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토크

복수극의 전설-몬테 크리스토(러시아 뮤지컬 버전)

타라 2010. 7. 17. 18:52
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은 영화만 해도 10편 넘게 만들어졌으며 애니메이션이나 뮤지컬, 드라마로도 많이 각색되어진 바 있다. 이 작품의 기본 줄기는 '복수극'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에 따라선 그걸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복수'란 개념을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부숴버릴거야~ : 복수, 무작정 받기만 하는 건 사양하는 '테이크 앤 기브'?

가만 있는 사람한테 해꼬지하는 건 나쁜 거지만, '복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내가 당한 만큼 갚아주는 행위'이다. 애초에 그 쪽에서 아무 짓도 안했으면 모를까, 상대 쪽에서 먼저 '말도 안되는 해'를 끼쳐왔는데 그걸 가만히 참고 당하고만 있는 게 더 이상한 것 같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 크리스토> 안에 나오는 주인공 '에드몬 단테스'만 해도, 죄를 안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4년 동안이나 감옥 살이를 한다. 그것두, 주변인들에 의해 터무니 없는 '누명'을 덮어쓰고서 말이다. 가장 찬란한 시절에 죄도 없이 감옥에 들어가 세월을 보내야 했으니, 이 얼마나 억울한가- 그것두 '탈출'했기에 14년이지, 탈출 못했으면 에드몽은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했다.


죄가 있어도 그건 너무 불행한 일인데,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주변인의 음해에 의해 억울하게 무기 징역 살이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보통 일이 아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몽테 크리스토> 속 '에드몽 당테스'가 탈출한 뒤 '무고한 한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선 자기네들끼리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그 원수들'에게
복수한다고 설쳐대는 거, 500% 이해된다.


이 인물이 만일 '그런 엄청난 일'을 당하고서도 자신에게 누명을 덮어씌운 사람들을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다 용서한다고 했으면, 난 그런 에드몽이 인간으로 안 보였을 것 같다. 그런 건 열반의 경지에 오른 부처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무 죄도 없는 나에게 누명을 씌워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려 한 놈들.. 부셔버릴거야~(<청춘의 덫> 윤희 모드)" 내지는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거야~(<토지>의 서희 모드)" 식으로 나오는 게 정상적인 감정선이라 생각한다.

여주인공 '메르세데스' 캐릭터가 비교적 정상적(?)인 러시아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얼마 전에 공연한 스위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라이센스 (한국어) 공연에선 이 작품의 기본 줄기라 할 수 있는 '복수'는 2막 초에 1~2곡 정도로 초단기간 내에 끝내고, 나머지 내용은 '출생의 비밀 & 뒷북 치는 중년의 사랑' 설정을 동원한 막장 아침 드라마 삘로 흘러서 많이 아쉬웠는데.. 스위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보다 먼저 제작된 '또 다른 내용'의 러시아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에선 2막 전체를 '복수극'으로 꾸며서 알렉산드르 뒤마의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내용을 보여준다. 러시아 <몬테 크리스토>에선 주인공 에드몬 단테스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악당들에게 앗쌀하게 복수'하고 극이 끝난다.

그런데.. 차라리 연속극 형식의 '드라마'로 각색하면 모를까, 2시간의 한계를 갖고 있는 '뮤지컬' 장르는 어쩐지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몬테 크리스토>'
란 작품과의 상생이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축소된 내용이 너무 많아서 소설 버전보다 재미가 없는 것이다.(<몬테 크리스토>는 하다못해 <암굴왕>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어린이용 명작 동화도 무척이나 재미있었거늘, 2시간 짜리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에서 그런 류의 탁월한 재미를 느끼긴 힘들었다..)

비교적 짜임새가 괜찮아 보이는 러시아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Monte Cristo)>에서도 축소된 내용은 꽤 많았다. 허나 러시아 쪽 <몬테 크리스토>는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각각의 캐릭터'에 그 나름의 생명력을 부여한 느낌이었고, 결말부 대목에 가서 여운도 많이 남았다. 이 동네 <몬테 크리스토>에선, 원작에서처럼 마지막에 '에드몽(에드몬드)'과 그의 과거의 연인 '메르세데스'가 이어지지 못하고 헤어진다. 또한, 메르세데스가 낳은 아들 '알베르(알버트)'는 알고 보면 에드몽의 아들이 아니라 메르세데스의 남편인 '페르낭 몬데고'의 아들이다.


우스갯 소리로 '러시아에선 수많은 김태희들이 밭에서 감자 캐고 있다'고 알려져 있듯, 이 나라에는 역시 미인이 많고 <몬테 크리스토> 러시아 공연의 여주인공(뮤지컬 배우) '메르세데스' 또한 무척 예쁘다. 전반적으로 더블 캐스팅이며 이 쪽 '에드몬 단테스'는 살짝 연배가 있는 배우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에드몽의 '젊은 시절' 보다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 된 중년 이후의 분량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한다.

- 러시아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등장 인물 -

에드몽 당테스(에드몬드 단테스) : 주인공 몬테 크리스토 백작
메르세데스 : 에드몽의 옛 연인. 페르낭의 부인 & 알베르의 엄마

페르낭 몬데고(페르난드) : 메르세데스를 차지하기 위해 에드몽을 배신한 친구.
빌포르(빌포트) : 페르낭과 같이 '죄 없는 에드몽'에게 누명을 씌운 검사

알베르(알버트) : 페르낭과 메르세데스의 아들
발랑틴(발렌타인) : 빌포르의 딸. 알베르의 연인

베르투치오 :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집사. 한 때 에드몽을 구해준 해적 출신
에데(하이디) : 몬테 크리스토 백작 측근. 나중에 원수인 페르낭의 죄를 폭로함

헤르민 : 검사 빌포르의 불륜(?)녀
베네데토 : 빌포르와 헤르민 사이에서 난 사생아. 자기 명예를 위해 
              빌포르가 이 아이를 생매장하려 했으나, 베르투치오에 의해 구출됨
              훗날 빌포르를 위기로 몰고 가고, 생모와 재회하게 됨

파리아 : 에드몽의 감옥 동료. 그에게 보물이 있는 몬테 크리스토섬의 비밀을 알려줌

러시아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는 살짝 '액자식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1막 첫부분과 2막 첫부분의 공간적 & 시간적 배경이 동일하다. 러시아판 <몬테 크리스토>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신은 너무 다정한 연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고뇌하던 친구의 표적이 되는 닭살 커플

서곡이 흐른 뒤, 몬테 크리스토 저택에서 카니발 축제가 벌어진다. 여기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본 '메르세데스'는 그가 자신의 과거 연인이었던 '에드몽 단테스'임을 알아보며 혼란에 빠진다. 곧이어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오른팔(친구 & 집사)인 베르투치오가 나와서, 급 '화자' 모드가 되어 관객들을 '에드몽과 메르세데스가 사랑을 나누던 마르세이유에서의 과거 이야기' 속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부둣가에서 그를 기다리던 메르세데스 & 항해에서 돌아온 선원 에드몽은 서로 좋아 죽을려고 하면서 닭살 돋는 애정 행각을 벌이고, 페르낭은 그 둘의 모습을 보면서 질투심에 사로잡혀 심히 괴로워 한다. 페르낭은 자신이 얼마나 메르세데스를 사랑하는지 노래하지만, 그녀는 오직 에드몽만 생각한다.

에드몽과 메르세데스가 결혼식을 올리려 하는데, 갑자기 에드몽이 체포되어 빌포르로부터 심문을 받게 된다. 페르낭과 빌포르는 '죄 없는 에드몽 당테스'에게 누명을 씌운 뒤, 같이 자기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를 부른다.(페르낭-사랑을 위해/빌포르-자기 명예와 출세를 위해)

누군가의 불행은 누군가의 행복으로~ : 처절한 주인공과 단란한 가정을 꾸린 악당

메르세데스는 신께 에드몽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페르낭으로부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억울하게 샤토 디프 감옥에 갇힌 에드몽은 괴로워 하고, 그가 죽었다 생각한 메르세데스는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 페르낭과 결혼한다.


러시아 <몬테 크리스토>에선, 무대 일각엔 '옥에 갇힌 에드몽'의 모습이 나오고 그 앞에서 '빌포르 가족과 페르낭 가족
(페르낭, 메르세데스, 알베르)이 행복해 하며 만나는 장면'을 대비시킴으로써 '에드몽의 처절함'을 부각시켰다. 이 때, 꼬맹이 발랑틴(빌포르의 딸)과 소년으로 성장한 알베르(페르낭과 메르세데스의 아들)를 등장시킴으로써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죽은 파리아 대신 시체로 위장한 에드몽은 바다로 던져지고, 베르투치오 등 해적들에 의해 구출되어져 함께 파리아가 가르쳐 준 몬테 크리스토 섬으로 보물을 찾으러 떠난다. 보물을 찾아 부자가 된 에드몽은 파리로 돌아가 원수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데...(러시아 <몬테 크리스토> 1막 끝)

세대 교체 :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은 '과거의 연인'과 떠오르는 '젊은 연인'

극은 다시 현재 시점의 '몬테 크리스토 저택의 카니발씬'으로 돌아간다. 비록 부분 가면을 쓰고 있지만, 메르세데스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보구서 그가 옛 연인이었던 에드몽 당테스임을 알아본다. 오래 전에 이미 죽었다고 들은 에드몽이 자기 눈앞에 살아 있는 걸 본 메르세데스는 큰 충격에 빠진다.

불륜과 사생아의 생매장에 얽힌 빌포르 검사의 복잡한 가족사가 이어지고.. 악당 빌포르의 친딸인 '발랑틴'과 악당 페르낭의 아들인 '알베르'는 몬테 크리스토 저택의 카니발에서 '1막 초반, 청춘 시절의 에드몽과 메르세데스가 불렀던 듀엣곡(난 언제나 당신을 따르겠어요)'과 똑같은 커플송을 부른다.
 
1막 초반 '젊은 시절의 에드몽(몬테 크리스토 백작) & 메르세데스'가 불렀던 사랑 노래와 똑같은 곡을 부르는 2막에서의 젊은 커플 '알베르(페르낭의 아들) & 발랑틴(빌포르의 딸)'

한창 사랑에 빠진 그들 젊은 연인(알베르 & 발랑틴)의 모습을 본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드몽)과 메르세데스는 자신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회한에 잠긴다. 또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흔들린 에드몽은 자신에게 과연 '신과 같이 인간을 심판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갈등하고 고뇌한다.

악인은 항상 오버하다가 망한다? : 배신에 배신을 거듭한 페르낭의 자업자득

상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여 군인으로서 출세하고 백작이 된 페르낭은 자신의 업적에 대해 노래한다. 이 때, 파리 사교계의 화제녀인 에데(하이데)가 나와서 페르낭을 지탄한다. 에데는 원래 페르낭이 모시던 군인 상사의 딸이었는데, 페르낭이 상사를 배신하여 몰락시키고 그녀를 노예 시장에 팔아 넘겼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노예로 팔려가던 에데를 구하여 거두어 주었다. 에데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자신을 노예 시장에 팔아넘긴 원수 페르낭의 죄'를 폭로해 버린다.

※ 이 버전에서 '과거에 에드몽 단테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지하 감옥에 가둔 악당 페르낭과 빌포르'가 몰락하게 되는 데에는 몬테 크리스토(에드몽) 백작의 단순 복수 뿐 아니라,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와 원한 산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서 '자업자득'으로 망하게 된 성격이 강하다.. ※

페르낭의 죄가 하나하나 밝혀지고,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가족인 알베르(아들)와 메르세데스(부인)도 페르낭이 큰 죄를 지었음을 느끼며 동요된다.

폭로 : 출세와 명예를 위해 친아들을 생매장하려 했던 패륜 아버지 빌포르의 최후

빌포르는 다이아몬드 도둑으로 베네데토를 기소하지만, 베르투치오에 의해 그와 빌포르의 관계가 밝혀진다. 빌포르는 헤르민과의 불륜으로 사생아인 베네데토를 낳았지만, 자기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런 아들을 생매장하려 했었다. 한 때 '산 채로 묻힐 뻔 했던 베네데토'는 그 후 베르투치오에 의해 구출되었다. 현재 시점에서, 자기 출세를 위해 아들을 산 채로 파묻으려 했던 빌포르의 죄 & 복잡한 가정사가 대중들에게 밝혀지고.. 이에, 명예를 중시하던 검사 빌포르는 미쳐 간다. 그 애의 생모인 헤르민은 죽은 줄 알았던 아들 베네데토와 함께 애틋한 마음으로 재회한다.

아버지인 페르낭의 일로 속이 뒤집어진 알베르와 자기 아버지 빌포르와 사생아 베네데토에 관련한 일로 큰 충격에 휩싸인 발랑틴.. 그들은 그 일에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 말해주길 요구한다. 가면을 벗은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자신이 젊은 시절 '선장 에드몽 단테스였을 때의 자기 삶과 그 때 겪었던 끔찍한 일'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그 후 미쳐버린 빌포르도 죽고, 페르낭도 (원작 내용처럼) 자결한다.

긴 여운 :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세월의 무게로 더더욱 안타깝고 애잔한 에드몽과 메르세데스


10년이 훨씬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가까스로 탈출하여 몬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거듭난 에드몽 당테스.. 그를 그렇게 몰고 간 원수들에 대한 복수가 끝나고, 재회한 에드몽과 메르세데스는 마지막 듀엣곡을 부르고 모두의 안녕을 위해 헤어진다. 과거엔 뜨겁게 사랑한 연인 사이였지만 그 사이 많은 세월이 흘렀고, 메르세데스는 이미 다른 남자 사이에서 난 아들의 엄마가 되었으며, 그들은 이제 함께 할 수 없다.
(원작에선 마지막에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 새로운 인연 에데와 이어졌던 듯..)

러시아 <몬테 크리스토>에선 2막 마지막 장면에서 에드몽(몬테 크리스토 백작)과 메르세데스가 1막 초반에 불렀던 서정적인 듀엣곡을 한 번 더 부르고 헤어지는데, 이 대목이 왠지 울컥하면서 무척 여운이 많이 남는 결말이었다.(이 장면에서 무대 정면 LCD 화면에 그들의 젊은 연인 시절 모습이 나왔다가 마지막에 휙 사라지면서 극이 끝난다.) 그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과도 어딘지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서로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첫사랑'이기도 한데, 보통 '첫사랑은 이뤄지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또한.. 찬란했던 '청춘 시절'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잡히지 않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시절'에 대한 추억 & 기억은 잔잔하게, 오래오래 남는다. 개인적으로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그 중 한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꽤 많은 세월을 살아온 상태'에서, 둘이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해서 에드몽과 메르세데스를 억지로 연결시키지 않는 러시아 <몬테 크리스토>의 결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래 전인 '과거' 속에서 에드몬 단테스와 메르세데스의 '못다 이룬 사랑'이 무척 안타깝긴 하지만, 하필이면 결혼할려던 찰나에 일이 그렇게 된 걸 보면 그들의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거고.. 그렇게 청춘 시절을 흘려 보낸 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안타까운 사랑'이었기에, 그만큼 더 강렬한 것이라 생각한다.

극단적인 인생의 내리막으로 인한 '삶의 고뇌'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아련한 미중년의 백작님


러시아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가 나름 흥했는지, 작년에 전 곡 음반
(CD)도 출시되었다. 러시아 <몬테 크리스토>에 나오는 노래들 중 한 7곡 정도는 정말 듣기 좋다. 1막 초(그들이 행복했던 시절)에 불렀던 주인공 커플의 '서정적'인 듀엣곡과 같은 멜로디의 곡을 2막 엔딩에선 '비장 & 웅장하면서 애잔한 느낌'으로 한 번 더 부르는데, 이 대목이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에드몽 & 메르세데스는 1막에서 2곡 정도의 사랑 노래를 부르는데, 그 중 한 곡은 이 커플의 2막 엔딩곡으로 쓰이고, 또 한 곡은 2막 카니발 장면에서 알베르 & 발랑틴의 듀엣곡으로 다시 쓰인다.)

<한 때 많이 사랑했던 에드몽과 메르세데스가 수많은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났지만, 이젠 함께 할 수가 없어서 이별하는 그 상황>을 떠올리면서 '한층 깊어진 목소리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드몽) & 중년 부인 메르세데스'의 마지막 듀엣곡을 듣고 있으면 가슴 속에서 뭔가 올라오는 것 같으면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무 안타깝고 애틋한 데서 느껴지는 특유의 감동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찬란한 청춘 시절을 제대로 누려 보지도 못하고, 한창 젊을 때 14년이나 지하 감옥에서 썩다 나와서 겉늙어 버린 듯도 한 러시아 몬테 크리스토는 무척이나 애잔하면서 마음이 가는 캐릭터였다.

러시아 몬테 크리스토(에드몽)는 전반적으로 지적이면서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 남성인데, 노래 부르는 목소리도 상당히 그윽하고 중후한 느낌이다. 이 버전에선 1막 마지막에 나오는 '복수 다짐송'도 '무찌르자, 악당~' 느낌이 아니라, 뭔가 처절하고 비장한 분위기이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쓴맛, 허무함,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청춘 시절, 이뤄질 수 없는 아련한 옛사랑..' 등의 정서를 제대로 표현해 준 러시아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의 진중하면서 애잔한 느낌이 꽤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