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에의 순수한 열망을 갖고 있던 선량한 청년 지킬이
'약물' 주입 후,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되어 버린다고..?
이야기 기본 줄기 자체가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보기는 하지만, 이런 걸 만약 안방 극장용 '드라마' 같은 걸로 만들면 '극 안에 나오는 설정에 현실성이 있나~?'류의 각종 자문 기관의 검증이 이뤄졌을 것 같다. <지킬 앤 하이드(Jekyll and Hyde)>의 시대적 배경은 지금 기준에서 보면 옛날인데, 그보다 의학적 발전이 더 이뤄진 현대에도 인간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을 분리해 내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극 안에 나온 헨리 지킬 박사는 정신병으로 고통 받던 자기 아버지 때문에 그 실험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신병자들 자체가 '악의 기운'으로만 가득찬 존재들이 아니며 '내면의 혼란'이 단순히 한 가지 기운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 아닌데, 그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것 자체가 '한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선과 악을 분리해 내는 것'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가끔 아리쏭해질 때가 있다.
차라리 그 이야기에 나오는 <성실하고 반듯했던 지킬 박사가 미치광이 살인마 하이드로 변하는 설정>이 '빙의(憑依)' 소재로 설명되어진다면 극적인 '개연성'은 더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빙의'를 소재로 한 내용은 요즘 우리 나라 TV극에도 자주 나온다. 올해 초에 끝난 주말극 <시크릿 가든> 같은 드라마에선 약간의 판타지적인 설정을 가하여 '남녀 주인공(현빈, 하지원)의 영혼이 바뀌는 내용'이 등장했으며, 작년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선 구미호(한은정) 딸 연이(반은 인간/반은 여우)의 간을 먹은 초옥(서신애)이 한동안 '연이(김유정)의 혼'에 빙의되어 신들린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었다. 그런 류의 '빙의' 소재 드라마가 앞으로 또 제작될지 모른단 얘기가 들려 온다..
주 소재는 그게 아니지만 지금 방영되고 있는 주말 드라마 <신기생뎐>에도 '빙의된 인물'이 등장한다. 언젠가부터 하얀 소복 입은 '할머니 귀신'이 왔다 갔다 하더니, 그 할머니의 혼이 급기야는 남자 주인공 아버지인 아수라(임혁)의 몸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기생' 얘기가 잘 안 먹히니까 '귀신' 이야기로 가는 걸까..? ;; 요즘엔, 그 드라마가 <신기생뎐>이 아니라 <신귀신뎐> or <신기뎐> 같다.
최근 그 드라마 내용을 접하며, 문득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등장 인물인 '지킬 박사'도 알고 보면 '약물 부작용'이 아니라 실험하던 그 순간에 갑자기 '원래 에드워드 하이드란 이름으로 살아가던 죽은 영혼'이 그에게 옮겨 붙어, 일종의 '빙의' 현상으로 갑자기 살인마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쪽이 '개연성'은 더 있다. 왜냐하면..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지킬 박사는 원래 '헨리 지킬'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개발한 약을 주입해서 그 부작용이 일어나자 마자 갑자기 눈을 희번덕거리는 악마가 되어 얼마 못가 "내 이름은 에드워드 하이드~!!!"라 외치기에 말이다.
지킬은 애초에 자기 실험이 실패할 줄 모르고(실패 보다는 성공 가능성을 더 크게 점치며) 약물을 본인에게 주입하게 된 것이고, 설사 그 실험이 실패했다 해도 직접 나서서 자기 '이름'을 바꿀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헨리 지킬은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악한 사람으로 변신한 뒤, 자기 이름을 '에드워드 하이드'라 명명한 것이다. 이것은 혹시, 원래 '헨리 지킬이란 사람과는 별개의 또 다른 인간으로 존재했던 에드워드 하이드란 사람의 영혼'이 죽은 뒤 이승을 떠돌다가 지킬 박사의 몸으로 들어오게 된 '빙의'~?
선과 악을 분리해 내는 실험 도중, 약물 부작용으로 지킬 박사의 내면에 '악'만 남았다 해도 그 '선한 지킬'도 '악한 지킬'도 원래는 다 <헨리 지킬>이란 동일 인물이니 그 이름까지 바꿀 필요는 없지만, 원래 '하이드'란 이름을 갖고 살아가던 사람의 죽은 영혼이 '지킬'의 몸에 빙의된 것이면 그는 당연히 자신의 원래 이름인 <에드워드 하이드>를 자기 이름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기에...
보통 '빙의' 하면, 영화 or 드라마에나 나오는 판타지적 설정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알고 보면 그런 현상들이 실제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철학관에 가서 생년/월/일/시 넣고 보는 '사주'와 달리, 귀신 씌인 '신기 있는 사람들'에게서 보는 '신점'도 그런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개인적으로 한 번도 '신점'을 본 적이 없고, 귀신 씌인 사람도 본 적 없는데, 주변인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는 있다. 측근이 미용실에 갔다가 웬 '처음 보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할머니가 '신기'가 있는지(그런 사람은 귀신 씌여서 남의 시시콜콜한 과거사를 다 알고 있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갓 만난 그녀의 집안 내력과 최근 사정에 대해 줄줄이 다 말해서 정말 신기했단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작년에도 드라마 소재 관련하여 '빙의(憑依)'에 대해 한 번 포스팅한 적 있는데, 그 때 또 다른 분께서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나름 '근거 있는 현상'이라며 관련 내용을 따로 포스팅해 주시기도 했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죽은 뒤에 '영의 세계'로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이 '물질 세계에 미련이 남아 떠도는 귀신(죽은 자의 영혼)'이 종종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들러붙기도 한다고 한다.
이 '빙의' 자체가 영 신빙성이 없는 현상은 아닌 듯...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줄곧 학문에만 올인해 왔던 선량하고 반듯한 지킬 박사'가 '사이코패스 하이드'가 되어 온갖 잔인한 살인 행각을 벌이고 다닌 것도, 그가 약물을 주입해 심신이 허약해져 있는 상태를 틈타 '살아 있을 때도 살인마였던, 지금은 죽은 자가 된 에드워드 하이드란 악당의 영혼'이 헨리 지킬의 몸에 빙의된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