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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큰놈이를 굳이 패륜아로 만든 이유는?

타라 2010. 2. 6. 19:12
수목극 <추노>는 꽤 재미난 드라마이다. 볼거리도 있고, 스토리 자체도 어떤 회에선 굉장히 흥미진진해서 '시청률 잘 나올 만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 금주에 방영된 9회는 좀 루즈하게 느껴졌지만, 10회는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하지만 '재미'는 있었으되 <추노> 10회 방영분에선 다소 생뚱맞은 구석도 눈에 띄었다. 그 중 가장 큰 인상을 남긴 대목은 '죽기 전에 보인 큰놈이의 행동'이다.

스스로 '죄없는 자기 동생을 죽이려 한 비정한 형'임을 인증한 큰놈이의 생뚱맞은 행보

불편하고 요상한 형제 관계 : "내가 니 형이다~"

현재 <추노>의 전반적인 인물 관계나 향후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성 설정들을 미리 읽어보지 않고 '미지의 상태'에서 시청하고 있는데, 10회에 나온 언년이 오빠 큰놈이(조재완)가 밝힌 '출생의 비밀' 에피소드는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굳이 그런 설정이 불가피하게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현재 드러난 설정대로라면, '대길(장혁)의 배 다른 형'이자 '언년이(이다해)의 씨 다른 오빠'인 큰놈이=김성환(조재완)은 자기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과 피가 섞인 남동생을 2번 씩이나 죽이려 했던 <패륜아>이자 <비정한 형>이 된다.

이 내용이 나오기 이전에도 큰놈이가 죄 없는 대길을 죽이려 했던 것에 대한 '당위성'이 좀 부족했지만, 막상 10회에서 '대길과 큰놈이에 얽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나니 <과거 시점에 '큰놈이가 대길에게 저질렀던 일'에 대한 그럴듯한 당위성이나 개연성>이 더더욱 부족해진 양상이다.

'큰놈이에 얽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상태에서, 원래 주인집 도령이었던 양반 출신 대길(장혁)과 그 집 노비였던 큰놈이(조재완) & 언년이(이다해) 남매에 얽힌 그들의 복잡한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 대길과 언년이는 혈연 관계일까, 아닐까?
: 드라마 <추노> 속 대길-큰놈이-언년이의 가족 관계 ]


그들의 구체적인 혈연 관계를 잘 살펴보면, 이 극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설정된 대길(장혁)과 언년이(이다해)의 애정 관계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기 때문이다. 이 극 속에서 '중간에 낀 큰놈이(조재완)'의 경우가 문제 되는 것이지, '대길'과 '언년이'의 경우엔 <서로 배도 다르고, 씨도 다른 '완벽한 다른 핏줄'에 해당하는 경우>인 것이다..

양 쪽 집안의 '중간에 끼어있는 자녀'가 살아있고, 그 아래 '2세'가 태어나야 문제 되는 관계

하지만 이 커플이 만약에 혼인을 했을 땐 문제가 달라진다. 중간에 '대길이의 배 다른 형'이자, '언년이의 씨 다른 오빠'인 큰놈이(대길이 아빠가 노비랑 바람 피워서 낳은 자식)가 끼어있기 때문이다. 그랬을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만약에 대길이와 언년이가 혼인해서 자식을 낳았을 때, 그 자식이 큰놈이에 대한 호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허나 이 드라마 10회에서 큰놈이(조재완)는 대길의 칼로 자결하였고, 그의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기에, 대길과 큰놈 & 언년 집안 간의 이런 식의 복잡한 가계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전반적인 극의 정서상 <추노>의 대길(장혁)과 언년이(이다해)가 정상적으로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살아가는.. 그런 식으로 스토리가 흘러갈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드라마 <추노> 10회에 등장한 '큰놈이는 대길이 아빠가 노비를 건드려서 낳은 자식이고, 대길과 큰놈이는 알고 보면 배 다른 형제'라는 '출생의 비밀' 설정은 대길(장혁)이나 언년이(이다해)의 문제와는 전혀 무관한 <큰놈이 본인의 문제일 뿐>인 설정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문제의 큰놈이'는 10회에서 꼴까닥~하고 죽어 버렸으니.. 드라마 <추노>에서, 극의 '앞으로의 흐름'에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도 않은 그 '출생의 비밀' 설정이 뜬금없이 왜 나왔는지 다소 생뚱맞을 따름이다. 만일 '당시의 조선 시대에는 양반이 노비를 건드려서 씨를 퍼트리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식의 일화를 묘사하고 싶었던 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씨 다른 여동생'과는 달리, '배 다른 남동생'에겐 너무 가혹했던 큰놈이 형님~

'여동생'을 살리기 위한 큰놈이 오빠의 눈물 겨운 사랑, but '남동생'에겐..

'안 그래도 언년 & 태하의 결합 소식을 듣고 처참한 기분을 느꼈을 대길이의 처절함을 더더욱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는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설정 때문에 괜시리 먼저 간 '큰놈이 캐릭터'만 하차 직전에 막 나가는 패륜아가 되어 버렸다. 대길의 가족에겐 원수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자기 식구인 여동생에 대한 가족애가 깊었던 인물이다.

무엇보다, '자신과 피가 섞인 친아버지와 남동생'을 향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한 큰놈이(조재완)의 과거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당위성'이 있는지도 좀 의문이 든다는 것-

극 중 큰놈이의 입장에서 보면 '반 쪽짜리 형제'인 대길(장혁)의 경우처럼 언년이(이다해) 역시 '엄마 아빠 동일한 퍼펙트 오리지널 남매'가 아닌, '엄마만 같고 아빠는 다른 반 쪽짜리 남매'일 뿐이다. 단.. 둘 다 피는 섞였지만 '한 쪽은 가족을 이뤄서 같이 자랐고, 한 쪽은 같이 안 자랐고~'그 차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핏줄은 핏줄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추노> 10회에서 큰놈이(조재완)는 '아우'라는 친근한 멘트까지 써 가며 자신의 배다른 동생인 대길(장혁)에게 자신의 또 다른 동생인 언년이(이다해)를 더 이상 쫓지 말라는 부탁을 한 것이 아니던가-

이 시점에서.. 과거의 '화재 사건'에서도 그렇고, 10회에 나온 '큰놈이의 출생의 비밀 폭로' 이후 좀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있다. 알고 봤더니 그렇게 똑같이 '반 쪽짜리 동생'이었는데, 큰놈이(조재완)는 왜 자신의 <씨 다른 여동생>만 애지중지하고 <배 다른 남동생>에겐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보다 더 못할 정도로 잔혹하게 대했냐는 것이다. 직접 나서서, 엄한 자기 동생 대길(장혁)의 목숨까지 위협해 가면서 말이다..

과거에 막 나갔던 그 남자 : 자기 가족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피가 섞인 가족을 살해하다?


최근 회에서의 '출생의 비밀'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이 극의 큰놈이는 자신의 '반 쪽 짜리 씨 다른 여동생'을 살려달란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자신을 이 세상에 있게 한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집에 불 싸지르고, 자신의 또 다른 '반 쪽짜리 배 다른 형제'에게 낫으로 상해를 입히고 불구덩이 속에 방치하는 등 자기 남동생에게도 간접적 살인을 저지른 것이 된다.


큰놈이 입장에선 가족을 이뤄서 같이 자란 여동생 언년이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기 가족을 살리기 위해 또 하나의 핏줄인 자기 생부(친아버지)를 그 자식이 직접 나서서 죽이고, 아무 죄 없는 친동생까지 죽이려 했던 행동>은 어딘지 많이 오버스럽게 느껴진다. 대놓고 장르가 '막장 드라마'인 TV극에서도, 피가 섞인 형이나 언니가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어른'들에게 앙심을 품기는 해도 '죄없는 동생'에게까지 앙심을 품고 그를 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한국인들의 정서엔 다소 맞지 않는 '아들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낫 휘두르며 죽이고, 형이 크게 저지른 죄도 없는 자기 친동생까지 2번 씩이나 죽이려고 했던 막 나가는 패륜적 설정'이란 무리수를 둬 가면서까지, 드라마 <추노>의 향후 스토리 전개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지도 않은 '대길 집안과 큰놈이에 얽힌 출생의 비밀'이 굳이 등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인물의 행위에 대한 동기를 모호하게 만들고,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몰고 간 의미 없는 설정

이 '큰놈이'란 인물이 계속 살아서 대길(장혁)과 언년이(이다해)의 향후 관계에 어떤 식으로든 방해를 하거나 영향을 끼치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10회에서 죽어 버렸기 때문에 그가 밝힌 '출생의 비밀' 코드 자체는 그저 <1회성 이벤트>에 그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서.. 큰놈이가 정말 사랑하는 자기 여동생을 살리고 싶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언년이를 탈출시켜서 그냥 둘이 같이 도망만 쳐도 되지 않았을까? 그 집 주인 양반이 남이 아니라 자신의 '친아버지'이고, 그 집안에 '피가 섞인 남동생'이 있는 이상, 큰놈이가 그 가족들을 향해 '극단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무리수는 두지 않고서 말이다..


결과적으론, 그 '화재 사건' 이후로 큰놈이 캐릭터가 홧김에 막 나가도 너무 막 나가서 <자기 남동생을 불구덩이 속에 던져놓고, 친아버지를 살해한 '패륜남'이 되어 버리고.. 말로는 '아우' 어쩌고 했지만, 딱히 안 밝혀도 대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출생의 비밀'을 꾸역꾸역 밝히고 떠나서 괜시리 아우 대길에게 '마음의 짐'만 더 얹어놓는 비정한 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추노>라는 드라마에서 그 시대 때 존재했던 그런 류의 '출생의 비밀' 에피소드를 그리려 했다면 '큰놈이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 그 에피소드를 부여하거나, 굳이 큰놈이에게 대입하려 했다면 <큰놈이와 대길이의 과거 시점에서의 관계 묘사나 사건 묘사>에 더 공을 들였어야 했다.

엄연히 자기 동생임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죄 없는 동생을 2번 씩이나 죽이려 했던 형?

과거의 큰놈이는 굳이 대길이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음에도 (보는 입장에서, 그 인물이 정말 그런 행동을 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뚜렷한 동기 없이) 대길에게 직접 낫을 휘두르며 그를 죽이려 했다. 그 때 당시.. 정작 언년이의 목숨을 위협한 것은 그 집안의 다른 사람들이고, 대길이 그런 상황을 원한 건 아니었음에도 '엄한 사람'에게 불똥이 튄 것이다. 것두, 죄없는 자기 핏줄에게...

그 내용이 나온 극 초반에도 이미 해당 설정에 대한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현재 드러난 대로 <대길(장혁)이 큰놈이(조재완)의 동생이었고, 당시의 큰놈이는 대길이가 자기 동생임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일을 저지른 거라면 더더욱 '큰놈이의 그 행위'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져 버린다.

극 중 대길과 큰놈이 <생판 남>이어도 과거의 큰놈이가 대길에게 저지른 그 '불합리하고 잔인한 짓'이 상식적인 수준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거기에다가 '출생의 비밀'을 덧붙여 <둘이 알고 보니 '배다른 형제'이고, 그 사실을 '큰놈이가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일을 저지른 설정>이라면 '엄한 남동생에게 그런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큰놈이의 그 행동'이 더더욱 뜨악스러운 짓이 되어 버리고, 그 캐릭터 자체가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수준의 인물'로 받아들여지긴 좀 곤란하지 않나 싶다.

이 극에서 만일 그 '출생의 비밀' 설정이 없었거나, 있어도 '예전에 오버스런 살인 사건을 벌인 큰놈이'가 아닌 '다른 등장 인물'에게 부가된 설정이었다면 <대길과 언년이의 관계에 혼선을 빚어내거나, 과거 행위의 당사자였던 큰놈이 캐릭터가 졸지에 '낳아 준 아버지를 해하고, 죄 없는 자기 동생을 2번 씩이나 죽이려 했던 패륜적 인물'로 전락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