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폴리스

페스트 감염, 로마 멸망에 일조했던 '목욕탕 향락 문화'

타라 2010. 12. 16. 22:25
얼마 전 치과에 갔는데, 한참 치료하던 중 천장에 달린 '무인 감시 카메라'를 보고 기분이 이상해짐을 느꼈다. 안 그래도 병원에 가는 환자들은 입 아~ 벌리고 굴욕적(?)인 자세로 치료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 산뜻하지 못한 모습이 찍혀서 기록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병원 뿐 아니라, 요즘엔 어딜 가도 CCTV(무인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참 많다.

앞으론 '버스' 뿐 아니라 영업용 '택시' 안에도 CCTV를 설치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엔 별의 별 범죄들이 일어나기에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범인을 잡기 위해선 CCTV가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밖에만 나가면 어느 장소에든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어쩐지 내 행동을 감시 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 공공 장소의 화장실 같은 곳을 가면, 때때로 '위에 뭐(카메라) 없나~' 하며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예전에 '화장실 감시 카메라'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선 '대중 목욕탕' 안에, 그것두 '탈의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사례들이 많다 하여 화들짝 놀라고 있는 중이다. 현행법 상 설치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실제론 찜질방이나 목욕탕 안 탈의실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꽤 많다고 한다.

어차피 요즘엔 집에서 매일 샤워하고 공중 목욕탕 안 가는 이들도 많지만, 갈수록 그런 장소는 출입하기 꺼려지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찍혀도 누가 누군지 모르긴 하지만, 개인의 은밀한 부분이 특정인이 운영하는 '무인 감시 카메라'에 찍힌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불쾌한 일이니 말이다..

우리 시대에는 '목욕탕'이 단순히 때 밀고 사우나 하기 위해 가는 곳이지만, 중세 유럽에선 이 목욕탕이 이상한 기능을 하기도 했었다. 꽤 오랫동안 음탕한 행위가 벌어지는 '목욕탕 향락 문화'가 성행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몸 파는 언니들(일명 매춘녀)'이 공중 목욕탕에서 '영업'을 한 모양이다. 중세 유럽 이전, 고대 로마 말기 때에도 목욕탕을 중심으로 한 무분별한 혼욕과 퇴폐 문화가 번진 적이 있었다.(사치와 타락이 난무했던 그 '목욕탕 향락 문화'가 고대 로마를 멸망하게 만든 한 원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 - 카라칼라 목욕탕(The Baths of Caracalla)


유럽에서의 '목욕탕 향락 문화'는 12세기 이후로 큰 인기를 누렸으며, 14세기 무렵엔 독일의 뮌헨이나 레겐스부르크 등지에서 '결혼 피로연'을 행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면 굉장히 민망스런 일인데, 당시엔 신랑 신부 뿐 아니라 결혼을 축하하러 온 친구들까지 단체로 벌거벗고서 탕 안에 술과 요리를 띄워놓은 채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겼다고 한다.

그 후 '매춘 행위가 이뤄지는 목욕탕'이 한동안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그곳은 '몸을 깨끗하게 씻는 장소'가 아닌 '영혼을 더럽히는 장소' or '건강을 망치는 장소'로 변질되어 갔다. 영국에선 유부녀나 수녀들은 이러한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입욕 규칙'을 선포하기도 했다.

한동안 목욕탕 내에서의 '음탕한 행위'가 성행했지만, 유럽에서 목욕탕을 중심으로 하여 대대적으로 매독(성병)과 페스트(흑사병)가 번지자 15세기 이후 그런 식의 '목욕탕 향락 문화'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16세기 프랑스에선 '혼욕 금지령'이 내려졌다.


페스트나 매독, 나병 등이 목욕탕을 통해 감염된다고 생각했던 16~18세기 유럽인들은 목욕을 잘 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 시기를 살았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한 달에 1번,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일 년에 1번 밖에 목욕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그 시기의 프랑스인들은 (목욕을 잘 하지 않음으로 인한) 몸에서 나는 악취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개발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공중 목욕탕이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 무렵이다. 그 때 미국에 거주하는 한 유태인 사업가가 '비누 사업'과 '수돗물 사업'을 벌이면서, 그걸 팔아먹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서 현재와 같은 새로운 목욕 문화가 대중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