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에게 버럭~은 기본이건만, 그 배우는 자연스럽게 치고 올라가지를 못했다. 이건 즉, 기본적인 발성이 탄탄하지 않다는 얘기이다. 깊은 연기 내공의 부족이고.. 그런데, 그런 연기력으로도 엄청 잘하는 연기자로 칭송 받다니- 우리 나라는 TV 탤런트 해먹기 참 쉬운 나라 같다.
다른 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일반인들이 목소리나 발성이 좋을 필요는 없지만 가수나 배우, 성우처럼 목으로 먹고 사는 이들은 일단 발성이 남다르게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한다.
이 사람 공연 보기 전에는 우리 나라 '지킬'들도 노래 꽤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브래드 리틀의 그 탁월하게 힘 있고 남아도는 성량을 접하고서부턴 웬만한 건 시시하게 들리기도... 한국 '지킬 앤 하이드' 배우들도 연기 꽤 하고, 가창력도 그럭저럭 좋은 배우들이지만, 기본 목소리 자체가 좀 얄쌍하고 파워가 딸리거나 고음부에서 살짝 뒤집어지는 소리 내는 이들도 있던데.. 브래드 리틀의 경우엔 '동일음'에서 그것보다 훨씬 무게감 있고, 음 지속력이 강하며, 여유 있는 목소리를 낸다.
특히 <지킬 앤 하이드> 1막 후반부에서, 지킬 박사가 약물을 투여한 뒤 괴물 하이드로 변해서 미쳐 날뛰는 장면.. 'The transformation(변신)'과 'Alive(생명)' 후반부에서 이 브래드 리틀이 완전 파워풀한 목소리로 노래해서 엄청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선 브래드 리틀이 제대로 짐승 목소리, 사악한 괴물, 으르렁 거리는 특이한 '헐크 하이드'의 목소리를 들려 주었다. 우리 나라 지킬들도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기는 하지만, 브래드 리틀처럼 그 정도의 파워는 없었던 걸 생각하면.. 이번에 나름 문화적 충격을 느낀 셈이다.
개인적으로, 이 뮤지컬에서 '지킬 앤 하이드'가 부르는 곡들 중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과 Lost in the darkness(어둠 속 길 잃고), 'Alive(생명)'을 제일 좋아하는데.. 특히 'Alive' 후반부에 나오는 멜로디는 그 이후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여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1막 마지막 장면)와 2막에서 하이드가 루시를 죽이고 와서 '지킬과 하이드' 두 자아가 대립하던 'Confrontation(나와 나)' 후반부에 똑같은 멜로디가 나온다.
우리 나라(한국어) 버전에선 1막 후반부에 나오는 'Alive'와 1막 마지막 장면의 'Alive-Reprise'에서 각각의 대사가 다르지만, 영어 버전에선 똑같은 대사 같았다.
And I feel I'll live on forever, with Satan himself by my side~
And I'll show the world that tonight~ and
Forever the name to remember's the name Edward Hyde~~~!!!
브래드 리틀의 하이드가 파워풀하게 불러주던 이 대목 완전 좋았는데, 지킬 박사가 '선과 악'을 분리하기 위한 약물을 들이마신 후 약물 부작용(?)으로 악마 하이드의 자아가 꿈틀대며 강한 생명력을 느낄 때 부르던 'Alive' 후반부에 이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한밤중에 거리로 나선 하이드가 주교에 대한 첫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 이 곡 후반부를 다시 한 번 더 부르면서 1막은 끝이 난다. 이 장면부터 이 작품의 긴장감이 팍 살아난다고 할 수 있는데, <지킬 앤 하이드> 원 버전과 이번에 바뀐 뉴 버전(2009' 내한 공연 버전)의 연출이 조금 다르다.
하지만 1막 마지막 '주교 살해 장면'에서 하이드의 악마성을 부르짖던 브래드 리틀(Brad Little)의 가창력 만큼은 정말 탁월해 주셨다. 그 때 하이드로 변한 빵지킬(브래드 리틀)이 '뒤로 음탕한 짓 하고 돌아다니는 주교'를 향해 "hypocrite(위선자, 위선자, 위선자~)" 하면서 살해한 뒤 너무나 파워풀한 목소리로 "And I feel I'll live on forever, with Satan himself by my side~" 하고 외쳤을 때, 그 강렬하고 탁월한 성량의 노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 버전에선 직역하지 않고 곡 분위기에 맞는 다른 가사로 번안되었는데, <지킬 앤 하이드> 한국어 버전 '가사 번안'은 나름 매력있게 잘된 편이라 생각한다. 한국어 버전에선 하이드가 주교를 살해하는 'Alive-Reprise' 장면에서 이런 식의 가사가 나온다. "그래~ 난 박살낼 테다, 세상의 평화! 타락한 너의 영혼을 칭송할 테다~" 다음에 이렇게 나가는..
난, 악마를 신봉할 테다~ 사탄 편에 설 테다..!
끊임없이 충동할 테다, 파괴를 할 테다~ 그 이름하여 에드워드 하이드~~!!!
젠틀한 지킬 박사의 '억눌러 온 본능(?)'이 제대로 삐뚤게 발산되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한국어 버전도 '가사'와 '멜로디' 간의 씽크로율이 꽤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 중에서 '악'만 집중적으로 추출해 내면 진짜 그렇게 악마가 되는 것일까..? ;; 악마, 사탄.. 본성 자체가 많이 천박하지 않나- 이 뮤지컬의 결말은.. '악이 사랑에 굴복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위대한 사랑의 승리로~
하이드는 루시가 지킬을 사랑하는 걸 보구서 그런 지킬을 많이 '질투'했거나, 아님 악마인 자신이 어떤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싫었나 보다. 왜 '악'은 항상 음습하고, 괴기스럽고, 부정적이며, 심하게 민폐스러운데다가, 극단적이기 짝이 없는 파괴적인 짓거리를 즐기는 것일까..?
그런 타락한 악의 장면들을 일종의 '놀이로(오락물로써의 극 안에 나오는 파괴적인 비주얼의 강렬함으로써만)' 즐기는 건 상관없지만, 요즘 대중들 중에는 종종 악의 그 본성까지 사랑한다고.. 자신은 극 안에 나오는 선인보다 '악인' 쪽에 더 열광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이들도 꽤 있다. 대략 미친 세상이다- ;; 그건 다분히.. 스스로의 분별력 없음과 철딱서니 없는 무뇌아스러움을 자랑하는 행동 아닐까..? 악한 것을 신봉하는 것은 '약물 부작용'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하이드에게나 어울리는 짓이다. 요즘엔 지킬 박사의 약도 안 먹었는데, 주제 넘게 자기가 사탄의 친구라도 되는 줄 아는 개념 상실한 사람들이 꽤 많은 듯하다..
결과적으로, 사탄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대척점이 있는 누군가가 악마 보다는 레벨이 더 높은 것 같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사탄이 즐겨 일삼는 '파괴'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걸 매순간 하고 있기란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그런 건 어쩐지, 역학의 기본 원리에도 어긋나는 것 같으니...