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토크

은근히 중독되는 '엘리자베트' 일본 다카라즈카판

타라 2010. 3. 1. 23:07
오스트리아 빈에서 1992년에 초연된 독일어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는 1996년에 일본 다카라즈카판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동네에서 꽤 히트친 모양이다.

다카라즈카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의 가극단이다. 장국영 주연의 영화 <패왕별희>에 나오는 남자들로만 구성된 중국의 경극단에서 '여자 배역도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 공연에선 '극 중 남자 배역을 여자 배우가 연기'한다. 1913년에 만들어져서 1940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뀐 다카라즈카 가극단 공연 작품 중 일본 만화 원작인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유럽에서 건너 온 <엘리자베트>는 대표적인 히트작이다.


이것이 '뮤지컬' 하고는 종류가 좀 다른 '가극' 형식인데다 일본어 특유의 어감 때문에 처음엔 <엘리자베트>의 몇몇 곡을 듣고 식겁한 적이 있는데, 희한하게도 이 '일본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베트>'가 접하면 접할수록 은근한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다카라즈카 엘리자벳'의 그 기괴하고 오묘한 매력이란...


뮤지컬 <엘리자베트>는 실제로 있었던 엘리자베트 황후의 일화에다가 '죽음'이란 캐릭터를 창조하여 극을 이끌어 나간다. 어린 시절 죽을 뻔 했던 엘리자베트를 '죽음의 세계'로 끌고 가지 않고 살려준 '죽음(Tod-독일어로 '토트'라고 발음됨)'이 그 이후로 쭉 그녀의 주변을 맴돌면서 자신이 일찌감치 찜해 놓은 엘리자베트를 '죽음의 세계'로 유혹한다는 내용이다.

그녀 주변 인물들의 죽음엔 이 토트가 관여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여행 중이던 엘리자베트가 무정부주의자인 아나키스트 루케니의 칼에 찔려 죽었을 때(엘리자베트 황후에 관련된 실제의 일화) 내내 인생의 허무감에 시달리던 '엘리자베트'가 죽음의 문턱에서 '토트'와 마음을 나누고 그(죽음)에게서 진정한 안식을 찾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나는 이야기~(뒷부분은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한 내용)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죽음(토트)'은 꽤나 섹시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캐릭터이다.


원래 오스트리아 버전에선 남자 배우가 이 '토트' 역을 연기하는데, 여성 단원들로만 구성된 일본 다카라즈카 공연에선 여배우가 남자 분장을 하고서 '토트' 역을 연기한다. <엘리자베트> 다카라즈카 버전은 일본에서 1996년에 초연된 이래로 1997년, 1998년, 2002년, 2005년, 2007년, 2009년에 배우들 바꿔가며 공연된 바 있다. 개인적으로 '토트
(Tod)' 역으로 2002년 멤버인 '하루노 스미레'의 토트가 제일 마음에 든다. 노래 실력도 괜찮은 편이고, 비주얼도 꽤 양호하다.

<엘리자베트> 다카라즈카판은 오스트리아 원 버전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각색된 모양인데.. 원판에선 당연히 타이틀 롤인 '엘리자베트'의 비중이 제일 크지만, 대체로 남자 역할이 주역이 되는 일본 다카라즈카판에선 '죽음' 캐릭터의 비중이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스토리 또한, '죽음(토트)과 엘리자베트의 금단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졌다. <엘리자베트> 일본 다카라즈카판의 부제는 ''사랑과 죽음의 론도"~ 일본 관객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순정물'스런 내용으로 각색된 듯하다. 그런데, 여배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이 '언니들 버전'에 은근히 설레는 야릇한 기분은 뭘까..?

<엘리자베트> 일본어 버전 노래가 (그 어감 상) 듣기 이상한 곡들도 많지만, 마지막에 엘리자베트와 토트가 함께 부르는 'Der Schleier Fallt
(베일이 벗겨지고..)'는 독일어로 불리워지는 오스트리아 버전보다 일본 다카라즈카 버전이 느낌이 더 나은 것 같다.(뭔가, 몽환적인 느낌)


'편곡 분위기'도 그렇고, 여주인공이 마지막 안식을 찾아가는 부드럽고 달달한 느낌의 노래인데, 다소 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독일어 버전에선 그 곡 자체와의 씽크로율이 그리 좋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각 배우들 노래 스타일이나 음색에 따라 좀 달라지긴 하지만 말이다.) 차라리 일본어 버전이 귀로 듣기엔 더 나은...

<엘리자베트> 마지막 장면(일본 다카라즈카 버전) : 엘리자베트 & 토트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연출된 분위기도 오스트리아 빈판 보다는 일본 다카라즈카 버전이 훨씬 느낌이 좋다. 오스트리아판 DVD에선 딱 보기에도 이모 삘인 '엘리자베트'와 한참 <연하남>으로 보이는 '토트'가 막판에 둘이 막 키스하고 포옹하고 하는데, 보는 입장에선 영 오글거리기만 하고 느낌이 별로더라는...(차라리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진득한 키스는 하지를 말던가.. 이모-조카 or 엄마-아들 삘 나는 배우들의 '키스씬'을 대놓고 연출해 버리면 보기가 좀 그렇다~ ;;) 


그냥 주인공 엘리자베트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토트와 '죽음의 입맞춤' 하는 걸 수도 있겠는데, 그러기엔 키스 자체가 너무 진하고 배우들 표정도 딱 설레하는 삘이라.. 단순히 '죽음을 맞이하는 입맞춤'으로 보여지진 않았다.(연출의 애매모호함?)


실제로 뮤지컬 <엘리자베트
(Elisabeth)> 오스트리아 빈판 DVD에서 '엘리자베트' 역으로 나온 마야 하크포트(Maya Hakvoort)가 '토트(죽음)' 역으로 출연한
마테 카마라스(Mate Kamaras)보다 10살이 많은 연상의 여배우이다. 마테가 역대 '토트' 역 배우들 중에 좀 어린 편에 속하는 것 같은데, 극 중 나이 먹은 엘리자베트와 당췌 늙지 않는 토트와의 막판 포옹씬과 키스씬에서 심한 이질감과 '비주얼의 압박'을 느껴야 했다.

리얼리티를 살려서 '실제 환갑이 넘어 생을 마감한 엘리자베트(Elisabeth)가 말 그대로 죽음을 맞이해서 죽음(토트)과 결합하는 것'이라면 연출을 좀 더 세련되게, (글거리는 키스씬 말고) 색다른 방식으로 했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차라리 '키스'하지 말고, '마지막 춤'이라도 함께 추든가~)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엘리자베트 황후는 당시의 '유럽 황실'에선 꽤 미녀였다고 한다.(유럽 '황실' 내에서만~) 
all 언니들 버전인 이 <엘리자베트> 다카라즈카판에 나오는 역대 '토트(죽음)' 역할의 배우 중에도 매력적인 배우들이 꽤 있지만, 그것과 더불어 '엘리자베트' 역을 맡은 일본 여주인공 중에도 사랑스럽게 보이거나 예쁘장한 배우들이 좀 있어서 그런 점도 약간 마음에 든다. (이 버전 여주인공 치곤 키가 너무 커 보이는 등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들은 대체로 키도 적당하고 얼굴이 작고 날씬해서 '여성스런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병약하고, 심약하고, 예민해서 황실 생활에 잘 적응 못하는 인물>이라는 해당 '캐릭터의 특징'에 그럭저럭 잘 들어맞는...



하루노 스미레
(春野寿美礼)가 '토트' 역을 맡은 2002년엔 오오토리 레이(大鳥れい)란 배우가 '엘리자베트' 역을 맡았다. 뮤지컬과는 좀 다른 성격을 지닌 다카라즈카의 그 오묘한 매력에 중독된 이들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여배우가 극 중 남자 배역으로 분장하여 연기를 펼쳐 보이는 등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아름다운 꽃미남, 완벽한 남장 여인이 등장하는 다카라즈카'는 문화에 있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처럼 무척 신선한 매력이 있다.

같은 작품이지만 '원 버전(오스트리아 빈판)의 뮤지컬 <엘리자베트>와는 달리 일본 주요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서 색다른 각색과 연출을 가한 다카라즈카 버전 <엘리자베트>'에도, 독일어 원판과는 또 다른 느낌의 오묘한 미덕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