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로 초연된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 일어판(다카라즈카) 노래를 맨 처음 들었을 땐 오리지널 독어 버전에 비해 참 별로로 느껴졌었으나, 그 와중에 다카라즈카 버전이 더 나아 보이는 노래들도 몇 곡 있었다. 2000년대의 독일 에센 공연 이후 추가된 곡 '내가 춤추고 싶을 때/내가 춤출 때(Wenn ich tanzen will/私が 踊る 時)'와 1막, 2막 엔딩곡은 특히 그러했다. 이 뮤지컬 안에서 1막 엔딩곡인 'Ich will dir nur sagen/私だけに(Ich gehor nur mir-Reprise)'와 2막 엔딩곡인 '에필로그송(Der Schleier fallt/愛の テ-マ)' 뒷부분은 똑같은 멜로디이다.



'엘리자베트' 캐릭터 자체는 좀 비호감인데, 오스트리아 & 독일판 여주인공들(피아, 마야, 마이케 등..)은 노래야 잘하는 편이지만 어쩐지 인상도 좀 세 보이고 '내가 춤추길 원할 때(Wenn ich tanzen will)' 부를 때의 제스추어도 다소 '거드름 피우며 나대는 분위기'인지라..;; 그냥 엘리자베트가 점잖게 노래 부르는 다카라즈카 '내가 춤출 때(私が 踊る 時)' 쪽 여주인공이 그나마 덜 비호감스럽다.(개인적으로, '잘한 것도 없으면서 방정 떨거나 품위 없이 나대는 여주인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996년판부터 2009년판까지 버전이 참 여러 가지인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에서 '내가 춤출 때(私が 踊る 時)'는 2002년, 2005년, 2007년, 2009년판 공연 장면에 들어갔는데, 이 모든 버전 & 10주년 기념 콘서트 버전까지 다 포함해서 2002년 하나구미(花組-화조) 버전의 '내가 춤출 때'가 단연 최고다- 이 곡 & 이 장면은 2002년판 주인공인 하루노 스미레(春野寿美礼)의 죽음과 오오토리 레이(大鳥れい)의 엘리자베트가 정말 잘 살린... 이들이 부른 '내가 춤출 때(私が 踊る 時)'는 가사 씽크로도 딱 맞다.


다카라즈카(타카라즈카) <엘리자베트> 2002년 화조(花組) 공연에서의 '오오토리 레이(Ootori Rei)의 엘리자베트'는 그렇게 나대거나 거세 보이지 않으면서 적당히 강단 있고 '죽음'을 향해 단호한 자세를 취하며, 그러면서 품위 있어 보이는 분위기의 황후이다. 이 버전의 '하루노 스미레(Haruno Sumire)의 죽음'은 역대 다카라즈카 죽음(Tod/토토)들 중 가장 '기품'이 흘러넘치는 귀족적인 죽음이다. 이 작품 안에 나오는 죽음 캐릭터가 '황천의 제왕'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하루노씨의 토토(죽음)는 진정으로 품격 있어 보이고 제대로 '제왕'다운 풍모를 갖췄다고나 할까-

<엘리자베트>란 작품을 통해 '죽음'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 배우(하루노 스미레)의 가장 큰 장점은 우아한 '몸 동작'과 당당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면서도 기품 있는 특유의 '걸음걸이'에 있다.

2009년판 죽음(세나 준)은 이 곡 부를 때 '걸음걸이'가 좀 급해 보이고, 2005년도 죽음(아야키 나오) 역시 이 장면에서의 모션이 어딘지 뻘쭘해 보였다. 개인적으로 다카라즈카 2007년 버전의 <엘리자베트>를 참 좋아하지만, 이 '내가 춤출 때(私が 踊る 時-와타시가 오도루 토키)' 장면에선 2007년 주인공인 미즈 나츠키의 '죽음'과 시라하네 유리의 '엘리자베트'가 둘 다 세트로 노래를 너무 못불러 주신다. ;;

결정적으로, 다카라즈카 버전 '내가 춤출 때'는 2002년 하나구미 공연 때의 '박자'가 딱 적당하다. 다른 버전(2005, 2007, 2009년)에선 죄다 반 박자 늦게 설정해서 노래하는데, 그게 많이 답답스러워 보인다는 것- <엘리자베트(에리자베토)> 역대 다카라즈카 배우들 중 2002년 하나구미 공연의 '하루노 토토 & 오오토리 엘리자베트'가 소화한 '내가 춤출 때(私が 踊る 時)' 장면은 '곡 분위기(톤) & 모션 & 연기 & 가창력과 곡 소화력 & 둘 사이의 호흡' 등 (이 곡에 관한 한) 전반적인 면에서 가장 훌륭한 버전 같다. 'Wenn ich tanzen will(내가 춤출 때)'의 사극 버전이라 할 수 있는데, 다소 딱딱한 독일어판과 다르게 이 2002(화조) 다카라즈카 판본의 '내가 춤출 때'는 '그윽한 분위기'가 있어서 마음에 든다.


실은 반말로 얘기하지만, 이 판본에선 죽음씨가 엘리자베트에게 내뱉는 대사를 고풍스런 '하오체'로 설정해도 꽤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이다. 독일어권 <엘리자베트>에선 안 그래도 비호감인 여주인공 '엘리자베트'가 이 장면에서 너무 의기양양해 하면서 살짝 나대는 얄미운 분위기가 있던데, 다카라즈카 2002년판 여주인공은 단호하고 당당해 하면서도 '삼가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나마 낫다.

난 아무리 노력해도, 황제 남편한테 기생해서 살며 '누릴 건 다 챙겨 누리면서 황후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거나 남편 내조할 생각은 별로 안한 채 주구장창~ 평생을 자기 권리만 부르짖는 엘리자베트' 캐릭터에게 크나큰 호감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이 '엘리자베트'가 기 세어 보이게 행동하거나 저 잘났다고 설쳐대지 않고, 되도록 덜 나댈수록 '비호감 수치'가 감소되는 것 같다..

극 속의 엘리자베트가 나름 '황후로서 살아 온 짬밥'이 있는데, 격 없이 너무 양양거리며 잘난 척 하는 것 보다는 이 쪽이 어쩐지 더 '황후로서의 품위'가 있어 보이기도... 이 곡에서의 죽음(하루노 스미레) 역시, 기품 있고 점잖은 젠틀맨이다. 오스트리아 원 버전에서의 '죽음'은 이 장면에서 엘리자베트가 노래 부르기 전에 이미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데, 다카라즈카 버전에선 '죽음'씨가 뒤에서 스윽~하고 나타난다.

하루노 스미레(토토) & 오오토리 레이(엘리자베트) - 내가 춤출 때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 2002년 하나구미 공연(花組:화조) 버전..

- <엘리자베트> 다카라즈카 버전 '내가 춤출 때' 가사(내용) -

토토(죽음) : 날아오르는 게 좋은가, 갈매기여..?
엘리자베트 : 누구.. 당신은-!

토토(죽음) : 폭풍이 부는 밤에도 (언제나) 곁에 있어주지.
엘리자베트 : 나는 이제, 혼자서 날아올라 스스로 자유로워질 거에요~

토토(죽음) : 나만이 (네게) 자유를 줄 수 있어.
엘리자베트 : 당신이, 자유를..?

엘리자베트 : 이제 겨우 내딛기 시작한 나만의 걸음을 방해하지 말아요-
토토(죽음) : 아무리 강하게 거부해 보아도, 언젠간 나를 찾게 될 것을..!

토토(죽음) : 손을 잡고 '나와 함께' 춤추는 거다.
                내가 원하는 때에,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엘리자베트 : 춤추게 된다면,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에도 '나 혼자' 출 거에요~
                 당신 앞에서...

엘리자베트 : 걸어가겠어요,
토토(죽음) : 너에겐 내가 필요한 걸-
엘리자베트 : 혼자서라도...
엘리자베트 : '이제 막 사랑하게 된 인생'을~
토토(죽음) : '이제 곧 증오하게 될 인생'을~

* 내용 순서 & 문맥 맞춘 해설 *

엘리자베트 : 나 혼자 걸어가겠어요.
                 이제 막 '사랑하기 시작한 인생'을~
토토(죽음) : 이제 곧 '증오하게 될 인생'이겠지~


토토(죽음) & 엘리자베트 : 춤춘다면,
                                  내가 고른 '상대'와
                                  춤추고 싶어질 '때'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춤춘다면,
                                  이 세상 끝나는 그 순간에도
                                  오직 한 사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춤춘다면,
                                  그 '모든 것'은 이 내가 (직접) 선택하겠어~

원래 오스트리아 원 버전의 이 노래 '내가 춤추고 싶을 때(Wenn ich tanzen will)'는 4분에 가까운 긴 노래인데(3분 몇십 초), 다카라즈카 버전에 와선 2분 30초 쯤으로 분량이 팍 줄었다. 가사 내용도 좀 다르다. 비록 '엘리자베트' 캐릭터가 비호감이라 이 곡을 통해 저 잘났다고 나대는 게 좀 가증스러워 보이고 거슬리긴 하지만,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씨가 만든 '내가 춤추고 싶을 때(Wenn ich tanzen will)' 오리지널 독일어 가사 자체는 정말 멋지다. 최근에 읽고 있던 책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내용과 미하엘 쿤체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철학적인 부분이 상당히 잘 맞는 것 같다.(인생에 대해 뭔가 통달한 듯 하고 박학다식한 쿤체씨는 역시나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 노래는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 대한 최후 통첩(합방 거부, 편지 사건)으로 시어머니 조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살 수 있게 된 엘리자베트가 요제프 황제와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왕비로 '대관식'을 치른 후 죽음(토트=토토)과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오스트리아 원 버전에서) 엘리자베트는 위대한 승리를 이뤘다고 자축하고('마누라 덕후'인 남편 협박해서 얻어낸 승리인 주제에...;;) 이 때 죽음이 나타나서 '엘리자베트, 그래봤자 넌 내 손아귀에 있어~' 뭐, 이런 뉘앙스로 부르는 듀엣곡이다. 일단은 이 죽음씨가 '승리에 취해 있는 엘리자베트'에게 동조해 준다. 엘리자베트가 "나만이 내가 춤출 때를 정하고, 음악을 고르고.. 그 모든 방식은 오로지 내가 정하겠다~"고 하자, 후렴부에 가서 죽음(Tod)씨가 그 가사를 같이 불러주는 상황..

이 장면에서 오스트리아 & 독일판 '죽음'이 살짝 양보해 주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래두 결국 자기 뜻대로 될 것을 아는 '엘리자베트(Elisabeth)보다 한 수 위인 죽음(Tod)'이다.

우베 크뢰거(토트) & 피아 다우스(엘리자베트) - 내가 춤추길 원할 때

2001' 독일 에센 음반에서의 우베 크뢰거(죽음) & 피아 다우스(엘리자베트) 조합의 'Wenn ich tanzen will(벤 잏 탄전 빌~)'은 정말 듣기 좋았는데, 라이브 버전에서의 '피아 엘리자베트' 음성엔 꽤나 날카롭고 살짝 시끄러운 분위기가 있다. '누가 누가 목소리 더 큰가' 자랑하는 듯한 분위기.. 그나마 우베 크뢰거(Uwe Kroger) 정도 되니까 목소리 크고 기 세어 보이는 피아 다우스(Pia Douwes)와 '포스' 면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대적이 되는 것 같다. 이 원조 주인공인 '피아 다우스의 엘리자베트'가 '올렉 뷘닉의 죽음'과 붙으면 이들의 듀엣곡에서 남자 파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올렉 뷘닉(Olegg Vynnyk)이 이 동네 '죽음'들 중에선 비주얼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노래할 때의 성량은 좀 약한 듯..

우베 크뢰거와 피아 다우스는 미하엘 쿤체 & 실베스터 르베이의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 1992년 빈 초연 주인공들인데, 비교적 최근까지도 독일 쪽에서 공연을 뛰고 있다.(불어권이나 독어권 뮤지컬 배우들은 대체로, 같은 언어권 내에선 국제적으로 노는 경향이 있다.) 1992년 초연 때만 해도 나름 샤방샤방했던 이들(우베 죽음 & 피아 엘리자베트)이었는데, 2000년대의 최근 공연으로 와선 살짝꿍 '중년의 사랑'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뮤지컬용 키스씬 치곤 많이 과하다 싶은 이들의 '마지막 키스 장면'을 보면 정말 그래 보인다..;;



이 곡 '내가 춤추고 싶을 때/내가 춤출 때(Wenn ich tanzen will/私が 踊る 時)'의 오스트리아판과 다카라즈카판은 구체적인 가사 내용 뿐 아니라, 곡의 세부적인 뉘앙스 면에서도 살짝 차이가 있다. 이 노래 마지막 부분(후렴부)은 '죽음'과 '엘리자베트'가 <동일한 가사>로 노래하는데.. 오스트리아판에선 그 '함께 부르는 마지막 가사'가 <엘리자베트의 입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다카라즈카판에선 그 '함께 부르는 마지막 가사'가 <죽음의 입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일어권의 원 버전 <엘리자베트>에선 "내가 춤추고 싶을 때~ 그 모든 는 내가 정하고, 내가 음악을 고르고.."의 가사가 엘리자베트 파트로 먼저 나오고 그걸 '후렴부'에서 죽음도 같이 불러 주지만, 다카라즈카 버전에선 "내가 원하는 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넌 나와 함께 춤추는 거다~" 식으로 그 가사가 죽음의 대사로 먼저 나온 뒤에 '후렴부'에 가선 엘리자베트도 같이 부르는 상황인 것이다.

오스트리아 원판 <엘리자베트>에선 여주인공인 '엘리자베트'가 제 1 주인공이지만, <사랑과 죽음의 론도(愛と 死の 輪舞)>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에선 남자 주인공인 '죽음(토토)'이 제 1 주인공인데다 이 버전의 이야기 자체가 '황천의 제왕 죽음의 오랜 세월에 걸친 러브 스토리'로 각색되어져서..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동일한 곡 안에서도 이런 차이가 벌어지지 않았나 싶다. 

오스트리아 원 버전 <엘리자베트>에선 1막~2막에 걸쳐 '끊임없이 독립을 외치고,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기만 세계를 강조하는 제 1 주인공 엘리자베트'에 치중하고,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에선 '금기의 영역, 자신과는 처지가 다른 한 인간(여성)의 마음을 얻길 갈망하는 이 버전의 제 1 주인공 죽음 캐릭터의 순정적인 사랑'에 치중한다.

그래서 '내가 춤출 때(私が 踊る 時)' 다카라즈카판에선 앞에서 "(목숨이 다 하는 그 순간에도) 나 혼자 춤추겠다~"고 하던 엘리자베트가 곡 후렴부 이중창에 가선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이 세상 끝나는 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춤추겠다)"는, 다소 모순된 대사를 내뱉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춤출 때'  다카라즈카 버전의 후렴부는 오스트리아판처럼 '나 홀로 가겠다는 엘리자베트의 의지를 담은 대사'가 아니라 '사랑에 눈 뜬 죽음(토토)=<사랑과 죽음의 론도>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이 남자 주인공의 심경'을 담은 가사를 엘리자베트도 같이 불러주는 형국이기 때문에...
 
다카라즈카 '내가 춤출 때' 곡 후반부에서 엘리자베트가 '죽음의 의도를 담은 그 대사를 따라하는 것'은 무의식 중에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들었기에 or 사랑에 빠진 황천의 제왕 '죽음(토토 사마)의 주문에 취해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춤춘다'는 그 대사를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는 것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죽음' 캐릭터에 힘을 실어주는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Elisabeth)>의 저런 설정도 마음에 든다. 실제의 역사 속에서나 이 작품 안에서 극강 비호감으로, 정말 '답 안 나오는 이기적이고 얄미운 캐릭터'에 가까운 '엘리자베트'의 심정에 공감하기 보다는 차라리 '가상의 인물'인 '죽음(토트=토토)'씨가 내뱉는 말(대사들)에 공감하거나 '감정 이입'하는 게 내게는 더 쉽기 때문이다..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