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폴리스

'합의 이혼' 가능했던 중국 '당나라' 결혼 풍습

타라 2013. 8. 3. 21:25

예전에 중국 당나라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이혼장'이 발견되었단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이혼장에 따르면, 이혼의 구체적인 이유는 씌어있지 않고 대략적인 이유로 '성격 차이'를 든 걸로 나오는데, 요즘 유명인들이 이혼할 때에 '<성격 차이>로 헤어진다~'는 멘트를 단골로 하게 된 것이 그 당나라 이혼장에서부터 유래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문서 내용에 의하면, 의외로 중국의 그 시기엔 '남존여비' 보다는 '남녀 평등'의 분위기가 짙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 '여성'의 위상은 '남성'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그게 다 조선 시대 때 넘어온 중국 사상의 영향 때문이다. 중국 쪽에서 유교적 관념이 넘어오기 전엔, 우리 나라에서도 여권이 강한 시기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어쨌든 조선 시대 이후론 국내에서도 '남존여비' 분위기가 있었고, 그것이 현대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연령대가 좀 있는 옛날 어르신들 경우 '딸' 낳으면 약간의 찬밥 취급에 '아들'을 낳으면 귀히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으며, 1990년대 초반에 방영된 <아들과 딸>이란 드라마에서도 그런 류의 '아들/딸 차별 가정'의 얘기를 다룬 바 있다.



언젠가부턴 우리 사회 분위기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모드로 돌아섰으며, 점점 '아들은 실컷 키워 놓아도 장가 가면 사돈 되고, 딸은 금딸' 이런 모드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남/녀' 어느 쪽도 차별받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평등' 모드로 가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한 때 우리 나라에 만연했던 '남존여비' 사상이 중국에서 왔을 정도로 옛날 중국 사회는 '남성 위주의 사회'였었다. 중국 여성에게 가해진 '전족 풍습'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 여인네들의 여권은 미미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지금은 중국 쪽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그 옛날 중국에서도, 유난히 '당나라' 시대 때 만큼은 여성의 위치가 그닥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唐)의 여인들은 결혼 전에 마음껏 연애란 걸 할 수 있었고, 부모 동의 없이도 마음 맞는 사람 생기면 쉽게 결혼할 수 있었다. 또한, 혼인한 이후에도 그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않으면 <이혼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체로 중국의 다른 왕조에선 부인 쪽의 칠거지악 같은 사례가 아니면 함부로 이혼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나라에선 적절한 '법률'로써 '이혼'에 관한 여러 규정들을 정해 놓았고, 그로 인해 결혼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남녀들이 융통성 있게 자신의 남은 삶을 운용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 때 작성된 이혼장


그 시기 당나라에서 정해놓은 '이혼 규정'엔 <협의 이혼/촉재 이혼/강제 이혼>이 존재했다. '협의 이혼'은 말 그대로 결혼 생활에 불만을 느낀 남편과 부인이 서로 잘 합의하여 부부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고, '촉재 이혼'은 남편 쪽에서 이의 제기하여 헤어지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우리 나라 예전 사극 같은 데서도 많이 나온 바 있는 '칠거지악'을 근거로 들어서 말이다..


여자(부인) 쪽이 투기가 심하거나, 음탕하거나, 부모를 돌보는 걸 소홀히 하거나, 자식을 낳지 못하거나, 도둑질 같은 걸 하는 등 이 '칠거지악' 안에 들면 남편이 그걸 이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 쪽이 '삼불거(가난할 때 결혼해서 그 부부가 부자가 된 경우, 3년상을 치른 경우, 돌아갈 집이 없는 경우)' 중 하나에 속할 땐 '칠거지악'을 저질러도 이혼할 수 없게끔 법으로 정해 놓았다.


당나라의 '강제 이혼'은 애초에 당율을 어기고 결혼했을 경우 & 남편이 부인 쪽 일가친척에게, 부인이 남편 쪽 일가친척에게 폭력을 행사했거나 고의로 해쳤을 경우 해당 관청에서 이혼시키는 것이며, 이에 따르지 않으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부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남편'에 대한 주민들의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 경찰서에서 진상 조사 들어간 후에 부인으로부터 그 '폭력 남편'을 격리시키고 법적인 절차에 의해 강제 이혼시키는.. 뭐, 그런 것과 비슷한 개념인가 보다.



중국의 그 시기 '당나라'에선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된 여인의 <재혼>에 대해서도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을 정도로, 다른 왕조에 비하면 여인들의 결혼 문제에 대해 아주 합리적인 태도를 보였다. 단점이라면, 당나라 때의 '이혼률'이 좀 높은 편이었다고 한다. 이혼에 대해 법적으로도 비교적 프리한 편이고 사회적인 여론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 살아보고 진짜 성격이 안 맞으면 두 남녀가 서로 합의 하에 손쉽게 이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혼외정사(정식 결혼한 배우자 외 다른 이성이랑 바람이 나는 경우)를 저지르는 유부남/유부녀들이 많아졌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싫든 좋든 '부모가 짝지워 준 사람'과 결혼해야 하고 '배우자에 대해 애정'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더라도 평생 억지로 같이 살아야 했던 중국 다른 시기 남녀들에 비해 <합의 이혼>이란 걸 할 수 있었던 당나라 시대 사람들의 '결혼 풍습'은 비교적 인간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