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눈부신 색채, 격렬한 필치를 지닌 태양의 화가 : 고흐

타라 2010. 9. 1. 23:21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 네덜란드의 화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등 하층민의 모습과 주변에 있는 자연 풍경을 주로 그렸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불꽃 같은 열정을 지닌 고흐의 작품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했지만 '1903년의 유작전' 이후 세상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고흐
(Gogh)는 1853년 3월, 네덜란드 남부의 흐로트 쥔데르트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많은 흥미를 느껴왔던 고흐는 16세 때 숙부의 도움으로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 있는 커다란 미술 상점인 '하우필 화상'의 수습 직원이 되었다.

그 곳에서 성실하게 일한 고흐는 20세가 되던 해, 영국 런던에 있는 화랑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27세 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 화상 점원, 목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동생 테오와 편지를 주고받아, 현재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만 해도 700통 정도가 남아있다..


영국에서 고흐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주인 집 딸 어슐러 로이어를 사랑하게 된 고흐는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자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런던에서의 가난한 주변 환경과 너무 심한 빈부 격차에 큰 충격을 받아 그 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24세 때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3년 동안 목사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교회 시험에 계속 낙제를 하자, 고흐는 황량한 탄광 지대로 들어가 가난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꿈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고호는 화가인 사촌 안톤 모베에게 그림 지도를 받았으며, 시골이나 바닷가 등지를 여행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그리곤 했다. 그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화가로서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프랑스 파리로 온 고흐는 그림 상인이 된 동생 테오와 함께 2년 정도 '몽마르트 언덕' 근처에서 살았다. 그는 세잔, 모네 등 인상주의 운동의 선두에 서 있는 화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주로 어두운 북부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왔던 고흐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선명하고 밝은 색'을 사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1888년, 프랑스 남부에 있는 '아를'로 오게 된 고흐는 남부 지방의 평온한 풍경에 매료되어 봄꽃이 가득 핀 들판이나 과수원으로 나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해 여름, 고흐는 그 유명한 '해바라기' 등을 비롯한 수많은 걸작들을 그려냈다. 하지만 그는 위장병을 앓기 시작했고, 자주 정신을 잃었다. 짧은 시간 내 엄청나게 많은 그림을 그려낸 고흐는 가난과 과로로 인해 병이 들었고,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태양과 희망을 나타내는 고흐의 상징, '해바라기'


뜨거운 남부 지방을 상징하는 듯한 해바라기를 유독 좋아했던 고흐는 해바라기 그림을 많이 그렸다. 한 때 그가 파리에 있을 때 만나게 된 화가 '폴 고갱'과 같이 생활하기도 했는데, 고흐와 고갱은 서로 많은 것을 주고 받으며 함께 그림을 그렸으나 어느새 관계가 틀어진 그 두 화가는 자주 싸우기 시작했다.
1888년 12월 고흐와 고갱은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었고, 고흐는 종종 환각 상태에 빠져드는 등 정신적 질환이 악화되었다. 어느 날, 고갱과 심하게 다툰 고흐는 갑자기 정신이 혼란해져서 자신의 귀 한 부분을 잘라내고야 말았다. 그 후 몸이 많이 회복된 고흐는 다시 그림을 그렸다.

그가 입원해 있던 사이 고갱은 파리로 떠나가 버렸으며, 다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고흐는 1889년 5월 아를 병원에서 생 레미 정신 병원으로 옮겨간 후 잦은 신경 발작에 시달리면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나갔다. 고갱과 갈등을 겪던 1888년 12월부터 그가 죽던 해인 1890년 7월까지 고흐는 무려 450점이 넘는 작품을 완성하는 등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처절한 고뇌의 산물 : 세계 미술사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불멸의 화가로~


1890년 5월, 생 레미 정신 병원을 떠나 '파리'로 간 고흐는 다시 '오베르'로 옮겨가 그 곳에서 두 달을 보냈으며,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그는 들에 나가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다. 이틀 후 고흐는 테오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고흐가 죽고 난 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유명해졌고, 수많은 화가들이 그의 격렬하고 대담한 필치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처절한 고뇌의 산물인 그림들은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 폴 고갱(Paul Gauguin)이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 내용 中.. ]

고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네. 정말 슬픈 일이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슬프지는 않네. 그 가여운 친구가 자신의 '광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네.. 지금 세상을 떠난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까- 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환생'하여 그가 전생에서 한 훌륭한 일로 보답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나마 동생에게 버림받지 않았고, 화가 몇 사람이 그의 작품을 이해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네...

고흐가 그린 '열 네 송이 해바라기'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남긴 말들 ]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안에 있는 것이 그저 예술가의 광기요, 상처로 생긴 열병이었으면 좋겠다.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자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1881년 12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1890년 7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흐(Gogh)는 총 879점의 그림을 남겼으며, 그 중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의 작품은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고흐의 '해바라기'는 1987년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629만 2500달러라는 경이적인 액수의 가격에 경매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