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조강지처 진리-프랑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감상 2

타라 2010. 6. 9. 19:23
역사적 인물(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 극에선 '주인공'을 누구로 하고, 각 인물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이야기의 성격이 많이 달라진다. 어차피 현존하여 전해져 오는 '(역사적) 사료'도 그 때 당시 그걸 쓴 사람의 관점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당대의 현실과 100%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다.

카멜 우알리(Kamel Ouali)가 만든 프랑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의 경우엔 메인 주인공을 이집트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로 내세웠고 '1막에서는 그녀와 시저의 사랑', '2막에 가선 그녀와 안토니우스의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크게 왜곡한 수준은 아닌 듯하다.


'루이 14세와 여러 여인들 간의 낭만적인 사랑'을 주요 컨셉으로 극을 진행해 가면서 '현란한 파티로 귀족들을 미혹하면서 절대 군주로 군림하려 했던 점 & 화려한 궁전을 지으며 재정을 낭비하고 민중들(or 민중의 수장)을 핍박하는 모습'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등 그 인물의 장점과 단점을 두루 보여준 프랑스 뮤지컬 <태양왕(Le Roi Soleil)>처럼 <클레오파트라(Cleopatre)> 역시 '클레오파트라 7세와 두 남성들의 사랑 이야기'를 기본 줄기로 하면서 그 주변 인물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실제 역사 속에선 '최후의 승자'이자 나름 '유능한 정치가'였던 옥타비아누스가 이 작품 안에선 다소 비열한 악역처럼 그려진 감이 있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도 (역사적 기록 속에서)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자결하기 전에 자기 아들들만은 살려달라고 했는데 그녀와 시저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죽이고, 클레오파트라를 로마인들의 공공의 적인양 '여론 몰이'를 했으니 그것 또한 왜곡되지 않은 이 인물의 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실제 역사 속에서 최후의 승자였던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굴욕~

다만.. 클레오파트라, 시저, 안토니우스, 프톨레마이오스, 샤르미온, 옥타비아와 더불어 이 뮤지컬의 주요 캐릭터 7인방 중 한 명인 '옥타비아누스'에게 할당된 노래는 단 한 곡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어쩐지 이 인물이 좀 짠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클레오파트라'가 주인공인 그녀 위주의 작품이라지만, 그래두 역사적 승자이자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님을 이렇게 찬밥 취급하다니..;;

시저(카이사르) 사후에 '2차 삼두 정치'를 펼치는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 훗날 '안토니우스 VS 옥타비아누스' 구도로 좁혀진다. 악티움 해전을 통한 그 싸움에서의 최후 승자는 옥타비아누스이며, 그는 초대 황제가 되어 로마의 평화 시대를 이끌게 된다..


다른 캐릭터들에겐 다 저 나름대로 할당된 노래들이 있고, 그래서 이 뮤지컬 CD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옥타비아누스' 캐릭터는 이 작품의 DVD에서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노래는 안 부르고, 중간 중간 등장해서 대사만 치는 캐릭터~ 그는 클레오파트라의 천적이며, 1막에서 그녀가 시저(세자흐)와 가깝게 지낼 때부터 그런 그녀를 무척 못마땅해 하던 여주인공 안티이다.



이 뮤지컬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이름'은 실제로 알려진 역사 속 인물들과는 좀 다르며, 해당 인물들 이름에 대한 '프랑스식 발음'을 따른다.

- 프랑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에 나오는 등장 인물 이름 -

클레오파트라 : 클레오파트르
시저(카이사르) : 세자르=세자흐
안토니우스 : 앙트완
프톨레마이오스(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 : 프톨레메
옥타비아누스 : 옥타브
옥타비아(옥타비아누스의 누나) : 옥타비

어떤 면에서 보면, 주인공이라 해서 '클레오파트라'를 마냥 미화하지만은 않은 이 뮤지컬 이야기에도 나름의 '교훈'은 있는 것 같다. 그 뭐랄까..? 우리 나라 사람들이 진리처럼 따르곤 하는 '본처(조강지처) 배반하고 딴 여자랑 놀아나더니, 결국 벌 받았다~' 이런 류의 교훈 말이다. 

'자신에게 충실한 착한 본처를 버린 남자'의 비극적인 최후

실제로 약간 찌질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안토니우스'는 이 작품 안에서도 살짝 찌질하게 나온다. 2차 삼두 정치 때 '정치적 협력 관계'로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와 결혼한 안토니우스(안토니우스, 옥타비아 둘 다 재혼임)는 그 때만 해도 자기는 엄청 신실한 사람인 것처럼 굴더니, 결국 클레오파트라가 유혹하니까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처 자식을 버리고(이혼하고) 클레오파트라랑 결합한 것이다. 옥타비아는 안토니우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다, 나름 미인이며 순종적인 현모양처임에도 말이다..

그러니, 착한 부인을 버린 그런 남자의 말로가 좋을 리가 있나- 이 작품 안에서 안토니우스는 어느 순간 '클레오파트라와의 향락적인 사랑'에 푹~ 빠져 가지고 '순간의 쾌락'만 즐기다가 결국 옥타비아누스에게 발리고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다.(그래두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둘이 엄청 사랑한 것 같기는 함)


이 뮤지컬 2막에서 안토니우스가 노래 부르는 '순간의 쾌락을 즐기자송' 장면에서 댄서들이 단체로 나와 펼쳐 보이는 퍼포먼스가 꽤나 아찔한 분위기인데, 향락가 장면을 '그림자'로 표현했던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의 '발 다무르 카바레(Le Val D'amour)' 장면보다 한층 더 야해 보였다. 프랑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무대 중앙 부분은 원형으로 돌아가는 회전식 무대인데, 이 장면에선 객석 바로 앞에서 댄서들이 단체로 아주 노골적인 장면을 묘사한 채 무대가 돌아간다.(너무 야해서, 이 부분은 자체 모자이크 처리 했음 ;;) 객석에 어른들 뿐 아니라 미성년자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던데, 무대 분위기는 '19금' 그 자체여서 꽤 놀랐던 장면이다.

옥타비아는 이혼 당한 뒤에도 '자기 남동생인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를 위협하자 그 사이에서 나름 전 남편인 안토니우스를 구해 줄려고 노력'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끝까지 클레오파트라만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 타령'만 하더니, 결국엔 옥타비아누스와의 2자 대립 구도에서 패하고 '역사의 패자'로 남게 된다. 시저 사후에, 그 때 당시 '나이 어린 옥타비아누스 보다 더 강력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던 안토니우스파'에 붙었던 클레오파트라는 덕분에 같이 망해서 자결하게 된다.

역사의 승자인 옥타비아누스보다 '역사의 패자=비련의 인물'인 클레오파트라가 더 극적일까?


클레오파트라가 나름 지적이고 외국어 능력도 뛰어났다고 하며, 거대 국가와 권력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기 나라와 위치를 곤고히 하기 위해 꽤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기는 하다. 그랬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나름 '비련의 주인공'인 셈이다. 본인 노력과 재능도 있었겠지만 '운'도 따라줘서 최후의 승자가 된 옥타비아누스 보다는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 클레오파트라가 '극적인 소재'로 훨씬 효과적인지, 옥타비아누스 쪽에 비해 클레오파트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문화 컨텐츠'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

이 뮤지컬에서도 관객들이 다 주인공인 '클레오파트라(소피아 에세디)'에 감정 이입했는지, 안토니우스와의 전쟁에서 이긴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다가와 빈정거리며 그녀를 농락한 뒤 '이에 열 받은 클레오파트라가 그런 옥타비아누스의 따귀를 때리자 관객들이 박수 치며 막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이 극이 만약 '옥타비아누스'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었으면, 그에게 할당된 좋은 노래들도 많고 '유능한 정치가로서의 옥타비아누스'의 면모를 부각시키며 관객들이 이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들었을텐데.. 역시 극에서 찬밥 취급 받는 '단역 캐릭터'는 서럽다. 이 작품 안에선 여주인공 클레오파트라를 갈구는 '비열한 듯한 모습'의 옥타비아누스만 부각되어 버리니 말이다..

옥타비아누스(옥타브)와 그의 누이인 옥타비아(옥타비-안토니우스의 전 부인)

하지만.. 한 편으론, 이 극에서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라를 무지 재수없어 하는 게 이해되기도 한다. 자기 누이의 남편을 뺏어간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아, 물론 안토니우스는 그의 누이인 '옥타비아'를 알기 훨씬 이전에 '클레오파트라'랑 먼저 호감을 느끼던 사이였다. 옥타비아와는 삼두 정치 동지였던 옥타비아누스와 인척 관계를 맺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한 것이다.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이것은 진리? : 조강지처 버린 남자 치고 잘되는 남자 없다~

그래두 '착한 본처 버리고 외국 나가서 이방인 여자랑 놀아나는 정치가'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역시 좋지 않아서, 그 후 안토니우스는 로마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잃게 된다. 여기엔 클레오파트라를 완전 나쁜 x(악녀) 취급했던 옥타비아누스의 언론 플레이(여론 몰이)도 좀 있었던 듯...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후에 '원래는 시저 누나의 외손자였지만 그의 양자인 셈인 옥타비아누스'는 자신과 '상속 경쟁자'인 카이사리온(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난 아들)을 죽이게 되는데,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난 아이는 그의 누이인 옥타비아가 거둬서 키웠다는 설도 있다. 역시 착한 여자다- 그렇게 선량한 현모양처 부인을 버리고 딴 여자랑 살림 차렸다가 결국 망하는 안토니우스를 보니,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조강지처(or 착한 본처) 버리고 잘 되는 남자 없다~'는 말은 진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