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극 '해를 품은 달'은 현재 생방송 모드로 진행 중인 드라마이다. 그 영향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다음 회 예고편을 잘 보여주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엔 엄청난 분량에 달하는 이 드라마 시놉시스가 유출되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 일 때문에 극의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 변경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랬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해를 품은 달> 시놉시스를 볼 수는 있었지만 보지 않았기에 어느 쪽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상관없으며, 그저 '재미'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허나 'TV 드라마'도 시대에 관계없이 '현실 속에서의 사람들이 겪음직한(겪었음직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기에 그에 따른 '개연성'은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해를 품은 달> 10회 내용을 보면서 거기에 약간의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훤(김수현) 입장에서 '연우 오빠 허염(송재희)이 뒤늦게 전해 준 그녀의 서찰'을 계기로 옛날 연우의 편지(13세의 연우가 쓴 편지)와 최근 연우=월(한가인)이 쓴 편지(21세의 연우가 쓴 편지)의 '서체'를 비교해 본다는 대목은 나름 극적이었고 무척 각색이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로 하여금 '사람이 13살 무렵에 사용하던 서체와 21살에 사용하게 되는 서체가 같을 수 있나?'란 의문을 품게 만든 것이다.
어차피 드라마(or 소설)란 것도 받아들이는 사람들 개개인(독자나 시청자들)의 사전 지식이나 경험치에 의해 그 느낌이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 임상적 경험으론, 그것이 '동일 인물'이어도 13세(요즘 기준에서 초딩) 여자애와 21세(대딩) 성인의 '글씨체'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난 아직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손 편지를 박스에 넣어 간직하고 있는데, 그 중엔 중학교 1학년(14세) 때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20세 넘어서까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편지 서체를 비교해 보면,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을 건너오며 '서체'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물론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미묘하게 또 다르기도 하다..)
내 개인의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13세(초딩 6학년) 때 이후 '이 버전 저 버전' 실험해 보면서 20세 성인이 되어 '한 가지 스타일'로 굳어지기까지 <글씨체>에 있어 <여러 단계의 변화>가 있었다. 주변에서 관찰한 다른 사람들 역시 그 단계를 거치는 것 같았다. 헌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선 '13살 짜리 여자애의 글씨체'와 '21살 성인의 글씨체'를 비교하여 '동일 인물'임을 추정하는 내용이 나오니 '저게 말이 되나?'싶을 수밖에... 물론 자세한 극 전개는 다음 주 되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운(송재림)이 염이네 집에서 어린 연우의 서체를 접하는 내용이 나온 걸로 봐서 이 설정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한글'과 '한자'의 차이인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예전에 '조선 왕들의 어필'에 관한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특정 왕의 경우 '어린 시절의 서체'와 '성인이 된 이후의 서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소설 &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나오는 '연우'란 아이는 워낙에 특이한 애여서 13살 때 이미 '완성된(?) 버전의 서체'를 갖게 되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두 기억까지 잃었는데 웬만하면 13세→21세 되기까지의 8년 동안 '글씨체' 정도는 조금 달라지는 게 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연우의 서체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눈물 흘리던 훤의 장면 역시 내겐 다소 갸우뚱하게 느껴진 장면이었다. 그 대사를 듣는 순간 '왜, 너두 단기 기억 상실이냐..? 아님, 겉으론 똑똑한 척 하지만 알고 보면 기억력이 나쁜 거냐?' 하는 생각이 올라왔던... 뇌의 작용에 영향 받는 '기억'이란 것은 본인이 떠올리고 싶다고 해서 떠올려지고, 떠올리기 싫다고 해서 안 떠올려지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게 본인의 의지대로 가능하다면 세상에 괴로울 사람 아무도 없고 암기 과목 때문에 시험 망치는 학생도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기억력이 더 좋고 나쁘고..' 그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기억'이란 건 그 사람의 선택이랑 관계없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 안 나거나 or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기억나거나> 하는 그런 성질의 것- 우리가 어렸을 때 구구단을 외웠기 때문에, 현재 수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도 '육 칠이 사십 이, 구 구 팔십 일' 정도는 계산 안해봐도 그냥 바로 '기억나는 것'과 같은 이치인... 스물 일곱 살짜리 친척의 얼굴을 7년 만에 보는 것이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줄 바로 알아보는 것과 같은 그런 게 아닐까 한다. '나와 친한(or 친했던) 사람의 필체' 역시 '사람 얼굴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고유성'을 분명 갖고 있다.
보통은 '13살 짜리 아이'와 '21살 성인'의 글씨체가 다르지만, 만일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연우처럼) 10대 초반 때와 20대 초반 때의 서체가 변함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 쳤을 때 <그와 한 때 편지를 주고 받은 이력이 있으며, 그 무엇보다 그 상대를 특별하게 여겼던 사람>이라면 8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 '서체'를 '(이미 몸으로 눈으로 익혔기에)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게 난 '일반적인 경우'라 생각한다.
아.. 물론, 그것 또한 나의 임상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실제적인 '경험=(머릿 속에서 만들어진 상상이나 픽션 아닌) 현실'인지라 이건 중요한 대목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완성된 그 사람만의 서체'일 경우, 특정한 어떤 사람과 친했던 몇몇 주변인들이라면 '8년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딱 보면 그게 <그 사람 고유의 글씨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글로썬 더 효과적으로 설명이 안되는데.. 어쨌든, 이런 경우 '상대방의 글씨체'를 못 알아보는 게 더 신기한 것 같다.)
단순 지인 아닌 이성 관계로 엮여 있었던 사람의 경우 더 잘 알아볼 수 있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반적인 경우가 그러한데.. 이 극에 나오는 '연우'는 13세 때부터 워낙에 서체가 수려한 경우여서 더더욱 임팩트가 큰데다, 남들이 다 잊으라 잊으라 해도 훤(김수현)이 내내 못 잊고 있던 그의 마음 속 연인임에도 그런 이의 서체를 몇 년 흘렀다고 대번에 못 알아봤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한 30~40년 정도 흘렀으면 모를까, 이 극의 '훤'처럼 '영민'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나름 IQ랄까 기억력이 좋을 것이고, 그럴 경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한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기억'이 비교적 오래 가는 편이다.. 겨우 8년 지났다고, 편지로 한 때 접해본 적 있는 '내게 특별했던 어떤 사람의 서체(글씨체)'가 지우개로 지우듯 기억에서 싹 지워지거나 '생각 안나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니란 거다- 떠올리려는 어떤 '의도'를 갖기 전에 '그냥' 알아차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에...
내가 '멘사 회원'은 아니지만, 8년도 훨씬 전에 손 편지 끊어진 친한 친구가 내게 다시 문자나 이메일이 아닌 '손편지'를 해온다면 딱히 이름을 안 적더라도 누가 쓴 편지인지 서체(편지 겉봉투)만 보구서도 대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쪽에서 의도적으로 서체를 바꿔 써서 보낸 게 아니라면 말이다..
사람 '얼굴 생김새'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한 번 굳어진 그 사람만의 '서체(글씨체)'에도 나름의 고유성이 있어서인지, (윗 단락에선 '친한 친구'라고 했지만) 딱히 안 친하고 그냥 좀 알고 지낸 몇몇 과거 지인들의 글씨체도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예전에 잠깐 알고 지냈던 '독특한(혹은 어떤 류의 분위기나 모양을 지닌) 글씨체의 사람'과 동일한 느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서체를 최근에 발견하게 되었다면, 딱히 두 메모지(or 편지)를 들고 와 비교해 보지 않더라도 '어? 이건 그 때 그 사람 글씨체랑 비슷하네~' 하고 바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거듭 말하지만, 난 멘사 회원 절대 아님~ 그냥 보통 사람임)
이 극의 흐름이 더 <개연성> 있어질려면, 훤(김수현)이 화각함 가져오게 하여 '어린 연우'와 성인 연우'의 편지를 직접 비교해 본 뒤에 놀라거나 둘이 '동일 인물'임을 의심하기 보다는 성인 연우=월(한가인)의 편지를 처음 읽고서 상선 내관 형선(정은표)이 옆에서 "무녀가 한자를 아는 것이 신기하고.." 어쩌고 하며 옛기억 떠올리게 만들었을 때 바로 의심해 보는 설정으로 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변함없는 그 사람의 글씨체'였을 경우, 아주 주의력이 없거나 기억력 나쁜 사람 아니고서야 '한 때 나와 각별한 사이였거나 친했던 지인의 서체(글씨체)' 정도는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으니...
스토리 자체는 나름 재미있었지만 <해를 품은 달> 10회를 통해 '주인공 여자의 13세 때의 글씨체와 21세가 된 현재 시점의 글씨체가 같다'고 설정된 대목이라든가(아직 둘의 '글씨체가 같다'고 특정인이 언급하는 그 내용까진 나오지 않았지만, 만일 글씨체가 같은 게 아니라면 훤이 그리 놀란 표정을 지었을리 없을테니..), 굳이 두 서체가 '같다'면 그 '같음'을 훤이 '성인 연우=월의 서찰'을 맨 처음 접했을 때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어린 연우와 성인 연우의 편지를 굳이 직접 비교'해 보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아둔함을 보였던 대목은 극의 긴박한 흐름과는 달리 '실질적인 개연성'에 의문을 품게 한 장면이었다.
아직까지도 연우를 향해 '내가 어찌 너를 잊을 수 있겠느냐~' 하고 있는 훤(김수현)이 어떻게 '궐에 드나드는 대신 1, 2, 3...'도 아닌 '정인(情人) 연우 고유의 서체'를 벌써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지..! 물론 '애초에 그녀가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으니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훤 입장에서 둘(연우와 월)이 '동일 인물'임을 의심하는 듯한 장면이 나왔으니, 그런 류의 '죽은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서체에서 놀라거나 의심하는 설정'이 나온 이상(극 흐름상 '어차피 하게 될 의심'이라면) '그 의심 or 놀라움'은 '월의 편지(반성문)를 처음 접한 시점'에서 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고 개연성 있다 생각한다.
현재 상황에선, 다음 주에 방영될 <해를 품은 달> 11회 내용을 통해 '두 편지(어린 여우 & 성인 연우의 편지)의 서체'를 비교해 본 훤(김수현)이 '에잇.. 같지 않잖아~ 저 여인은 연우가 아니다!'라며 실망한다거나, 훤이 <(세상 그 누구보다 특별했을) 연우의 서체를 대번에 기억해내지 못하였던 이유>로 그가 연우의 죽음 소식 이후 '충격' 심하게 받아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던 거란 설정이 나오면 그나마 극 내용이 조금은 더 개연성 있게 느껴질까? (아님.. 알고 보면, 훤이 '주의력이나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은 왕'이라거나, 극 중 연우란 아이의 서체는 조선 팔도 내에 '비슷한 서체'를 구사하는 이가 많을 정도로 '너무나 흔한 글씨체'여서 별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뭐 그런 설정이라면?)
수목 드라마 <해를 품은 달> 9~10회 한 줄 감상 : 이 극의 부제는 김유정의 '나만 연우다'~?
아련한 '첫사랑의 이미지'이자 '속 깊고 배려심 깊은 처자'처럼 보이기는 커녕, 여전히 왕 앞에서 '당돌하고 오만방자한 위풍당당 땡글 장군 포스'의 한가인은 좀 더 분발을...
개인적으로 <해를 품은 달> 시놉시스를 볼 수는 있었지만 보지 않았기에 어느 쪽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상관없으며, 그저 '재미'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허나 'TV 드라마'도 시대에 관계없이 '현실 속에서의 사람들이 겪음직한(겪었음직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기에 그에 따른 '개연성'은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해를 품은 달> 10회 내용을 보면서 거기에 약간의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훤(김수현) 입장에서 '연우 오빠 허염(송재희)이 뒤늦게 전해 준 그녀의 서찰'을 계기로 옛날 연우의 편지(13세의 연우가 쓴 편지)와 최근 연우=월(한가인)이 쓴 편지(21세의 연우가 쓴 편지)의 '서체'를 비교해 본다는 대목은 나름 극적이었고 무척 각색이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로 하여금 '사람이 13살 무렵에 사용하던 서체와 21살에 사용하게 되는 서체가 같을 수 있나?'란 의문을 품게 만든 것이다.
훤을 만나러 온 염(연우 오빠) : 이 안에 '연우 편지' 있다
난 아직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손 편지를 박스에 넣어 간직하고 있는데, 그 중엔 중학교 1학년(14세) 때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20세 넘어서까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편지 서체를 비교해 보면,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을 건너오며 '서체'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물론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미묘하게 또 다르기도 하다..)
내 개인의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13세(초딩 6학년) 때 이후 '이 버전 저 버전' 실험해 보면서 20세 성인이 되어 '한 가지 스타일'로 굳어지기까지 <글씨체>에 있어 <여러 단계의 변화>가 있었다. 주변에서 관찰한 다른 사람들 역시 그 단계를 거치는 것 같았다. 헌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선 '13살 짜리 여자애의 글씨체'와 '21살 성인의 글씨체'를 비교하여 '동일 인물'임을 추정하는 내용이 나오니 '저게 말이 되나?'싶을 수밖에... 물론 자세한 극 전개는 다음 주 되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운(송재림)이 염이네 집에서 어린 연우의 서체를 접하는 내용이 나온 걸로 봐서 이 설정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한글'과 '한자'의 차이인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예전에 '조선 왕들의 어필'에 관한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특정 왕의 경우 '어린 시절의 서체'와 '성인이 된 이후의 서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소설 &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나오는 '연우'란 아이는 워낙에 특이한 애여서 13살 때 이미 '완성된(?) 버전의 서체'를 갖게 되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두 기억까지 잃었는데 웬만하면 13세→21세 되기까지의 8년 동안 '글씨체' 정도는 조금 달라지는 게 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연우의 서체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눈물 흘리던 훤의 장면 역시 내겐 다소 갸우뚱하게 느껴진 장면이었다. 그 대사를 듣는 순간 '왜, 너두 단기 기억 상실이냐..? 아님, 겉으론 똑똑한 척 하지만 알고 보면 기억력이 나쁜 거냐?' 하는 생각이 올라왔던... 뇌의 작용에 영향 받는 '기억'이란 것은 본인이 떠올리고 싶다고 해서 떠올려지고, 떠올리기 싫다고 해서 안 떠올려지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게 본인의 의지대로 가능하다면 세상에 괴로울 사람 아무도 없고 암기 과목 때문에 시험 망치는 학생도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기억력이 더 좋고 나쁘고..' 그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기억'이란 건 그 사람의 선택이랑 관계없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 안 나거나 or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기억나거나> 하는 그런 성질의 것- 우리가 어렸을 때 구구단을 외웠기 때문에, 현재 수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도 '육 칠이 사십 이, 구 구 팔십 일' 정도는 계산 안해봐도 그냥 바로 '기억나는 것'과 같은 이치인... 스물 일곱 살짜리 친척의 얼굴을 7년 만에 보는 것이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줄 바로 알아보는 것과 같은 그런 게 아닐까 한다. '나와 친한(or 친했던) 사람의 필체' 역시 '사람 얼굴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고유성'을 분명 갖고 있다.
보통은 '13살 짜리 아이'와 '21살 성인'의 글씨체가 다르지만, 만일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연우처럼) 10대 초반 때와 20대 초반 때의 서체가 변함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 쳤을 때 <그와 한 때 편지를 주고 받은 이력이 있으며, 그 무엇보다 그 상대를 특별하게 여겼던 사람>이라면 8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 '서체'를 '(이미 몸으로 눈으로 익혔기에)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게 난 '일반적인 경우'라 생각한다.
아.. 물론, 그것 또한 나의 임상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실제적인 '경험=(머릿 속에서 만들어진 상상이나 픽션 아닌) 현실'인지라 이건 중요한 대목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완성된 그 사람만의 서체'일 경우, 특정한 어떤 사람과 친했던 몇몇 주변인들이라면 '8년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딱 보면 그게 <그 사람 고유의 글씨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글로썬 더 효과적으로 설명이 안되는데.. 어쨌든, 이런 경우 '상대방의 글씨체'를 못 알아보는 게 더 신기한 것 같다.)
단순 지인 아닌 이성 관계로 엮여 있었던 사람의 경우 더 잘 알아볼 수 있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반적인 경우가 그러한데.. 이 극에 나오는 '연우'는 13세 때부터 워낙에 서체가 수려한 경우여서 더더욱 임팩트가 큰데다, 남들이 다 잊으라 잊으라 해도 훤(김수현)이 내내 못 잊고 있던 그의 마음 속 연인임에도 그런 이의 서체를 몇 년 흘렀다고 대번에 못 알아봤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훤 :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연우의 '서체'가.. 기억이 나질 않아~(아니, 그게 왜..! 혹시.. 저용량 브레인인 거니? 아님, 심한 정신적 충격에 의한 단기 기억 상실?)
내가 '멘사 회원'은 아니지만, 8년도 훨씬 전에 손 편지 끊어진 친한 친구가 내게 다시 문자나 이메일이 아닌 '손편지'를 해온다면 딱히 이름을 안 적더라도 누가 쓴 편지인지 서체(편지 겉봉투)만 보구서도 대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쪽에서 의도적으로 서체를 바꿔 써서 보낸 게 아니라면 말이다..
사람 '얼굴 생김새'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한 번 굳어진 그 사람만의 '서체(글씨체)'에도 나름의 고유성이 있어서인지, (윗 단락에선 '친한 친구'라고 했지만) 딱히 안 친하고 그냥 좀 알고 지낸 몇몇 과거 지인들의 글씨체도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예전에 잠깐 알고 지냈던 '독특한(혹은 어떤 류의 분위기나 모양을 지닌) 글씨체의 사람'과 동일한 느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서체를 최근에 발견하게 되었다면, 딱히 두 메모지(or 편지)를 들고 와 비교해 보지 않더라도 '어? 이건 그 때 그 사람 글씨체랑 비슷하네~' 하고 바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거듭 말하지만, 난 멘사 회원 절대 아님~ 그냥 보통 사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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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의 흐름이 더 <개연성> 있어질려면, 훤(김수현)이 화각함 가져오게 하여 '어린 연우'와 성인 연우'의 편지를 직접 비교해 본 뒤에 놀라거나 둘이 '동일 인물'임을 의심하기 보다는 성인 연우=월(한가인)의 편지를 처음 읽고서 상선 내관 형선(정은표)이 옆에서 "무녀가 한자를 아는 것이 신기하고.." 어쩌고 하며 옛기억 떠올리게 만들었을 때 바로 의심해 보는 설정으로 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변함없는 그 사람의 글씨체'였을 경우, 아주 주의력이 없거나 기억력 나쁜 사람 아니고서야 '한 때 나와 각별한 사이였거나 친했던 지인의 서체(글씨체)' 정도는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으니...
스토리 자체는 나름 재미있었지만 <해를 품은 달> 10회를 통해 '주인공 여자의 13세 때의 글씨체와 21세가 된 현재 시점의 글씨체가 같다'고 설정된 대목이라든가(아직 둘의 '글씨체가 같다'고 특정인이 언급하는 그 내용까진 나오지 않았지만, 만일 글씨체가 같은 게 아니라면 훤이 그리 놀란 표정을 지었을리 없을테니..), 굳이 두 서체가 '같다'면 그 '같음'을 훤이 '성인 연우=월의 서찰'을 맨 처음 접했을 때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어린 연우와 성인 연우의 편지를 굳이 직접 비교'해 보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아둔함을 보였던 대목은 극의 긴박한 흐름과는 달리 '실질적인 개연성'에 의문을 품게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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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의심 : 한 때 연모했던 이성의 서체다. 그걸 꼭 '직접 비교' 해봐야 알아차릴 수 있나? ;;
아직까지도 연우를 향해 '내가 어찌 너를 잊을 수 있겠느냐~' 하고 있는 훤(김수현)이 어떻게 '궐에 드나드는 대신 1, 2, 3...'도 아닌 '정인(情人) 연우 고유의 서체'를 벌써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지..! 물론 '애초에 그녀가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으니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훤 입장에서 둘(연우와 월)이 '동일 인물'임을 의심하는 듯한 장면이 나왔으니, 그런 류의 '죽은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서체에서 놀라거나 의심하는 설정'이 나온 이상(극 흐름상 '어차피 하게 될 의심'이라면) '그 의심 or 놀라움'은 '월의 편지(반성문)를 처음 접한 시점'에서 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고 개연성 있다 생각한다.
현재 상황에선, 다음 주에 방영될 <해를 품은 달> 11회 내용을 통해 '두 편지(어린 여우 & 성인 연우의 편지)의 서체'를 비교해 본 훤(김수현)이 '에잇.. 같지 않잖아~ 저 여인은 연우가 아니다!'라며 실망한다거나, 훤이 <(세상 그 누구보다 특별했을) 연우의 서체를 대번에 기억해내지 못하였던 이유>로 그가 연우의 죽음 소식 이후 '충격' 심하게 받아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던 거란 설정이 나오면 그나마 극 내용이 조금은 더 개연성 있게 느껴질까? (아님.. 알고 보면, 훤이 '주의력이나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은 왕'이라거나, 극 중 연우란 아이의 서체는 조선 팔도 내에 '비슷한 서체'를 구사하는 이가 많을 정도로 '너무나 흔한 글씨체'여서 별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뭐 그런 설정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