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베아트리체 첸치' 초상화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는 귀도 레니(Guido Reni)의 그림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은 바로크 시대의 여류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가 모작해서 그렸다고 한다.('엘리자베타 시라니'는 '귀도 레니'의 조수였던 자기 아버지로 인해, 나중에 그의 그림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화폭에 담은 '베아트리체'는 16세기 이탈리아에 살았던 실존 인물로,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처형 당한 슬픈 사연의 여성이다.(단테의 작품 <신곡>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와는 다른 인물임)
베아트리체 첸치는 1577년, 이탈리아 귀족인 프란체스코 첸치의 첫째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그녀는 굉장한 미녀로 자라났는데, 15세 무렵 그의 방탕한 아버지로부터 겁탈을 당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그 '짐승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딸인 베아트리체를 지방에 있는 한 성에 가두고, 꽤 오랫동안 그녀에게 성적인 폭력과 가학 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자기 아들들에게도 폭행을 일삼던 '폭력적인 아빠'였다.
베아트리체를 가엽게 여긴 그녀의 계모와 친오빠는 행정 기관에 아버지 프란체스코의 상습적인 성폭행을 신고했지만, 당시의 그는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귀족이었기에 처벌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성에서 탈출한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는 새엄마와 오빠, 친한 하인의 도움으로, 친딸을 성폭행한 그 막장 '사이코패스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하게 된다. 1598년의 어느 날, 그들은 프란체스코를 죽인 다음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실족사로 위장했다.
하지만 교황 휘하의 경찰들이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범죄는 곧 발각됐으며, 그들 모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 때, 이 비슷하게 '의붓 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성폭행 당한 여성이 남자 친구와 함께 그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비난' 아닌 '동정'의 여론이 일었던 걸로 알고 있다. 오히려 '딸을 성폭행한 막장 아버지 잘 죽었다'는 의견이 많았던...
요즘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살인'은 나쁜 거지만, 한 어린 영혼의 인생을 파탄으로 몰고 간 그런 '짐승만도 못한 인간=딸을 성폭행한 자'는 살아갈 가치가 없으므로 이래 죽든(사형 당함) 저래 죽든(살해 복수 당함) 어쨌든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여기는 게 인지상정이기에 말이다.
나름 원인 있는 살인이었기에 '정당방위'가 어느 정도 인정될 법도 하고, 실제로 당시 행정 처리를 하던 공무원들이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음에도 '첸치가의 재산이 탐났던 교황 클레멘트 8세'는 귀족인 프란체스코의 남은 가족들을 없애기 위해 그들 모두에게 중형을 내렸다. 살인의 이유를 알게 된 로마 시민들은 그 판결에 항의했지만, 클레멘트 8세(Pope Clement VIII)는 끝끝내 그들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첸치 가문의 재산을 가로채게 된다.
1599년 9월.. 베아트리체 첸치는 결국 참수당하게 되었는데, 그 날 이탈리아 내에서 '미인'으로 소문난 그녀의 처형 장면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는 처형 직전에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고, 그의 문하생이 된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가 나중에 그 그림을 따라 그린 것이 오늘날 많이 알려진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이다.
그 일을 알고 있는 로마 사람들은 억울하고 슬픈 사연으로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된 '베아트리체'를 권위적이고 모순된 귀족 계급과 권력자들에게 대항하는 '저항 정신'의 상징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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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용자 2010.12.07 22:15
타라 님!
답글
베아트리체 첸지의 일화
어려 읽은 적 있어
많이 아파했던 기억...
안타까운 여인의 한 생을 그린 내용
고마워요
행복은 곁에 있어요
아름다운
사랑으로... -
어쩜 저런 일이...돈에 눈이 먼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물불 안 가리는군요.
답글
어릴 적 기구한 운명이 마음아파서인지 해피엔딩이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 커집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12.07 22:48
판화전 할 때 가서 봤는데
답글
표정이 묘해서 오래오래 봤던 기억이 나네요.
도슨트 해설을 들었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고 해서 왔다갔다하면서 봤어요. ^^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입니다. 사연도 안타깝고요.. ㅡ.ㅜ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12.07 23:26
베아트리체 첸치는 일평생 불행한 삶을 살다 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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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읽으며 더욱 안타깝습니다.
초상화는 매우 아름다운 여자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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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의 초상화에 그런 사연이 담겨있었군요.
답글
이 그림은 종종 본 적은 있지만 그 뒷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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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왕 잘 읽고 궁금증이 생겨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페르메르의 파란 터번(머리띠였든가요)를 한 여인의 그림이 위 그림(첸치)의 초상화와 비슷한데, 전자의 그림도 베아트리체에서 유래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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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하루되세요. -
shkim 2010.12.08 08:30
가혹했던 불행한 삶이 참 기구하고 안타깝네요
답글
이렇게 예쁜 아이가 제대로 꽃피지도 못하고 희생당하다니...정말 슬퍼요.두고두고 마음이 아련해질 얼굴이에요.. -
오..정말로 감동적인 글입니다.
답글
베아트리체 첸치..이 그림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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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pp 2010.12.08 18:24
베아트리체 초상화에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
답글
초상화를 들여다보면 얼굴은 앳되보이지만 눈빛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해요..
참,, 그 시대나 지금이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멀었군요 ,, ;; -
인간의 욕심으로, 슬프게 태어나 아프게 살다가 외롭게 죽어갔군요. 안타깝네요. 좋은 지식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 2010.12.08 21:12
베아트리체가 23세의 나이에 처형 당했나요? 저는 15세인가 16세인가로 알고 있었는데.....어린 나이에 굉장히 불쌍하다고 생각 했었거든요.
답글 -
박혜연 2014.09.27 21:44
베아트리체 첸치의 얼굴을 보니까 얼마전 종편에서 소개되었던 북한의 조선중앙TV의 꽃미남 남자아나운서랑 조금 닮지않았나요? 그 남자아나운서도 입술 되게 조그맣고 얼굴도 작고 여리여리하잖아요? 제가봤을때에도 그 북한남자아나운서가 어쩌면 베아트리체 첸치의 환생이라고 할수있을정도로 너무 예쁘게생겨서요!
답글 -
박혜연 2018.08.09 19:00
그야말로 중세유럽판 김보은사건이네요? 김보은사건은 26년전에 일어난 끔찍한사건인데 그것은 바로 의붓아버지에게 12년간 강간당했다는 사실~!!!! 더더더더더욱 충격적인건 김보은씨의 의붓아버지가 의붓딸에게만 강간한게 아니라 그녀의 친어머니와 친언니에게도 몹쓸짓을 저질렀고 그리고 이혼한 전처와 두명의 친아들에게도 폭력을 서슴지않게 저질러왔으며 심지어 밖에서도 술집마담이나 동료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 믿어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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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사례로는 김부남사건이 있는데 그나마 김부남을 성폭행했던 가해자(그뒤로 김부남에게 남성의 가장중요한 부위를 찔려 사망했음.)는 그전까지는 평범한 동네아저씨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라는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