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이 시작되고 난 뒤 새해 벽두부터 영화관에서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25주년 특별 공연'을 보고 왔으나, 요즘 이래저래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라 이제서야 뒤늦은 후기를 남겨 본다. 2011년 10월에 있었던 '로얄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에서의 공연'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 공연 실황은 묘하게 '팬텀과 크리스틴의 애절함'이 강조된 버전 같았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작곡의 영어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은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뮤지컬은 아니다. 그래서 딱히 챙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안보고 있다가, 재작년에 다른 사람 대타로 우연히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을 보게 되었다. 당시 캐스팅은 '팬텀-양준모/크리스틴-김소현/라울-손준호'였다.
한국 공연에서 본 양준모 팬텀의 연기 느낌은 좋은 편이었다. '팬텀' 캐릭터에 꽤 잘 부합하는 느낌이었던...(적당히 다크 포스를 풍기며, 적당히 연민을 자아낸 캐릭터) '25주년 공연'에서의 라민 카림루 팬텀은 그보다 덜 강인해 보이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부각되었는데, 거기엔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해당 뮤지컬 배우의 얼굴 표정을 자세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영상화'의 영향도 좀 있었던 것 같다.
관람 당시(2010년)엔 몰랐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에서 라울 & 크리스틴 역을 맡은 손준호와 김소현은 이 극을 통해 '실제 연인 사이'가 되었고 지금은 '결혼'을 한 상태이다. 그것 때문인진 몰라도 당시 '팬텀-크리스틴' 보다는 '라울-크리스틴'의 관계가 더 로맨틱하게 와닿았고(둘의 연기가 연기가 아니었던 셈?), 체형 자체가 꽤 호리호리하고 마스크도 나름 훈훈해 보였던 손준호가 '라울' 역을 연기해서 이 캐릭터에게 유난히 눈길이 갔었다.
보통 사람 체형이 호리호리하면 옷빨이 잘 사는 편인데, 직접 본 한국판 <오페라의 유령>에서 '라울' 캐릭터를 연기한 손준호는 외투를 입었을 때 뿐 아니라 외투를 벗고 나왔을 때도 '셔츠 핏'이 좋아서 유난히 눈에 띄는 느낌이었다. 정말, 젊은 여성과의 로맨스가 잘 어울리는 '멋진 귀족 청년' 같았달까-
뮤지컬을 직접 공연장에서 봤을 때, 앞에서 한 1~2줄 정도 넘어가면 배우들의 '얼굴 표정'은 상세하게 보이질 않는다. 그 때 내가 앉은 자리는 9번 째 줄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고, 그 대신 해당 배우의 '전반적인 실루엣'은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호리호리한 체형을 지닌 손준호 라울의 경우 특유의 옷빨까지 받쳐준 관계로 내 눈에 유독 준수하게 보였던 것 같다.
또 아담한 체형에 굽 있는 구두를 착용한 김소현의 크리스틴이 손준호 라울과 나름 '바람직한 키 차이'를 선보였기에 여러 면에서 그 커플의 '연인 관계'에 감정 이입이 많이 되었고, 마지막에 밧줄에 묶여 버둥거리던 손라울은 살짝 모성애를(or 저 남자 꼭 구해 주어야 되겠다는 마음) 자극해서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연인 라울을 구하기 위한 행동'처럼 다가온 측면이 강했었다. 물론,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진심으로 연민을 느끼고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그런데,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오페라의 유령 : 25주년 특별 공연>에서 시에라 보게스(Sierra Boggess)가 연기한 '크리스틴'과 하들리 프레이저(Hadley Fraser)가 연기한 '라울'에게선 별다른 케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들리 프레이저가 되게 장신은 아니고 시에라 보게스의 경우 여자 치고도 꽤 큰 키여서 둘이 '키 차이'도 거의 안났던 관계로 포옹씬에서 별 감흥 없었으며, 몇 번 있었던 크리스틴 & 라울의 뽀뽀씬(키스씬)도 그렇게 멋지게 연출된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재작년 쯤 처음으로 본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에서 손준호 라울의 '엣지있는 옷빨'과 밧줄 아래 버둥거리던 '적당히 남자다우면서 슬림한 팔뚝'에서마저 큰 매력이 느껴진 '호리호리한 체형'에 높은 점수를 줬던 내 입장에서, (사진이나 영상은 그 사람의 실제 모습보다 좀 부어 보이게 나온다는 걸 감안해도) 필요 이상으로 '튼실해 보이는 체형'을 지닌 데다가 '인상'마저 다소 강인한 느낌이었던 해들리 프레이저의 라울이 그닥 '로맨틱한 귀족 청년'처럼 느껴지진 않았던 것.
이 버전(<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 공연)에선 크리스틴(시에라 보게스)과 라울(해들리 프레이저)이 아무리 쪽쪽거리고 끌어 안아도 별 케미가 살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그녀가 자기 마음을 못 깨닫고 있어서 그렇지, 크리스틴이 진짜 사랑한 남자는 라울이 아니라 괴물(?) 팬텀이 아닐까..? 헌데, 쟤는 아직까지 자기 마음을 파악하지 못해서 상황에 이끌려 라울에게 가네..' 하는 생각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주에 영화관에서 <25주년 기념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at the Royal Albert Hall 2011)>을 봤을 땐 그 생각까진 들지 않았으나, 최근에 DVD 버전 실황 통해 극 내용을 다시 확인하면서 그런 마음이 굳어졌다. 원래 되게 좋아했던 뮤지컬이 아닌지라, 이 공연 실황을 보러 영화관에 가기 전까지 계속 '보러 간다 or 만다'를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새해 맞이 이벤트 차원에서 결국 보러 가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꽤 만족스런 관람이었으나 중간중간 건성으로 본 대목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듯 막연하게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이성적인 사랑을 느낀 건 아닐거야. 일종의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연민 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이 관람을 한 측근이 "크리스틴도 팬텀 사랑하던데, 뭘~ 자막에도 나오두만. (다른 남자=라울과 같이 있으면서도) 팬텀 목소리에 영혼의 충만함을 느끼고, 눈빛에 끌렸다(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고.... 그런 것도 사랑일 수 있지~"라고 말해서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것도 그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고 각 커플들마다 사연이 천차만별이다. 한 사람이 다른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점 또한 제각각이다. 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25주년 실황)>에선 팬텀의 흉측한 얼굴을 직접 보게 된 뒤로 그의 기이한 행각에 크리스틴이 급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보호자 노릇을 자처하는 라울과의 연인 관계가 (일종의 도피 차원으로) 발전하지만, 라울과 그렇게 되기 전에 '크리스틴'과 '팬텀' 사이엔 <(직접 대면하진 않았어도)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음악적 교류>가 존재했다. 외형적인 껍데기를 넘어서서, 영혼과 영혼이 서로에게 이끌림을 느낀 바 있는...
그리고.. 사람이 상대 이성의 '외모'를 보고 '사랑'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세속적인 사랑에 있어 그게 현실적으로 꽤 중요하게 작용하긴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모든 조건이나 이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얼굴이 영 아니어도 상대방의 또 다른 면모에 이끌려 그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팬텀은 한 쪽 얼굴이 일그러졌을 뿐, 또 다른 한 쪽 얼굴은 비교적 멀쩡하고(특히 '라민 카림루'의 경우 본판 자체가 잘생기기까지 했..;;) 신체는 정상이니...
남녀 간의 '사랑'이란 건, 단 한 가지로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참 오묘하고 복잡한 것'이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 경우,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이성적으로 끌렸다 쳤을 때 그것을 말 되게 하는 '극 자체의 개연성'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이 여주인공(크리스틴)은 세상을 떠난 자기 아버지와의 애착 관계가 유난히 강했던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런 삶의 배경을 지닌 여성은 사랑할 나이가 되었을 때 '음악적 스승이자 아빠 뻘인 (이 극에서의) 팬텀'처럼 '아빠 같은 느낌의 남자'를 좋아하게 될 경향이 큰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유로든 '오래 전에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강한 남자는 외형적으로 자기 엄마를 닮았거나 시시때때로 보이는 태도 면에서 왠지 어머니의 향기를 풍기는 여성에게 쉽게 끌리고, 그런 건 기존에 TV 드라마 내용으로도 자주 나왔던 설정이다.
이 극(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편)을 통해 여주인공 '크리스틴'이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이나 두려움을 느꼈을 뿐 딱히 '팬텀'을 이성적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팬텀'에게 이성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는 결말을 내려도 크게 무리가 가진 않는다. 최근에 본 시에라 보게스 & 라민 카림루 버전의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은 후자 쪽 스토리에 가깝다.
(그것은 혹시, 소리 소문 없이 마음에 스며들게 된 팬텀에 대한 사랑?)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틴이 마음 속 깊이 사랑한 남자는 라울이 아니라 팬텀이었어~'를 강조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2편 : 러브 네버 다이즈>를 불필요한 막장극이라 욕했었는데, 최근 '라민 카림루 & 시에라 보게스' 주연의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을 보고 난 뒤로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 문득 2편 <러브 네버 다이즈>에 대한 급격한 관심이 생겨났다.
전반적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라민 카림루(Ramin Karimloo)의 팬텀'과 '시에라 보게스(Sierra Boggess)의 크리스틴'이 이번 실황 마지막 장면에 가면 특히 '절절한 눈빛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이 둘이 금번 25주년 특별 공연 무대에 서기 전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편'인 <러브 네버 다이즈(Love Never Dies)>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이라 더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또 한 편으론, 그것이 이번 연출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아님, 해당 뮤지컬의 탄생 배경 & 직업 특성 상 '팬텀' 캐릭터에 닥빙할 수밖에 없는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옹(=뮤지컬 버전 <오페라의 유령>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1편에서도 그런 컨셉을 간절히 원했던 것일지도...
우리 나라에선 작년(2011년) 12월 15일에 개봉되어 2012년인 현재까지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The Phantom of the Opera at the Royal Albert Hall 2011)>이 기존에 세계 몇몇 국가에서 생중계되었다고 하던데,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뮤지컬 자체가 그만큼의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히트작'이자 '범대중적인 작품'이다.
그 히트작의 2편(속편)을 내어놓은 제작사 입장에선 이제 1편보다 2편을 더 열심히 홍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라울 & 크리스틴의 로맨틱함' 보다는 '팬텀 & 크리스틴의 애절함'이 더 강조된 이번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 공연>의 경우 '팬텀과 크리스틴의 영원한 사랑'이 부각되는 2편 <러브 네버 다이즈>를 효과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리 연출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편을 각 캐스트 별로 여러 번 본 사람들 말로는 '팬텀-크리스틴-라울, 세 사람의 관계 & 구체적인 캐릭터'가 이번 공연 실황과 좀 달랐었다고 하니...)
이 팬텀(라민 카림루), 눈빛도 아련하고 한 쪽 얼굴은 그래두 꽤 미남임(췟~;;)
만일 그것이 '속편(2탄) 어필을 위한 의도된 연출'이었다면 그럭저럭 효과적으로 먹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번 <오페라의 유령 :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을 보고 난 뒤 '한 때 비웃었던 <오페라의 유령 속편 : 러브 네버 다이즈>'가 정말 궁금해졌으니 말이다. 오/유 2탄인 <러브 네버 다이즈(Love never dies)> DVD가 올해 초에 발매되는 모양이다. <러브 네버 다이즈> 앨범(CD)이 그랬던 것처럼, 그 공연 실황 DVD 또한 우리 나라에서도 정식 판매되면 좋으련만...
최근 25주년 버전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라민 카림루(Ramin Karimloo)의 팬텀 & 시에라 보게스(Sierra Boggess)의 크리스틴 연기에서 '꽤 애절한 느낌을 지닌 이성 간의 오묘한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는지라, 그들이 '본격적인 사랑'을 노래할 <러브 네버 다이즈>를 이젠 비웃지 않고 진지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작곡의 영어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은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뮤지컬은 아니다. 그래서 딱히 챙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안보고 있다가, 재작년에 다른 사람 대타로 우연히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을 보게 되었다. 당시 캐스팅은 '팬텀-양준모/크리스틴-김소현/라울-손준호'였다.
한국 공연에서 본 양준모 팬텀의 연기 느낌은 좋은 편이었다. '팬텀' 캐릭터에 꽤 잘 부합하는 느낌이었던...(적당히 다크 포스를 풍기며, 적당히 연민을 자아낸 캐릭터) '25주년 공연'에서의 라민 카림루 팬텀은 그보다 덜 강인해 보이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부각되었는데, 거기엔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해당 뮤지컬 배우의 얼굴 표정을 자세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영상화'의 영향도 좀 있었던 것 같다.
관람 당시(2010년)엔 몰랐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에서 라울 & 크리스틴 역을 맡은 손준호와 김소현은 이 극을 통해 '실제 연인 사이'가 되었고 지금은 '결혼'을 한 상태이다. 그것 때문인진 몰라도 당시 '팬텀-크리스틴' 보다는 '라울-크리스틴'의 관계가 더 로맨틱하게 와닿았고(둘의 연기가 연기가 아니었던 셈?), 체형 자체가 꽤 호리호리하고 마스크도 나름 훈훈해 보였던 손준호가 '라울' 역을 연기해서 이 캐릭터에게 유난히 눈길이 갔었다.
양준모(팬텀), 김소현(크리스틴), 손준호(라울)
뮤지컬을 직접 공연장에서 봤을 때, 앞에서 한 1~2줄 정도 넘어가면 배우들의 '얼굴 표정'은 상세하게 보이질 않는다. 그 때 내가 앉은 자리는 9번 째 줄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고, 그 대신 해당 배우의 '전반적인 실루엣'은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호리호리한 체형을 지닌 손준호 라울의 경우 특유의 옷빨까지 받쳐준 관계로 내 눈에 유독 준수하게 보였던 것 같다.
또 아담한 체형에 굽 있는 구두를 착용한 김소현의 크리스틴이 손준호 라울과 나름 '바람직한 키 차이'를 선보였기에 여러 면에서 그 커플의 '연인 관계'에 감정 이입이 많이 되었고, 마지막에 밧줄에 묶여 버둥거리던 손라울은 살짝 모성애를(or 저 남자 꼭 구해 주어야 되겠다는 마음) 자극해서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연인 라울을 구하기 위한 행동'처럼 다가온 측면이 강했었다. 물론,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진심으로 연민을 느끼고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하들리 프레이저(라울) & 시에라 보게스(크리스틴) /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 공연
그런데,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오페라의 유령 : 25주년 특별 공연>에서 시에라 보게스(Sierra Boggess)가 연기한 '크리스틴'과 하들리 프레이저(Hadley Fraser)가 연기한 '라울'에게선 별다른 케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들리 프레이저가 되게 장신은 아니고 시에라 보게스의 경우 여자 치고도 꽤 큰 키여서 둘이 '키 차이'도 거의 안났던 관계로 포옹씬에서 별 감흥 없었으며, 몇 번 있었던 크리스틴 & 라울의 뽀뽀씬(키스씬)도 그렇게 멋지게 연출된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재작년 쯤 처음으로 본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에서 손준호 라울의 '엣지있는 옷빨'과 밧줄 아래 버둥거리던 '적당히 남자다우면서 슬림한 팔뚝'에서마저 큰 매력이 느껴진 '호리호리한 체형'에 높은 점수를 줬던 내 입장에서, (사진이나 영상은 그 사람의 실제 모습보다 좀 부어 보이게 나온다는 걸 감안해도) 필요 이상으로 '튼실해 보이는 체형'을 지닌 데다가 '인상'마저 다소 강인한 느낌이었던 해들리 프레이저의 라울이 그닥 '로맨틱한 귀족 청년'처럼 느껴지진 않았던 것.
이 버전(<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 공연)에선 크리스틴(시에라 보게스)과 라울(해들리 프레이저)이 아무리 쪽쪽거리고 끌어 안아도 별 케미가 살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그녀가 자기 마음을 못 깨닫고 있어서 그렇지, 크리스틴이 진짜 사랑한 남자는 라울이 아니라 괴물(?) 팬텀이 아닐까..? 헌데, 쟤는 아직까지 자기 마음을 파악하지 못해서 상황에 이끌려 라울에게 가네..' 하는 생각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주에 영화관에서 <25주년 기념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at the Royal Albert Hall 2011)>을 봤을 땐 그 생각까진 들지 않았으나, 최근에 DVD 버전 실황 통해 극 내용을 다시 확인하면서 그런 마음이 굳어졌다. 원래 되게 좋아했던 뮤지컬이 아닌지라, 이 공연 실황을 보러 영화관에 가기 전까지 계속 '보러 간다 or 만다'를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새해 맞이 이벤트 차원에서 결국 보러 가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꽤 만족스런 관람이었으나 중간중간 건성으로 본 대목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듯 막연하게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이성적인 사랑을 느낀 건 아닐거야. 일종의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연민 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이 관람을 한 측근이 "크리스틴도 팬텀 사랑하던데, 뭘~ 자막에도 나오두만. (다른 남자=라울과 같이 있으면서도) 팬텀 목소리에 영혼의 충만함을 느끼고, 눈빛에 끌렸다(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고.... 그런 것도 사랑일 수 있지~"라고 말해서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라민 카림루(팬텀) & 시에라 보게스(크리스틴) / 팬텀의 '목소리'와 '눈빛' 뿐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의 '손길' 또한 크리스틴에겐 잊혀지지 않는 그 무엇일지도..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의 '손길' 또한 크리스틴에겐 잊혀지지 않는 그 무엇일지도..
따지고 보면,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것도 그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고 각 커플들마다 사연이 천차만별이다. 한 사람이 다른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점 또한 제각각이다. 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25주년 실황)>에선 팬텀의 흉측한 얼굴을 직접 보게 된 뒤로 그의 기이한 행각에 크리스틴이 급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보호자 노릇을 자처하는 라울과의 연인 관계가 (일종의 도피 차원으로) 발전하지만, 라울과 그렇게 되기 전에 '크리스틴'과 '팬텀' 사이엔 <(직접 대면하진 않았어도)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음악적 교류>가 존재했다. 외형적인 껍데기를 넘어서서, 영혼과 영혼이 서로에게 이끌림을 느낀 바 있는...
그리고.. 사람이 상대 이성의 '외모'를 보고 '사랑'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세속적인 사랑에 있어 그게 현실적으로 꽤 중요하게 작용하긴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모든 조건이나 이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얼굴이 영 아니어도 상대방의 또 다른 면모에 이끌려 그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팬텀은 한 쪽 얼굴이 일그러졌을 뿐, 또 다른 한 쪽 얼굴은 비교적 멀쩡하고(특히 '라민 카림루'의 경우 본판 자체가 잘생기기까지 했..;;) 신체는 정상이니...
남녀 간의 '사랑'이란 건, 단 한 가지로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참 오묘하고 복잡한 것'이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 경우,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이성적으로 끌렸다 쳤을 때 그것을 말 되게 하는 '극 자체의 개연성'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이 여주인공(크리스틴)은 세상을 떠난 자기 아버지와의 애착 관계가 유난히 강했던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런 삶의 배경을 지닌 여성은 사랑할 나이가 되었을 때 '음악적 스승이자 아빠 뻘인 (이 극에서의) 팬텀'처럼 '아빠 같은 느낌의 남자'를 좋아하게 될 경향이 큰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유로든 '오래 전에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강한 남자는 외형적으로 자기 엄마를 닮았거나 시시때때로 보이는 태도 면에서 왠지 어머니의 향기를 풍기는 여성에게 쉽게 끌리고, 그런 건 기존에 TV 드라마 내용으로도 자주 나왔던 설정이다.
이 극(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편)을 통해 여주인공 '크리스틴'이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이나 두려움을 느꼈을 뿐 딱히 '팬텀'을 이성적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팬텀'에게 이성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는 결말을 내려도 크게 무리가 가진 않는다. 최근에 본 시에라 보게스 & 라민 카림루 버전의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은 후자 쪽 스토리에 가깝다.
결국 라울에게 가면서, 팬텀을 떠나는 발길이 천근 만근인 크리스틴..
(그것은 혹시, 소리 소문 없이 마음에 스며들게 된 팬텀에 대한 사랑?)
전반적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라민 카림루(Ramin Karimloo)의 팬텀'과 '시에라 보게스(Sierra Boggess)의 크리스틴'이 이번 실황 마지막 장면에 가면 특히 '절절한 눈빛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이 둘이 금번 25주년 특별 공연 무대에 서기 전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편'인 <러브 네버 다이즈(Love Never Dies)>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이라 더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또 한 편으론, 그것이 이번 연출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아님, 해당 뮤지컬의 탄생 배경 & 직업 특성 상 '팬텀' 캐릭터에 닥빙할 수밖에 없는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옹(=뮤지컬 버전 <오페라의 유령>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1편에서도 그런 컨셉을 간절히 원했던 것일지도...
우리 나라에선 작년(2011년) 12월 15일에 개봉되어 2012년인 현재까지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The Phantom of the Opera at the Royal Albert Hall 2011)>이 기존에 세계 몇몇 국가에서 생중계되었다고 하던데,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뮤지컬 자체가 그만큼의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히트작'이자 '범대중적인 작품'이다.
그 히트작의 2편(속편)을 내어놓은 제작사 입장에선 이제 1편보다 2편을 더 열심히 홍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라울 & 크리스틴의 로맨틱함' 보다는 '팬텀 & 크리스틴의 애절함'이 더 강조된 이번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 공연>의 경우 '팬텀과 크리스틴의 영원한 사랑'이 부각되는 2편 <러브 네버 다이즈>를 효과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리 연출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편을 각 캐스트 별로 여러 번 본 사람들 말로는 '팬텀-크리스틴-라울, 세 사람의 관계 & 구체적인 캐릭터'가 이번 공연 실황과 좀 달랐었다고 하니...)
<오페라의 유령 2탄 : 러브 네버 다이즈>에서의 '시에라 보게스 & 라민 카림루'
이 팬텀(라민 카림루), 눈빛도 아련하고 한 쪽 얼굴은 그래두 꽤 미남임(췟~;;)
최근 25주년 버전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라민 카림루(Ramin Karimloo)의 팬텀 & 시에라 보게스(Sierra Boggess)의 크리스틴 연기에서 '꽤 애절한 느낌을 지닌 이성 간의 오묘한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는지라, 그들이 '본격적인 사랑'을 노래할 <러브 네버 다이즈>를 이젠 비웃지 않고 진지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