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비교적 최근엔, 우리 나라에서 이 인물과 관련하여 영화 '미인도'와 별도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 같은 극이 나오기도 했었다. 김민선(개명 이름 김규리)과 문근영이 각각 '신윤복' 역을 연기하였다.
해당 극 안에선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아서 베일에 가려져 있는 조선 시대 화가 신윤복'이 '여자였을 수도 있다..'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풀어 나갔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특정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픽션(창작된 내용)에 불과하다. 실제로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근거는 없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활약했던 신윤복(申潤福)은 주로 '양반 사회의 풍류 생활'과 '기녀'를 소재로 한 그림 & '남녀 간의 애정'을 묘사한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김홍도가 '배경을 생략한 간결한 필치'를 구사한 것에 반해 신윤복의 경우 '산수를 배경으로 한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를 주로 구사하였다. 같은 '풍속화'일지라도,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대조해 보면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신윤복의 대표작으로 미인도(美人圖), 무무도(巫舞圖), 단오도(端午圖)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시대에 다른 화가들도 '미인도'를 종종 그렸으나, 그 중에서도 신윤복의 '미인도'는 한 때 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을 만큼 무척이나 유명하다. 전반적으로 그의 '생애'에 관해선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으로서 한 때 벼슬이 첨절제사(僉節制使)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만이 알려졌을 따름이다.
그로 인해, 오늘날의 여러 작가들이 '혜원 신윤복'을 '여성'으로 둔갑시켜 극을 펼쳐 나가는 파격적(?)인 실험 정신을 발휘한 게 아닐까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어린 학생들 중엔 종종 "조선 시대 화가인 신윤복은 여자야~" 하고 주장하는 애들도 있다고 하는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 안에 나온 실존 인물'이 극 내용과 같을 거라 생각하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옛 화가들이 남긴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그 이전까지만 해도 서민층 사람(일반 민중)들이 '회화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조선 후기에 와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활약으로 서민들도 당당히 회화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이 주로 그렸던 조선 시대 '풍속화'는 영조, 정조 시대를 거쳐 순조에 이르기까지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스승과 제자로 나왔던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은 조선 후기 '풍속화'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역동적이면서도 친근한 풍의 풍속화를 많이 남긴 김홍도는 18세기 중반~19세기 초까지 활동하였고, 신윤복은 18세기 후반 무렵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특유의 화풍을 구사한 김홍도는 후대의 여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바람의 화원>과 같은 드라마에서도 묘사되었듯 '활약하는 기간'이 겹쳤던 그 두 화가는 때로 비슷한 소재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묘하게 '화면 구성이나 전반적인 색감 & 인물 묘사에 대한 방식'에서 큰 차이가 나는 등 각자의 개성이 확연하게 갈리는 편이다.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 뭔가 도회적이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김홍도 풍속화에선 왠지 모를 구수함이 느껴지고, 그러면서 그림 속 인물에게서 큰 생동감을 발견할 수 있다. 산수화에선 신윤복이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혜원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月下情人)' 같은 그림에선 특유의 낭만이 느껴지기도 하여 인상적이었는데, 혜원은 그런 류의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작품 외에 '주막 풍경'이라든지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풍속화도 많이 남겼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짤막한 찬문(贊文)을 쓴 뒤 관지(款識)와 도인(圖印)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표식이 아닐까 한다. 김홍도가 그러했듯, 신윤복 특유의 '섬세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화풍'도 후대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조선의 또 다른 풍속화나 작자 미상 작품 중에서도 혜원의 화풍과 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같은 '신윤복' 소재의 극일지라도, 영화 <미인도>에선 '(극 안에서의 설정 상) 원래는 여자이지만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화원 가문의 딸 윤복(김민선)이 강무(김남길)를 만나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깨닫게 된 뒤 그와 함께 펼쳐 나가는 애절하면서도 치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고,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선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김홍도(박신양)와 신윤복(문근영)의 사제 관계(스승과 제자 사이) & 성장 스토리, 도화서에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췄다. 두 극 모두, 원래는 '남자'였을지 모를 신윤복을 '여자였다 치고..'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영화 버전 '신윤복 이야기'는 보다 매혹적이고 에로틱하며, 드라마 버전은 뭔가 애잔하면서 담백한 편인데, 그런 극 분위기를 떠나 '드라마 <바람의 화원>' 쪽이 (비록 '주인공 부상과 생방 촬영의 문제점' 등을 노출하며 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산으로 가긴 했지만) 화공들의 '그림'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묘사되어서 좋았다. 두 극 모두 '실제 사실'과 다를지 모를 신윤복 <성별의 난>을 겪은 셈인데, 다음 번에 동일 소재의 극이 만들어진다면 이번엔 '신윤복은 다른 많은 화공들처럼 남자이다~' 하고 극을 진행시켜도 '지난 극들(미인도 & 바람의 화원)과 비교해 보는 묘미'가 있으면서 왠지 흥미로울 것 같다..
해당 극 안에선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아서 베일에 가려져 있는 조선 시대 화가 신윤복'이 '여자였을 수도 있다..'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풀어 나갔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특정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픽션(창작된 내용)에 불과하다. 실제로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근거는 없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활약했던 신윤복(申潤福)은 주로 '양반 사회의 풍류 생활'과 '기녀'를 소재로 한 그림 & '남녀 간의 애정'을 묘사한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김홍도가 '배경을 생략한 간결한 필치'를 구사한 것에 반해 신윤복의 경우 '산수를 배경으로 한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를 주로 구사하였다. 같은 '풍속화'일지라도,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대조해 보면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신윤복의 그림 '미인도(美人圖)'
신윤복의 대표작으로 미인도(美人圖), 무무도(巫舞圖), 단오도(端午圖)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시대에 다른 화가들도 '미인도'를 종종 그렸으나, 그 중에서도 신윤복의 '미인도'는 한 때 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을 만큼 무척이나 유명하다. 전반적으로 그의 '생애'에 관해선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으로서 한 때 벼슬이 첨절제사(僉節制使)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만이 알려졌을 따름이다.
그로 인해, 오늘날의 여러 작가들이 '혜원 신윤복'을 '여성'으로 둔갑시켜 극을 펼쳐 나가는 파격적(?)인 실험 정신을 발휘한 게 아닐까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어린 학생들 중엔 종종 "조선 시대 화가인 신윤복은 여자야~" 하고 주장하는 애들도 있다고 하는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 안에 나온 실존 인물'이 극 내용과 같을 거라 생각하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신윤복의 그림 '무무도(巫舞圖)'
신윤복의 그림 '단오도(端午圖)'
옛 화가들이 남긴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그 이전까지만 해도 서민층 사람(일반 민중)들이 '회화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조선 후기에 와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활약으로 서민들도 당당히 회화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이 주로 그렸던 조선 시대 '풍속화'는 영조, 정조 시대를 거쳐 순조에 이르기까지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스승과 제자로 나왔던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은 조선 후기 '풍속화'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역동적이면서도 친근한 풍의 풍속화를 많이 남긴 김홍도는 18세기 중반~19세기 초까지 활동하였고, 신윤복은 18세기 후반 무렵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특유의 화풍을 구사한 김홍도는 후대의 여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신윤복의 그림 '월야밀회(月夜密會)'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
<바람의 화원>과 같은 드라마에서도 묘사되었듯 '활약하는 기간'이 겹쳤던 그 두 화가는 때로 비슷한 소재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묘하게 '화면 구성이나 전반적인 색감 & 인물 묘사에 대한 방식'에서 큰 차이가 나는 등 각자의 개성이 확연하게 갈리는 편이다.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 뭔가 도회적이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김홍도 풍속화에선 왠지 모를 구수함이 느껴지고, 그러면서 그림 속 인물에게서 큰 생동감을 발견할 수 있다. 산수화에선 신윤복이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혜원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月下情人)' 같은 그림에선 특유의 낭만이 느껴지기도 하여 인상적이었는데, 혜원은 그런 류의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작품 외에 '주막 풍경'이라든지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풍속화도 많이 남겼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짤막한 찬문(贊文)을 쓴 뒤 관지(款識)와 도인(圖印)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표식이 아닐까 한다. 김홍도가 그러했듯, 신윤복 특유의 '섬세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화풍'도 후대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조선의 또 다른 풍속화나 작자 미상 작품 중에서도 혜원의 화풍과 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신윤복의 그림 '휴기답풍(携妓踏楓)'
신윤복의 그림 '주사거배(酒肆擧盃)'
신윤복의 그림 '정변야화(井邊夜話)'
같은 '신윤복' 소재의 극일지라도, 영화 <미인도>에선 '(극 안에서의 설정 상) 원래는 여자이지만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화원 가문의 딸 윤복(김민선)이 강무(김남길)를 만나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깨닫게 된 뒤 그와 함께 펼쳐 나가는 애절하면서도 치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고,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선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김홍도(박신양)와 신윤복(문근영)의 사제 관계(스승과 제자 사이) & 성장 스토리, 도화서에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췄다. 두 극 모두, 원래는 '남자'였을지 모를 신윤복을 '여자였다 치고..'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영화 버전 '신윤복 이야기'는 보다 매혹적이고 에로틱하며, 드라마 버전은 뭔가 애잔하면서 담백한 편인데, 그런 극 분위기를 떠나 '드라마 <바람의 화원>' 쪽이 (비록 '주인공 부상과 생방 촬영의 문제점' 등을 노출하며 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산으로 가긴 했지만) 화공들의 '그림'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묘사되어서 좋았다. 두 극 모두 '실제 사실'과 다를지 모를 신윤복 <성별의 난>을 겪은 셈인데, 다음 번에 동일 소재의 극이 만들어진다면 이번엔 '신윤복은 다른 많은 화공들처럼 남자이다~' 하고 극을 진행시켜도 '지난 극들(미인도 & 바람의 화원)과 비교해 보는 묘미'가 있으면서 왠지 흥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