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2001 DVD (3)매혹적인 죽음

타라 2011. 4. 29. 10:52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Romeo & Juliette)' 초연 버전(2001~2002년 초연 당시의 공연 실황을 담은 DVD)에는 대사 한 마디 없이도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는 한 캐릭터가 있는데.. 바로 안느 마노(Anne Mano)가 맡은 '죽음(La Mort)'이란 등장 인물이다.(추상적 개념인 '죽음'의 의인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선 신부가 사환을 시켜 로미오에게 전달하려 했던 편지가 '간발의 시간 차이'로 전달되지 못하는 바람에 두 주인공이 죽게 된 설정이었지만, 이 뮤지컬에선 인간들의 삶을 관장하는 '죽음 or 죽음의 여신'이 중간에 편지를 가로채서 직접 찢어버리는 설정이다. 이 뮤지컬 초연 버전에서의 우아한 바디 라인의 죽음 언니(Anne Mano)는 그 '편지 찢어서 버리는 장면'도 예술로 승화시킨다.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 작사/작곡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죽음'은 극 중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의 등장 인물이며, 극이 진행되는 동안 온 무대를 누비고 다니면서 '표정'과 '춤'만으로 연기를 펼쳐 보이는 캐릭터이다. 마지막에 로미오(Damien Sargue)가 죽을 때 이 죽음 언니(Anne Mano)의 키스를 받고 죽는다고 해서 이 캐릭터를 '로미오와 사랑에 빠진 인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던데, 이 뮤지컬에서의 '죽음'은 그런 개념은 아닌 것 같다.(이 작품의 '로미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리엣' 하고만 사랑한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 줄리엣>에 나오는 '죽음(La Mort)'은 극 안에서 '곧 죽게 될 인물'들 곁을 맴돌며, 그들에게 '죽음의 숨결'을 불어넣는 직접적 의미의 죽음이며,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절대자 or 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죽음이 아닐까 한다. 그녀(Anne Mano)는 이 스토리 안에서 가장 먼저 죽게 될 <가면 무도회장에서의 머큐시오(Philippe D'Avilla)>에게, 머큐시오를 찌른 뒤 정작 그가 죽어버리자 황망해 하던 <로미오의 칼을 받기 전인 티볼트(Tom Ross)>에게, 또 곧 엇갈리게 될 운명인지도 모른 채 <마지막 사랑의 이별 의식을 치르던 로미오(Damien Sargue) & 줄리엣(Cecilia Cara)>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곧 다가올 죽음'을 예고한다.


해당 뮤지컬이 탄생한 순서 상으론 <엘리자베트>가 먼저인 걸로 봐서 이 뮤지컬에 나오는 '죽음'이란 캐릭터는 다분히 1992년에 초연된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보다 '예술적 차원'의 경지로 승화시킨 걸 보면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에서의 '죽음'은 이 캐릭터에 대한 '청출어람' 버전인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독일어권의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벳>이 애초에 '예술성이 짙은 프랑스 뮤지컬'로 만들어졌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에 나오는 남자 죽음(Der Tod)도 나름 매력 있지만,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 줄리엣> 오리지널(초연) 버전에 나오는 여성 죽음(La mort)은 그보다 훨씬 매혹적이고 아트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에 나오는 '여성 죽음'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느낌은 아니며, 그 '매혹적임'은 2001년 초연 버전에 출연한 안느 마노(Anne Mano)표 죽음'에 한해서이다.


2007년 공연과 2009~2010년 공연 때 활약한 <로미오 앤 줄리엣> 뉴 버전에서의 '크리스틴 아시드(Christine Hassid)의 죽음', '오렐리 바돌(Aurelie Badol)의 죽음'에게는 이 뮤지컬 초연(2001~2002년 공연) 때의 오리지널 캐스팅인 '안느 마노(Anne Mano)의 죽음'과 같은 저런 존재감과 포스는 없어 보였다. 이 뮤지컬 DVD에 나오는 '안느-죽음'은 여성임에도 키 큰 남자인 다미앙 사르그의 로미오와 거의 맞먹는 기럭지 & 선이 확실한 바디 라인을 자랑해서 '나약한 인간들을 압도하는, 강렬하고 절대적인, 운명의 여신' 이런 컨셉에 딱 어울리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자랑했던 것에 반해...

<로미오 앤 줄리엣> 뉴 버전 공연에서의 상대적으로 작은 키의 '죽음' 역 배우들(크리스틴, 오렐리 등..)은 나름 춤 실력도 뛰어나고 열정적으로 연기했지만, 저런 <비주얼적인 요소>에서 이미 초연 죽음(안느)에 비해 많이 딸려 보이는 감이 있다. 개인적으로, 연기를 업으로 하는 배우에게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특정 역할에 어울리는 '비주얼(외모)' 역시 신이 내려 준 <재능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굳이 이 나라의 이 뮤지컬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들에서도 말이다.)

출연진이 초연 때와는 대대적으로 달라진 <로미오와 줄리엣> 2007년 버전에서 '크리스틴-죽음'의 헤어 스타일과 의상이 참 별로였는데, 2009년 내한 공연 때와는 사뭇 달라진 이번 2010년 파리 공연에서의 '오렐리-죽음'은 사진으로 보니 분장이 또 너무 이상해졌다. 의인화 된 추상적 개념의 '절대자 죽음' or '죽음의 여신'이 아니라, 무슨 '평민 귀신' 같은 분위기~ ;; 뉴 버전 공연의 분장사(메이크-업 담당)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죽음' 캐릭터에게 그런 분장을 해 놓은 것일까..?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 한해서, 2001~2002년 초연 때 활약한 '안느-죽음'이 전반적인 실루엣 차원에서나 적절한 분장의 마스크 차원에서 '가장 우아하고 매혹적인 죽음'이 아니었나 싶다. 이 뮤지컬 초연 DVD에 나오는 안느 마노의 '죽음'은 저 혼자 튀지 않으면서도 무척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이 안느의 죽음은 가장 아트적이고 프랑스적인 '죽음'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에는 여성 죽음(Die Tod)이 아닌 남성 죽음(Der Tod)이 등장하고,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러시아 버전엔 오리지널 버전에서의 여성 죽음(La Mort) 대신 남성 죽음(Le Mort)이 등장한다.(제라르의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오스트리아 버전과 헝가리 버전 등에선 '죽음' 캐릭터 자체를 생략했음~) '죽음' 자체가 딱히 성별이 구분되는 존재는 아닌 것 같은데, 나라별 정서의 차이로 '각기 다른 설정'이 나오는 것 같다.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에 등장하는 '죽음(=토트/Tod)'은 분장 & 의상 & 헤어 스타일을 동반한 배우의 전반적인 비주얼 차원에서 너무 '일반 인간' 모드이고, <로미오와 줄리엣> 뉴 버전 & 다른 나라 버전의 죽음은 대체로 '죽음'이나 '죽음의 신'이 아닌 '귀신' 같은 분위기인 관계로, 이제껏 내가 봐 온 <뮤지컬 작품 속 죽음 캐릭터>중에선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 버전에 나오는 안느 마노(Anne Mano)의 '죽음(=라 모뜨/(La Mort)'이 제일 마음에 든다.

이 작품 안에 나오는 주인공들(로미오 & 줄리엣) 자체가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 컨셉으로 나오는데, 이 정도로(롬앤줄 초연 때의 '안느 마노'가 연기한 죽음 캐릭터) '우아하고 매혹적인 죽음'이라면 그 스토리 자체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