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버전도 나온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Mozart)!>는 오스트리아의 오리지널 독일어판, 일본판, 헝가리판, 한국판 등 음반(CD) 종류만 해도 버전 별로 꽤 많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 가장 대박은 헝가리판 <모차르트>라 생각한다. 예전엔 헝가리 배우들 노래 못한다고 맨날 깠었는데, 의외로 <모차르트> 헝가리판 음반이 너무 괜찮은 것이다-
이 음반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 뮤지컬 안에서 주인공 모차르트가 부르는 대표 솔로곡 '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에 관한 썰을 좀 풀어보려 한다. 이 곡의 한국판 제목은 '내 운명 피하고 싶어'이며, 우리 나라에선 한국판 모차르트 역으로 출연했던 임태경, 박건형, 박은태, 김준수(시아준수) 등이 불렀다.
원래 오리지널 독일어 버전에선 '그림자송'이었는데, 한국어 버전으로 건너와선 '운명송'으로 바뀌었다. 한국판 <모차르트>의 '내 운명 피하고 싶어'를 처음 들었을 땐 '그럭저럭 괜찮군~'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응?'스러운 부분이 많다. 노래 가사 하나는 끝내주게 만들어 내는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의 오리지널 '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한국판 '내 운명 피하고 싶어'는 가만 들어보면 오리지널 버전을 제껴 놓더라도 그 '한국어' 안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약간 납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라이센스 한국어 <모차르트>의 다른 넘버들 가사도 '총체적 난국'이긴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 한국어 가사 내에서도 자기네들끼리 서로 문맥이 안 맞는 분위기.. 마치 "실은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지 않아~"라는 <모순된 대사>를 내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굳이 예를 들자면 말이다..
극 밖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들을 땐 그냥저냥 괜찮지만, 일단 거기에 '극'이 개입되면 뮤지컬 안에 나오는 노래 가사는 '대본(등장 인물들이 치는 대사들)'이 된다. 그런데.. 해당 '이야기물(극)'의 근간이 되는 '대본'에서부터 이미 한 곡조 내에서 자기네들끼리 노래 가사가 따로 놀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중구난방 & 애매모호하니.. 이 한국판 모차르트가 당췌 뭐 하자는 시추에이션인지 헷갈린다 이거다-
어쨌든, 차 떼고 포 떼고.. 그런 세부적인 가사 내용을 떠나서 '곡 자체'의 매력만을 생각했을 때, 그동안 들어봤던 실베스터 르베이 작곡의 모차르트곡 '내 운명 피하고 싶어(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의 전 세계 버전들 중 가장 느낌이 좋았던 건 드류 사리치(Drew Sarich) 버전이었다.
Drew Sarich - 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
드류 사리치 - 내 운명 피하고 싶어 / 뮤지컬 '모차르트!'
이 극 안에서, 모짜르트가 이 곡을 부르게 되는 건 이런 상황에서다. 그가 일단 갈등을 겪던 '외부의 적들'을 무찔(?)렀는데, 정작 '더 큰 적'이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괴롭히고 있어서 얘가 완전 미칠려고 하는 상황~ 그런데다, 옆에서 앙상블들이 단체로 "너는 그 운명(평범함 속에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는 천재성)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지롱~" 하면서 약올리니까 이 모차르트가 더 환장하면서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어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
원래 오리지널 독일어 버전에선 '그림자송'이었는데, 한국어 버전으로 건너와선 '운명송'으로 바뀌었다. 한국판 <모차르트>의 '내 운명 피하고 싶어'를 처음 들었을 땐 '그럭저럭 괜찮군~'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응?'스러운 부분이 많다. 노래 가사 하나는 끝내주게 만들어 내는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의 오리지널 '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한국판 '내 운명 피하고 싶어'는 가만 들어보면 오리지널 버전을 제껴 놓더라도 그 '한국어' 안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약간 납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라이센스 한국어 <모차르트>의 다른 넘버들 가사도 '총체적 난국'이긴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 한국어 가사 내에서도 자기네들끼리 서로 문맥이 안 맞는 분위기.. 마치 "실은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지 않아~"라는 <모순된 대사>를 내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굳이 예를 들자면 말이다..
극 밖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들을 땐 그냥저냥 괜찮지만, 일단 거기에 '극'이 개입되면 뮤지컬 안에 나오는 노래 가사는 '대본(등장 인물들이 치는 대사들)'이 된다. 그런데.. 해당 '이야기물(극)'의 근간이 되는 '대본'에서부터 이미 한 곡조 내에서 자기네들끼리 노래 가사가 따로 놀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중구난방 & 애매모호하니.. 이 한국판 모차르트가 당췌 뭐 하자는 시추에이션인지 헷갈린다 이거다-
어쨌든, 차 떼고 포 떼고.. 그런 세부적인 가사 내용을 떠나서 '곡 자체'의 매력만을 생각했을 때, 그동안 들어봤던 실베스터 르베이 작곡의 모차르트곡 '내 운명 피하고 싶어(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의 전 세계 버전들 중 가장 느낌이 좋았던 건 드류 사리치(Drew Sarich) 버전이었다.
드류 사리치 - 내 운명 피하고 싶어 / 뮤지컬 '모차르트!'
이 극 안에서, 모짜르트가 이 곡을 부르게 되는 건 이런 상황에서다. 그가 일단 갈등을 겪던 '외부의 적들'을 무찔(?)렀는데, 정작 '더 큰 적'이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괴롭히고 있어서 얘가 완전 미칠려고 하는 상황~ 그런데다, 옆에서 앙상블들이 단체로 "너는 그 운명(평범함 속에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는 천재성)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지롱~" 하면서 약올리니까 이 모차르트가 더 환장하면서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어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
보는 입장에선 그가 결국 그 운명을 못 벗어날 걸 알고 있으며, 이 곡을 부르는 '모차르트' 자신조차도 결국 그걸 떨쳐내지 못할 것을 어느 정도는 직감하고 있기에 그만큼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노래가 아닐까 한다.
드류 사리치(Drew Sarich)는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어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력 있는 뮤지컬 배우인데, 그가 실제로 <모차르트!> 공연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오스트리아판(독일어권) 대표 주자는 잉베 가소이 롬달(Yngve Gasoy-Romdal)이다. 원 버전 독일어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던...
드류 사리치(Drew Sarich)는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어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력 있는 뮤지컬 배우인데, 그가 실제로 <모차르트!> 공연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오스트리아판(독일어권) 대표 주자는 잉베 가소이 롬달(Yngve Gasoy-Romdal)이다. 원 버전 독일어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던...
드류 사리치는 그냥 일반 공연에서 뮤지컬 <모차르트!>의 곡을 자주 불렀다. 실제로 그가 '콘서트' 버전이 아닌 '극' 안에서 모차르트 역할을 맡는다면 '씽크로율'이 전혀 맞지 않을 듯하다. '실존 인물 볼프강 모차르트'는 단신에 왜소한 체구인 것에 반해, 드류 사리치는 너무나 기골이 장대한 장신의 배우이니까...
앞서도 말했듯 차 떼고 포 떼고 '곡 자체의 삘 or 매력도'만을 논하자면 드류 사리치가 부른 '내 운명 피하고 싶어(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는 제대로 물건이다. 많이 강하긴 하지만 '자기가 진짜 그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건지, 아닌지..'조차 가늠 안될 정도로 이 곡을 너무 곱상하게만 부르거나 흐느적거리면서 맥아리 없게 부르는 것 보다는 격정적인 드류 버전이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없다- 세상 사람들의 삶은 그 누구든 '하나를 얻을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내가 모차르트 같은 '신이 내려주신 타고난 천재'도 아니고, 어차피 강 건너 불구경인 '남의 인생'일 뿐이어서.. '내 운명 피하고 싶어(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를 큰 임팩트 없게 부르는 모차르트들을 보면 '남들이 진짜 절실하게 갖고 싶어도 못 갖는 걸 이미 가지고 있는 모차르트'가 약간 배 부른(?) 투정을 하면서 벗어나고 싶다고 아무리 징징거려도, 지켜보는 입장에선 어쩐지 시큰둥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격정적으로 미쳐 날뛰는 드류 사리치의 모차르트(콘서트 버전)를 보면 정신이 번쩍 뜨이면서 그 감정이 확확~ 전달되는 느낌이다. 그의 '내 운명(그림자)~'송에는 꾹꾹 눌러주는 맛 & 다져주는 맛이 있으며, 이 짧은 한 곡 내에 극적인 드라마틱함이 살아있는 듯하다.(단, 이 뮤지컬을 통해 묘사된 '천재 음악가로서의 자기 운명을 모차르트가 거부하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에 해당한다는 게 큰 함정이지만...;; '실존 인물 모차르트'는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부담스러워하거나, 그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오히려 그걸 자랑스러워 했음)
드류 사리치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 나오는 예수 솔로곡 '겟세마네(Gethsemane)'도 아주 잘 부른다. 그는 JCS 공연의 '예수' 파트와 '유다' 파트를 모두 커버하는데.. 이제까지 스티브 발사모(Steve Balsamo)의 '겟세마네'만이 진리라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드류 사리치(Drew Sarich)는 '겟세마네' 넘버에 대한 신세계를 열어준 바 있다.
세상에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없다- 세상 사람들의 삶은 그 누구든 '하나를 얻을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내가 모차르트 같은 '신이 내려주신 타고난 천재'도 아니고, 어차피 강 건너 불구경인 '남의 인생'일 뿐이어서.. '내 운명 피하고 싶어(Wie Wird Man Seinen Schatten Los)'를 큰 임팩트 없게 부르는 모차르트들을 보면 '남들이 진짜 절실하게 갖고 싶어도 못 갖는 걸 이미 가지고 있는 모차르트'가 약간 배 부른(?) 투정을 하면서 벗어나고 싶다고 아무리 징징거려도, 지켜보는 입장에선 어쩐지 시큰둥해지는 경향이 있다.
드류 사리치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 나오는 예수 솔로곡 '겟세마네(Gethsemane)'도 아주 잘 부른다. 그는 JCS 공연의 '예수' 파트와 '유다' 파트를 모두 커버하는데.. 이제까지 스티브 발사모(Steve Balsamo)의 '겟세마네'만이 진리라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드류 사리치(Drew Sarich)는 '겟세마네' 넘버에 대한 신세계를 열어준 바 있다.
드류 사리치의 노래는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해야 할 곡'들에서 강세를 보이며, 듣는 사람을 그 인물의 감정 세계로 이끌고 가거나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대단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