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2013.05.16 16:47

요즘엔 찍어온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정하여 해당 모델을 날씬하게 만들거나 자체 발광하게 만들기도 한다. 허나 '사진'으로 찍은 모습은 대체로, 그 형상 자체가 실물과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그림'의 경우엔 같은 대상을 놓고 그리더라도 그림 그리는 주체(화가)가 특정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추구하는 기법, 화풍에 따라 그 느낌이 대폭 달라진다.

다양한 화가들이 지닌 갖가지 그림 기법이나 특징에 따라, 같은 풍경 or 똑같은 사람(모델)도 각기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각 화가들만의 눈으로 필터링된 세상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건 '그림'을 감상하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단골 '모델'이자 그 자신도 '화가'였던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의 경우만 봐도, 각각의 화가들이 그린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 화가 '르누아르'가 그린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 ]





[ 화가 '로트렉'이 그린 쉬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





[ 화가 '쉬잔 발라동'이 그린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 자화상 ]



르누와르의 그림 속에 담긴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의 모습은 유난히 화사하고 로맨틱한 느낌이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삽화처럼.. 개인적으로, 여성 모델 '쉬잔 발라동'을 정말 여성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한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그림이 꽤 마음에 든다. 비록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우여곡절을 겪은 그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다소 미화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르누아르(Renoir)의 그림 속 '쉬잔 발라동'

그러고 보면, 카메라가 아예 없었던 시절에 '그림'으로만 남겨진 세계 유명인들의 모습은 어느 정도 당대화가들의 '자체 뽀샵질(실물 뻥튀기 or 미화)'이 가미된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ex : 우리 나라 임금들의 모습을 담은 어진이라든가, 서양의 왕족들을 그린 그림들..

1865년 프랑스에서 한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쉬잔 발라동은 아주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그녀는 한 때 서커스단에서 공중 곡예사로 일했으나, 곡예 도중 높은 곳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은 뒤론 그 일을 관두고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직업 모델로 나서게 되었다. 당시 드가, 르느아르, 샤반, 로트렉 등이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다.

쉬잔 발라동의 (그림 아닌) 사진 - 원래의 그녀는 이렇게 생겼음

몽마르트에서 활약하던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연인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던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은 그들을 통해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서 혼자 있을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고 비록 '어깨 너머로 배운 그림'이지만, 그렇게 그린 그림도 꽤 봐줄만 할 정도로 그녀에겐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수잔 발라동의 재능을 발견한 드가는 로트렉과 함께 그녀가 화가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진정한 '자유 연애'의 대명사였던 쉬잔 발라동은 많은 남자들이랑 연인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녀는 몽마르트 근처에서 활약했던 화가들 뿐 아니라 작곡가인 에릭 사티(Erik Satie)와도 한 때 동거를 하며 깊은 사랑을 나눴다. 훗날 그 둘은 헤어졌지만, 에릭 사티는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며 독신으로 지냈다고 한다.

쉬잔 발라동이 그린 에릭 사티(Erik Satie)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굴곡이 많았던 쉬잔 발라동(1865~1938)에겐 그녀가 19세 때 낳은 '아버지 모르는 사생아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9살이 되어서야 겨우 '위트릴로'라는 성을 갖게 된 그는 여러 예술가들 사이를 전전하던 어머니(쉬잔) 밑에서 심한 외로움을 느끼며 방황했다.

10대 시절에 이미 '알콜 중독'과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키던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는 스무 살 무렵엔 자살 기도를 하기도 했다.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은 그런 아들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권유했고, 그 둘은 '모자 화가'로 활약하게 되었다. 쉬잔 발라동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는 그 후 개인전도 열고 '화가'로서 나름 인정 받으며 어머니보다 더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둘 다 '화가'가 된 쉬잔 발라동과 모리스 위트릴로(위트릴로 어린 시절) 모자(母子) 사진

쉬잔 발라동이 여러 화가들의 누드 모델로 활동하던 당시 '모델'의 사회적 위치는 별로 좋지 않았다.(화가들의 '그림'을 위해, 벗으라면 벗어야 되는 입장이었으니..) 그랬던 쉬잔이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화가'가 되길 염원하면서부터 그녀의 인생에 새로운 막이 열린 게 아닐까 한다.

쉬잔 발라동 曰 : "예술은 우리가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한다.."

아울러 뻗나갈 뻔 했던 아들까지 '화가'로 만들어 나름 사람 구실하며 살게 만들었다. 비루한 환경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과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이 '그림 독학 모자(母子)'를 후대에까지 이름 날리게 만든 걸 보니 '예술'의 힘이 굉장히 위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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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