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프랑스의 판화가 폴 자쿠레가 그린 조선인들의 모습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실은 '폴 자쿠레(Paul Jacoulet)' 뿐만이 아니라 영국의 '엘리자베스 키스(Eliazbeth Keith)'도 조선인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20세기 초 그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인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는 1919년 경 <Old Korea>라는 화집을 내기도 했었다. 가족을 따라 일본에 들렀다가, 3.1 운동 무렵 한국을 방문하게 된 그녀는 우리 나라 풍물에 대한 그림을 주로 그리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실력이 상당해 보인다.
[ 영국의 여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azbeth Keith)가 그린 조선인의 모습 1 ]
엘리자베스 키스(Eliazbeth Keith)가 그린 20세기 초 한국인들의 모습과 풍경들에선 여성 특유의 섬세한 터치가 느껴진다. 폴 자쿠레가 그린 조선인들의 얼굴(이목구비) 모습에선 서양인의 느낌이 많이 풍겨져 왔는데,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런 그림 속 그들의 모습은 정말 우리 나라 사람(동양인) 같다.
1887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건너 간 엘리자베스 키스는 28세 때 일본을 방문했다가 동양의 문화에 대해 관심 갖게 되었고, 한국에 와선 선교부에서 활동하며 한국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노력했다. 그녀는 한국 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을 오가며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미술을 '독학'으로 공부한 화가 치고는 굉장한 활약이 아니었나 싶다.
[ 영국의 여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azbeth Keith)가 그린 조선인의 모습 2 ]
엘리자베스 키스는 당시의 서울 뿐 아니라 함흥이나 평양, 원산 등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조선의 여러 곳을 담은 '풍경화' 및 '사람들의 일상 모습'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외국인의 눈을 통해 접하는 1920~1940년대 우리 나라 사람의 모습(그림)을 보니 어쩐지 기분이 묘해진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람'이면서 외국 어느 나라의 문명이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은 편인데, 마찬가지로 100여 년 전의 어느 '영국 여인'이 우리 나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한국인의 일상에 대한 모습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했다는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엘리자베스 키스(Eliazbeth Keith)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수채화, 판화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한국을 찾은 뒤로 '제국주의 일본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자긍심을 잃지 않았던 한국인'들에게 반해 당시 우리 민족의 삶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활동했던 여러 나라들 중 유난히 한국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녀가 그린 무수한 그림들 중 '한국인을 그린 작품'이 가장 뛰어나단 평을 받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인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는 1919년 경 <Old Korea>라는 화집을 내기도 했었다. 가족을 따라 일본에 들렀다가, 3.1 운동 무렵 한국을 방문하게 된 그녀는 우리 나라 풍물에 대한 그림을 주로 그리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실력이 상당해 보인다.
엘리자베스 키스(Eliazbeth Keith)가 그린 20세기 초 한국인들의 모습과 풍경들에선 여성 특유의 섬세한 터치가 느껴진다. 폴 자쿠레가 그린 조선인들의 얼굴(이목구비) 모습에선 서양인의 느낌이 많이 풍겨져 왔는데,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런 그림 속 그들의 모습은 정말 우리 나라 사람(동양인) 같다.
1887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건너 간 엘리자베스 키스는 28세 때 일본을 방문했다가 동양의 문화에 대해 관심 갖게 되었고, 한국에 와선 선교부에서 활동하며 한국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노력했다. 그녀는 한국 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을 오가며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미술을 '독학'으로 공부한 화가 치고는 굉장한 활약이 아니었나 싶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당시의 서울 뿐 아니라 함흥이나 평양, 원산 등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조선의 여러 곳을 담은 '풍경화' 및 '사람들의 일상 모습'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외국인의 눈을 통해 접하는 1920~1940년대 우리 나라 사람의 모습(그림)을 보니 어쩐지 기분이 묘해진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람'이면서 외국 어느 나라의 문명이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은 편인데, 마찬가지로 100여 년 전의 어느 '영국 여인'이 우리 나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한국인의 일상에 대한 모습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했다는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엘리자베스 키스(Eliazbeth Keith) 자매가 묘사한 한국 -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난 다양한 한국인들은 모두 다 순수하고 담백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학문'을 존중하고 '무력'을 싫어했다. 또한, 한국 사람은 열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호의를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인들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아시아에서는 기독교 전파가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대중이 대부분 '문맹'이라 성경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문자는 있지만, 문자 자체가 배우기 힘든 인도' 등의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야말로 제일 안 좋은 경우인데, '지배층'이 고고한 문화를 논하며 편안히 지내는 동안 '대중'은 일자 무식으로 소문, 귀동냥, 그리고 미신만 믿으며 살아왔다.
극동에서 한국은 유일한 예외인데, 그들에게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있었다. 어떤 선구자적인 본능이 작용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460년 전에 간단한 '표음 문자'가 발명되었다. 따라서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직업의 고하, 생계의 방법을 막론하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었다.(아, 우리 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은 역시 위대하다~)
엘리자베스 키스(Eliazbeth Keith)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수채화, 판화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한국을 찾은 뒤로 '제국주의 일본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자긍심을 잃지 않았던 한국인'들에게 반해 당시 우리 민족의 삶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활동했던 여러 나라들 중 유난히 한국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녀가 그린 무수한 그림들 중 '한국인을 그린 작품'이 가장 뛰어나단 평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