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나와 배경의 모호한 경계, '콜즈 필립스' 일러스트

타라 2014. 7. 9. 13:07
요즘엔 특정 모델 or 출연 배우의 실제 사진을 활용하여 '잡지 표지'나 '영화 포스터'를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예전엔 그것이 직업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 혹은 '화가'들의 그림으로 작업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극장 간판을 그리는 화가'가 하나의 직업군으로 존재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좀처럼 '그림 간판' 풍경을 볼 수 없으니 가끔 예전 영화관 모습이 좀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나 다니면서 '에잇, 저 간판 or 저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그림은 배우의 실제 모습과 전혀 닮지 않았어~', '저건 정말 똑같다~' 이렇게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기에 말이다. 또한.. 화가들이 그런 일로도 먹고 살 수 있었으니, 직업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괜찮지 않았나 싶다.

보다 사실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사진'도 좋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사람의 상상력이 더 보태어질 수 있는 '그림' 쪽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일반 회화' 뿐 아니라 잡지나 도서에 들어가는 표지, 삽화 등등의 '일러스트'에도 상당히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의외로 현대의 광고 미술을 담당하는 그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가 우리 나라에서 그렇게 많이 알려진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접하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그것이 회자되는 경우를 잘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Clarence Coles Phillips(1880~1927)

'사진' 이미지의 표지로 대체되는 지금과 달리, <잡지 표지>가 '그림'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던 20세기 초에 활약한 콜즈 필립스(Coles Phillips)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한 때 'Fadeaway Girl' 스타일을 창조하면서 미국 잡지를 통해 유행을 선도하기도 했었다.

1907년 경 '라이프 잡지(Life Magazine)'를 통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이후 1910년~1920년대에 걸쳐 많은 '잡지 표지 일러스트'와 '광고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유명해졌는데, 때로 자신의 부인을 그림 모델로 활용하기도 했다.

기존의 여성들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면서 특유의 여성미를 간직한 채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콜즈 필립스의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우아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간직한 세련된 분위기'로 주로 묘사되었으며, 그 이미지는 당시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캐릭터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 20세기 초,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콜즈 필립스(Coles Phillips)'의 작품들 1 ]








콜즈 필립스(Coles Phillips)의 일러스트 작품들은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도 실사처럼 정교한 모습이 돋보이는데, 그림임에도 사진 속에 나오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표정이 다양하게 살아있다. 어떤 작품들에선, 20세기 초반에 나온 '헐리우드 고전 영화'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신장 질환으로 48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콜즈 필립스가 활동기 때 주로 선보였던 'Fadeaway Girl(페이드어웨이 걸)' 스타일은 전경(인물)과 동일한 색상의 배경을 결합한 방식으로, 그 안에 나오는 주인공 '나'와 공간적 '배경'의 경계가 무척 모호한 경우가 많다.

[ 20세기 초,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콜즈 필립스(Coles Phillips)'의 작품들 2 ]








그 구체적인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콜즈 필립스의 일러스트 작품을 보며 가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실컷 날아 다니다가 잠에서 깬 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러 '나비가 나(장자)인지, 내(장자)가 나비인지 구분하지 못했다..'는 데서 유래한 고사인데, 콜즈 필립스의 작품 속에 나오는 'Fadeaway Girl'들이 딱 그런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하나에서 나왔다'는 종교적 & 철학적 & 과학적 개념이 존재한다. 1910~1920년대에 주로 활약했던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콜즈 필립스(Coles Phillips)의 표지 여인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바깥 사물과의 경계가 모호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정서가 느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