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선박왕 오나시스를 사랑한 프리 마돈나, 마리아 칼라스

타라 2013. 1. 30. 20:47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1923년 미국으로 이주해 간 그리스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마리아 칼라스는 꽤 '우량아'였었는데, 일찍 사망한 아들을 대신할 애가 태어나길 원했던 그녀의 부모는 우람한 딸의 탄생에 실망했고 별로 큰 애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Maria Callas(1923~1977)


'근시여서 두껍한 안경을 쓰고, 비만이기까지 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자기보다 '날씬하고 예쁜 언니'에게 밀려 '미운 오리 새끼'스러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12세 때 한 라디오 방송국의 <아마추어 노래 경연 대회>에 출전하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서 마리아 칼라스는 그리스로 돌아왔고, 원래 배우가 꿈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자식들 음악 교육에 열성을 쏟아 부었다. 아테네의 국립 음악원에 들어간 마리아 칼라스는 프리 마돈나 엘비라 데 히달고(Elvira de Hidalgo)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1940년(18세 때) 주페의 오페레타 <보카치오>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한동안 그리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1945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 가 이름을 알리려 노력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당시 90kg에 육박하는 과체중이었던 그녀는 여러 작품을 놓치게 되거나 계약한 작품의 기획사가 망하는 바람에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1947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라 지오콘다(La Gioconda)>의 주연을 맡게 되면서 마리아 칼라스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라 지오콘다> 이후, <트리스탄과 이졸데> <투란도트> <노르마> 등등의 공연을 거친 그녀는 어느덧 '세기의 소프라노'로 이름 날리게 되었다.


마리아 칼라스-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
푸치니(Puccini)의 오페라 <쟌니 스키키(Gianni Schicci)> 中...

<라 지오콘다>로 이탈리아 무대에 처음 섰던 그 해(1947년) 오페라를 사랑하는 나이 많은 사업가 지오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를 만나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1949년 그와 결혼했다. 메네기니와의 결혼 후 '매니저가 된 남편'의 지원 하에 외국에서 더 큰 명성을 쌓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승승장구하였고, 1954년 경엔 연출가 루치노 비스콘티를 좋아하게 되면서 단기간 내에 체중을 30kg 정도 감량했다.

프리 마돈나로 이름을 날리던 마리아 칼라스는 1957년 한 모임에서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만나게 되는데, 1959년 자기 남편 & 여러 인사들과 오나시스의 요트 여행에 초대받은 그녀는 그 기간 동안 오나시스와 연인 사이가 되면서 조강지부(糟糠之夫)라 할 수 있는 남편을 버리게 된다..

마리아 칼라스(왼쪽)와 선박왕 오나시스(맨 오른쪽)

명성의 정점에서, 후원자였던 남편을 버리고 오나시스(Onassis)와 바람이 난 뒤로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 인생'도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 후 마리아 칼라스는 무대를 버리고 선박왕 오나시스에게 헌신하면서 그와 함께 하는 삶에 몰두한다. 하지만 몇 년 뒤, 오나시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John F. Kennedy)의 미망인이었던 재클린을 만나게 된다.('마리아 칼라스-오나시스-재클린' 삼각 관계)

결국 오나시스를 재클린에게 빼앗긴 마리아 칼라스는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으나, 1965년 7월 <토스카>를 마지막으로 해서 잠정 은퇴에 들어갔다. 1968년 바람둥이(?) 선박왕 '오나시스'는 재클린(Jacqueline)과 결혼했고, 사랑했던 오나시스를 잃고 남편과도 이혼하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70년대 접어들어서 줄리어드(Julliard)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순회 공연을 여는 등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974년 일본 삿뽀로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결국 은퇴하게 되었다.


1975년 그녀가 많이 사랑했던 오나시스(Onassis)가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으로 큰 충격에 빠진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삶의 의욕을 잃고 파리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1977년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망했을 당시의 오나시스는 재클린(Jacqueline)과 이혼 소송 중이었다는데, 마리아 칼라스를 버리고 택한 재클린과도 뭔가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기의 디바'였지만, 예술가로서의 삶이나 세계적인 명성도 마다하고 마리아 칼라스는 '오나시스와의 사랑'을 갈구했다. 허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가 자신을 '세계적인 프리 마돈나'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도와준 남편 메네기니(Meneghini)를 버리면서까지 오나시스를 택했건만, 그는 배신 때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는 등 '남녀 간의 사랑'은 참 변덕이 심한 것 같다.

결국.. 인생도 짧고, 사랑도 그렇게 짧지만, 세월이 흘러도 길이길이 남는 건 '예술'이 아닐까 싶다. '프리 마돈나'로서의 마리아 칼라스는 그녀가 죽고 난 뒤에도 대중들로부터 끊임없이 사랑 받고 있으니 말이다. 쇼펜하우어가 남긴 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진리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