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2001 DVD (4)권력자의 고뇌

타라 2011. 5. 2. 19:42
제라르 프레스귀르빅 각색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조연 캐릭터들'에게 많은 공을 들인 뮤지컬이다. 가만 보다 보면, 이 극에서 사연이 없거나 안 불쌍한 캐릭터가 없다. 그런데, 이 뮤지컬 2막 후반부의 극 구성은 심히 별로란 생각이 든다. 결말부로 치닫을수록 주인공 캐릭터 적당히 살려주고, 극의 비극적인 정서를 강조하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으로 깔끔하게 끝냈으면 나름 여운이 남았을텐데..

이 뮤지컬에선 두 주인공이 차례대로 '나 이제 죽어요~'송 부르며 저 세상 간 뒤에 신부님 튀어나와서 '신을 원망하는 노래' 한참 부르고, 그 뒤로 양가 엄마들 & 가문 사람들) 단체로 나와서 또 '반성과 화해의 노래' 한참 부른 뒤에 끝난다. 이 부분은 너무 지루해서 DVD 볼 때 '로미오의 죽음송' 대목부터는 그냥 자체 스킵해 버린다.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의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Romeo & Juliette)>은 2막 중반부에 나오는 '내일(Demain-줄리엣은 내일 파리스 백작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긴박한 분위기의 장면)' 이후론 극이 심하게 늘어지는 느낌이다.

두 주인공이 죽고 난 뒤, 로랑(로렌스) 신부님과 로미오 엄마 & 줄리엣 엄마 등 양가 사람들이 한참을 이러고 있는 건 이 뮤지컬 '극 구성' 상의 단점에 속한다

어차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이후 양 가문(몬테규와 카풀렛) 사람들이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죽어버린 머큐시오/티볼트/로미오/줄리엣' 등 양가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다시 안 살아돌아오는 건 마찬가지인데.. 로미오와 줄리엣, 두 주인공들이 장렬하게 죽었으면 그냥 그걸로 '이 극은 정말 슬픈 극이에요~'하고 여운을 남기며 끝내거나 '베로나 사람들이 반성하는 곡'은 아주 짦게 부르고 막 내리면 될텐데, 주인공 죽음 이후로 '곡 분량 자체가 정말 긴 편에 해당하는 신부님 노래에 이어 양가 마님들의 지루한 노래'는 왜 줄줄이 불러대는지.. 당췌 이해할 수 없는 '극 구성'이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진부한 구석기 시대적인 스토리'이고, 결말 내용을 이미 다 아는지라, 정석대로만 가는 프랑스의 오리지널 <로미오와 줄리엣>의 후반부 스토리는
별로 '긴장감'도 없고 '재미'도 없다. 차라리 헝가리 버전에서처럼 죽은(?) 줄리엣을 사이에 두고 '로미오'와 '파리스'가 서로 자기 여자라고 주장하며 <결투>를 벌이거나, '로미오가 목 매달아 죽는 파격'을 보여주고 '피 칠갑한 줄리엣'이 등장한다든가.. 아님, 기존의 쌍팔년도식 신파 스토리를 확 뒤집어서 '마지막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은 척 했지만, 알고 보면 죽지 않고 둘 다 살아났다~(2막 엔딩곡을 이들의 대표곡인 'Aimer 2'로 장식하고서..)' 류의 서프라이즈한 '반전 드라마'라도 보여주면 한결 새롭고, 땡기는 느낌이 들 것 같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의 '2001 초연 DVD 버전'의 극 구성도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지만, 그 뒤에 나온 '2007년 뉴 버전'과 '2009년 뉴 버전 개정판' & '2010년 뉴 버전 개정 증보(?)판'에 비하면 훨씬 나은 구성이었다. 2001' 오리지널 버전 롬앤줄에서의 2막 구성이 좀 심심하긴 했어도, 나름 '말은 되는 극 구성'이었으니 말이다..

쓸데없는 '사족 장면'을 집어 넣었던 2007년 버전은 실험판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리바이벌 공연 수정판인 2009년 버전 이후로 영주의 '권력(Le pouvoir)' 장면을 왜 2막 첫 장면으로 집어 넣었는지.. 아직까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한국판 라이센스 <로미오 앤 줄리엣>에서도 2009' 프랑스 버전 그대로 따라한다고 '권력'을 2막 첫 장면으로 배치했는데, 그런 발구성을 왜 답습했는지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베로나를 통치하는 영주의 '권력'송이 그 타임에 나오는 건 너무나 생뚱맞다. 그나마 '제일 개념 있는 구성'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 오리지널 초연 버전(2001년 DVD & 2000년 CD)에선 베론 영주의 '권력(Le pouvoir)'이 <'티볼트가 머큐시오를 죽인 것'에 대해 순간 이성을 잃은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인 뒤, 양가 사람들이 소란을 피울 때 베로나의 지배자인 영주가 나와서 로미오에게 사형 대신 만투아로 추방하겠단 명령을 내린 후>에 등장한다. 이런 '순서'의 구성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베론 영주의 '권력'은 초연 버전 때처럼 바로 이 타이밍에 나와야 되는 노래인...

맨날 죽일 듯이 싸워대는 몬테규 & 카풀렛가 사람들 때문에 베로나를 통치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은 영주님 : '권력'이란 것의 빛과 그늘을 노래함..

이 뮤지컬에 나오는 '권력(Le pouvoir)'이란 곡 자체가 <그 고을의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지만 '맨날 싸워대고 말 안 들어쳐먹는 사람들(몬테규가 사람+카풀렛가 사람) 한가득인 그 베로나'를 다스리면서, '벌어진 일'에 대해 나름 공정하게 판결 내리느라 힘들었던 영주(베로나 왕)의 '통치자로서의 고뇌와 애환'을 노래하는 곡>이니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줄리엣과 비밀 결혼한 로미오 죽이겠다고 미쳐 날뛰던 티볼트'의 칼에 의해 '로미오 절친인 머큐시오'가 죽고, '친구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로미오가 티볼트를 찔러 죽인 뒤 몬테규가 애들은 "카풀렛가의 티볼트가 먼저 우리 머큐시오를 죽였어요~" 하면서 억울해 하고, 카풀렛가 애들은 또 '로미오가 뭔데 우리 티볼트를 죽이는 것임..?" 하면서 "우리 애들 살려 내~" & "로미오에게 큰 벌을 내려 주세요~" 내지는 "제발 로미오를 살려 주세요!" 하면서 아우성 친다.

그 와중에 나름 할 말 있는 로미오는 로미오대로 "난 원래부터 두 가문의 평화를 원했고, 티볼트와 머큐시오 싸움 말리려다 티볼트가 먼저 내 친구를 죽이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그리 된 것인데.. 코앞에서 친구가 살해 당하는 걸 보구서 어떻게 가만 있을 수 있나요..? 이 모든 일은 애초에 양가 사람들의 증오 때문에 발생한 일! 그러게, 처음부터 서로 미워하지 말지~" 식으로 양 가문 사람들의 '오랜 앙숙 관계'를 원망하는 가운데.. 베론 영주가 원래는 로미오에게 '사형'을 내려야 마땅하지만, 티볼트가 먼저 로미오 친구(머큐시오)를 죽인 것에 대한 <정상 참작>도 해서 고민 끝에 '로미오 추방 명령'을 내린 후 '권력자로서의 고뇌'를 노래하는 장면에 나오는 곡이 바로 '권력(Le pouvoir)'이란 넘버인 것이다.

영주(프레데릭 샤르테) - 권력(Le Pouvoir) / 로미오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후,
권력의 이중적 속성에 대한 고뇌의 노래를 부름(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영주가 특정한 사건을 겪으며 '권력이란 것의 이중적인 속성'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왕(통치자=권력자)의 위치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뇌를 표출하는 이 권력(Le pouvoir)송이 <등장 인물들이 사건을 겪기도 전>에 미리부터 등장하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2007' 뉴 버전 공연에서 사라졌던 이 곡이 2009' 뉴 버전 공연에선 뜬금없는 타이밍에 부활해 버렸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성당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린 1막 엔딩' 바로 다음 장면인 '2막 첫 장면'에서 갑자기(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이) 베론 영주(Stephane Metro)가 튀어 나와서 권력의 허무함을 노래하니 말이다.. <로미오 앤 줄리엣> 뉴 버전 공연에서의 이런 <개연성 없는 장면 연결>이라니~ ;;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타임에 영주가 나와서 '권력(Le pouvoir)'을 부르는 건 너무 생뚱맞게 느껴진다. 이 곡은 영주가 티볼트를 죽인 로미오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후, '이래도 말 많고 저래도 말 많은 양 가문(몬테규가와 카풀렛가) 사람들'의 아우성을 듣고난 뒤에 고뇌하면서 불러야 정상인 것이다. 프레데릭 샤르테(Frederic Charter)가 영주로 출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초연 버전 때처럼 말이다..


이 뮤지컬 초연 버전(2001년 공연 실황 DVD)에선 1막 엔딩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유모 증인에 신부님의 주례로 비밀 결혼식'을 올리는 'Aimer(사랑한다는 건)' 다음으로 나오는 2막 첫 장면에서 바로 양가 애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렇고 그런 사이래. 둘이 어젯밤에 같이 있는 걸 누가 봤대~" 식으로 쑥덕거린 뒤, 그 사실을 알게 된 몬테규 아이들의 '로미오 질타송(On dit dans la rue-거리의 소문)'이 이어지고.. 그 뒤에 티볼트가 '연적인 로미오'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설쳐대는 '오늘이 그날이야(C'est le jour)'를 부르고, 바로 다음에 티볼트 & 머큐시오의 '결투'씬을 통해 <살인 사건> 일어나고.. 그 일로 인해 양가 사람들이 소란 피우고, 이에 통치자인 영주(Frederic Charter)가 나와서 <판결(로미오 추방 명령)>을 내린 후 이 '권력자로서의 고뇌송'을 부르는 <개연성 있고 정상적인 극 흐름>이었다.



개인적으로 뉴 버전 공연의 '스테판 메트로(Stephane Metro) 영주'보다 오리지널 공연(2001년 DVD)에서의 '프레데릭 샤르테(Frederic Charter) 영주'가 백 배 낫다고 생각하는데, 스테판 영주는 이 뮤지컬 안에서의 영주 넘버들을 참 못 부른다. 노래 자체는 좋은데, 곡 후반부에 가면은 스테판이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무지 짜증 난다는 느낌으로 소리를 빽빽 질러대기만 하는 바람에 <로미오 앤 줄리엣> 뉴 버전 공연에선 베론 영주의 장면에서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을 느껴야 했던... 2010년에 나온 뮤지컬 <로미오 & 줄리엣> 뉴 버전 CD나 2011년에 나온 뉴 버전 DVD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걸 통해 '스테판 영주'의 노래를 듣다가 CD를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

스테판 메트로(Stephane Metro)가 사람 자체는 좋아 보이던데, 왜 그렇게 '베론 영주' 캐릭터를 못 소화하는지..? 그의 딱딱해 보이는 의상과 민둥 머리 스타일도 '단호하지만 나름 애잔한 구석이 있는 고민 많은 베로나의 통치자' 캐릭터와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이고, 스테판 영주의 노래 방식('권력'과 '베로나 2'의 곡 후반부에 가서, 짜증 섞인 날카로운 음색으로 있는 힘껏 소리만 빽빽 질러대는..) 또한 듣는 사람의 귀를 심히 괴롭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한, 여러 면에서 난 오리지널 초연 버전에서의 '프레데릭 샤르테(Frederic Charter)베론 영주'가 그립다.

오리지널 베론 영주, '프레데릭 샤르테' 직찍 사진(2009년)

2009년 공연에서 다시 합류한 이후론 '로랑 신부' 역으로 돌아왔는데, 그냥 뉴 버전 공연에서도 프레데릭이 계속 '영주' 역할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런데.. 비록 '고음 불가'이긴 했지만, 프레데릭이 소화한 신부 캐릭터도 나름 '학구적인 신부'로 연기적인 느낌 자체는 꽤 그럴싸해 보였다.) 그가 이상한 헤어 스타일로 나온 DVD로 봤을 때엔 별로 잘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정작 프레데릭 샤르테(Frederic Charter)의 실물을 보니까 너무나 '분위기 있고 젠틀해 보이는 미중년의 남자'였다.

2000년에 출시된 롬앤줄 초연 음반에서 프레데릭 샤르테가 소화한 'Verone(베로나)'와 'Le pouvoir(권력)' 모두 무척 듣기 좋았는데, 이 음반에서의 '베로나(Verone)' 경우엔 맨 처음 들었을 때 이 작품의 대표곡인 '세상의 왕들(Les rois du monde)'보다 더 좋아했던 곡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가 쓴 원작은 읽은 지 오래 돼서 좀 가물가물하지만, 비교적 원작에 근접한 내용으로 꾸려졌다는 1968년 버전 영화(올리비아 핫세 출연)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이 '베로나를 통치하는 영주' 캐릭터는 꽤 마음이 가는 인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지막에 몬테규가와 카풀렛가 사람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화해하도록 판 깔아주는 것도 바로 이 '영주'의 역할이었던...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2001년 초연 버전(DVD 공연 실황)의 경우엔 '컨셉이 좀 애매모호'한 2007년 이후의 뉴 버전 롬앤줄에 비해, '영주 캐릭터'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조연 캐릭터들'도 비교적 잘 살아난 편이다. 전반적인 '극 구성' 뿐 아니라, '개연성 있는 캐릭터의 특징'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 뮤지컬 '뉴 버전'보다는 '초연 버전'이 그나마 조금은 더 완성도가 높은 게 아닐까 한다. <구관이 명관이다~(나중 사람을 겪어 봄으로써 먼저 사람이 좋은 줄을 알게 된다)>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생겨난 속담일 것이다. 그 외에도, 구관이 명관인 경우를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