈 주앙>의 '재미'를 논하는 데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공연장에서 보면 '한 쪽 각도(자기가 앉은 좌석)'에서만 그 춤을 감상할 수 있지만, <돈 주앙> DVD에는 댄서 무리들의 그 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때론 배우들의 '얼굴 클로즈-업'도 해주고, 심지어는 '댄서들의 머리 바로 에서 찍은 장면'을 편집해서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단일 각도에서 본 '현장 관람'보다 'DVD 영상'으로 감상한 쪽이 훨씬 더 재미나게 느껴졌던 게 아닐까 싶다.

결정적으로, 뮤지컬 <돈 주앙> DVD에는 (실제로 '특정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 제하고) '이 포지션에 이 사람 아니면 안된다~' 싶은 사람이 무려 4명이나 나온다. 그들이 바로.. 아래 영상에 나오는 치코 악단의 치코(노래 부르는 아저씨), 안무가 앙헬 로하스 & 카를로스 로드리게즈, <돈 주앙> 내한 공연과 라이센스 공연 당시에 주인공 '돈 주앙' 못지않게 큰 인기를 누렸던 댄서(극 중 춤추는 집시 역할) 마리아 로페즈이다.(적어도 나한텐, 뮤지컬 <돈 주앙>의 완소 사인방~)

'앙헬 로하스 & 카를로스 로드리게즈 & 마리아 로페즈 & 치코 아저씨' 등
'완소 4인방'이 나오는 캐나다 뮤지컬 <돈 주앙> DVD 버전 1막 'Vivir'..

개인적으로 이 뮤지컬 CD에 나오는 'Vivir'란 노래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시/청각적 요소가 합쳐진 <돈 주앙> DVD에 나오는 이 'Vivir' 장면은 상당히 좋아하는 장면이다. 돈 주앙과 그의 친구 돈 카를로스가 부르는 1막의 'Les Fleurs Du Mal(악의 꽃)' 후반부부터 'Du Plaisir(쾌락)', 'Vivir(산다는 것)'까지 이어지는 동안, 극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안무가 앙헬 로하스(Angel Rojas) & 카를로스 로드리게즈(Carlos Rodriguez) & 마리아 로페즈(Maria Lopez).. 이 댄스 삼인방에 더하여, 'Vivir(후렴부 : 노 페도 비비~ )'를 가장 맛깔스럽게 부르는 치코(Chico) 아저씨의 노래는 <돈 주앙> DVD를 유난히 편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돈 주앙> 내한 공연' 때는 이 뮤지컬 DVD에 나오는 '치코 악단'이 아닌 '로스 아미고스(Los Amigos) 악단'이 내한했었고, '<돈 주앙> 라이센스 공연' 때는 한국 악단이 공연하기도 했었는데, 가창자에 따라 '같은 곡 전혀 다른 느낌~'이 되어 버리는 데다가 내 귀는 '치코 아저씨 버전의 Vivir'에 최적화되어 있는지라.. 다른 이들이 부르니, 영 그 이 안사는 듯했다.
2막에 나오는 'Tristesa Adalucia' 역시 마찬가지이다.(참고로, 뮤지컬 <돈 주앙>은 '불어'로 공연되지만 극 중 집시 악단이 부르는 'Vivir', 'Tristesa Adalucia'와 같은 곡은 '스페인어' 노래이다..)

뮤지컬 <돈 주앙> DVD에서 '플라멩코 댄스 매력 3인방'의 활약이 돋보이는 1막 'Les Fleurs Du Mal 후반부에서 - Du Plaisir Vivir - Belle Andalouse'로 이어지는 장면들, 정말 멋지다.


<돈 주앙> 프로그램북 속의 '여성 댄서들'과 메인 댄서 '마리아 로페즈'

이 뮤지컬 이야기 안에서 '돈 주앙이랑 바람 났다가 버림 받는 집시 여인' 역으로 대사 없이 출연하는 마리아 로페즈(Maria Lopez)는 내한 공연 때 뿐 아니라 '배우들은 한국 배우, 댄서들은 스페인 댄서'가 출연했던 라이센스 <돈 주앙> 공연으로 한국에 몇 번 왔었다. 하지만 DVD에서 너무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안무가 앙헬 로하스카를로스 로드리게즈는 <돈 주앙> 내한 공연 때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그 때는 다른 남자 댄서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래서 한 때 아쉬움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2010년 9월) 뮤지컬 <돈 주앙> DVD에도 나오는 안무가 '로하스 & 로드리게즈'가 플라멩코 댄스 공연 <상그레 플라멩카>로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데다가, 마리아 로페즈도 참석한다고 해서 이 공연을 보고 왔다. <돈 주앙> DVD에서 주요 배역들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던 '매력 덩어리 완소 댄스 삼인방'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해서...

뭐, 결론부터 얘기하면 <로하스 & 로드리게즈의 상그레 플라멩카> 공연이 '무척 흥미롭게 봤던 뮤지컬 <돈 주앙> DVD' 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펄럭이는 치마를 입고 나오는 여성 댄서들의 플라멩코 단체씬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번 <상그레 플라멩카> 공연은 아무래도 남자 2명이 주역이 되는 공연이었던 터라 '둘이 혹은 혼자 & 소수 몇 명'이 채워 나가는 무대가 많았고 '스페인 전통 민요(집시 음악)'인 듯했던 몇몇 노래들이 펠릭스 그레이가 작곡한 뮤지컬 <돈 주앙> 넘버들만큼 듣기 좋은 노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쉬는 인터미션 없이 연달아 90분 공연했던 이번 <상그레 플라멩카> 공연엔 남자 주역인 '앙헬 로하스'와 '카를로스 로드리게즈' 외에도 마리아 로페즈를 포함한 여성 댄서 4명, 남자 댄서 4명 & 뒤에서 노래와 연주를 담당했던 7명(첼로 1, 바이올린 1, 기타 2, 노래 2, 퍼커션 1)악단이 참여했다.

몇 가지 주제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로하스 & 로드리게즈 : 상그레 플라멩카>의 공연 순서는

1) 상그레(Sangre) / 피
2) 레나세르(Renacer) / 다시 태어나다
3) 인테르노(Interno) / 안, 내부
4) 살라메리야스(Zalamerias) / 유혹
5) 엘 알마(El Alma) / 영혼
6) 아레나스(Arenas) / 모래
7) 바루탄도(Barruntando) / 예감
8) 신 프론테라스(Sin Fronteras) / 국경 없이

이렇게 되며, 중간에 <카를로스 로드리게즈 →  이들이 이끄는 무용 단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한 명 → 앙헬 로하스> 순으로 '혼자 나와 춤추는 독무대'가 이어졌다.(2층에서 봐서 얼굴이 잘 안보였지만, 대충 짐작한 그들 인상착의에 대한 눈대중으로 이게 맞는 듯..)

로드리게즈의 무대는 남성적이 넘치면서도 살짝 익살스러웠다. 두 번째 독무대로 나온 젊은 남자는 다소 통통한 체형의 로하스나 로드리게즈 보다는 훨씬 다리가 가는 호리호리한 청년이었는데, 난 의외로 이 사람이 보여준 우아(발레 동작과 플라멩코가 결합된) 퓨전 플라멩코 춤이 인상적이었다.

로드리게즈보다 1살 많은 로하스씨는 동작 자체로 보면 더 유연하고 능수능란한 플레멩코 춤을 구사하는데, 정작 그의 독무대에선 별다른 동작(안무) 없이 만 내도록 굴러서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다.(전반적으로 관객 호응이 참 좋은 편이었지만, 이 공연 후반부에 로하스씨가 발만 내내 구를 때 옆의 관객은 잠시 졸기도 했던...;;) 잘은 모르겠지만, 로하스씨의 컨셉은 '나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발 구를 수 있지롱?'이 아니었나 싶기도...

한 편으론 친숙한 뮤지컬인 <돈 주앙>의 '안무가 & 오리지널 수석 댄서'의 무대라 반갑기도 했지만, '화끈하고 열정적인 스페인의 전통 플라멩코'춤을 기대하고 가면 약간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무대였다. '플라멩코엔 '사파테아도(발 구르기)'만 있는 게 아닌데, 이번 <로하스 & 로드리게즈의 상그레 플라멩카> 공연에선 '발 구르는 구두 소리'가 한 70% 정도는 차지하니 말이다. 내가 꼬셔서 같이 보러간 이는 '이거 플라멩코(flamenco)가 아니라 탭댄스(tap dance)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 때는 좀 지루했었지만, 집에 와서 로하스씨가 한 그 발 동작을 따라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해 보니까 이게 은근히 되는 거다- 난 요즘, 아무도 없을 때 재미 삼아서 종종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 아리아' 후렴부(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불러 보기와 플라멩코 춤의 ' 빠르게 구르기 동작(사파테아도)'을 하면서 놀 때가 있다.

상그레 플라멩카 : 왼쪽이 '앙헬 로하스', 오른쪽이 '카를로스 로드리게즈'이다.


어쨌든.. <돈 주앙> DVD를 통해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지난 <돈 주앙(Don Juan)내한 공연' 땐 볼 수 없었던 이 뮤지컬의 안무가 '앙헬 로하스 & 카를로스 로드리게즈 콤비'의 모습을 이번 <상그레 플라멩카(Sangre Flamenca)> 공연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어서 반가웠고, 중간 중간에 흘러 나왔던 아름다운 선율의 첼로 연주와 기타 연주는 꽤 인상적이었다.

또한.. 5년 전(2005년)에 제작된 <돈 주앙> DVD 출연 장면 때 비해, 최근 들어 좀 늙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리아 로페즈(Maria Lopez)는 그럼에도 여전히 '미친 존재감'을 자랑했다. 멀리서 봐도 한 눈에 확~ 들어오는... 마리아 로페즈는 배도 좀 나오고, 여느 날씬한 댄서들과는 달리 살집이 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흉해 보이지 않으며, 그 자체로 '매력 덩어리'인 멋진 여성 댄서이다. 그래서 <돈 주앙> 내한 공연과 라이센스 공연 때 한국 관객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었는데, 인상 자체가 '정열적인 집시 여인'에 어울릴 만큼 야성적이고 강렬해서 그만큼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돈 주앙> DVD에 나오는 초연 주인공 장 프랑수와 브로(Jean Francois Breau)는 사실 '꽤 매력적으로 생긴 쾌남형 배우'인데, 이 뮤지컬 DVD에선 '분장'과 '의상'이 안 받쳐줘서 실물의 그 매력을 반의 반의 반도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오히려 '돈 주앙 분장'을 안하니 더 미남처럼 보이는...)

장 프랑수아 브로 & 마리아 로페즈 출연, 뮤지컬 <돈 주앙> 'Du Plaisir' MV

개인적으로 'Changer(변화했네)' M/V와 같이 나온 'Du Plaisir(쾌락)' 뮤직 비디오에서의 '돈 주앙 역 장 프랑수와 브로(Jean Francois Breau)'와 '극 안에선 단역이지만 이 뮤직 비디오에선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는 댄서 마리아 로페즈(Maria Lopez)'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한 때, 뮤지컬 <돈 주앙> DVD를 구입해서 마르고 닳도록 감상했을 때가 있었다. 최근 들어선 좀 뜸해졌지만, 얼마 전에 내한한 <돈 주앙> 안무가 로하스 & 로드리게즈의 '퓨전 플라멩코' 공연 <상그레 플라멩카>를 보고 와서 다시 한 번 '스페인 호색한과 정열적인 집시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뮤지컬 <돈 주앙> 음악에 빠져들어 본다.

'로하스'씨와 '로드리게즈'씨의 개인 무용 발표회도 좋지만, 이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였을 때는 역시 <돈 주앙> 공연을 통해 '마리아 로페즈'와 잦은 댄스 삼인방을 이뤘을 때 & 이들의 격정적인 춤이 '치코 악단'의 흥겨운 노래와 같이 어우러졌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