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Die Zauberflote)> 속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른 세계의 유명한 여성 소프라노 & 최악의 아마추어 소프라노에 대해 포스팅 했었는데, 실은 그 '지옥의 복수심으로 내 마음 불타오르네(Der Holle Rache kockt in meinem Herzen)' 11종 세트 영상에 나오는 11번 Mrs. xxxx씨보다 이 아리아를 더 최악으로 부른 소프라노 가수는 따로 있다.
Mrs. xxxx씨는 그래두 소리라도 시원스럽게 나지만, 음반까지 낸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가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는 굉장히 요상스러운 소리를 낸다.
개 짖는 소리가 연상되기도 하는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의 '밤의 여왕 아리아'
이런 못 들어줄 가창력의 플로렌스씨가 무려 음반까지 내면서 소프라노 가수로 활약하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1868~1944)는 원래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음악 유학'도 가고 싶어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플로렌스 포스터는 의사와 결혼했는데, 남편 역시 그녀의 음악적 열정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남편과 이혼하고, 부모로부터도 큰 유산을 물려받게 된 플로렌스는 애초에 남편과 아버지의 반대로 할 수 없었던 '소프라노 가수'를 꿈꾸게 된다. 본격적인 성악 레슨을 받으며 클럽 설립 비용을 대기도 했던 그녀는 '넘쳐나는 돈'으로 개인 리사이틀을 열기에 이른다.
플로렌스 포스터의 노래를 들어보면 거의 음치에 가깝지만, '그 열악한 가창력에도 행복해 하며 노래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신기한 맛'에 찾아오는 관객들도 있었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는 생전에 무려 5개의 앨범을 발표했다고 한다.(요즘도 판매되고 있다고...) 그녀는 무척 오랫동안 공연을 지속했는데, 주로 자기 클럽에 온 소수의 관객들 앞에서만 노래했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 (제멋대로) 유능한 성악가라서 행복해요?
하지만 세간의 그런 혹평과는 달리, 그녀 스스로는 자신의 음악을 완벽하다 생각했다고 한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는 신문에 난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의 악평을 '예술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의 비난'이라 일축했고, 자기 노래를 듣고 웃는 청중은 '자신의 재능을 시기해서 그런 것'이라 여기는 자뻑 & 착각 대마왕이었다.
플로렌스 포스터는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가진 지 한 달만에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항간엔 평론가들의 혹평에 스트레스 받아서 죽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인 듯하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성공한 성악가'로 여기며, 아주 행복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정말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노래 솜씨 너무 '아니올시다~'인데, 정작 그녀 자신은 스스로를 굉장한 성악가라 여기고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니.. 때론 '지나친 착각'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는가 보다. ;; 어쨌거나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는 평생 자기 하고 싶은 일(음악) 실컷 하면서, 즐겁게 잘 살다 간 사람 같다. 또한..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거나 예술 분야에 대한 후원을 하고 자선 사업도 하는 등 '좋은 일'도 많이 했다 하니, 주어진 인생을 꽤 알차게 보낸 인물이 아닐까 한다..
Mrs. xxxx씨는 그래두 소리라도 시원스럽게 나지만, 음반까지 낸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가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는 굉장히 요상스러운 소리를 낸다.
이런 못 들어줄 가창력의 플로렌스씨가 무려 음반까지 내면서 소프라노 가수로 활약하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1868~1944)는 원래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음악 유학'도 가고 싶어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플로렌스 포스터는 의사와 결혼했는데, 남편 역시 그녀의 음악적 열정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남편과 이혼하고, 부모로부터도 큰 유산을 물려받게 된 플로렌스는 애초에 남편과 아버지의 반대로 할 수 없었던 '소프라노 가수'를 꿈꾸게 된다. 본격적인 성악 레슨을 받으며 클럽 설립 비용을 대기도 했던 그녀는 '넘쳐나는 돈'으로 개인 리사이틀을 열기에 이른다.
플로렌스 포스터의 노래를 들어보면 거의 음치에 가깝지만, '그 열악한 가창력에도 행복해 하며 노래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신기한 맛'에 찾아오는 관객들도 있었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는 생전에 무려 5개의 앨범을 발표했다고 한다.(요즘도 판매되고 있다고...) 그녀는 무척 오랫동안 공연을 지속했는데, 주로 자기 클럽에 온 소수의 관객들 앞에서만 노래했다.
그랬던 그녀는 주변의 권유에 못이겨 결국 카네기 홀을 빌려 공연을 열게 된다. 1944년,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가 카네기홀을 빌려서 연 독창회에 온 기자와 평론가들은 그녀의 노래를 듣고서 모두 기겁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카네기홀엔 슬픈 전설이 있어?)
그녀는 독창회 레퍼토리도 '부르기 어려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용 곡'으로 골라골라 선곡했고, 그 경악스러운 노래를 들은 기자들은 신문에다가 무지막지한 혹평을 실어댔다.(그 혹평을 보구서 "도대체 얼마나 못하는지 한 번 들어나 보자~" 식으로 궁금해 하던 사람들이 몰려가는 바람에, 그 공연의 좌석이 매진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세간의 그런 혹평과는 달리, 그녀 스스로는 자신의 음악을 완벽하다 생각했다고 한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는 신문에 난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의 악평을 '예술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의 비난'이라 일축했고, 자기 노래를 듣고 웃는 청중은 '자신의 재능을 시기해서 그런 것'이라 여기는 자뻑 & 착각 대마왕이었다.
플로렌스 포스터는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가진 지 한 달만에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항간엔 평론가들의 혹평에 스트레스 받아서 죽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인 듯하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성공한 성악가'로 여기며, 아주 행복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정말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노래 솜씨 너무 '아니올시다~'인데, 정작 그녀 자신은 스스로를 굉장한 성악가라 여기고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니.. 때론 '지나친 착각'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는가 보다. ;; 어쨌거나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는 평생 자기 하고 싶은 일(음악) 실컷 하면서, 즐겁게 잘 살다 간 사람 같다. 또한..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거나 예술 분야에 대한 후원을 하고 자선 사업도 하는 등 '좋은 일'도 많이 했다 하니, 주어진 인생을 꽤 알차게 보낸 인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