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기획사 사장이면, 마스크 신선한 그런 배우를 발탁해서 주요 캐릭터로 기용했을 것이다. 그녀가 만일 춤만 추는 '댄서'였으면 '아, 노래가 안되니까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을테지만, 그 때 본 여배우는 분명 '댄서'가 아닌 <일정 수준의 노래 실력을 갖춘 앙상블> 일원이었다. 그 작품의 앙상블 자체가 약간 '난이도가 있는 노래'를 소화해야 했기에, 그 때 본 '마스크 좋은 무명 여배우'가 주요 캐릭터의 곡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노래 실력이 나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요즘엔 TV 드라마 같은 걸 봐도 '저 캐릭터에 저 이미지는 정말 안 어울리는데?' 싶은 배우들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또한, 주연 배우보다 조연 배우가 더 잘생기거나 예쁜 경우가 요즘엔 꽤 많다.(별로 안생긴 주연 배우는 빽이 좋아서 주인공이고, 외모가 훌륭한 조연 배우는 빽이 없어서 조연인 건진 모르겠지만...) 그러한 이유로, 특정한 극에 나오는 '캐릭터'를 최대한 그 이미지에 맞게 '그림'으로 묘사하는 극(굳이 이름 붙이자면 '화극') 같은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작가가 일정한 '기/승/전/결 구조의 이야기'를 가진 글도 쓰면서 '해당 캐릭터의 이미지'에 맞는 그림으로써 그 역할을 딱 떨어지게 구현할 수 있는 '만화'가 있긴 하지만, 홀로 처리해야 될 '작업량'이 너무 많고 '정적'인데다 '흑백'이어서 약간의 한계가 있다. 또한, 장면 구성을 글로써 보다 세밀하게 묘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야기의 결이 제대로 살아있는 건 아무래도 텍스트로 무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소설' 쪽인데, 어른용 소설엔 글만 빼곡하게 있는 경우가 많아서 좀 심심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봤던 동화책처럼 어른용 소설에도 매 장마다, 아님 한 두 장에 한 번씩 <삽화> 같은 게 들어가 있으면 좋으련만...
개인적으로 프랑스 출신의 동화 삽화가 에드몽 뒤락(Edmund Dulac/Edmond Dulac)의 일러스트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데, 어른들이 읽는 이야기물(소설책)에도 그런 재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멋진 삽화'가 들어가 있으면 글을 읽는 재미가 참 크겠단 생각이 들었다.
[ 프랑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에드몽 뒤락(Edmond Dulac)'의 삽화 1 ]
Blue Bird Snow Queen Princess Badoura 1 Eldorado Firebird |
1882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드몽 뒤락은 '일러스트의 황금기'라 불렸던 시기(19C 후반~20C 초반)에 영국에서 활약한 삽화가로 덴마크의 케이 닐센, 영국의 아서 래컴과 함께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꼽혔던 인물이다. 주로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 삽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때론 어른용 삽화도 작업했다.
에드몽 뒤락(Edmund Dulac)이 그린 삽화들을 보면, 한 가지 톤을 고수하기 보다는 각 이야기의 특징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천일야화>에서 중국 여인이 등장하는 '바두라 공주(Princess Badoura)'처럼 동양적인 풍의 삽화도 꽤 인상적으로 묘사했고, <안데르센 동화> 등에 나오는 서양풍 삽화도 그의 작품에선 우아하면서 아기자기한 매력이 느껴진다.
[ 프랑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에드몽 뒤락(Edmond Dulac)'의 삽화 2 ]
Sleeping Beauty Rubaiyat of Omar Khayyam Arabian Nights Princess Badoura 2 Dreamer of Dreams |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전 '에드몽 뒤락'이 원래 법학도였다고 하는데, 그가 만일 법조계로 진출했다면 대중들이 그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에드몽 뒤락(Edmond Dulac)은 <눈의 여왕> <인어 공주> <미녀와 야수> <심밧드의 모험> <푸른 수염> <왕자와 공주> <신데렐라> 같은 '동화' 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일러스트도 많이 남겼다.
에드몽 뒤락(Edmond Dulac) |
유아기 땐 '텍스트의 양이 많아지는 동화책'으로 가기 전 '그림 동화책'부터 보기 시작한다. 그 이후에 보게 되는 '초등 학생용 명작 동화'에도 '그림 동화' 만큼은 아니지만 '일정 양의 그림(삽화)'이 존재했는데, 그런 것들이 특정한 캐릭터를 파악하고 무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장면 장면을 상상하는 건 너무 막막한 것에 반해, '동화 삽화가'들이 그려놓은 약간의 일러스트는 때로 그 막막한 상상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도 있기에 말이다..
특정한 출판사 & 특정한 작품의 '삽화'를 담당하는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와 비교적 궁합이 잘 맞다면, '대체로 주인공 하는 사람만 주인공으로 나오기에 더 이상의 신선함도 없고, 특정한 캐릭터에 대한 <씽크로율>이 잘 맞는 배우를 만나기 무지 힘든 뮤지컬이나 TV 드라마 같은 극'에 비해 '삽화 들어간 소설' 류의 이야기물이 극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만족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 세계에서 '고정된 이미지의 실물'로서만 존재하는 연기자들에 비해, 일러스트레이터의 손끝에서 탄생되는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는 언제 어느 때든 무한 변형이 가능하고, 마음만 먹으면 '특정한 이야기물에 나오는 등장 인물'과 씽크로율 100%로 맞춰서 구현해낼 수 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