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비운의 동성애적 엣지남, 작가 '오스카 와일드'

타라 2010. 12. 29. 22:15
아일랜드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몇 달 전에 쓴 포스트(동성애자로 알려진 역사 속 인물과 유명인들)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 인물인데,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예술가여서 따로 한 번 포스팅 해보고 싶었다.(영국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선 아일랜드 작가라 할 수 있다..)

Oscar Wilde(1854~1900)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출생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의사 아버지와 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름 먹물 집안 출신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학교 졸업 후 바로 작가로서 활약했다. 강연도 다니고, 시와 소설 & 평론 관련한 책을 펴내거나 극 대본을 쓰기도 했던 그는 작가로서 나름 잘 나갔지만, 한 때 교도소에 수감되는 수모를 겪어야 하기도 했다.


한 여성과 혼인하여 두 아이까지 낳은 오스카의 결혼 생활은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옥스퍼드 재학생 로버트 로스와 동성애에 빠져들었고, 그 후 알프레드 더글러스 경과 사귀면서 큰 곤란을 겪게 되었다. '알프레드 더글러스'가 '오스카 와일드'와의 관계를 떠벌리고 다녀서 그를 불쾌하게 여긴 더글러스의 아버지 '퀸즈베리 후작'과의 소송에 휘말렸으며, 결국 패소하여 실형을 선고받게 된 것이다.

래대로라면, 오스카 와일드의 삶은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멋스러운 모습과 재주로 젊은 나이에 이미 작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큰 사랑을 받았으니...(차림새도 화려하고 유머 감각도 넘쳤던 '오스카 와일드'는 당대의 유명인 & 스타였다.)

하지만 동성애자가 널리 알려진 적 없었던 당시의 사회는 '동성애'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오스카 와일드는 1895년부터 2년 간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 기간 동안 파산하게 된 오스카 와일드는 1897년 출소하여 파리로 망명한 뒤 건강을 잃고 가난하게 지내다가 3년 뒤 생을 마감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작으로 희곡 <살로메> <베라 혹은 무정부주의자들>, 동화 <행복한 왕자>, 시 <스핑크스> <리딩 감옥의 노래>, 산문 <오스카 와일드의 편지> <캔터빌의 유령>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이 있는데, 꽤 '유능한 예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삶을 생각하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이후에 태어난 영국의 팝스타이자, 뮤지컬 <라이온 킹> <아이다> 음악을 작곡한 엘튼 존(Elton John)은 '동성 결혼'도 하지 않았는가- 오스카 와일드도 엘튼 존처럼 동성 결혼이 합법으로 인정되는 시기에 태어났다면, 전부인과 이혼하고 정상적으로 자기 취향에 걸맞는 삶을 영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러고 보면, 사람이 자기 하고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데에는 '특정한 장소(국가)', '어떤 시기'에 태어나는 것과 같은 선천적인 요인도 참 중요한 것 같다. 같은 행위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참 많이 달라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