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토크

살인마 잭-좋았던 점, 또는 아쉬운 점..

타라 2010. 1. 25. 23:52
라이센스 뮤지컬 <살인마 잭>은 어떤 면에서 보면 재미난 공연이다. 1막 초반의 폴리 솔로곡과 앤더슨의 '이 도시가 싫어' 빼고는 딱히 기억에 남는 곡도 없고 체코 뮤지컬을 각색한 이 뮤지컬의 음악 자체가 크게 좋진 않지만, 현장에서 듣기에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 무난한 곡도 많았고 중간중간 연주곡으로 흘러 나오는 곡이나 반주 편곡 같은 건 꽤 괜찮아 보였다.(같은 제작진이 만들어서 그런지, 이 뮤지컬의 반주에서 라이센스 <삼총사> 공연 반주의 향기가 은연중에 느껴졌다.)

[ 뮤지컬 '살인마 잭' 공연 캐스트 ]

●  다  니 엘............안재욱, 김무열, 엄기준, 신성록
●  앤  더 슨............유준상, 민영기
●  먼      로............김법래, 남문철
●      잭     ............김원준, 최민철
●  글로리아............최유하, 최수진
●  폴      리............백민정, 양소민

뮤지컬 '살인마 잭'의 인상적인 군무, 무난한 편곡, 효과적인 무대 장치

그리고.. 배우들도 배우들이지만, 여기 나오는 댄서(여성 댄서, 남성 댄서)들 중에 한 기럭지 한 몸매 하는 훤칠한 이들이 몇몇 눈에 띄어서 은근히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극 초반에 바바리 코트 입고 지나가던 무리들 중 유난히 그 코트 차림이 잘 어울리는 여성 댄서 한 명이 눈에 확 들어왔었다.

2막에서 '살인마인 잭'이 막 살인을 저지르고 돌아다니는 광경을 '댄서들의 군무'로 표현한 대목도 느낌이 꽤 좋았다. 실제처럼 칼로 찌르는 모션이 아닌, 잭이 여성 댄서들의 몸에 달려 있는 길다란 붉은 리본을 차례대로 확 땡기는 모션이었는데, 오래 단련된 댄서들이 연기해서 그런지 '그 직후에 그들이 쓰러지는 몸동작'이 굉장히 우아하고 아트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을 댄스로 승화시키다 보니, 쓰러지는 동작이나 각도 같은 것도 사전에 미리 다 맞춰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 수 있도록 계산된 느낌의 유려한 군무로 표현한 듯했다.

<살인마 잭>에 나오는 '회전식 무대 장치'도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회전식 무대는 다른 뮤지컬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이 작품 속 회전 무대는 특히나 해당 작품의 배경적 공간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하듯.. 뮤지컬 <살인마 잭>의 전반적인 편곡 수준, 댄서들이 선보인 안무, 회전식 무대 장치 등 공연 자체의 때깔은 나쁘지 않았고, 공연 직전에 읽어본 바로는 이 뮤지컬의 '시놉시스' 역시 굉장히 매력 있게 느껴졌다.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가정의 스토리~

하지만 정작 펼쳐진 구체적인 스토리를 보니, 어딘지 모르게 전형적이고 쌍팔년도스러운 구석이 있는 이야기였다.(특히, 이 작품 스토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다니엘과 글로리아의 러브 스토리'가...)

이 뮤지컬은 19세기 영국에서 실제 있었던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는데, 잭(정확하게 그 살인자 이름을 몰라서 영국에서 흔한 걸로 그냥 붙인 이름..)이 여러 명의 매춘부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 장기를 들고 가 버린 '영국의 그 연쇄 살인 사건'은 아직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 소재를 가지고 이 뮤지컬 이야기는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그 미해결 사건'엔 <어쩌면 이런 사연도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하 뮤지컬 <살인마 잭> 내용에 관한 스포 있음~) 원래 다른 뮤지컬 같은 걸 볼 때에도 내용을 미리 다 알고 가서 감상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미리 다 알고 있어서 그만큼 더 재미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기에, 개인적으론 '뮤지컬 스토리'를 미리 다 알고 있다는 걸 굳이 피해야 할 스포라고 생각진 않는다..;;

야릇한 아류의 향기, 반전 같지 않은 반전?

<살인마 잭>을 관람하기 전에 티켓 예매처에 나와 있는 대략적인 '시놉시스'만 읽어보고 갔었기에 이 뮤지컬에 나오는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정작 공연을 보니 야릇한 반전이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이야기 속에서 '외과 의사 다니엘(안재욱, 엄기준, 김무열, 신성록 등이 번갈아 가면서 연기함)=(김원준, 최민철 더블 캐스트)'이다. 난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인마 잭> 공연을 보러 갔었지만, 진행된 스토리를 통해 막상 극 안에서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니, 지네가 무슨 지킬 & 하이드냐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거렸으며, '지금이 어느 때인데~ 요즘에도 저런 반전이 통한다고 생각하나?' 싶어서 좀 허무하단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그런 류의 반전이 있다는 걸 스포일러를 통해서라도 미리 알고 갔으면 덜 시시하게 느껴졌을텐데, 전혀 모르고 있다가 공연 관람 중에 '꽤나 전형적이고 시대 착오적(?)인 반전 카드' 들이미니까 그 실망감에 <살인마 잭> 2막 스토리는 완전 허무하고 시시했다는 인상만이 강렬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너무 큰 기대를 안해서 그런지, <살인마 잭> 1막은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무대 때깔도 괜찮고, 음악도 그렇게 나쁜 수준은 아니고.. 안무 수준도 그리 떨어지지 않고, 분위기도 그럴듯하고..' 그만하면 꽤 즐길 만한 거리가 된다 싶었고, 그럭저럭 재미난 뮤지컬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막에 가서 다니엘이 급 지킬 앤 하이드 놀이 하면서 그 감흥이 다 깨지고.. 이 뮤지컬 2막 스토리는 많이 쳐지고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말도 좀 찜찜하게 느껴지면서 말이다..

다니엘과 앤더슨 : 넌 '형사 놀이'를 해. 난 '지킬 앤 하이드 놀이'를 할테니~

이 뮤지컬에서 외과 의사 다니엘이 행하는 그 '지킬 앤 하이드' 놀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론 그 대목이 이상하게 별로였다. <지킬 앤 하이드>에선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기 전 & 변할 때 부르는 노래, 한창 살인 저지르고 돌아다닐 때 부르는 노래, 나중에 루시 죽이고 나서 그 두 내면이 싸울 때 부르는 노래(지금 이 순간, 컨프롱 등등..)'라도 특징 있고 듣기 좋지만, <살인마 잭>에서 다니엘이 자기 안에 들어있는 잭과 대립할 때 부르는 노래는 그 멜로디 자체가 좀처럼 기억도 나지 않는 '특징 없고 (듣는 순간) 지루하게 느껴지는 노래'였다.

그런 무난 이하의 넘버를 바탕으로 '해당 공연 안에서의 여러 미덕으로 인해 엄청 인상적으로 각인된 지킬 & 하이드' 흉내를 내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그 감흥이 덜할 수밖에... 더더군다나 지난 내한 공연을 통해 다른 배우들 다 기죽이는 탁월한 가창력을 지닌 '브래드 리틀' 지킬의 엄청난 성량의 컨프롱을 듣고 온 뒤였던 터라, 이런 고만고만한 '지킬 앤 하이드' 흉내엔 그렇게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 때.. 몇몇 드라마들을 통해, 또 어떤 TV 프로그램과 노래들을 통해 탤런트 안재욱과 가수 김원준을 좋아했던 때가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내 눈앞에서 '다니엘'과 '잭'을 연기했다. '내가 곧 너고, 네가 곧 나이고~' 하면서... 근데, 왜 감흥이 없는 거냐고~ ;; 


뮤지컬 <살인마 잭>에서 다른 배우들의 그것과는 살짝 겉도는 창법을 지닌 김원준은 전반적인 면에서 <라디오 스타> 때가 더 나았단 생각이고, 나름 연기력이 괜찮다고 생각되는 안재욱이 연기하기에 이 뮤지컬의 '다니엘' 캐릭터는 너무 진부하고 전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인마 잭> 라이선스 공연에서 제일 비중 있는 역할이 '외과 의사 다니엘'과 '앤더슨 형사'인데, 둘 다 전형적이긴 하지만 그래두 캐릭터 느낌은 '앤더슨' 쪽이 좀 더 낫다고 느껴졌다.

꽃미남 하이드가 나타났다? : 한 개인의 내면 안에 들어 있는 극단적인 잔혹성과 악마성

그리고.. 한 인간의 내면 안에 들어 있는 선과 악을 표현하는 것인데, 다니엘에게 잠재되어 있는 '괴기스런 살인마'를 표현하기에 '원준 잭'은 인간적으로 너무 꽃미남인 거다- ;; (해당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엔, 딱 보기에도 성격파스런 포스를 풍기는 '민철 잭'이 더 낫다는 생각..) 


비슷한 나잇대의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했을 때, 김원준은 그 나이에도 여전히 나이도 크게 안 들어 보이고 샤방샤방한 꽃미남이던데.. 그렇게 '꽃스럽게 생긴 이미지'를 한 개인의 내면 안에 들어 있는 '악마스런 살인마'라고 생각하라니~ 이들이 펼치는 '지킬 앤 하이드' 놀이는 시/청각적으로 별로 그럴듯하지 못한 풍경이 아니었나 싶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주인공 '지킬'에게 듣기 좋은 넘버도 꽤 주어지고 '하이드'로 변할 때는 이미지 상으로도 딱 '헐크 모드'로 변하는데, <살인마 잭>에선
(더블 캐스트 중 '김원준 잭'이었을 경우) 한 내면 안의 '하이드=악마성'을 대변하는 '살인마 잭'이 출연진 중 제일 꽃돌이스런 모습이다. 


차라리 이 극의 스토리 라인이 '알고 봤더니.. 다니엘=잭'이 아니라 각각 '별개의 인물'이었다면 '잭 캐릭터'가 꽃돌이 이미지여도 별 상관이 없었겠지만, '한 개인의 내면 안에 존재하는 잔혹성 or 악마성'을 표현하는 거라면 '다니엘' 역의 배우와 '잭' 역의 배우가 확연하게 대비되는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체코 뮤지컬은 '내멋대로 각색~' 모드인데, 뮤지컬 <살인마 잭> 한국판에서 '결국 다니엘이 잭이었다~' 식의 임팩트 없는 반전 말고, '다니엘'과 '잭'을 각각의 등장 인물로 두고서 이야기를 펼쳐 갔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운 맘이 든다.(극 중에서 다니엘이 부르는 "내가 잭~~~"... 이런 가사는 다 때려 치우고 말이다..) '다니엘이 곧 잭'이라고 하는 그 대목에서 별다른 삘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이 뮤지컬의 큰 단점이라고까지 느껴져서 그런지, '만일 그 두 캐릭터를 각각 다른 인물로 두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새롭고 효과적인 스토리 전개'를 펼쳐 보였다면 라이센스 뮤지컬 <살인마 잭>이 보다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