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년 초에 국내 버전 초연 예정인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벳(엘리자베트)'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그 문구부터가 조금 요상하고, 해당 포스터에 나오는 '적절하지 않은 비율에 날티가 흐르는 남자 주인공(죽음)'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왕 만드는 거 잘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남주 '바람 머리'의 압박이 있는 <엘리자벳> 한국판 포스터


한국판 <엘리자벳> 포스터 속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저런 헤어 스타일, 참 별로란 생각이 든다. 머리 윗부분을 많이 부풀려 놓아서 마치 가분수처럼 '두상(머리 & 얼굴)'이 커 보일 뿐 아니라, 위엄 있어야 할 이 캐릭터가 왠지 '날티 폴폴 풍기며 노는 남자' or '경박스런 캐릭터'란 느낌을 주기에...(해당 포스터에 나오는 '폰트' 자체는 예쁘지만, 이 뮤지컬 제목으로 쓰기엔 뭔가 좀 겉도는 듯한 느낌도 있는 듯..)

예전에 직접 본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2009' 내한 공연 때 '벤볼리오' 역을 맡았던 시릴 니콜라이가 '마지막 공연'에서 이벤트 차원으로 저런 헤어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원래는 꽤 잘생긴 배우임에도 그 '요상한 헤어 스타일' 하나로 참 못생겨 보였던 기억이 있다. 그 '엄한 헤어 스타일의 마지막 공연' 전까진 그가 앞머리를 내린, 차분하고 귀티 나는 분위기의 '정상적인 헤어 스타일'로 출연했었다.

앞으로 포스팅할 예정이지만, 최근 프랑스 공연에서의 막공 바로 직전에 찍어서 만들었다는 <로미오와 줄리엣-베로나의 아이들(Romeo & Juliette-Les enfants de Verone)> 2010' 뉴 버전 DVD 공연 실황에서도 시릴 니콜라이가 그런 헤어 스타일로 나오는데, '시대물'에 안 어울리게 너무 가벼워 보이고 그의 원래 미모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날티 나는 헤어 스타일'이라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뉴버전 DVD에 나오는
'바람 머리' 스타일의 벤볼리오 - '시릴 니콜라이'


<헤어 스타일이 그 사람 이미지의 70%를 차지한다>는 말이 있다. 그건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사람이 배색을 잘 맞춰서 '옷' 잘 입고 '머리(헤어)'만 자신에게 어울리게 & TPO에 맞게 잘 꾸며도 '이미지'가 확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짧은 헤어에 머리칼 윗부분을 빳빳하게 세운 남자들을 보고 별로 잘생겼단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잘생긴 남자도 그런 머리를 하면, 그냥 '평범한 수준'도 아닌 '격 없게 싼티 나거나 못생겨 보이기까지 한 사례'를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보통 'TV 드라마'에 나오는 사극이나 시대물에선 나름 '고증'을 거쳐 출연 배우들이 그 시대에 걸맞는 '헤어 스타일'과 '의상'을 갖춰서 등장하는데, 무대 공연인 '뮤지컬'에선 종종 괴물스런 실험 정신을 발휘하여 <극의 배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컨셉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물론 이번 뮤지컬 <엘리자벳> 한국어 버전 포스터의 경우엔 '본 공연' 장면이 아닌 '포스터'에서의 시도일 뿐이지만 '시대물'인 이 뮤지컬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너무너무 안 어울려 보이는 건 사실이다.(고전적인 시대물은 어디까지나, 그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시대물'다워야 한다는 생각~)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 작사,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 작곡의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는 1992년 9월 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되었다. 이들의 작품 중 우리 나라에선 현재 공연 중인 <모차르트(Mozart!)>가 먼저 소개되었지만, 내년(2012년)에 공연될 <엘리자벳(엘리자베트)>은 그보다 먼저 탄생한 작품으로 독일어권에선 꽤 유명한 뮤지컬이다.

19C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시집 간 그의 이종 사촌 '엘리자베트' 황후의 결혼 생활을 다룬 작품으로, 이 뮤지컬에선 '죽음(Tod)'이란 추상 명사가 극 중 하나의 캐릭터로서 '의인화'되어 표현된다. 말 그대로 '죽음' 자체를 뜻하는 등장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뮤지컬 <엘리자베트>의 경우엔 연출자의 해석에 따라서 각 캐릭터의 극 중 존재감이나 스토리의 정서가 좀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오리지널 <엘리자베트(Elisabeth)> 공연은 실존 인물 '엘리자베트(시씨)'가 결혼 이후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극도의 허무주의에 빠지고, 가족력의 영향으로 살짝 정신 질환이 있던 그녀가 왕실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며 자꾸만 '죽음'의 충동에 빠진다는 내용이 '곧 몰락할 예정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혼란스런 시대상'과 같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세기말적인 정서'를 물씬 풍기는 다소 '음울한 작품'으로, 그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자체'로 나름 매혹적이다.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가 그린 '엘리자베트' 초상화


독일어권의 '오리지널 버전'에선 엘리자베트(Elisabeth) 암살자였던 무정부주의자 '루케니'를 극의 화자로 등장시켜 당시 <자신이 가진 좋은 조건에 만족하지 못한 채, 다소 이기적으로 살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엘리자벳 황후>를 살짝 비판하고 있다. 또한, 초연 때의 '죽음(토트)'은 철저하게 주인공 '엘리자베트'가 매번 느끼는 '추상적 명사'로서의 죽음 기능을 한다.(이 캐릭터를 칭하는 독일어 'Tod'는 '죽음'을 뜻하는 단어이며, 한국판에선 '토드'라 칭하지만 원래는 '토트'라고 발음함)

1992년 비엔나에서 초연된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가 헝가리나 일본에서 로컬 버전이 만들어지면서 캐릭터의 비중이나 극의 주된 성격이 좀 달라졌는데, 일본판의 경우 1990년대 중반에 여성 단원으로만 구성된 '다카라즈카 가극단' 버전이 먼저 만들어진 뒤 '일반 뮤지컬(토호 극단)' 버전까지 제작된 바 있다. 같은 일본판이지만 '다카라즈카 버전 엘리자베트'와 '토호 극단 버전 엘리자베트'는 그 성격이 또 살짝 다르다.(장면 장면마다 나오는 '노래 가사'도 각각 다름)

2012년에 초연될 한국어 버전 <엘리자벳>의 경우, 오스트리아에서 공연된 '오리지널 버전'에서 내용을 좀 변형할 수 있도록 계약했다고 알고 있는데, 항간엔 이 뮤지컬에 관심 많은 기존 매니아층 사이에서 '유치찬란한 일본판 짝퉁'을 만드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토호 <엘리자벳>은 별로였고, 다카라즈카 <엘리자벳>은 나름 재미있게 보았으나 그 버전이 좀 유치했던 건 사실이며, 그 '작품성' 면에 있어선 독일어권의 오리지널 <엘리자벳>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최근 DVD로도 나온 작년 '김준수 뮤지컬 콘서트' 때 뮤지컬 <엘리자벳> 한국어 버전 노래를 몇 곡 소개하기도 했었는데, '가사 번안'이 많이 조악스런 수준이었다. 또 살짝 일본판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한국판 <엘리자벳> 계약을 이 뮤지컬을 개작한 '일본 제작자'가 아닌 '오스트리아 제작자 & 스텦'과 직접 계약을 했기에, 최대한 '오리지널 버전'에 충실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자베트> 한국어 버전 공연을 올리면서 우리 제작 여건과는 또 다른 '만화 버전'의 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를 설마 차용할까 싶지만, 공개된 포스터 문구를 보니 이런 저런 우려의 마음이 든다. 독일어권의 오리지널 <엘리자베트> 공연이 구성이나 개연성 면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일본판에 비해 이 오스트리아판이 손을 좀 봤을 때 보다 '깊이 있고 괜찮은 작품'으로 뽑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제 개막 7개월 여를 앞두고 있는 한국판 <엘리자벳>이 지난 번 <모차르트!> 공연 때처럼 요란한 마케팅으로 지나치게 '상업성'만을 강조하는 평작 뮤지컬이 될지, 아님 오스트리아 오리지널 버전의 미덕을 잘 살려가며 보다 정돈된 느낌으로 '작품성'까지 갖춘 수작 뮤지컬로 거듭날지,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