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폴리스

논란 많았던 중국의 끔찍하고 놀라운 '식인 풍습'

타라 2012. 4. 14. 17:30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그 옛날.. 이웃 나라인 중국에선 '죄인을 죽인 뒤, 다른 이에게 그 사람의 고기를 먹게 하는 형벌이 존재했다'고 해서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굳이 '형벌 제도'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중국에는 오래 전부터 '식인 풍습'이 존재했으며, 여러 기록이나 문학 작품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온다.

중국의 이 식인 풍습에 관해 일본인들이 깊이 있게 연구하였기에 일각에선 일본이 중국을 깎아내리기 위해 일부러 부풀려서 퍼뜨렸다는 얘기도 돌았고 그것에 관한 다양한 논란들이 있었으나, 그런 걸 다 감안하더라도 중국에 남다른 식인 문화가 존재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상식적인 기준에서 생각한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그러한 '식인 문화'가 존재하게 된 데에는 그 나라만의 정치적, 역사적, 지형적 특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 크고 작은 천재지변을 자주 겪은 데다가, (주변에 산도 바다도 없이)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영토에 기근이 일어나거나 농사를 망치게 되는 해에는 그 '피해의 규모'도 유난히 컸기에, 달리 다른 식량을 자급할 방법이 없었던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었던 것이다. 굳이 중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그러한 식인(食人) 행위를 보인 종족들이 은근히 많았다.



세계 형벌 제도나 고문의 역사를 봐도 중국 쪽은 특히나 수위가 세고 잔인한 면이 있는데, 그들은 죄인을 잡아먹는 형벌을 무려 '성문법'으로 규정하였기에(즉 '식인 행위' 자체를 법적으로 허용한다는..;;) 그것에 관한 중국인들의 저항감이 그만큼 줄어들었던 게 아닐까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은 왕조 때의 주왕이 '대신 구후의 딸이 미인'이란 소릴 듣고 부인으로 삼았다가, 너무나도 정숙한 그녀가 자신의 밤 생활에 협조해 주지 않자 분노하여 죽여버리고 그 아버지를 해(일종의 젓갈)로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외에도 주왕은 맘에 안드는 신하들의 인육을 포, 자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섭취했다고 전해진다.

송나라 말기 때의 서적인 철경록(輟耕錄)엔 인육 요리법에 관한 기록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으로 젓갈 담궜다는 얘기는 우리 나라의 전래 동화 <콩쥐 팥쥐> 오리지널 스토리에도 나오는데, 이 '육젓'에 관한 부분은 아무래도 중국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선 인육을 죄인들에 대한 형벌의 의미 뿐 아니라 특정한 개인의 기호 식품이나 전쟁 시의 군량미로도 사용했다니,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땐 굉장히 엽기적인 처사가 아니었나 싶다. 중요한 건, 그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던 중국인들은 별다른 죄책감 없이 그걸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날 때부터 보통의 인간들과는 남다른 유전자로 태어나서 그리 되었다기 보다는, 오래 전부터 중국 사람들이 처해왔던 '자연적 특성'과 '잦은 내란을 겪었던 복잡다단한 역사'로 인해 그런 류의 식인 문화가 슬그머니 정착하게 된 것이다. 중국 이외에, 식인 풍습이 존재했던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걸 보면, 인간은 참 많은 부분에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는 존재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