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원작의 단편 소설 '삼포 가는 길'은 영화 버전(1975년)도 재미있게 보았고 TV판도 인상적이었는데, 개인적으로 TV 문학관 버전(1981년)을 조금 더 괜찮게 보았다. 


1981년작이라 되어 있지만, 내게 TV 문학관 <삼포 가는 길>이 '추억의 드라마'는 아니다. 난 이 드라마를 비교적 최근에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그래서 '추억의 드라마' 섹션이 아닌 '드라마 톡톡' 섹션으로 분류) <TV 문학관>이라 해서 '단편 드라마'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러닝 타임이 1시간 40분에 육박하는 '영화 한 편 분량'과 비슷해서 꽤 놀란 기억이 있다.(TV 단막극, 원래 그런 거였나..? 기억이~ ;;)


TV 문학관 <삼포 가는 길(1981년)>


원작 : 황석영

극본 : 임   충

연출 : 김홍종


출연 : 문오장(정씨), 안병경(노영달), 차화연(백화)


그 외에 '조연 or 단역'으로 등장하는 여러 유명 배우들의 (지금보다)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반에 나오는 '식당 아줌마' 역할의 전원주는 어쩐지 <삼포 가는 길> 원작 소설이나 영화 버전보다 분량이 더 많아 보였는데, 단역인 전원주의 '식당 아줌마' 연기가 무척 훌륭하단 생각이 들었음.


원작 소설 <삼포 가는 길>은 분량이 정말 짧기 때문에 2시간 짜리 영화나 TV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세부적인 내용에 살이 많이 붙었다. 영화 쪽도 그렇지만, TV 버전은 특히 원작에 충실한 대목이 많이 엿보여 '눈으로 보고 귀로 읽는 소설'같은 느낌도 들었다.


동일한 등장 인물이지만, 영화(1975년)에 나오는 '노영달' '백화' 등은 드라마 속 인물과 캐릭터가 좀 다른 것 같다. 영화 <삼포 가는 길>에 나오는 영달(백일섭)과 백화(문숙)는 성격이 정말 강해서.. 만일 둘이 살림 차렸다면, 한 번씩 부부 싸움 할 때 세간살이 몇 개 박살낼 것 같은 분위기~ ;; 극 중간, 영화판 영달(백일섭)이 백화(문숙)에게 과민반응하느라 둘이 싸우는 장면에서 정말 살벌하게 싸워댄다.


TV 드라마(1981년) 버전 <삼포 가는 길>에서의 영달(안병경)과 백화(차화연) (한 성깔 하던) 영화 버전 커플에 비해 뭔가 좀 귀엽고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삼포 가는 길> 영화 버전 노영달(백일섭)이 곰처럼 우직하면서 존심 장난 아니고 살짝 마초적인 느낌도 풍기는 사내라면, 드라마 속 노영달(안병경)은 날다람쥐처럼 날래면서 살짝 비겁해 보이는 구석도 있고 그러면서 장난기 가득한 귀여움이 있는 남자이다. 둘 다 속정 있는 타입인 건 마찬가지이고...


어린 나이에 산전 수전 다 겪은 백화.. 영화 버전 백화(문숙)는 엉뚱하면서 옴팡진 매력이 있는 개성 넘치는 여인이고 TV 문학관 버전 백화(차화연)는 겉으로 센 척 하지만 사슴처럼 여린 구석이 있는 여자 같다. 은근 개구장이 같은 면도 있고...(약간의 소녀 감성과 더불어...)



영화에선 후반부에 '백화(문숙)-영달(백일섭)의 멜로'에 힘을 줘서 약간 신파로 흐르기도 했었는데, 드라마 버전에선 기본 틀을 소설과 비슷하게 가지고 가면서 대체로 담백하고 절제된 톤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에 비해 정씨(문오장) 캐릭터를 더 구체화해서 보여주기도...


영화 <삼포 가는 길>에서의 정씨(김진규) 아저씨는 '자상자상~ 열매'를 먹은 정말 마음씨 좋은 아저씨로 '저렇게 친절하고 맘씨 좋은 푸근한 성향의 남자가 어떻게 큰 집(빵)까지 갔다오게 되었을까?' 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드라마 버전에선 후반부에 정씨(문오장) 아저씨가 큰 집에 가게 된 사연이 등장한다.


정씨(문오장)처럼 속이 깊고 괜찮은 사내가 빵에 갔다 온 건, 부모 죽인 원수(아주 가까운 사이의 그녀) 갚다가 그리 된 일. 효심이 깊었던 모양이다. 그 일에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로 젊은 시절의 백윤식이 잠깐 등장한다. 당시의 일이 너무나 큰 상처였기에, 백화-영달과 함께 '삼포'를 향해 가면서도 이 정씨(문오장)는 문득문득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고뇌에 찬 눈빛을 수시로 발사하곤 한다.(문오장씨 '내면 연기' 좋음)



소설과 영화 <삼포 가는 길>에선 '고향 마을이 개발되었다는 말'에 무척 실망하는 정씨의 심정이 이해될락 말락했었는데, 드라마 버전에선 (친절하게도) 원래의 스토리에 살을 덧붙여 정씨가 실망하는 사유를 아주 '개연성' 있게 묘사하였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예전에 많이 정들었던 장소가 바뀐 후 다시 찾게 되면 물론 서운한 맘도 들겠지만, 어차피 바뀌지 않아도 세월이 지나서 봤을 때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ex : 초등학교 다닐 때 엄청 넓어 보였던 학교 운동장이 중학교 때 방문해서 보니 '원래 이렇게 사이즈가 작았나?' 싶을 정도로 영 작아 보였던 기억이...) 몸이 자라서 그런 것도 있고, 나중에 영혼의 질량이 커지고 마음이 자라서 보게 되는 '(외관이 바뀌지 않은) 옛날 장소'에 대한 느낌은 예전과 다른 경우가 많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 편으론 서운한 맘도 있겠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이 이전보다 더 '발전'하고 '개발'되면 반가운 마음도 살짝 들 거라 여겨진다. 그런데 <삼포 가는 길> 원작 소설과 영화 버전 엔딩에선 '삼포가 개발되어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신작로가 났다~'는 주변인의 말에 정씨가 무척 실망하고 끝나길래 '그렇게.. 그런가?' 싶었던...


서영희 주연의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을 보면, '섬'과 '육지' 사이가 별도의 교량 없이 떨어져 있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배를 타야지만 뭍으로 나갈 수 있다는 현실 자체가... <삼포 가는 길>에 나오는 '삼포'는 가상의 지명이지만 결말부 분위기로 봐서 '섬'인 것 같던데, 그 섬에 '신작로'가 나서 배를 타지 않아도 육지와 연결되는 '개발'이 이뤄진 게 나름 좋은 일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래서 <삼포 가는 길> 소설 & 영화 엔딩에서의 주인공 심정이 완전히 와닿지는 않았었는데, TV 문학관-드라마 버전 <삼포 가는 길>에선 그 부분이 보완이 되어 있었다. 



'아! 저런 사연이라면, 고향인 삼포가 개발되고 변해버렸단 소식을 접한 뒤 충격 받고 실망하는 정씨(문오장)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돼~' 하게 되는... 


그 외에도, TV 문학관 버전 <삼포 가는 길(1981)>은 (비록 저예산이라 '전반적인 풍광'은 영화 버전에 비해 좀 약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고, 대본도 꽤 세심하게 잘 쓰여졌고, 연출도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린 '웰메이드 드라마'란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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