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개인적으로 '세종 대왕'과 더불어 소시 적부터 존경해 왔던 인물이다. 당시엔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 밖에 습득하지 못했으나, 그것만으로도 막 호감이 갔던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더 자세하게 알게 된 정약용 선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능한 정치가이면서, <목민심서> <마과회통> <여유당전서> <흠흠신서>를 포함하여 평생동안 500권에 달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남기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던 작가이자 대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거중기'를 고안하여 세계적 문화 유산인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이 수원 화성의 '설계도'를 작성한 이도 정약용이라고 함) 뛰어난 학문적 재능으로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은 정약용은 '청렴 결백하면서, 민본(民本)의 가치를 지향하는 (백성들에게) 어진 관리'였다고 전해진다. 비록 정조 사후에 '천주교 탄압'에 연루되어 꽤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정약용은 그 고난의 시간동안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 엄청난 저작 활동을 하면서 학문적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만약 '정조 임금'이 좀 더 오래 살고 '부국강병을 꿈꿨던 조선의 천재 정약용'이 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면, 우리 나라의 과거 역사가 더 희망적인 방향으로 풀렸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지식을 자랑했던 정약용(1762~1836)은 '우리 나라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도 불린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한 둘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천재를 무려 18년 동안이나 유배지에서 썩게 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한 때 형조에서 일하기도 했던 '정약용'이 요즘엔 우리 나라의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로도 자주 등장하는 분위기이다. 그것두 '탐정'으로... 실제로, 그의 저서 중 무척 유명한 <흠흠신서>는 정약용이 황해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있을 때 '수사했던 사건들'을 사례별로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긴 책이며,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판결을 내릴 때에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형법서에 속한다.
당시 형조직으로 근무했던 정약용(丁若鏞)은 수많은 '형사 사건'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과학적인 수사'를 하고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기 위해 힘썼던 걸로 유명하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100% 완벽할 순 없겠지만, 나름 솔로몬(?)의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 같으며, 특히 살인 사건에 있어선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정치, 경제, 역사, 어문학, 지리, 과학, 예술, 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로 이름이 나 있다. 그런데, 그 서적 하나하나가 꽤 높은 수준이라고 알려져 큰 놀라움을 자아낸다. 보통.. 한 가지 학문에 대해서만 잘 알기도 힘든데, 그렇게 '의학, 법학, 인문학, 과학, 철학' 등 다방면에 걸쳐 두루두루 뛰어난 학식을 선보였던 정약용은 그 시대의 '난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정약용' 선생이 우리 나라 TV 사극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 인물을 소재로 한 극이 '영화'나 '케이블용 드라마' 아닌 '지상파 드라마'로 한 번쯤 방영되었으면 좋겠다. 워낙에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라, 극의 소재나 연관된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할 것 같으니 말이다.(그만큼, 작가 역량에 따라 꽤 '재미난 극'이 탄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나라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대단한 천재'가 시대의 민폐녀 같은 정순왕후 & 꼴통 벼슬아치들과 한 시대에 활약할 수밖에 없었단 사실이 대략 유감이다..
그는 '거중기'를 고안하여 세계적 문화 유산인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이 수원 화성의 '설계도'를 작성한 이도 정약용이라고 함) 뛰어난 학문적 재능으로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은 정약용은 '청렴 결백하면서, 민본(民本)의 가치를 지향하는 (백성들에게) 어진 관리'였다고 전해진다. 비록 정조 사후에 '천주교 탄압'에 연루되어 꽤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정약용은 그 고난의 시간동안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 엄청난 저작 활동을 하면서 학문적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만약 '정조 임금'이 좀 더 오래 살고 '부국강병을 꿈꿨던 조선의 천재 정약용'이 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면, 우리 나라의 과거 역사가 더 희망적인 방향으로 풀렸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지식을 자랑했던 정약용(1762~1836)은 '우리 나라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도 불린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한 둘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천재를 무려 18년 동안이나 유배지에서 썩게 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한 때 형조에서 일하기도 했던 '정약용'이 요즘엔 우리 나라의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로도 자주 등장하는 분위기이다. 그것두 '탐정'으로... 실제로, 그의 저서 중 무척 유명한 <흠흠신서>는 정약용이 황해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있을 때 '수사했던 사건들'을 사례별로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긴 책이며,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판결을 내릴 때에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형법서에 속한다.
정약용 선생 曰 :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목민관은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을 편히 살게 해주고 죄 지은 사람을 붙잡아 죽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권한을 사람이 대신 행사하는 것이다. 사람이 천권을 대신하면서 이를 두려워할 줄 모른 채 자세히 헤아리지 않아, 살려야 할 사람을 죽이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고서도 태연하고 편안할 뿐 아니라, 비참함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도 구제할 줄 모르니 화근이 깊어진다.."
당시 형조직으로 근무했던 정약용(丁若鏞)은 수많은 '형사 사건'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과학적인 수사'를 하고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기 위해 힘썼던 걸로 유명하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100% 완벽할 순 없겠지만, 나름 솔로몬(?)의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 같으며, 특히 살인 사건에 있어선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산수도'
다산 정약용은 정치, 경제, 역사, 어문학, 지리, 과학, 예술, 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로 이름이 나 있다. 그런데, 그 서적 하나하나가 꽤 높은 수준이라고 알려져 큰 놀라움을 자아낸다. 보통.. 한 가지 학문에 대해서만 잘 알기도 힘든데, 그렇게 '의학, 법학, 인문학, 과학, 철학' 등 다방면에 걸쳐 두루두루 뛰어난 학식을 선보였던 정약용은 그 시대의 '난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정약용' 선생이 우리 나라 TV 사극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 인물을 소재로 한 극이 '영화'나 '케이블용 드라마' 아닌 '지상파 드라마'로 한 번쯤 방영되었으면 좋겠다. 워낙에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라, 극의 소재나 연관된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할 것 같으니 말이다.(그만큼, 작가 역량에 따라 꽤 '재미난 극'이 탄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나라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대단한 천재'가 시대의 민폐녀 같은 정순왕후 & 꼴통 벼슬아치들과 한 시대에 활약할 수밖에 없었단 사실이 대략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