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당시의 루돌프 황태자는 엄연히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그의 죽음이 자살인가, 타살인가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아저씨 루돌프'가 이 여자 저 여자 찝적거리다가, 저 혼자 죽기 싫어서 거의 원조 교제 삘 나는 '조카 뻘 나이의 어린 마리 베체라'를 꼬득여서 같이 죽기로 한 게 '대단한 사랑으로 미화'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엄연히 불륜이고, 파행인 것이다.
이래저래 루돌프의 삶이 비극적으로 마감된 걸 보면, 로마의 권력자 안토니우스 경우처럼 이 쪽도 '조강지처 버리고 잘되는 남자 없다~'의 원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듯하다.(옛말 틀린 게 없다더니...)
루돌프 황태자와 스테파니 황태자비 & 그들의 딸
(죽을 당시의 루돌프는 가족 딸린 유부남이었음~)
게다가 루돌프의 '진짜 연인'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황제 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와 반역의 주동자로 몰린 점, 오랜 난봉꾼(바람둥이) 생활 끝에 얻게 된 심각한 성병으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던 루돌프 황태자가 그 여인으로부터 동반 자살 제의를 거절 당한 뒤 마침 '데리고 놀던 여자들 중 한 명인 마리 베체라'가 그 제안에 콜~ 하자 같이 죽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아직 분별력이 없는 어린 애가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지를려고 하면 말려도 시원찮을 판에, 혼자 죽기 겁나서 '저보다 살 날이 한참 많은 미성년의 어린 여자애'를 데리고 죽은 걸 보면 루돌프도 꽤나 찌질하다고 할 수 있다.
합스부르크 황가의 '엘리자베트(엘리자벳)'를 필요 이상으로 미화한 다른 문화 컨텐츠들과는 달리 '실존 인물'인 그녀를 별로 미화하지도 않고 '약간의 비판 의식'을 담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그려낸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의 <엘리자베트>에선, 이 작품 내에서 별 의미 없는 그 '루돌프의 동반 자살' 에피소드는 생략했다. 아울러, 주인공이 '루돌프'가 아닌 관계로 그의 부인(엘리자베트의 며느리-스테파니)도 이 극 안엔 등장하지 않는다. 이 뮤지컬에선 엘리자베트를 죽고 싶도록(?)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유혹하는 죽음(Tod) 캐릭터가 그 일환으로 그녀의 아들 루돌프에게 접근해서 죽게 만드는 내용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나름 '극 구성'이 괜찮아 보이는 다카라즈카 버전의 <엘리자베트>를 좋아한다. 보면 볼수록, 같은 작품임에도 다른 버전 <엘리자베트>와는 다른 이 판본만의 미덕이 가득하니... 이 '언니들 버전 <엘리자베트>'에서의 '죽음(황천의 제왕 토토) 캐릭터'는 중간 중간 나와서 춤도 꽤 많이 추는 편이다.
이 극의 대사에도 나오듯 등장 인물이 죽을 땐 '죽음'씨와 마지막 왈츠를 추고 죽을 법도 한데, 의외로 이 뮤지컬 여주인공인 '엘리자베트가 죽는 장면'에선 춤을 추지 않는다. 엘리자베트(씨씨) 결혼식 때 '죽음(토트=토토)'이 나와서 깽판 치며 그녀에게 '(네가 지금은 요제프 황제랑 결혼하지만) 결국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추게 될거다~' 어쩐다 하더니, 정작 엘리자베트가 죽을 때 '마지막 춤'은 안 추고 그냥 '죽음의 키스'만 하고 데려가 버리는...;;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 &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 콤비의 이 작품 안에서 죽기 전에 '죽음'씨와 마지막 춤을 추는 건 엘리자베트(시씨 황후) 아들인 '루돌프 황태자'이다.
'죽음(토토)' 캐릭터가 꽤 많은 장면에서 춤을 소화해야 하는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에서, 가장 멋진 춤 실력을 선보이는 '죽음'은 2007년 유키구미(雪組/설조) 공연 때의 미즈 나츠키(水夏希)가 아닐까 한다. 이 동네에선 공연이 끝난 직후 커튼콜에서도 한참 동안 각 배우들이 준비한 '춤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미즈 나츠키는 본 공연에서든 커튼콜에서든 '춤'을 정말 엣지 있게 추는 배우이다.
미즈 나츠키(Mizu Natsuki)는 연기력도 뛰어나고, 춤도 굉장히 뽀대 나게 추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매력적이고 독특한 죽음'을 만들어 내는 등 캐릭터 소화력도 뛰어난 편인데.. '미즈 토토'의 그런 모습 때문에라도 다카라즈카(타카라즈카) <엘리자베트>의 '2007년 유키구미(설조) 버전'은 편애할 수밖에 없다.
이 버전의 'Mayerling-Walzer/死の 舞(마이어링 왈츠/죽음의 춤)' 장면은 정말 멋지다. 옴므 파탈 '죽음(황천의 제왕-토토 사마)'이 그가 꼬맹이 시절이었을 때부터 접근해서 찜해 두었던 엘리자베트의 아들 '루돌프'를 드디어 죽음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 상황인데, 루돌프 황태자를 뺑뺑이 돌리는 오스트리아 버전 연출보다 다카라즈카 버전 '죽음의 춤' 장면이 훨씬 마음에 든다. 2007' 설조 버전은 특히 배우들의 동선이나 춤동작 등 시각적인 부분에서의 느낌이 참 좋다. '황천의 제왕 죽음'의 의도대로 '루돌프 황태자'를 조종한다는 뉘앙스의 거울춤 또한 무척 인상적이다.
이 작품 안에서 '마지막 입맞춤' 뒤 인간의 목숨을 거둬가는 '죽음' 캐릭터는 '루돌프'나 '엘리자베트' 역의 배우하고 키스하는 장면이 있다. 뮤지컬용 키스씬 치고는 너무 과하다 싶었던 오스트리아 & 독일 쪽 키스씬 보구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에선 등장 인물들이 키스 장면을 그렇게 과하게 연출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면서도 꽤 그럴 듯한 그림을 뽑아낸다. 언니들 버전인 다카라즈카 '엘리자벳' 배우들은 키스를 실제로 하는 게 아니라, 대개 손 or 머리카락으로 가리거나 각도를 조절해서 '(관객들이 바라보는 각도에서) 극 중 인물들이 키스 하는 것처럼 보이게 연기'를 한다.
배우들에게도 나름 인권이나 프라이버시는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극이 '한정된 기간 안에 지속적으로 거의 매일매일 이어지는 무대 공연'의 경우, 이 쪽이 왠지 모양새가 바람직하고 좋아 보인다. 극 안에서 어떤 인물이 '칼에 찔리거나 죽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실제로 그 배우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건 아닌 것처럼, '키스 장면'이라 해서 꼭 호들갑 떨면서 실제로 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쿤체씨가 만든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가 '죽음과 엘리자벳 둘이 러브러브~ 하는 단순 멜로 드라마 or 에로물'도 아닌데, 마지막 엘리자베트와의 '죽음의 입맞춤' 장면에서 배우들이 키스를 너무 과하게 해서 '극이 가진 미덕'을 희석시켜 버리던 오스트리아 원판에서도, '죽음과 루돌프의 입맞춤'씬은 배우들이 그나마 덜 과하게 연기한다.(남-남 커플의 입맞춤 장면임을 의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원래 오스트리아판에서 남자 주인공인 '죽음(Tod)' 캐릭터를 '중성'으로 설정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Mayerling-Walzer/Totentanz(마이어링 왈츠/죽음의 춤)' 장면에서 죽음 역의 배우(남자 배우-마테 카마라스)가 여성 댄서들과 마찬가지로 우스꽝스런 '스커트'를 입고 등장한다.
그런데.. 나름 꽃미남인 건 알겠지만, 오스트리아판 죽음들이 아무리 스커트(치마)를 입고 나와도 별로 중성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내가 생각했던 '중성 인간' 하곤 살짝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인 탓이다. '남자가 꽃미남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거'랑 '중성'인 것은 그 차원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행이, 그 쪽 동네의 요즘 연출에선 죽음(Tod) 캐릭터가 이 장면에서 '치마'를 입지 않고 그냥 원래 입던 '남자 옷' 입고 나와서 루돌프를 데려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짧은 순간 안에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던 루돌프~ 그 후 이 황태자는 엄마인 엘리자베트에게 찾아가 중재를 부탁하지만, 그녀가 이를 거절하자 죽고 싶어하고.. 곧이어 그런 루돌프 앞에 '죽음(황천의 토토)'이 무리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서 "죽고 싶은가?" 하면서 마지막 왈츠를 춘 뒤 루돌프의 목숨을 거둬 간다. 이 다카라즈카판 '죽음'은 또 '죽음'대로 모든 게 제 뜻대로 되었다며 의기양양해 하지만,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엘리자베트에 의해 처절하게 깨진다. 아들을 잃은 엘리자베트가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하자 처음엔 기뻐하던 '죽음'이었으나, 그녀가 아직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급 슬퍼하면서 다시 '사랑과 죽음의 론도(愛と 死の 輪舞) 2'를 절절한 심정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리곤.. '죽음'씨가 마지막에 가서 '루케니'를 시켜 '엘리자베트'를 데려오라 했을 때 이윽고 그녀가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덕분에, 오랜 세월 동안 삽질해 왔던 이 순정남 토토 사마(죽음)가 결국 사랑을 이루고 저 나름대로의 해피 엔딩을 맞기는 한다. 비록 세부적인 '노래 가사'는 쿤체씨의 독일어 원 버전(오스트리아판)에 비해 많이 유치하지만, 그런 식으로 전반적인 '이야기의 촘촘한 결'이 살아있고 '인물들 간의 희로애락이나 엎치락 뒷치락 하는 관계 설정' & '극적인 재미'는 오스트리아판에 비해 더 나아 보이기에..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의 그런 점은 칭찬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